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후폭풍(6) >
4급 주천사 포르도엘.
그녀는 팀 투지에서 마법 계열 육성, 그리고 사용인들을 관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오늘은 뭐 없나?’
팀에 소속된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이 근접 물리 계열이고, 마법 계열은 카이로시아를 포함해 백 명 정도밖에 없는 상황.
그러다 보니, 피넛엘보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포르도엘은 오늘도 팜을 어슬렁거리며 혹시 문제가 있는 사람은 없나 체크하고 있었다.
‘오늘도 많이 힘들어 보이네.’
그렇게 팜을 돌아다니던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안우진이 중개 거래소 관련 업무를 맡기기 위해 고용한 사용인, 클로에였다.
“클로에. 바쁘니?”
“앗! 포르도엘님! 아니요, 헤헤. 오늘도 평소랑 똑같죠.”
포르도엘의 등장에 클로에가 활짝 웃었다.
좁은 방 안.
그녀의 업무는 매일 같이 중개 거래소를 들여다보는 것이다.
거기서 준신화 등급 이상의 아이템이나 플래티넘 등급 이상의 스킬이, 아니 다 떠나서 비싼 금액에 무언가가 올라온다면 일단 안우진에게 보고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클로에가 지금까지 안우진을 먼저 찾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 멍하니 중개 거래소의 스크롤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목록을 살피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었달까.
‘요즘엔 더 힘들겠지.’
특히 최근엔 거래소의 매물이 씨가 말랐기 때문에 벽을 보고 하루 종일 있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고문받는 거나 마찬가지.
그런 클로에가 안쓰러웠던 포르도엘이 포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우리 같이 중개 거래소 보면서 대화나 할까?”
“앗! 그럼 저야 감사하죠. 차라도 준비해 드릴까요?”
“괜찮아. 요즘은 스킬북 판매도 하고 있지? 좀 어때?”
포르도엘의 말에 클로에의 눈썹이 팔八자가 되었다.
“사실······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어요.”
“왜? 듣기론 너무 잘 팔려서 문제라던데?”
“아, 제 말은 그게 아니구요. 뭐랄까······ 스킬북의 이름이나 가격도 안 보고 사 가는 것 같아요. 올리는 순간 이미 중개 거래소 목록 창에서 사라져 있거든요.”
‘가격도 안 보고 사 간다고?’
포르도엘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스킬북 구입이 목적이라면 가격은 당연하고, 무슨 스킬이며, 어떤 효과가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그런데 클로에의 말대로라면 그런 것 없이 그냥 일단 닥치는 대로 구입하고 있다는 것.
순간 포르도엘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재미있는 생각이 났다.
“그래? 그럼 나 한 권만 줘볼래? 이게 오늘 판매할 스킬북이지?”
포르도엘이 클로에의 곁에 있는 네 권의 스킬북 중 한 개를 집어 들었다.
딱 보니, 3티어 등급의 스킬이었다.
요즘처럼 스킬북의 씨가 말라, 인플레이션 상황 속에서도 10만 골드에 팔릴까 말까 싶을 정도로 조잡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네, 맞아요. 근데 뭐 하시려구요······?”
포르도엘이 씨익 웃자, 클로에가 불안한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그 모습에 포르도엘은 더더욱 기대가 됐다.
“정말 가격도 안 보고 사는지 한 번 보려고.”
“어떻게요?”
“음······. 한, 10억 골드 정도로 올려보게. 어때, 너도 기대되지?”
물론 팔려나갈 가능성은 없을 것이다.
진짜 가격을 안 본다고 하더라도, 10억 골드나 가지고 있는 신이 존재할 리 없으니까.
그럼에도 10억 골드에 올려보려고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사려는 신들도 황당해하겠지?’
비록 직접 표정을 볼 수는 없겠지만, 그 가격대를 보고 당혹스러워하거나, 안도의 한숨을 내쉴 누군가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이다.
마음을 먹은 포르도엘은 과감했다.
마침 시간도 저녁 9시가 된 상황.
띠링!
[<스킬북:삼재 검법>]
[판매가 : 1,000,000,000 G]
중개 거래소에 스킬북을 올린 포르도엘이 쿡쿡, 웃었다.
그때였다.
띠링!
“······!”
절대 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알림음.
그게 스킬북 등록과 동시에 울려 퍼졌다.
순간 포르도엘이 밀랍 인형처럼 삐그덕거리며 클로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러세요?”
그 모습에 클로에가 고개를 갸웃했지만, 포르도엘은 입을 벌릴 뿐이었다.
왜냐하면 눈앞에.
[<스킬북:삼재검법>이 판매되었습니다.]
절대 보여선 안 되는 글귀가 떠 있었으니까.
‘이게 왜······ 팔려······?’
순간 닭살이 돋았다.
아무래도······ 대형 사고를 친 것 같았다.
* * *
포르도엘의 말을 들은 나는 서둘러 커뮤니티로 들어갔다.
‘젠장. 젠장.’
중개 거래소 물품 등록을 가지고 장난치는 건 금기시 되어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중개 거래소에 올라와 있는 아이템이나 스킬북을 보면 대부분 합리적인 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수수료를 받지 않는 거겠지.
그런데 지금, 포르도엘이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말하자면 거래소 사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10억 골드라니.’
그것도 수습하기 힘들 정도의 거대한 금액으로.
‘골치가 아프군.’
하물며 이 시간에, 무림에서 흘러나온 스킬북을 판매하는 게 나라는 걸 대다수의 신들이 알고 있는 상황.
10억 골드에 사 간 신도 당연히 내가 범인이라는 걸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 이와 관련해서 게시글을 올릴 것이 분명했다.
‘상위 리그에서 지금껏 쌓아온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어.’
서둘러 커뮤니티로 들어간 나는 게시글을 슥 훑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스킬북을 10억 골드에 샀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너무 황당해서 멍한 상태이거나, 아니면 지금 분노가 가득 담긴 게시글을 쓰고 있거나.
‘후.’
“저, 정말 죄송해요······.”
포르도엘은 4급 주천사에 어울리지 않는, 개구쟁이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아세리안이나 다른 사람들한테 대하는 것만 봐도 애교가 가득 묻어나왔다.
쾌활하고, 장난기 많은 천사.
그렇기에 언젠가 무슨 일이 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쯧.’
이미 벌어진 일이다.
여기서는 어떻게든 해결할 방법부터 찾아야지, 잘잘못을 따지고 있어봤자 달라질 게 없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아, 클로에님께 당분간은 스킬북 판매 멈추라고 전해주세요. 포르도엘님은 커뮤니티를 주의 깊게 살펴 주시고요. 오늘 일과 관련해서 올라온 게 있다면 바로 알려주셔야 합니다.”
“네에.”
고개를 숙인 채 발걸음을 옮기는 포르도엘.
떠나는 그녀의 모습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요 며칠 운이 좋더라니.
‘일단 게시글이 올라오면 아세리안한테 부탁해서 바로 환불해줘야겠군.’
사실 탐날 수밖에 없는 숫자였다.
무려 10억 골드.
그렇지만, 잘못 삼켰다간 심하게 탈이 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포인트도 아니고, 골드에 목을 맬 만큼 궁하지 않았다.
‘제발 잘 지나가야 할 텐데.’
포르도엘이 10억 골드에 스킬북을 판매한 뒤,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1주일이 지나고, 2주일이 지나도 커뮤니티엔 아무런 글이 올라오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변화는 있었다.
‘물량이 쌓이는군.’
그날을 기점으로 중개 거래소에 등록되어 있는 아이템과 스킬북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한 명이 지금까지 물량을 다 빨아먹고 있던 거였어.’
확실한 건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타이밍이 묘했다.
10억 골드에 스킬북을 판매한 뒤 곧장 물량이 늘어나기 시작했으니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지?’
물론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매점매석이라고 하기엔 무기, 방어구, 스킬, 소모품 등등 종류를 가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그냥 중개 거래소에 있는 모든 것들을 등록되는 족족 구입해 갔다는 것.
[최근 중개 거래소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하여, 금일 20시까지 중개 거래소 시스템 점검이 진행됩니다.]
[이용하시는 모든 분들께 양해 바랍니다.]
중개 거래소를 관리하는 측에서도 그걸 이상하게 여긴 모양이었다.
콜로세움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점검을 하겠다는 공지를 올린 것이다.
‘뭔가 있군.’
물론 내 알 바는 아니었지만, 덕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이유야 어쨌든, 거래소에 등록된 모든 것들을 닥치는 대로 사들였다는 것 하나만으로 매점매석의 의심을 피할 수 없을 테니까.
내게 문제 삼을 가능성이 사라진 셈이었다.
이 일을 커뮤니티에 올리는 순간, 본인이 범인이라는 걸 자백하는 거나 마찬가지.
결국 10억 골드에 스킬북을 판매한 일 자체가 묻힐 것이다.
‘대박인데?’
[보유 골드 : 1,101,473,050 G]
최악을 가정하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10억 골드가 수중에 생겼다.
말하자면 복권을 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첨된 거나 마찬가지랄까.
‘오히려 포르도엘한테 고마워해야겠는데.’
그날 이후, 포르도엘은 기죽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심지어 아세리안한테까지 불려 가서 한 소리 들은 모양.
‘따로 찾아가서 위로해 줘야겠군.’
그녀가 잘못한 일이긴 하지만, 결론적으론 어마어마한 이득을 본 셈이었다.
마교 본거지에 있던 스킬북을 통째로 털어온 수준으로 엄청난 이득을 안겨줬으니까.
‘이 정도면 스킬북을 판매할 필요가 없겠어.’
내가 골드를 보유하고 있으려는 이유는 명확하다.
혹시나 등장할 준신화 이상의 아이템, 혹은 플래티넘 등급 이상의 스킬을 구입하는 것.
하지만 10억 골드라면 준신화나 플래티넘이 몇 개가 떠도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그 외로 내게 필요한 건 딱 하나였다.
‘스텟을 구입할 포인트지.’
이렇게 된 이상 스킬북을 팀원들에게 전부 뿌릴 생각이었다.
1티어 등급의 스킬을 딱 하나만 가지고 있더라도, 플레이어의 수준이 크게 상승한다.
당장 마력 상쇄나, 천둥의 숨결, 뇌신을 내가 가지게 되면서 얼마나 많이 성장했던가.
굳이 수치로 표현하자면, 하위 리그에서는 1티어 등급 스킬 한 개만 가지고 있어도 넘버링이 1에서 2는 상승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신입들을 제외하곤, 팀원들 대부분이 넘버링 6에서 8 사이에 걸쳐 있어.’
한마디로 1티어 등급 스킬이 추가되면 대부분의 팀원들이 컨텐더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것.
거기다 내가 보유하고 있는 스킬북들은 대부분 무림에서 흘러나왔다.
그곳이 열두 성계에서 가장 강한 네 곳 중 하나라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팀원들의 전력 상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었다.
잠시 마음속으로 포르도엘에게 감사를 표한 나는 아세리안에게 향했다.
팀 투지를, 상위 리그에서도 명문으로 불리게 해 줄 날이 머지않았다.
‘그때가 되면 포인트가 엄청나게 들어오겠지.’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성계 대항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D-day 7
└하앍. 진짜 오래 기다린 느낌임 ㅠㅠㅠ
└티르너노그 가즈아아아악!
└다들 어느 성계가 우승할 거라고 봄?
└현재 상위 리그 최상위 네임드들만 보면 알프헤임, 무림, 졸본 이 세 곳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음.
└난 무림, 졸본, 지구. 왠지 모르겠는데 렌이 대형 사고 하나 터트려줄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임.
성계 대항전이 1주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커뮤니티는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평소보다 수십 배나 많은 양의 게시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반응이 뜨겁네.’
확실히 초대형 이벤트다 보니, 온갖 관심이 쏠려있는 모양이었다.
오죽했으면 하위 게임 메이커가 당분간 하위 리그 경기를 오픈하지 않으려고 했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
그와 반대로 팜은 무척 조용했다.
‘다들 여기서 살다시피 하는군.’
특수 대련장엔 수천 명의 사람들로 바글바글 거렸다.
내가 뿌린 스킬북의 여파였다.
스킬 이해도를 끌어올리는 데에는 대련만 한 게 없었으니까.
‘조용하네.’
최근 한 달 동안 팀 투지에서는 아무런 이벤트도 존재하지 않았다.
경기에 참가한 플레이어도 없었고, 뭔가 사건 사고가 터지지도 않았다.
그저 모두들 하루하루 단련에만 힘쓸 뿐.
‘폭풍전야 같군.’
그 고요함이 마치.
거대한 태풍이 몰려오기 직전의 상황 같았다.
물론 그 거대한 태풍은 내가 몰고 오려고 하고 있었고.
그리고.
기다리던 날이 왔다.
[성계 대항전 ‘지구’의 참가 멤버로 선정되었습니다.]
[참가 멤버는 각 성계의 상위 100 명까지 입니다.]
[성계 대항전은 총 5개의 경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최종 우승 시 ‘차원 특전’을 획득합니다.]
[성계 대항전의 아레나에서는 사망하더라도 부활합니다.]
[1인당 총 5개의 경기에 참가할 수 있으며, 참가 인원 제한은 없습니다.]
[차원 특전은 도박사들이 예상한 비율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깃발 쟁탈전
―상위 리그 최강자
―공성전
―악마 사냥
―레이드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에 참가하시겠습니까?]
[Yes / No]
눈앞에 뜬 메시지 창.
나는 망설임 없이.
‘언젠가 꼭 뒤통수를 때려주고 싶었지.’
[Yes / No(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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