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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39화 (139/205)

< 139화. 총 출동(1) >

르니카엘은 각 성계 당 상위 100명으로 선정된 플레이어들에게 오퍼를 보내면서도 무척 조마조마했다.

라파엘님이 큰 실수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다.

‘제발, 무사히 지나가길······.’

1급, 치천사熾天使.

아홉 쌍의 날개를 가진.

천사들 중 가장 고귀한 다섯 존재.

그런 탓에 라파엘은 플레이어들을 벌레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르니카엘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도 생각이 있고, 감정이 있는 존재들인걸.’

아무런 상의도 없이 어드밴티지를 줄인 것에 대한 앙심을 품을 가능성이 컸다.

그와 관련해 계속해서 말씀드려봤지만, 라파엘님께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계셨다.

이전의, 철두철미하던 것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

그 탓에 르니카엘은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타락화의 전조 증상.’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라도.

정말 만약에라도.

타락화가 시작될 수 있었으니까.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이람.’

르니카엘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이 많다 보니, 자신 또한 예민해진 모양이었다.

손바닥으로 뺨을 짝짝 치고, 크게 한숨을 내쉰 그녀는 남은 업무에 집중했다.

그때였다.

띠링! 띠링!

[플레이어 ‘렌’ 이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플레이어 ‘룬’ 이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

막 다른 업무를 시작하려던 르니카엘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그저 기우이길 바랐던.

우려했던 그 일이 터진 것이다.

‘빠······ 빨리 어떻게든 해야 해.’

르니카엘은 서둘러 라파엘에게 향했다.

지금, 이 순간은 혼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1년 가까이 준비해온, 막대한 포인트가 들어간 초대형 이벤트가 시작도 전부터 엎어질 위기였으니까.

고작 몇 걸음만 옮기면 되는 짧은 거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저, 저······ 라파엘님.”

“응, 왜?”

떨리는 몸을 추스르며 다가가자, 라파엘이 따뜻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전의 까칠하던 것과 달리, 무척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성계 대항전이 코앞에 다가왔으므로, 더 이상 변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예전 모습.

그 탓에 보고하기 망설여졌지만, 르니카엘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문 뒤 입을 열었다.

“그······ 플레이어 렌과, 플레이어 룬. 두, 두 사람이 성계 대항전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

르니카엘의 말에, 집무실에서 분주히 업무를 보고 있던 수백 명의 천사들이 숨을 죽였다.

그러나 르니카엘이 예상했던 것과 달리, 라파엘의 입가에선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

그 모습에 르니카엘이 고개를 갸웃했다.

‘뭐지?’

이미 그쪽과 얘기가 된 내용인 건가?

잠깐동안 그런 생각이 들었을 정도.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라파엘의 입가에 맺힌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

르니카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웃고 계신 게 아니었어.’

분명했다.

라파엘은 지금.

너무 화나서 몸의 통제를 잃은 거라는 걸.

‘제, 제발······.’

그때였다.

“······!”

방금 전의 인자한 미소는 온데간데없이, 라파엘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졌다.

“하.”

그녀의 몸에서 아주 진득진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 광경에 주변 천사들이 바르르 떨었다.

“주신, 그 잡것들을 상대하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안 돼!’

르니카엘의 심장이 철렁했다.

“감히 하찮은 것들까지 날 무시해?”

펄럭―! 쨍그랑! 콰당!

9쌍의 날개가 활짝 펴지며 주변의 책상이 뒤엎어지고, 서류가 흩날리고, 유리잔이 깨져나갔다.

라파엘의 눈에 핏발이 섰다.

지금 모습으로는 지고지순한 다섯 대천사가 아닌, 한 명의 악마를 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르니카엘은 경험에 의해, 지금 라파엘의 상태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있었다.

‘타락화······!’

그동안의 예민함에, 극도의 분노까지 느끼게 되면서 결국 우려했던 일이 발생한 것이다.

르니카엘이 6쌍의 날개를 활짝 편 채 라파엘의 몸을 끌어안았다.

절대로 여기서 나가게 해선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말도 안 돼! 라파엘님이!”

“모두들 어서 서둘러! 타락화가 진행되게 하면 절대 안 돼!”

그와 동시에 집무실에 있던 모든 천사들이 날개를 펴며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성령!】

【소성!】

【정화!】

【맹약!】

그리고는 라파엘의 타락화를 막기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신성한 주문을 읊조렸다.

성스러운 빛이 집무실 안을 가득 채웠다.

“하아. 하아. 하아. 하아.”

끌어안은 라파엘이 숨을 몰아쉬었다.

신성한 주문 덕에 조금은 진정이 된 모습.

무려 백 명이 넘는 천사들의 신성한 주문이 조금이나마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걸론 안 돼.’

하지만 르니카엘은 회의적이었다.

무려 1급 치천사의 타락화를 고작 이 정도로 멈출 수 있다면, 천계에서 타락 천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진행을 조금 늦춘 것 뿐이야.’

근본적인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현시점에서 해결 방법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제가 주신님들께 다녀올게요! 다른 분들은 타락화를 최대한 늦춰주세요!”

르니카엘의 귓가로 타니엘의 외침이 들렸다.

‘좋아. 이대로면 충분히 가능성 있어!’

타니엘은 신속의 천사라고 불릴 만큼, 이곳에서 가장 빠른 존재.

아마 금세 주신님들을 모셔 올 것이다.

‘제발······. 제발 빨리······.’

라파엘을 끌어안은 르니카엘이 팔에 꾸욱 힘을 주었다.

치천사의 타락화를 막을 수 있는 건 주신님들 뿐.

마침 오늘은 주신님들의 회의가 있는 날이다.

그리고 그 회의는 라파엘님의 집무실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신성한 회당에서 진행된다.

아마 조금 있으면 열두 주신께서 집무실로 도착할 것이다.

“하아, 하아. 이것 놔라. 치천사의 명예를 걸고 오늘 반드시 저 두 놈을 죽여야겠으니.”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열두 주신은 오지 않았다.

분명 타니엘이 회당에 도착하고도 남았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가장 높은 십이좌十二座의 거룩한 회의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지만, 거기에도 예외가 있다.

―비상시엔 누구든 문을 두드리는 것을 허용하노라.

그리고 지금은 비상을 넘어, 초비상 사태가 터진 상황.

‘타니엘······! 제발 빨리······.’

르니카엘은 빌었다.

빌고 또 빌었다.

아버지께 기도를 드렸다.

하지만 그 기도가 이어질수록, 싸늘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았다.

온몸이 차갑게 식어갔다.

어느새 라파엘의 몸에서 스멀스멀 마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놓아라. 날 왜 막는 것이냐.”

작게 으르렁거리는 라파엘.

그녀의 목소리에서 진한 살기가 배어 나왔다.

‘이미······ 늦었어······.’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아버지······. 부디 우리를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신성한 주문을 외우던 천사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놈들도 날 무시하는 것이냐아아아아!”

“······!”

눈부실 정도로 강렬한 빛이 주변을 집어삼켰다.

‘아버지······.’

애타게 아버지를 불러 보았지만.

그게 르니카엘이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 *

나와 룬, 두 사람의 불참 소식은 빠르게 알려졌다.

출전 거부를 누른 지 불과 10분도 안 돼서 소문이 퍼져나간 것이다.

└아니 미친 ㅡㅡ 장난하나? 고작 1주일 남겨놓고 불참하는 건 지구 출신 몇 명 없다고 태업하는 거잖아ㅡㅡ ㅆㅂ 콜로세움이 장난이냐? 엉? ㅂㅅ새끼가 인기 좀 얻더니 기고만장해져가지고ㅡㅡ 지금까지 기대하던 관객들 우롱하니까 좋냐? 엉? 넌 평생 따라다니며 악플 단다 ㄱㅅㄲ야

그 짧은 시간 동안 커뮤니티엔 나를 욕하는 게시글들로 가득했다.

‘슬슬 뿌려야겠군.’

이럴 줄 알고 미리 입장문을 준비해 놓은 상황.

나는 아세리안의 집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어서오세요, 안우진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세리안이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했다.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서류로 보건데, 아직 커뮤니티에서 난리가 났다는 걸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슬슬 입장문을 발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 벌써 소문이 퍼졌나요?”

아세리안이 책상 위에 널브러진 서류 더미들을 급하게 치우며 허공을 응시했다.

그러더니 그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와······. 아니, 이분들은 도대체 어떻게 알았대요? 출전 거부한 지 5분도 안 되신 거 아니에요?”

“맞습니다.”

“생각보다 성계 대항전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큰가 보네요. 뭐, 우리한텐 차라리 잘 됐죠. 바로 올릴게요.”

아세리안이 싱긋 웃더니 허공을 터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올렸어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물론 입장문을 읽어보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나랑 아세리안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만들었으니까.

다만 무슨 댓글이 달릴지 궁금했을 뿐.

‘미친.’

커뮤니티에 들어간 나는 눈을 치켜떴다.

이제 막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벌써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실시간으로 어마어마하게 늘고 있었고.

└와;; 이게 사실이면 애초에 게임 메이커가 성계 대항전을 열 생각이 없던 거 아니냐?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아무런 상의 없이 공식 오피셜보고 어드밴티지가 축소된 걸 알았으면 ㅅㅂ 나라도 뒤집어엎지 ㅡㅡ

└아.. 이렇게 보니까 렌은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개손해였누 ㄷㄷ

└ㅋㅋㅋㅋㅋ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렌 욕하던 ㅅㄲ들 다 어디 갔냐?

└오히려 게임 메이커가 고춧가루를 뿌렸음. 당장 항의하러 ㄱㄱ

└나도 같이 가자ㅡㅡ 어떻게 게임 운영을 이따위로 함? 항의2 ㄱㄱ

└난 이미 항의하러 왔음. 근데 여기 난리 났는데? 이미 누가 테러하고 갔나 봄 ㅋㅋㅋㅋㅋ 집무실 개박살 나 있음 ㅋㅋㅋㅋ

신들의 여론이 순식간에 급변했다.

타깃이 나에서 라파엘로 확실하게 넘어간 것 같았다.

‘이래서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 거지.’

입장문을 팩트에 기반해서 적긴 했다.

다만.

내가 손해 보는 부분을 조금 ‘강조’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무시’ 당했다는 부분을 부각시켰달까.

“신들이 확실하게 안우진님 편으로 돌아섰네요. 이 정도면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는데요?”

함께 모니터링하던 아세리안이 빈 허공을 응시하다 말고, 나를 바라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생각보다 잘 풀렸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내 입장을 발표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역풍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추세로 보면, 신들이 확실하게 내 편으로 돌아선 것 같았다.

오히려 날 욕하는 신들에게 수십 개의 욕이 달릴 정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특이사항 있으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네에. 오늘도 화이팅이에요!”

환하게 미소 짓는 아세리안을 뒤로하고 특수 대련장으로 향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걱정할 건 없었다.

여론도 확실하게 돌아선 데다가, 성계 대항전도 끝난 거나 다름없는 상황.

이제야 온전히 내 성장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형, 어떻게 되셨어요?”

“잘 마무리되셨습니까?”

특수 대련장으로 들어가자, 팀원들이 다가오며 나를 반겨 주었다.

“예. 잘 처리했습니다. 지금 누구누구 대련 중이십니까?”

“아, 저랑 제이스형은 막 끝났어요. 지그형이랑 고건하형도 슬슬 마무리되실 것 같아요.”

“좋네요. 그럼 이어서 저랑 하시죠.”

“넹!”

다른 사람들의 대련에 방해되지 않도록 한쪽 구석으로 이동한 나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슬슬 고급 권각술에 대한 감을 잡아가고 있던 상황.

어차피 다음 오퍼가 들어온다 해도 3개월에서 4개월은 걸릴 테니, 그때까지 고급의 경지를 만들어둘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뭐, 뭐야?’

미친 듯이 울려대는 콜에 나는 눈을 치켜떴다.

[코드 제로. 코드 제로.]

[긴급 상황입니다.]

[초월 리그, 고위 리그, 상위 리그 플레이어 전원은 지금 당장 게이트로 입장하세요!]

[만약 게이트로 입장하지 않을 경우 커다란 불이익이 발생합니다.]

코드 제로?

초월 리그부터 상위 리그까지 전부 다 게이트로 들어가라고?

눈앞에 뜬 알림창에 어안이 벙벙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전의 경험을 통해 한 가지는 알 수 있었다.

지금 당장 가야 한다는 것.

“카이로시아!”

나는 한달음에 다가가,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멍때리고 있는 카이로시아의 손목을 잡아챘다.

“어······ 네? 아앗!”

그리고는 서둘러 특수 대련장을 빠져나갔다.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이에요?”

내게 팔목이 잡혀, 함께 공터에 생성된 게이트로 달려가던 카이로시아가 물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세요.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들보다 훨씬 더 최악의 상황인 것 같으니까.”

대충 예상은 할 수 있었다.

또 타락 천사가 등장한 거겠지.

하지만 초월 리그부터 상위 리그까지, 소속된 모든 플레이어들이 참가한다는 것에서 이번 미션이 얼마나 어려울지 가늠이 오질 않았다.

‘나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

싸아아아아아아아-

나는 카이로시아의 손목을 잡은 채로 게이트를 통과했다.

띠링!

[모든 상태를 100%로 회복합니다.]

화륵! 화르륵!

불꽃이 넘실거리고, 뜨거운 열기가 코끝을 찔렀다.

[무스펠하임에 입장하셨습니다.]

[<달의 메아리> 가 외부 온도를 차단합니다.]

이전에 왔던 맵.

불의 세계, 무스펠하임.

그곳에 엄청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보였다.

< 139화. 총 출동(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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