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총 출동(4) >
“모두 조심해! 놈이 렌이다!”
악마 측 지상군에게 돌격한 나는 창을 휘둘러, 닥치는 대로 악마들을 학살했다.
서걱!
“제, 젠장!”
적 지상군이 우리보다 두 배나 많았지만, 내 앞을 막을 수 있는 녀석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금방 다 처리할 수 있겠어.’
애초에 적 지상군은 하급 악마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중급 이상의 악마들은 모두 날개를 가지고 있으니까.
‘전에 만났던 녀석들보다도 훨씬 떨어지는데?’
심지어 긴급 미션 당시 만났던 하급 악마들보다 전체적으로 스텟이 낮았다.
그때 만났던 하급 악마들이 정예였던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군.’
그런 녀석들이 천뢰십보에, 뇌신 강림이 활성화 되어 있고, 거기다 뇌신창까지 각성한 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천뢰십보 덕분에 돌파 효율이 더 좋아졌어.’
단지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사방으로 뇌전이 흩뿌려진다.
4중첩이나 된 뇌전은 닿는 모든 것들을 태우고, 예리한 칼날처럼 도륙했다.
[킬 수 현황]
[1위. ‘주소월’ 586킬]
[2위. ‘아킬레우스’ 583킬]
[3위. ‘몽연’ 581킬]
[4위. ‘고주몽’ 577킬]
[5위. ‘쿠 훌린’ 571킬]
[6위. ‘렌’ 570킬]
[7위. ‘룬’ 568킬]
현황판을 힐끔, 살펴보니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닉네임이 올라와 있었다.
‘킬 수는 우리 연합 파티만 카운트하는 게 아닌가 보군.’
현재 우리 연합 파티에서 랭킹에 들어있는 사람은 고주몽과 나, 단 둘뿐.
거기다 탑 10안에 고위 플레이어는 고작 세 명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하급 악마들을 상대하는 상위 플레이어들과 달리, 고위 플레이어들은 중급 이상의 악마들을 상대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악마의 숫자가 제법 많은 모양인데?’
랭킹 1위부터 10위까지 1인당 대략 500명씩 죽인 상황.
플레이어의 킬 수가 저렇다는 건, 악마의 숫자가 내 예상보다 훨씬 많다는 뜻이었다.
‘분명 아세리안은 천계의 전력이 마계보다 훨씬 높다고 그랬어.’
그래서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전력이 더 높으려면 플레이어의 숫자가 악마보다 훨씬 많아야 했으니까.
‘나중에 따로 물어봐야겠군.’
어차피 지금 상황에선 해결할 수 없는 의문.
나는 눈앞의 악마들을 죽이는 데 집중했다.
‘이번 경기에서 킬 수 랭킹 1위를 찍어야겠어.’
이런 전투에서는 날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체력도 회복되는 데다가.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근접 물리 계열임에도 불구하고, 광역기를 다수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끄아아악!”
순간 빛기둥이 솟구치며, 십수 명에 달하는 하급 악마들이 몸이 터져나갔다.
뇌신 강림으로 인해, 발동 확률이 1%까지 상승한 데다가, 한 번의 공격으로 여러 명을 공격할 수 있는 창의 특성상 벽력이 자주 터질 수밖에 없었다.
띠링!
[<섬전>을 사용합니다.]
꽈과광!
벽력으로 인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자, 나는 섬전을 사용해 순간 이동했다.
“무슨······!”
“헉!”
그리고는 내 움직임에 반응하지 못하는 악마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단숨에 수직 상승하는 킬 수.
하급 악마들은 말 그대로 쓸려나갔다.
“거의 다 끝났다! 모두 조금만 더!”
“죽어!”
거기다 이곳엔 나만 있는 게 아닌, 무려 수백 명에 이르는 플레이어들이 함께 싸우고 있는 상황.
나한테 진형이 뚫려, 우왕좌왕하는 하급 악마들이 플레이어들의 공격에 빠르게 쓰러져갔다.
[킬 수 현황]
[1위. ‘주소월’ 781킬]
[2위. ‘룬’ 779킬]
[3위. ‘렌’ 777킬]
[4위. ‘몽연’ 770킬]
쿨 타임이 돌아올 때마다 섬전을 쓰며 돌아다니길 한참.
어느새 적 지상군 중에서 땅을 밟고 서 있는 악마가 없었다.
“이겼다!”
“오오!”
적 지상군의 숫자가 우리보다 두 배나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대승이었다.
‘후우.’
큰 피해 없이 승리를 거둬 기뻐하는 플레이어들을 뒤로하고, 나는 본대가 있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 본 게임이군.’
지상전에서의 승리는 연합 파티장인 고주몽이 당연하게 깔고 들어간 전략.
한마디로 진짜는 중급 악마 이상급의 전투인, 공중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이 잘 해줘야 할 텐데.’
공중전에서 내가 할 일은 명확하다.
마법으로 중급 악마를 쓸어버리는 동안, 마법 계열 플레이어들을 지킬 것.
그렇게 카이로시아가 있는 쪽으로 향할 때였다.
‘뭐지?’
살며시 들려오는 카이로시아의 영창.
순간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 먼 곳에서 여기까지 들린다고?’
하지만 내 놀라움은 그게 시작일 뿐이었다.
“······!”
“······!”
장엄하게 내리깔리는 카이로시아의 목소리.
고오오오오오오오오―
그와 동시에, 주변에 있는 공기가 카이로시아 쪽으로 빨려 들어갔다.
어떤 이유로 빨려 들어가는지는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카이로시아의 영창 소리와 동시에 생겨난 현상이었으니까.
‘미친······!’
뒷머리가 쭈뼛했다.
무스펠하임의 열기에 녹아 있던 마력이 들끓고 있었다.
처음 보는 기현상에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플레이어 중에······.”
“빨리 복귀······.”
카이로시아의 영창 소리는 계속 커져갔다.
아니, 온 세상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느낌이었다.
그로 인해 주변에 존재하던 모든 소리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강한 빛이 뿜어져 나오면 주변이 어둡게 보이는 것처럼.
그리고 카이로시아의 영창 소리가 최고조에 달하는 그 순간.
【새벽 폭풍에 흩날리는 바람꽃이여, 이 안에서 그 싹을 피우라!】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영창 소리가 뚝 끊겼다.
챙! 채챙! 챙! 챙! 챙!
콰과과과과과과광!
“빨리 공중을 지원해!”
“화살! 혹시 화살 가지고 있는 분 있소?”
“죽어!”
그러자 음소거되었던 전장의 소리가 다시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뭐, 뭐야!’
나는 경악했다.
쓰가가가가가가가가가가강!
지상전을 벌인 우리가 있는 곳과, 카이로시아가 있는 본대 사이의 빈 공간.
그곳에 어마어마한 크기의 회오리가 생겨나며 날아다니던 악마들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었다.
“아, 안돼!”
“살려줘어어어어!”
소용돌이 속에 끌려들어간 악마들이 갈기갈기 찢어지고, 사방으로 피와 작은 살점들이 흩날렸다.
그 한 번의 마법에, 날아다니던 악마의 절반가량이 순식간에 갈려 나갔다.
‘미친······!’
심장이 철렁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광경이,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직경 수백 미터짜리 회오리는 카이로시아의 손짓을 따라 이리저리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저 거대한 회오리를 카이로시아가 가지고 놀고 있었다.
‘저런 마법이 적 진영에서 시전 됐더라면······.’
아마 전투고 뭐고 필요 없을 것이다.
저 한 번의 공격에 전력 절반 이상이 날아갔을 테니까.
“시, 신이시여······!”
다른 플레이어들도 멍하니 회오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재해災害에 사고가 굳은 것이다.
‘이래서였군.’
저 마법을 보니까, 카이로시아가 어째서 근접전을 아예 할 줄 몰랐는지 알 수 있었다.
나라도······ 저런 위력을 보면 카이로시아를 전략 병기로만 사용할 테니까.
‘이게 진정한 의미의 마법.’
내심 지금까지 마법을 무시해 왔었다.
마법사란 존재는, 종이 쪼가리 몸에 화력만 강한 반쪽 짜리밖에 되지 않는다는 게 지금까지의 내 생각이었다.
거기다 화력이 강한 마법을 펼치려면 영창이라는 과정까지 거쳐야 한다.
0.1초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전장에서, 그건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죽여달라고 목을 빼고 있는 거나 다름없지.’
그렇기 때문에 콜로세움에서 고위 마법이 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견제용으로 몇 개 톡톡 날려놓고, 거리가 가까워지면 검을 꺼내 들기 바빴달까.
간혹 파티 대 파티 단위로 싸우는 경우엔 그보다 상위 마법이 발동되기도 하지만, 어쨌든 콜로세움에서 마법은 보조라는 개념이 강했다.
‘내가 지금까지 카이로시아의 진면목을 몰랐군.’
내 마음속에서 카이로시아의 가치가 급상승하는 순간이었다.
└와 미친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지금 뭐임?? 따로 마법진 준비도 안 하고 영창만으로 저런 마법 뿌린 거임?
└ㅅㅂ 도대체 지력이랑 마력 스텟이 몇인 거야? 얼마 전에 상위 리그 올라온 애 아님?
└윗댓 / ㄴㄴ 지력이랑 마력은 마법 데미지 올려줄 뿐이지 고위 마법이랑은 상관없음.
└그럼 고위 마법 쓰려면 어떻게 해야 됨?
└본인이 공부를 해야지 ㅋ 어떻게 영창하고, 어떻게 마법진 그리고 이런 거 ㅋ 그래서 마법사들이 팜에 있을 때 연구실에서 안 나오잖음
└뭔 소리얔ㅋㅋㅋㅋ 마법사들이 연구실에서 안 나온다고? 살려고 다들 체력 단련실에서 검 휘두르기 바쁘지 않음?
└어.. 맞는듯 ㅋㅋ 연구실에서 안 나온 애들 다 금방 죽긴 했지 ㅎㅎ;
└쟤 어디 팀임? 도대체 어떻게 육성시켜야 저런 마법사가 나올 수 있는 거지?
└닉네임 : 카이로시아 / 소속 팀 : 투지
└또 팀 투지.. 시발.. 거긴 근접 물리 계열 어떻게 육성시키냐고 문의넣어도 답변 하나 없더만..
└내가 봤을 땐 팀 투지에 육성의 신 있음 ㅋㅋㅋㅋㅋㅋㅋ
카이로시아가 발동한 마법에 전장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저 여자를 1순위 타깃으로 처리하라!
공중전을 펼치던 악마들 사이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치자, 살아남은 악마들이 모조리 카이로시아가 있는 곳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어딜!’
[플레이어 ‘카이로시아’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순식간에 카이로시아의 뒤로 이동한 나는 쇄도하는 악마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 서걱!
“하아, 하아, 앗, 안······렌님!”
“고생 많으셨, 흡!”
나를 발견한 카이로시아와 파티원들이 인사를 건네오자 나는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수비부터! 키아라님과 로만님은 보호 마법을!”
“네!”
“알겠습니다.”
채애애앵! 채앵!
‘후우.’
날아드는 악마들의 공격을 막으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격을 막아낼 때마다 팔이 저릿저릿했다.
‘쉽지 않은데.’
내 특기는 공격과 돌파.
상대의 힘이 강하다면 부드럽게 상대하고, 상대가 나보다 빠르다면 공간을 잘라먹으며 쓰러트린다.
한마디로 상대 스타일에 카운터를 친다는 뜻.
‘일단 막아내는 수밖에 없어.’
하지만 지금처럼 누군가를 보호해야 할 땐 내 특기를 살릴 수 없었다.
엄청난 속도로 활공해 내려오는 공격을 피했다간, 카이로시아가 죽을 테니까.
게다가 카이로시아의 안색이 창백한 걸로 보아, 단순히 이동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가지고 있는 마력을 다 써서, 마력 탈진이 온 것이다.
결국, 무조건 공격을 막아내는 수밖에.
“키아라님! 마력 회복 물약!”
“네! 제가 먹일게요!”
내가 짧게 소리 치자, 키아라가 카이로시아를 끌어안고 뒤로 빠졌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들은 것 같았다.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커헉!”
그나마 다행이라면 중간중간 벽력이 터져준 덕분에 쇄도해 들어오는 악마의 숫자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었다.
거기다 지상군을 완전히 전멸시켜서 이제는 원거리 딜러들이 공중 견제를 하고 있는 상황.
이대로 버티기만 해도 우리 측의 승리로 끝날 것이다.
―모두 비켜라! 내가 상대할 것이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액!
그때, 하늘 위에서 악마 하나가 파공음을 일으키며 우리 쪽으로 날아들었다.
머리 위에 거대한 뿔이 돋아 있었는데, 다른 악마들과 달리 6쌍의 회색빛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타락 천사!’
채애앵!
꽈아아아아아아앙!
날아드는 타락 천사의 검을 막자, 내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미친!’
무시무시한 근력에 엄청난 속도까지 곁들여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타락 천사의 각도를 조금 비트는 것 뿐이었다.
“앗, 렌님! 괜찮으세요?”
튕겨 나가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키아라.
바닥을 구르던 나는 다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일단 타락 천사부터!”
섬전을 써서 다시 카이로시아 곁으로 순간 이동한 나는 이어지는 타락 천사의 공격에 대비했다.
【은은한 물의 장막!】
【포근한 대지의 포옹!】
【오색 빛 바람의 우산!】
【차가운 염화의 방패!】
그와 동시에, 내가 있는 곳으로 여러 겹의 보호막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나이스 타이밍.’
주변에 있던 플레이어들이 보호 마법을 사용해 준 것이다.
물론 고작 이 정도로는 타락 천사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내게 가해지는 충격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것이다.
―흥! 고작 이깟 걸로 날 막을 생각을 하다니!
타락 천사가 또다시 엄청난 속도로 쇄도했다.
[4급 주천사 ‘카이시엘’의 권능 <신월천사伸月天使의 권능>에 의해 일시적으로 달의 힘이 깃든 아이템의 능력이 봉인됩니다.]
[<로브:달의 메아리>의 능력이 봉인됩니다.]
[상급 악마 ‘카이시엘’의 스킬 <중천악마重踐惡魔>에 걸렸습니다.]
[앞으로 10분간 근력 스텟이 10% 하락합니다.]
그와 동시에 뜨는 알림창.
‘뭐?’
그걸 본 나는 흠칫했다.
녀석은 지금, 천사의 권능과 악마의 능력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 142화. 총 출동(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