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50화 (150/205)

< 150화. 스텟 사냥(6) >

[승리 조건 : 배정된 구역의 악마들을 처치하라]

[배정된 구역의 악마들을 모두 처치했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뜨는 알림창.

‘젠장.’

경기가 종료됐다는 말이 없는 걸 보니, 다른 미션을 주려는 모양이었다.

‘지금은 싸우기 겁나는데.’

콜로세움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미션 수행이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다시 정신줄 놓고 싸웠다가, 자칫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

띠링!

[<코드 제로> 미션을 이어서 수행합니다.]

[미션]

[현재 니플헤임을 통해 엄청난 숫자의 악마들이 넘어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타락 천사를 마계로 데려가는 것입니다.]

[초월 리그 소속 플레이어들이 타락 천사를 사살할 때까지 니플헤임에서 넘어오는 악마들을 막으세요.]

[여유가 되는 연합 파티의 고위 플레이어, 일부 상위 플레이어들에게만 할당된 미션입니다.]

[플레이어 ‘고주몽’ / 플레이어 ‘필릭스’ / 플레이어 ‘일리아’ / 플레이어 ‘렌’]

[네 명에게 미션이 할당됩니다.]

[지금 당장 니플헤임의 입구로 향하세요.]

[남은 플레이어들은 지금 당장 ‘고담덕’ 연합 파티와 합류하세요.]

내 예상대로 새로운 미션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내용은 고위 플레이어, 그리고 상위 리그 네임드들만 니플헤임 입구를 지키라는 것.

‘시간이 더 필요한 모양이군.’

꽈아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아앙!

여전히 저 멀리서는 끊임없이 굉음이 터져 나오고, 모래바람을 동반한 충격파가 퍼지고, 땅이 울리고 있었다.

이전보다 더 격렬해진 느낌이지만, 게임 메이커가 판단했을 땐 아직 한참 부족하다고 생각한 모양.

문제는 ‘여유’가 되는 연합 파티에서만 병력을 차출한다는 부분이었다.

‘후우.’

불길한 감각이 고개를 들었다.

“젠장! 또 미션이라니!”

“이런 미친! 고담덕 연합이 있는 곳까지 가려면 500킬로 이상 가야 하잖아!”

“하아. 모두 일어납시다. 이미 떨어진 미션은 철회 안 되잖아요. 힘들지만 가야 해요. 모두 일어납시다.”

미션 창을 본 다른 플레이어들도 앓는 소리를 냈다.

피부가 녹을 정도로 매서운 더위 속에서 연이은 전투를 펼친 상황.

긴장이 풀리면서 모두들 몸이 풀어졌을 것이다.

―모두 그대로 편하게 휴식하라! 출발은 10분 후에 한다!

고주몽 또한 지금 당장 출발해봐야 죽도 밥도 안 된다고 판단했는지, 허공을 날아다니며 외쳤다.

지금 상태로는 가는 길에 체력을 다 소진한 채 쓰러질 것이다.

“휴우, 살았다.”

“으어······ 그래도 10분은 너무 짧아.”

“말할 시간에 어서 쉬어. 입도 열지 말고 그 시간에 호흡을 한 번 더 해.”

그러자 플레이어들이 다시 바닥으로 허물어졌다.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지친 저들에게 있어 10분은 천금과도 같을 것이다.

슈우우우욱!

그때 고주몽이 내 앞으로 날아들었다.

“렌! 그대는 괜찮은가? 만약 그렇다면 우린 바로 출발할까 한다만. 아무래도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전 괜찮습니다. 바로 출발하셔도 됩니다.”

그러자 고주몽이 내 어깨를 툭, 툭 두드렸다.

“피곤하겠지만 부탁한다. 필릭스! 렌을 등에 태워줄 수 있겠나!”

“알겠습니다!”

펄럭! 펄럭!

고주몽의 말에, 허공에서 주위를 경계하던 필릭스가 날아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카이로시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마법사부터 1타깃으로 잡을 테니까 조심해. 절대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고.”

“알았어요.”

카이로시아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이어서 키아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염치없지만, 카이로시아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직 상위 리그로 올라오고 경기 경험이 한 번도 없어서요.”

“걱정 마세요. 카이로시아님은 지금껏 굉장히 잘 해왔거든요. 그렇게 걱정하실 수준도 아니구요. 제가 잘 챙길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키아라와 파티원들을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제 한 몸 챙기기도 바쁠 사람들에게, 다른 사람까지 챙겨달라고 부탁하기가 쉽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었다.

이들을 믿는 수밖에.

“네, 조심히 다녀오세요.”

다행히 파티원들은 내 부탁에도 별다른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렌! 바로 출발하겠다!”

내게 날아들어, 팔을 뻗는 필릭스.

나는 곧장 바닥을 박차고 뛰어, 빠른 속도로 날아드는 필릭스의 팔을 낚아챘다.

“흐읍!”

그리고는 필릭스가 손에 힘을 줘, 나를 위로 날리는 것에 맞춰서 그의 등으로 올라갔다.

그와 동시에 고주몽과 일리아도 날갯짓하며 필릭스의 뒤를 따랐다.

여전히 저 멀리선.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엄청난 충격파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마계가 이번에 완전히 작정을 했는데? ㄷㄷ 이러다 2차 대전쟁 일어나는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 전쟁이 쉽나! 앙? 니 생각처럼 그렇게 쉽게 안 일어난다ㅋㅋㅋ

└그런 것 치고는 들리는 소식도 장난이 아닌데? 대천사 중에 한 명이 요즘 천계에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고 있다고 함.

└대천사 누구?

└(포함돼선 안 되는 단어로 인해 삭제된 댓글입니다.)

└어어어어! 저러다 니플헤임으로 넘어가는 거 아님????

└ㄴㄴ 아직 시간만 끌어주면 충분히 가능성 있음; 근데 문제는 니플헤임에서 넘어오는 악마들이 문제임 ㄷㄷ 비프로스트로 넘어오는 애들이야 발목을 잘 잡아두긴 했는데, 니플헤임에서 오는 애들은 어떻게 함?

└지금 그것 때문에 고위 리그 애들이랑 일부 상위 리그 애들 가잖아.

└고작 저걸로 어떻게 막냐 ㅡㅡ 죽었다 깨도 못 막지;;

└어차피 천계에서 쟤네들한테 원하는 것도 시간을 조금 벌어주는 것 뿐임.

‘저기가 니플헤임 입구.’

필릭스의 등 위에서 정면을 바라보던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압도적인 광경에 나도 모르게 위축됐다.

‘미친.’

사실, 나는 지금까지 3지옥이 중간계처럼 각각 존재하는 별개의 성계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만 지나면 니플헤임이라고요?”

“그렇다.”

내 물음에 필릭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높은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뚝 솟아 있는 얼음 장벽.

그 한가운데에 조그맣게 난, 마치 홍해가 갈라진 듯한 모습의 외갈래 길.

그곳으로 시꺼멓게 깔린 악마들의 모습이 보였다.

[<피의 각성> 종료까지 남은 시간 : 19:02:41]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왜 저쪽 길로만 오는 겁니까? 날개가 있으면 저 얼음 장벽을 넘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얼음 장벽이 높다고 해도, 결국 끝이 있는 이상, 위로 넘어오면 되는 것 아닌가?

하지만 그런 내 의문은 이어지는 필릭스의 말에 해소되었다.

“저 위로 못 넘어온다.”

“어째서죠?”

“나도 뭐 때문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저 위엔 마력을 머금은 무시무시한 바람이 분다고 하더군. 이런 날개 쪼가리들은 닿는 순간 구멍이 숭숭 뚫릴 것이다.”

“지금껏 저 위를 통과한 사람이 그럼 아무도 없습니까?”

“내가 알기론. 그러니까 타락 천사가 계속해서 저기 있는 좁은 입구로 가려고 하는 거겠지.”

필릭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특수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었다.

‘무스펠하임의 환경만 해도 비정상적인 일이니까.’

―슬슬 준비하라!

선두에서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던 고주몽의 말에, 나는 창을 고쳐 잡았다.

“후우.”

저 앞에, 내가 죽여야 할 녀석들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피가 끓어올랐다.

움켜쥔 손이 움찔움찔거렸다.

어서 녀석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피의 축제를 즐기고 싶었다.

‘침착하자.’

나는 긴 한숨을 내쉬며 끓어오르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혀를 살짝 깨물자, 알싸한 혈향이 입 안에서 퍼져나갔다.

그럼에도 한번 피어오른 살기는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왜 그러는가?”

“아닙니다.”

그 탓에 필릭스가 걱정스럽다는 듯 물었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그저, 같은 말만 계속해서 되뇔 뿐.

‘내가 강해지려는 이유를 잊지 말자.’

나는 어째서 강해지려 하는가.

누굴 짓밟고 올라서고 싶어서?

남들이 우러러봐 주길 원해서?

이 세상을 손에 넣고 싶어서?

‘아니야.’

내가 스텟을 올리고, 초월 리그로 올라가려고 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딱 하나 뿐이다.

가족.

어머니, 그리고 형.

두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

‘그런 의미에서 내가 저들을 사냥하려는 이유는 딱 하나지.’

그러려면 강해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높은 스텟이 필요했으니까.

[킬 수 현황]

[1위. ‘렌’ 6,894킬]

[2위. ‘쿠 훌린’ 4,892킬]

[3위. ‘주소월’ 4,771킬]

[4위. ‘아킬레우스’ 4,284킬]

[5위. ‘몽연’ 4,108킬]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 뒤쪽으로 어느새, 수십 쌍이 넘는 날개들과 그들의 등에 타 있는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절대 흥분해선 안 돼.’

나는 비좁은 입구를 통해 몰려드는 악마들을 노려보며, 창을 고쳐잡았다.

* * *

‘틀렸어.’

팀 ‘불굴’의 트레이너 엔젤, 지슈엘은 팜을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팀은 이제 가망이 없어.’

팀에 소속되었던 상위 플레이어들이 고위 리그에 도전했다가 모조리 죽어버렸다.

그와 동시에 팀의 재정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짓을.’

엎친데 덮친 격으로, 팀의 주인이자 중급신인 루디악이 대박을 노리겠다며 하위 리그 성계 대항전에서 지구에 베팅했다.

무려 0.1%의 확률, 배당률은 1:1,000.

결과는 어떻게 됐냐고?

‘그런 기적이 벌어질 리 없지.’

무려 0.1%의 확률이다.

천 번 도전하면 한 번 성공할까 말까.

그런 극악의 확률에 승부를 걸었으니, 당연히 제대로 말아먹었다.

그것도 전재산을.

그 충격으로 루디악은 하루하루 술독에 빠져 살고 있었다.

‘과연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지슈엘이 관자놀이를 꾹, 꾹 누르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분주해야 할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주방 한켠에서 멍하니 서 있는 사용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너희들, 이제 점심시간 아니니? 왜 식사 준비를 안 하고 있지?”

안 그래도 답답하던 상황.

지슈엘의 입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그게.”

“왜? 신께서 요즘 안 보이시니까 설렁설렁해도 될 것 같아?”

“아, 아뇨. 그, 그게 아니라······.”

“그럼? 납득할만한 이유를 대야 할 거야.”

지슈엘의 다그침에 주방장을 맡고 있는 사용인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그······. 요리할 재료가······. 없습니다······.”

“뭐? 언제부터?”

“어젯밤부터요······.”

사용인의 말에 지슈엘은 황급히 식당을 빠져나갔다.

‘아, 안돼.’

그리고 보게 된 광경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플레이어들이, 스텟을 구입해야 할 소중한 포인트로 빵을 사서 먹고 있었다.

‘끝났어.’

지슈엘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 모습에 마음 한켠 남아 있던 지슈엘의 의지가 와르르 무너졌다.

팀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팜 시스템까지 망가진 상황.

지금껏 정성들여 교육시킨 플레이어들이 눈에 밟혔는데, 그것마저 사라져버린 것이다.

플레이어들에게 균형 잡힌 식사를 제공해야 할 사용인들이 요리를 할 재료가 없어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와버렸으니까.

‘이제 어떻게 하지?’

이번 달 봉급을 받고, 못 받고의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다만, 당장 그녀를 써줄 만한 곳이 없다는 것.

‘하아.’

그녀는 고개를 떨군 채 암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지슈엘님.”

“어······ 어?”

그때, 누군가가 부르는 목소리에 지슈엘은 표정 관리를 하며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적어도 플레이어들에겐 나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하얀색 바탕에 붉은 실선이 어지러이 그려져 있는 가면.

“무슨 일이지, 라이언?”

“오늘 경기가 있어서요. 다녀오겠습니다.”

가면을 쓴 남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자, 지슈엘이 한숨을 포옥 내쉬며 어깨를 토닥였다.

“잘 다녀오거라. 멋진 모습을 기대할게.”

“예.”

잠시 후, 가면을 쓴 남성이 공터에 생성된 비프로스트를 통과하며 사라졌다.

‘후우.’

지슈엘은 한숨을 내쉬며 시스템 창을 켰다.

좋든 싫든, 봉급을 받을 수 있든 없든, 어쨌거나 그녀는 아직 팀 불굴 소속.

팀에 소속된 플레이어의 경기를 지켜보며 응원할 의무가 있었다.

그리고 보게 된 광경.

―와우! 정말 놀랍군요! 벌써 몇 킬 째죠?

―하하, 방금 전까지 하품만 하시던 분인지 의심스럽네요. 갑자기 텐션이 확 달라지셨습니다?

―저 플레이를 보고 어떻게 하품을 할 수 있겠습니까? 네임드도 아닌데 피가 끓어오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검을 휘두르는 게 투박해 보이고, 스텟도 높지 않은 것 같은데, 투지가 정말 놀랍군요. 몇 명이 됐든 신경 쓰지 않습니다. 과연 어느 성계 출신일까요? 무림? 웨스테로스? 발리노르?

―제 생각엔 웨스테로스 출신이, 벌써 42킬 째입니다! 흠흠, 너무 흥분했군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제 생각엔 웨스테로스 출신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어떻게 저런 움직임이 나오는 건지는 좀 신기하네요.

경기에 들어간 가면 남성이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지슈엘이 눈을 치켜떴다.

‘저, 저 녀석이라면.’

그녀도 모르게 입을 멍하니 벌렸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깜깜한 미궁 속에 갇혔다고 생각했는데, 저 멀리서 빛 한 줄기가 흘러 내려온 느낌이었다.

‘저 녀석이라면 팀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수도 있어.’

경기장 속의 라이언은.

적 플레이어들을 죽일수록 강해지고 있었다.

< 150화. 스텟 사냥(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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