< 152화. 라파엘 >
1급 치천사 라파엘.
태어날 때부터 치천사였던 다른 5대천사들과 다르게, 그녀의 시작은 7급 권천사였다.
천사의 계급 체계는 제법 엄격해서, 콜로세움이 생기기 전까진 어지간해선 승급을 할 수 없는 구조였다.
그럼에도 그녀가 현재 다섯 대천사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건.
“악마들을 처단하라!”
“영원한 빛을 위하여!”
10년 전에 끝났던 대전쟁에서, 몸을 사리지 않고 활약한 덕분이었다.
‘더 강해지고 싶어.’
위에 대한 갈망.
그 갈망이 그녀를 독하게 만들었다.
모든 천사들의 정점이자, 지고지순한 존재.
그녀는 1급 치천사가 되고 싶었으니까.
“모두 나를 따르라!”
“미카엘님이 오셨다! 돌격! 돌격하라!”
“영원한 빛을 위하여!”
가장 선두에서 압도적인 힘으로 적들을 찍어 누르고, 아군에겐 희망을 선사하며, 악마들을 심판하는 대천사들의 모습.
‘아니야.’
고작 그런 것 따위를 동경한 게 아니다.
라파엘은 그저.
“오늘에야말로 저 계집년들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말겠다!”
“죽엇!”
“정화의 불로 이 세상 악마들을 모조리 태워 죽이고 말겠다!”
서로가 죽고 죽이고.
꽈아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아름답게 핀 세상의 모든 것이 부서지고.
“어······ 언니······.”
【소생!】
“트, 틀렸어! 피가 멎질 않아!”
“아파······. 어, 언니. 난 이렇게······.”
“얘기하지 마! 조, 조금만 참아!”
“이렇게 죽는······ 거야······?”
“얘기하지 말라고! 레노엘? 정신 차려, 레노에에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그 암울한 그 참혹한 전장에서.
‘더 강해지고 싶어.’
살아남고 싶었을 뿐.
“이번에 귀하들을 맡게 된 천부장, 좌천사 라파엘이다. 잘 부탁한다.”
그런 그녀의 독기 때문이었을까.
세 쌍에서 네 쌍, 그리고 다섯 쌍.
대전쟁이 지속될수록 등에 날개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한 라파엘은 결국 일곱 쌍의 날개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저기 적장이 있다! 좌천사 라파엘이다!”
“모두 비켜라! 저년은 내가 상대하겠다!”
“오오! 안드로말리우스님이 오셨다! 모두 길을 터라!”
물론 그녀의 계급이 올라갈 때마다 더 강한 존재와 맞닥뜨리게 되었지만, 그녀는 감내했다.
‘그 어떤 도약도 고통 없인 이루어질 수 없어.’
결국 더 강한 존재를 쓰러트릴 때마다, 그녀를 상대할 수 있는 존재의 숫자도 점점 줄어갔으니까.
이렇게 계속해서 투쟁하고 쟁취하면, 종내엔 그녀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이게 뭐야······.’
그 존재를 만나기 전까지는.
‘도, 도대체······?’
붉은 안개가 세상을 가득 메웠다.
엄청난 숫자의 날갯짓 너머로 비명과 고함이 오가고, 마법이 흩뿌려졌다.
라파엘이 소속되어 있던 곳은 대신大神 아르테미스가 이끄는 제 47군단.
판데모니움을 향해 진격하던 그들의 앞을 막아선 적은 고작 한 명이었다.
“아르테미스님, 앞에 누군가 우릴 막아서고 있습니다. 악귀가 그려진 가면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건데, 마계 칠군주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인 것 같습니다.”
“흥. 헬하임에서 나한테 꽁지 빠져라 도망친 녀석이로구나.”
“어떻게 할까요?”
“그대로 진군하라. 녀석 한 명으로선 우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군단장인 아르테미스도 고작 한 명이라는 점에서, 별다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 판데모니움 공략을 위해 계속 진군하라 지시할 뿐.
하지만 상대가 마계 칠군주 중 한 명이라는 것을 무시한 대가는 너무 컸다.
꽈광! 꽈과과광! 서걱! 서걱! 꽈과과광!
“라, 라파엘님. 지금이라도 뒤로 물러서야 합니다!”
“하지만 군단장께서!”
“이러다 다 죽을지도 몰라요!”
고작 한 명에게 47군단이 도륙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저 멀리서, 지옥 칠군주 중 한 명이라는 블라디미르가 포효했다.
라파엘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이, 이럴 수가······.’
녀석은 아무리 움직여도 지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강해져 가고 있었다.
―피의 축제로구나.
악을 심판할 천사들이 녀석의 손에 잡혀 찢겨나갔고, 그건 군단장인 아르테미스도 다르지 않았다.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거지?’
―이 아름다움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자들이여.
라파엘의 온몸이 벌벌 떨렸다.
감히 상상해본 적 없던 광경에 전율했다.
―나, 블라디미르가 온 세상을 피로 잠식해 주겠노라.
일개 개인이 군단을 상대로 압도할 수 있다니.
“아······.”
“라파엘님! 정신 차리세요! 어서 도망쳐야 해요!”
“도망······?”
“이대로는 다 죽어요! 정신 차리세요!”
“그, 그래. 모두 퇴각해, 퇴각해 어서!”
그나마 라파엘의 부대는 후방에 있었고, 군단장 아르테미스가 잠시나마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아, 안돼!”
“아르테미스님께서 전사하시다니······!”
“모두 퇴각하라! 어서 퇴각, 끅!”
그 외에 붉은 안개 안에 들어간 천사 중에서 살아 돌아온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난 안 돼.’
그 뒤로 라파엘은 살아도 산 게 아니었다.
그녀의 뇌리에서 마계 칠군주, 블라디미르가 싸우는 모습이 지워지질 않았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벽을 만난 것 같았다.
‘그렇게 열심히 싸워왔거늘.’
라파엘은 절망했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전장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다.
그 덕분에 라파엘은 3급 좌천사까지 올라올 수 있었지만.
‘절대 녀석을 쓰러트릴 수 없어.’
그녀는 여전히, 고작 한 명의 존재 앞에서 벌벌 떨어야 했다.
두려움이 가슴 속에 화인火印처럼 남았다.
“더 강해져야 해.”
무스펠하임에 있는 천계의 거점, 알테넨.
임시 숙소에서 라파엘은, 얼굴을 무릎에 묻은 채 작게 읊조렸다.
“돌격하라! 오늘은 붉은 피 대지의 악마들을 모두 소탕해야 한다!”
“라파엘님! 조금만 천천히!”
그날 이후, 라파엘은 더욱더 자신을 심하게 몰아붙였다.
더 강한 힘을 갈망했다.
‘더는 두려움에 떨고 싶지 않아.’
전장에 있을 때만큼은, 그 존재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전장을 휩쓸고 다녔다.
‘반드시 제일 위까지 올라가고 말 거야.’
그 덕분에, 그녀의 날개가 한 쌍 추가되는 날이 찾아왔다.
“3급 좌천사 라파엘.”
“예, 군단장님.”
“축하한다. 2급 지천사智天使 승급식이 있을 것이니, 바로 발할라로 이동하도록.”
“감사합니다.”
2급 지천사부턴, 아버지께서 직접 승급을 시켜주신다.
‘드디어.’
한마디로 라파엘은, 오늘에서야 아버지를 처음 만나 뵌다는 것.
그로 인해 그녀의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단 한 명의 초월자.
모든 이 위에 홀로 계시는 분.
‘어떤 분일까.’
기대감을 잔뜩 갖고 직접 만나 뵌 아버지는 그녀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 분이······.’
아버지의 신성력은 무척 포근했다.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편안함을 선사했다.
―떨고 있구나.
―두려워 말거라, 아이야.
―내가 언제 어디서나 함께할 것이다.
살면서 처음으로 느껴 본 안정감이었다.
평생동안 손에 피를 묻힌 채, 전장에서 살아오던 라파엘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꿀 정도로.
그날부터 라파엘은 다시 전장을 전전했다.
다만 이전과는 다른 목표를 가지고 활약했다.
강해져서 불안감을 떨쳐내는 것이 아닌.
‘할 수 있어.’
아버지를 곁에서 지키는 수호천사가 되는 것.
라파엘이 강해지고자 했던 이유는 불안감 대신,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위협할 존재가 줄어들수록, 안정감이 늘어나는 건 당연한 거였으니까.
‘그 포근함을 다시 느낄 수 있어.’
하지만 이제는 위를 바라보며 나아갈 필요가 없었다.
아버지의 신성력 아래에 있으면, 그 안정감을 계속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열두 주신, 오딘님과 환웅님이 마계 칠군주 중 한 명인 블라디미르를 처치했다!”
거기다 연이어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그녀를 불안에 떨게 했던, 블라디미르가 죽었다는 것.
‘할 수 있어.’
가슴에 화인이 사라졌다고 생각한 라파엘은 다시 나가는 전장마다 활약했다.
그녀의 명성이 천계와 마계에 떨쳐 울렸다.
“라파엘이다!”
“젠장! 젠장! 다 이긴 전투였는데!”
나중에는 그녀의 등장만으로, 적들이 벌벌 떨 정도였다.
‘됐어.’
그런 압도적인 활약에 결국, 그녀는 희망하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아버지를 가장 곁에서 보좌하는 다섯 천사.
모든 천사들의 정점.
1급 치천사熾天使.
거대한 아홉 쌍의 날개가, 라파엘의 등에서 펄럭거렸다.
모든 천사들이 그녀를 우러러보았고, 신들마저 그녀를 존중했다.
그리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
들려오는 포효 소리에 라파엘의 몸이 흠칫했다.
‘블라디미르······!’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각인된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했다.
“빈틈!”
서걱!
‘으읏.’
그녀가 멈칫하자, 빠르게 쇄도한 플레이어 하나가 그녀의 날개 하나를 잘라냈다.
쐐애애애애애액!
“타깃이 지쳤다. 모두 총공세 시작하도록.”
뒤이어 쇄도해 들어오는 플레이어들.
【지옥불!】
사방을 집어삼키는 광역 마법.
그 안에서 본능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한 라파엘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내가 왜?
‘난 분명 아버지를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몸 아니던가?’
그런데 내가 언제부터 다시 위를 바라보게 된 거지?
서걱!
두 개의 단검을 쥔 플레이어의 공격에 라파엘의 왼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럼에도 라파엘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눈앞의 플레이어들은 자신과 같이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최전선에서 싸우는 이들.
자신과 같은 고귀한 천사는 아니지만, 결국 뜻이 같은 동료였다.
‘내가 타락하다니······.’
라파엘이 하나 남은 팔로 자신의 얼굴을 쓸었다.
온몸 가득한 상처 너머로, 여린 그녀의 체온이 느껴졌다.
‘하아.’
도대체 왜?
왜 타락한 거지?
온몸의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그 아이가 있었더라면.’
아버지가 직접 그녀에게 붙여주었던.
치유를 관장하는 천사.
아리엘이 곁에 남아있었더라면.
그랬으면 과연, 결과가 달랐을까.
라파엘의 입에서 한줄기 한숨이 흘러나왔다.
‘이미 지나간 일이야.’
라파엘이 이를 악물었다.
이미 타락한 몸.
되돌릴 수 없는 과거에 아파하기보단, 지금 이 순간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생각이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녀에게 허락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라파엘은 남아있는 여덟 쌍의 날개를 힘차게 날갯짓했다.
“타깃이 도망간다.”
“놓칠 줄 알고!”
【천중千重의 겁박!】
푹! 서걱! 서걱!
플레이어들이 그녀를 잡기 위해 악착같이 따라붙으며 검을 휘두르고, 창을 찔러넣었다.
“으읏.”
한쪽 다리가 잘려 나가고 날개가 찢어졌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니플헤임의 입구로 날아갔다.
저 멀리, 니플헤임의 입구가 시꺼멓게 변해 있었다.
모두 다 타락한 그녀를 데리고 가기 위해 몰려든 악마일 것이다.
‘조금만 더.’
푹! 푹! 서걱!
“쿨럭.”
뒤에서 날아든 화살이 그녀의 몸을 관통했다.
곁에서 자신을 따라오던 검객의 검에, 또 한쪽의 날개가 떨어져 나갔다.
펄럭! 펄럭!
갈수록 그녀의 몸이 너덜너덜해져 갔지만, 그녀의 날갯짓은 더욱 거세졌다.
‘조금만 더.’
마지막 남은 그녀의 생명을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보이는 붉은 안개.
‘블라디미르.’
그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 남아있는 화인火印의 주인.
니플헤임의 입구 한가운데에서, 블라디미르가 과거와 같은 위용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 죽여야 해.’
라파엘이 생각하기에, 아버지를 위협할 1순위는 블라디미르였다.
죽일수록 강해진다.
그 말은 즉, 약자들 앞에서 절대적인 위용을 보인다는 것.
시간이 흘러, 녀석이 더 많은 약자들을 학살하기 전에 지금 이 자리에서 처치해야 한다.
블라디미르는 죽일수록 강해지는 녀석이었으니까.
‘너만큼은 반드시 죽이고 말겠어.’
녀석에겐 한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해서 강해지다 보면, 결국 이 세상을 위협하게 될 것이다.
띠링!
[<제마천사制魔天使의 권능>이 발동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위하여.’
그녀가 마음속으로 읊조리며 활강을 시작했다.
그 순간 무수히 많은 기억들이 그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악마들을 쳐부수던 영광스러운 나날들.
아홉 쌍의 날개를 갖게 되자 받게 된, 동경의 눈빛.
그리고 콜로세움에서 플레이어들을 육성시켜달라는 아버지의 부탁까지.
‘나쁘지 않은 인생이었어.’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액!
엄청난 속도로 지상을 향해 돌진하던 라파엘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영원한 빛을 위하여.’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그녀의 검이 블라디미르를 향해 내리꽂혔다.
< 152화. 라파엘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