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인연(3) >
[현재 마교와 정파 무림의 균형은 7:1 입니다.]
[마교 고수를 대거 처치해 균형을 1:1로 만드세요.]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군데군데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들이 만들어져 있고,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까악! 까악! 까악!
까마귀 떼들이 성문 앞으로 몰려들었다.
‘후우. 드디어 끝났군.’
소교주와 사대 호법, 그리고 두 명의 장로, 수많은 고수들.
그리고 대략 5만 명의 마인들까지 모조리 죽였지만, 끝끝내 마교의 교주는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내가 직접 마교 교주를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는 뜻.
온갖 시체들, 그리고 잘려 나간 머리와 팔다리들을 밟지 않도록 주의해서 발걸음을 옮기며, 마교의 본거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크네.’
험준한 산악 지형 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마교의 본거지는 엄청난 크기를 자랑했다.
산의 중턱부터 시작해서 봉우리까지 각종 높이의 건물들이 즐비했고, 곳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같은 것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지하 공간까지 활용하고 있는 모양.
하긴, 그렇지 않으면 60만이라는 숫자의 마인들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저, 저놈이 어떻게······?”
“수라대와 사대호법님들까지 가셨는데······!”
제법 큰 건물들은 서너 명의 마인들이 앞을 지키고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녀석들이 바들바들 떨었다.
서걱!
나는 녀석들을 죽이며, 건물들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하나부터 열까지 다 뒤진 것은 아니었다.
경비병이 없거나, 작은 규모의 건물들은 모두 배제했다.
저런 곳에 교주가 있을 리 없으니까.
‘수색하는 것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리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다음 건물로 들어갈 때였다.
“헉!”
내부로 들어가니 다섯 명의 마인이 쓰러져 있다.
그 앞에서 어떤 마인이 죽은 시체들의 품을 뒤지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곤 엉덩방아를 찧었다.
내가 아직 내부를 수색하지 않은 건물이었다.
그렇다는 건, 눈앞의 마인이 다른 다섯 명의 마인들 죽였다는 뜻이리라.
전투의 흔적이 없는 건, 면식범이라는 이점을 살려 기습을 한 걸 테고.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잠깐 고개를 갸웃한 나는 창을 들어 올렸다.
녀석이 뭘 하고 있든, 곧 죽을 것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녀석을 베어버리려고 할 때였다.
“자, 잠깐! 나, 나는 정파인이오!”
양손을 들어 올리며 소리친 수상한 마인의 말에 나는 창을 멈춰 세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붉은빛은 흘러나오지 않았긴 한데.’
하지만 혹시 모르기에 나는 악마의 눈을 사용했다.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육소명]
[성향 : 인내]
[근력 : 48(+?)] [민첩 : 51(+?)] [체력 : 50(+?)]
[정신 : 49(+?)] [지력 : 29(+?)] [마력 : 39(+?)]
그러자 눈에 들어오는 볼품 없는 능력치.
나는 녀석의 상태창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마인들과 달리 골고루 성장한 근민체.
거기다 천마신교의 교인이라는 특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혹시 마교에 위장 잠입하신 겁니까?”
녀석이 정파 무림의 사람이 맞다는 뜻이었다.
“마, 맞습니다! 은월각 소속의 육소명이라고 합니다!”
‘나이스 타이밍.’
안 그래도 마교 교주를 찾고 있던 상황.
마교에 첩자로 잠입한 육소명이라면 마교 교주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일단 내가 정파인이라는 걸 알려줘야겠군.’
“그렇군요. 아, 그렇게 놀라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아, 알고 있습니다. 청룡문의 문주, 고건하 대협이시라고······.”
“저를 알고 계십니까?”
육소명의 말에 나는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날 알고 있는 거지?
내가 비록 며칠 동안 마인들을 쓸어버리고 다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이름까지 알 수는 없었을 텐데?
“예. 방금 막 맹에서 도착한 전서응傳書鷹을 받았거든요. 부각주님께서 수단과 방법을 아끼지 말고 도우라는 지시가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육소명은 은월각 소속.
그곳의 부각주라면 한 명 밖에 없었다.
‘역시 당소소가 일을 잘해.’
전서응은 서신을 전해주는 매다.
엄청난 속도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녀석이라, 나보다 더 빨리 도착한 모양이었다.
덕분에 일이 편해지게 생겼다.
“혹시 마교의 교주가 주로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내 물음에 육소명이 나를 건물 바깥으로 이끌었다.
“저어기 제일 꼭대기 보이십니까?”
“예.”
“저기가 천마전이라는 곳입니다. 마교의 교주는 보통 저곳에 있습니다.”
육소명의 말에 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전 그럼 일단 교주부터······.”
“근데 가셔도 아마 없을 것입니다. 이틀 전에 천산을 내려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뭐라고?’
육소명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심 그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긴 했다.
이 난리통에도 교주가 나타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교주가 없다는 걸 직접 듣고 나자, 허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어디로 갔는지는 아십니까?”
“소인이 말단이다 보니 그것 까지는······.”
마교에서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을수록, 죽였을 때 세력비가 훅훅 깎여나갔다.
사대호법과 소교주, 고작 다섯 명을 죽였을 때도 1포인트나 하락했고.
그래서 천마를 죽이면 얼추 미션이 마무리될 줄 알았는데, 또다시 천마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다시 찾으러 다니는 수밖에.
“근데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죠?”
육소명이 쓰러져 있던 마인을 가리켰다.
“이자가 지하 뇌옥의 간수장입니다. 소인은 열쇠를 찾으려고 했던 거구요.”
“지하 뇌옥?”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육소명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하 뇌옥에 무림인들이 갇혀 있습니다.”
육소명의 말을 들은 나는 그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아, 어쩐지.’
세력비에 비해 무림맹에 살아남아 있는 생존자의 숫자가 너무 적더라니.
난 또 어디 깊숙한 산속에 숨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생존자 대다수가 마교에 끌려왔던 모양이었다.
“숫자가 많습니까?”
내 물음에 육소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명이나 있는지, 그리고 누가 수감되어 있는지도 모릅니다. 제가 함부로 돌아다닐 수 있는 신분이 아니거든요. 오며 가며 들은 것 밖에 없습니다.”
“지하 뇌옥이 어디 있습니까?”
이곳은 평범한 주택.
이런 곳에 지하 뇌옥이 있을 리 없었다.
간혹 이런 식으로 외부를 꾸며놓고, 지하로 들어가는 입구가 숨겨져 있다는 식으로 되어 있는 곳도 있긴 하지만 이곳은 마교의 본거지.
굳이 외부의 눈을 속여 만들 필요가 없는 곳이었다.
“아, 지하 뇌옥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여긴 지하 뇌옥의 간수장이 사는 곳이구요.”
육소명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하 뇌옥에 간수들이 더 있습니까?”
“예. 서, 서른 명 정도······.”
“갑시다.”
육소명의 스텟을 보아하니, 이곳에서 가장 약한 마졸 한 명도 제대로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서른 명이나 된다면 이곳에서처럼 기습해서 쓰러트리는 것도 불가능할 테고.
어차피 세력비를 위해 정파 무림인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
‘적어도 헛걸음을 한 건 아니군.’
그런 이유로 지하 뇌옥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이쪽입니다.”
육소명을 따라간 곳은, 다른 곳들과 다르게 지하로 내려가게끔 만들어져 있는 건물이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지하 갱도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성인 남성 세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폭에, 천장은 2미터도 채 되지 않았으니까.
‘여기가 지하 뇌옥이군.’
지하로 내려가자 일자로 쭉 뻗어있는 복도가 보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크기였는데, 그 길다란 복도를 서른 명 정도의 마인들이 돌아다니며 순찰을 하고 있었다.
‘엄청난 크긴데?’
복도의 양옆으로는 두꺼운 쇠창살이 달린 작은 방들이 조르르 늘어서 있었는데, 3평 정도의 작은 방 안에 열댓 명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다.
그렇다는 건 대충 어림잡아 계산해도 이 지하 뇌옥에 몇만 명은 수용할 수 있다는 뜻.
“음? 숙수가 이곳엔 웬일이오?”
“식사 시간이 되려면 한참 멀었는······ 헉, 누, 누구!”
육소명을 발견하곤 고개를 갸웃하는 마인들.
녀석들이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날 발견하곤 검을 뽑아 들었다.
아무래도 지하에 있다 보니, 밖에서 전투가 펼쳐졌다는 걸 모르고 있는 눈치였다.
“잠시 뒤에 계시죠.”
나는 육소명을 뒤로 잡아끌며, 녀석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서걱!
“적이다!”
“제, 젠장! 어서 지원 요청을······.”
일격에 마인 세 명의 목이 달아나자, 나머지 녀석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녀석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리라.
입구는 내가 들어온 곳 하나밖에 없는 것 같고, 남은 스물일곱 명의 스텟도 특별할 게 없었으니까.
서걱! 서걱!
나는 길다란 복도를 휘적휘적 걸어 다니며 발악하는 마인들을 하나씩 죽여나갔다.
어두컴컴한 지하 뇌옥의 복도가 순식간에 붉게 물들었다.
“······!”
갑작스러운 소란에 지하 뇌옥 안에 있던 무림인들은 창살에 달라붙은 채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정파 무림인이 맞군.’
모두들 아무런 특전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그들의 눈동자에서 기대감 같은 게 느껴졌다.
“일단 뇌옥에 갇힌 정파인들을 구해주세요. 저는 아직 남아 있는 마인들을 죽이고 있겠습니다.”
간수들을 모조리 처리한 나는 육소명에게 다가가 말했다.
“옛!”
이제부터는 육소명 혼자서도 충분할 것이기에, 굳이 시간 낭비 할 필요가 없었다.
“저는 은월각 소속 무인, 육소명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을 구해드리겠습니다!”
내가 계단을 오르자, 육소명이 복도에 대고 크게 소리쳤다.
그와 동시에 쥐 죽은 듯이 조용하던 지하 뇌옥에 한바탕 난리가 났다.
“저, 정말이오? 정말 우리를 구해주러 온 것이오?”
“밖의 마인들은 어찌 되었소? 무림맹이 전쟁에서 이긴 것이오?”
“이보게! 여기부터 열어주게! 여기 위독한 환자가 있다네!”
수천, 아니 수만 명의 무림인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한 것이다.
‘이쪽은 더 볼 것도 없겠군.’
지하 뇌옥을 빠져나온 나는 마교의 교주가 머무른다는 꼭대기 쪽으로 향했다.
마교의 교주를 찾겠다는 생각 때문은 아니었다.
다만.
‘기왕 본거지를 초토화시켰으니, 놈들의 금고라도 털어야지.’
이곳에도 꽤 많은 골드와 아이템들이 있을 것이기에.
무려 60만이 넘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
그 숫자를 먹여 살리려면 굉장히 많은 돈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마교 교주가 기거하는 천마전 주변을 샅샅이 뒤지고 있을 때였다.
“이놈! 여긴 절대로 통과할 수······!”
서걱!
‘여기군.’
건물을 지키는 두 명의 마인을 베자마자 느낌이 왔다.
다른 곳보다 훨씬 고수가 지키고 있는 곳.
천마전의 근처에 있을 만한 건물.
거기다 다른 곳과 달리 강철로 된 철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다면.
‘보물창고 뿐이지.’
나는 강철로 된 철문을 힘껏 내리쳤다.
까앙!
‘크윽.’
순간 창을 쥔 손이 얼얼했다.
어찌나 단단한지, 철문에는 아주 조금의 생채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톡톡-
‘제법 두꺼운데?’
나는 시체가 된 두 마인의 품을 뒤졌다.
하지만 열쇠는 들어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열쇠를 찾고 다닐 순 없는 노릇.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고.’
나는 철문을 노려보며 자세를 잡았다.
그리고.
까앙! 까앙! 까앙! 까앙! 까앙!
온 힘을 다해 철문을 내리치기 시작했다.
“······.”
손바닥이 아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 정도 쯤이야, 금세 회복될 테니까.
그렇게 40번 정도 내리쳤을 때였다.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순간 엄청난 먼지가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마력장을 통해, 먼지 너머로 뻥 뚫린 공간이 느껴졌다.
그렇다는 건, 벽력이 터지며 철문이 박살 났다는 뜻.
나는 자욱한 먼지를 헤치며,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게 된 광경.
‘뭐, 뭐야?’
오래된 나무와 종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수천 개의 빛이 은하수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스킬북:탄지신통彈指神通>]
[액티브]
[소림칠십이예少林七十二藝]
[손가락에 마력을 모아 방출합니다.]
[방출된 마력은 강한 회전이 깃들어 엄청난 관통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킬북:이십사수매화검법>]
[액티브]
[화산파가 자랑하는 검법.]
[검을 휘두르면 마력으로 이루어진 매화를 흩뿌립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매화는 강한 절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미친······.’
밝게 빛나는 것들은 모두 오래된 서적이었다.
순간 뒷머리가 쭈뼛했다.
여긴 보물 창고가 아니었다.
다만.
오래된 서고였을 뿐.
‘이게 다 스킬북이라고······?’
그리고 그 안을 스킬북들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 129화. 인연(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