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49화 (149/205)

< 149화. 스텟 사냥(5) >

피의 강화, 피의 회복, 악마의 눈, 피의 흡수.

블라디미르 가면의 능력 중에서 가장 좋은 걸 꼽으라면 단연 피의 흡수다.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하지.’

물론 나머지도 정말 대단한 능력이다.

어지간한 준신화 등급의 아이템도 스텟을 15%에서 20%까지밖에 올려주지 않는데, 피의 강화는 무려 30%나 상승시켜준다.

피의 회복도 마찬가지다.

현재 내가 거리낌 없이 적진 한복판을 돌파하고, 뇌신 강림처럼 리스크가 큰 스킬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건, 피의 회복 덕분이었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악마의 눈은 미리 상대의 스텟을 파악하게 해줘서, 더 효율적으로 싸울 수 있게 만들어줬고.

‘정말 사기급 옵션이야.’

하지만 내가 피의 흡수를 꼽은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저 세 가지도 무척 뛰어난 능력들이지만, 내가 영구적으로 강하게 만들어주는 건 피의 흡수밖에 없었으니까.

당장 이번 경기에 들어와서 올린 스텟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경기 초반, 지상군을 전멸시키면서 2스텟이 상승했고, 카이시엘을 죽이면서 체력이 6스텟 올랐다.

거기다 이후 두 번의 전투에서 3스텟, 그리고 록탄 성 공략 중에 중급과 상급 악마들을 처치하며 추가로 5스텟이······.

“헛! 놈이 멈췄다!”

“탱커 어딨어! 탱커!”

“어서 레이드 대열로 이동해!”

‘이 개 같은 것들이.’

순간 짜증이 났다.

잠깐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사이, 주변에 있던 악마들이 한꺼번에 내게 달려들고 있었다.

챙! 채챙! 콰지직! 챙! 콰지지직!

‘한창 바쁘게 계산하고 있는데······.’

이를 빠득 갈았다.

온몸에서 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꽈아아아아아아앙! 콰지지지직!

우악스럽게 창대를 잡은 나는 녀석들을 향해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조, 조심!”

“끄아악!”

‘고작 하급 악마 따위가 내 몸에 손을 대려 해?’

창이 번쩍할 때마다 녀석들의 머리, 팔다리가 허공을 날았다.

푸슈우우우욱-

잘려 나간 목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허공으로 솟구쳤다.

붉은 선혈이 마치, 산들바람을 맞아 흩날리는 장미의 꽃잎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군.’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그 모습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 나는, 계속해서 녀석들의 목을 베고, 허리를 가르고, 팔다리를 잘라냈다.

띠링!

[민첩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내가 어디까지 생각하고 있었더라.

‘맞아.’

이전에 얻은 포인트를 계산하고 있었지.

어쨌든, 내가 무스펠하임에 들어와서 얻은 스텟은 총 16 포인트다.

그런데 피의 각성으로 인해 효율이 두 배로 좋아졌다는 건.

‘지금까지 죽인 숫자만큼 추가로 죽이면 30포인트가 넘게 오른다는 거지.’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 주변엔.

“미, 미친놈······.”

“으으······.”

아직 내가 죽여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았으니까.

‘아주 좋아.’

주변을 쓸어보며 씨익 웃자, 나와 눈이 마주친 벌레들이 몸을 벌벌 떨었다.

안 그래도 죽여야 할 벌레들인데, 녀석들을 죽이면 스텟도 오른다.

이보다 좋은 상황이 있을 수가 있을까?

‘이번 기회에 스텟을 확 끌어올려야겠어.’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생각을 마친 나는 벌레들 사이로 뛰어들어 학살을 시작했다.

까악- 까악-

하늘 위를 떠도는 지옥까마귀들이, 관객이 되어 내가 만드는 아름다운 연극을 지켜 봤다.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정신 스텟이 1 하락합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정신 스텟이 1 하락합니다.]

* * *

지옥의 최하층.

―모, 모두 도망쳐!

―끄아아악!

지옥까마귀의 눈을 통해 렌이 싸우는 모습을 보던 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피라는 건 참 오묘하군.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사랑했는지 알 것 같단 말이지.”

샹들리에의 불빛에 비친 왕의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가.”

한동안 눈을 감은 채 렌이 싸우는 모습을 감상하던 왕이 눈을 뜨며 물었다.

그러자 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무릎을 꿇은 채 대기하던 라미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전 잘 모르겠습니다.”

“피를 뭐라고 생각하는가.”

“생명체가 살아있기 위해, 필수로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미엘의 대답에 왕이 피식 웃었다.

“하지만 동시에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지. 신기하지 않은가. 삶과 죽음을 동시에 담고 있다는 것이.”

“······.”

“또한 같은 피를 갖고 있으면 같은 형질을 띠게 되지. 예를 들면 형제라든가 말이야.”

“······?”

한동안 권태로운 표정으로 라미엘을 바라보던 왕이 이내 허공을 응시했다.

그곳에선 여전히 지옥까마귀의 눈으로 바라보는 렌이 담겨 있었다.

“후후, 어서 각성하거라.”

* * *

서걱! 콰지지직! 서걱! 챙! 채챙! 콰지지직!

‘기분 좋은데.’

내 움직임이 점점 빨라져 간다.

창에 담긴 힘이 더욱 무거워지고, 온몸에 활력이 솟구친다.

각성된 피의 흡수 능력은 그냥 사기였다.

서걱! 푸슈우우욱!

“커헉!”

띠링!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조금만 죽여도 스텟이 계속 올랐다.

완전 밸런스 파괴 급.

‘더 빨라지고 싶어.’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거기다 적용받는 스텟이 워낙 많다 보니, 스텟이 1 포인트만 상승해도 확확 강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서걱!

“고, 고작 한 놈에게······.”

[킬 수 현황]

[1위. ‘렌’ 6,894킬]

[2위. ‘쿠 훌린’ 4,704킬]

[3위. ‘주소월’ 4,471킬]

[4위. ‘몽연’ 4,108킬]

[5위. ‘아킬레우스’ 4,007킬]

‘아쉽군.’

너무 아쉽다.

더 이상 내가 죽일 수 있는 벌레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겼다아아!”

“내, 내가 살았어!”

“크윽······. 누, 누가 회복 포션 좀······!”

플레이어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기뻐하는 가운데, 나만큼은 굳어진 얼굴이 풀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피의 각성> 종료까지 남은 시간 : 22:17:42]

‘아직 22시간이나 남았는데.’

저 정도면 아무리 못 해도 1만 킬 이상은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되면 스텟이 말도 안 되게 오를 텐데.

그래서 너무 아쉬웠다.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후우.’

너무 안타까웠다.

스텟을 더 올릴 수 없다는 것이.

“렌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살았네요. 정말 감사드려요!”

“여기! 이걸로 닦으세요! 새거에요!”

내게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들, 피를 닦으라며 손수건을 건네주는 사람들.

그들을 무시한 채 파티원들이 있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깐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플레이어들도 죽이면 스텟이 오르잖아?’

나는 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 고생 많았다! 따로 지시를 내리기 전까진 푹 쉬도록!

“후우. 진짜 죽을 뻔했네.”

“너무 더워서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어.”

죽일 수 있는 존재가 아직, 500명 가까이 남아 있었다.

창을 쥐고 있는 손에,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그때였다.

“렌님! 여기에요!”

나를 부르는 목소리에 나는 멍하니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나를 향해 손짓하는 카이로시아와 파티원들이 있었다.

‘카이로시아도 제법 스텟이 높지?’

스텟이 높을수록 죽이면 더 많이 오르······.

“······!”

순간 화들짝 놀랐다.

‘이런 미친!’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던 거지?

등골이 오싹했다.

―더 강한 힘을 원하는가.

어느새 마음속으로 들려오는 가면의 목소리가, 굉장히 커져 있었다.

짝! 짝! 짝!

‘정신 차리자.’

나는 짝 소리가 나도록 뒷목을 후려쳤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들려오는 가면의 목소리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아니, 아냐.”

어느새 다가온 카이로시아의 물음에 나는 손사래를 쳤다.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말이 꼬일 정도.

“오늘따라 이상하네요? 눈에 초점이 없어요. 제가 정신 좀 번쩍 들게 해드릴게요.”

잠시 나를 올려다보던 카이로시아가 짧게 마법을 영창했다.

【겨울의 눈물.】

쏴아아아아아―

“······!”

그러자 내 머리 위로 시원한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달의 메아리 효과는 발동하지 않았다.

‘시원하군.’

빗줄기를 맞고 있자,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었다.

“어때요? 정신이 좀 들죠?”

카이로시아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전까진 약간 몽롱한 기분이었는데, 덕분에 확 깰 수 있었다.

“고마워. 아,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파티원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상황.

나는 서둘러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며 고개를 끄덕였다.

“렌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렌님이 제일 고생 많았죠, 뭐.”

다행히 카이로시아 뿐만 아니라, 다른 파티원들도 모두 멀쩡해 보였다.

지상군은 내가 어그로를 다 먹고 있었던 데다가, 공중전은 필릭스와 일리아가 합류했으니, 크게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어차피 록탄 성도 함락시켰겠다, 더 이상 넘어올 악마는 없을 겁니다. 그니까 모두 편히 쉬시죠.”

내 말에 파티원들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머, 그럼 아까 가셨던 게 록탄 성을 공략하신 거였어요? 고작 열 명밖에 안 갔잖아요?”

“아, 예. 어차피 모든 병력이 이쪽에 집중되어 있었으니까요. 내부엔 최소한의 병력밖에 없어서 별로 힘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자세히 들려드릴 테니, 일단 잠시 쉬시죠.”

내 말에 키아라가 어서 누우라며 손짓했다.

“에고, 그럼 지금 엄청 피곤하시겠네요. 어서 쉬세요.”

덕분에 철퍼덕 앉은 나는 어느새 뻑뻑해진 눈을 감았다.

아무래도 생각을 좀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피의 각성이 발동되기 전까지만 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발동된 후에도 나는 무언가 변화가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마치 약에 취한 느낌.

‘이대로 있으면 안 돼.’

그래서 더 위험했다.

내가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뭔가에 씌여 있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신화 등급으로 오르면 좋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런 하자가 있을 줄이야.

나는 문득 1회차 때 이 가면을 사용했던 라이언을 떠올렸다.

분명 녀석도 가면을 신화 등급까지 올렸다고 그랬는데.

도대체 어떻게 이 가면을 사용한 거지?

‘후우. 그건 중요한 게 아냐.’

일단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지.

아무래도 팜으로 돌아가서, 블라디미르가 어떤 악마였는지 체크해야 할 것 같았다.

고위 악마였다고 하니까 아세리안한테 물어보면 대략적인 정보라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일단 이번 경기 마무리부터.’

생각을 정리한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부작용은 부작용이고, 일단 얼마나 스텟이 상승했는지 체크해볼 생각이었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상위리그]

[근력 : 313(+5)(+168)] [민첩 : 435(+5)(+258)] [체력 : 255(+5)(+111)]

[정신 : 178(+5)(+77)] [지력 : 160(+71)] [마력 : 237(+5)(+103)]

[각성 능력 : <초감각> <뇌신창> <특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검술> <고급단검술> <고급투척술> <고급박투술> <중급치료술> <고급궁술> <최상급검방술> <고급채찍술> <최상급둔기술>]

[보유 스킬(5/5) : <천뢰십보> <뇌신> <뇌룡의 포효> <마력 상쇄> <그림자 표식>]

‘뭐?’

눈을 감은 채 스텟 창을 확인하던 나는 눈을 부릅떴다.

기존에 알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숫자들이 내 스텟창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게 내 스텟이라고?’

나는 서둘러 내게 적용된 특전들을 뺀 값을 계산했다.

특전으로 적용된 상승률은 근력이 120%, 민첩이 150%, 그리고 나머지 스텟들이 80%였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상위리그]

[근력 : 140] [민첩 : 172] [체력 : 139]

[정신 : 96] [지력 : 89] [마력 : 129]

‘미친.’

정신줄 놓고 싸웠던 사이, 스텟이 폭발적으로 상승해 있었다.

이제는 기초 스텟만으로도 어지간한 상위 넘버링 플레이어가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정신 스텟이 깎였어.’

콜로세움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스텟이 깎였다는 것.

아무래도 내가 정신줄 놓고 적들을 죽인 것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었다.

‘팜으로 돌아가면 다른 거 다 제쳐두고, 이것부터 해결해야겠어.’

나는 다시 차분하게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이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저 멀리서 무언가 폭발하는 모습이 보였다.

띠링!

< 149화. 스텟 사냥(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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