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8화. 인연(2) >
“이런 미친! 저 녀석은 내공이 무한하기라도 하단 말인가!”
“대, 대주님 어떻게 해야······.”
“이런 병신 새끼! 그럼 녀석이 성역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게 그냥 놔두라는 뜻인 게냐!”
“그, 그런 뜻이 아니오라······.”
“계속 밀어붙여라! 곧 다른 타격대들이 합류할 것이다!”
마인들은 내 압도적인 위용에 쭈뼛거리면서도,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나야 고맙지.’
적장의 예상과 다르게 내 마력 소비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벽력과 청천벽력 모두 특수 발동 스킬.
내 마력을 잡아먹는 건, 창을 휘두를 때 뿜어내는 뇌전이 고작이었다.
그것 또한 마력 소비가 별로 크지 않았고.
띠링!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이걸로 벌써 40포인트나 올렸네.’
경기장에 들어온 이후로 근력 8, 민첩 6, 체력 11, 마력 15 포인트가 상승했다.
이곳에 있는 녀석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높다 보니, 스텟이 빠르게 오르고 있었다.
내게 필요 없는, 지력 스텟이 오른 것까지 합치면 70 포인트가 넘게 오른 셈이었다.
거기다 이곳에서 내가 죽인 마인의 숫자도 어느덧 천 단위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
‘잘하면 이번 경기에서 50포인트 이상 올릴 수 있겠는데.’
나는 몰려드는 마인들에게 계속해서 창을 휘두르고, 뇌전을 흩뿌렸다.
그때였다.
“젠장! 모두 비켜라! 우리가 상대할 것인즉!”
날 몰아붙이는 근위병들 뒤로 등장한 백 명 정도의 마인들.
“오오! 수라대가 도착했다!”
“뭐 하는 게냐! 어서 길을 터 주지 않고!”
기녀들이나 입을 법한, 속살이 보일 듯 아슬아슬한 옷을 입은 여인부터, 얼굴에 칼자국이 수십 개나 나 있어서 흉악스러운 얼굴의 괴인, 머리부터 수염, 그리고 하얀 장삼까지 입고 있어서 신선처럼 보이는 노인까지.
모두들 각양각색의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느껴지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은 걸 보니, 마교 내에서도 정예로 통하는 녀석들인 것 같았다.
“고작 한 놈을 어쩌지 못하고 있다니!”
“호호, 너무 노여워하지 말아요. 척 보기에도 엄청 고수처럼 보이는걸요.”
“이번 기회에 우리 수라대가 왜 천마신교 최강 전력으로 통하는지 알려줍시다.”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조병립]
[성향 : 광신]
[근력 : 108(+?)] [민첩 : 111(+?)] [체력 : 71(+?)]
[정신 : 66(+?)] [지력 : 30(+?)] [마력 : 109(+?)]
[업적 특전 : 천마신교의 교인]
‘강자가 이렇게 많다고?’
새로 등장한 녀석들의 스텟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랐다.
수라대의 평균 스텟은 110 초반.
이전까지 등장하던 녀석들보다 훨씬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었다.
발리노르 성계로 예를 들자면 소드 마스터만 100명이 등장한 격이랄까.
‘과연 4강 중 하나답군.’
솔직히 단일 세력에서 이렇게 많은 강자를 보유하고 있기가 쉽지 않았다.
당장 내가 경기를 펼쳤던 발리노르의 라 제국만 해도, 고작 열두 명의 소드 마스터만 존재할 뿐이었으니까.
물론 특전 덕분에 근력과 민첩이 비정상적으로 상승한 것도 있긴 하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마교라는 세력이 무림에서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가장 선두에서 수라대를 이끌던 남자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근위대주. 근위대를 뒤로 물리시오. 걸리적거리니.”
거대한 사신의 낫을 들고 있는 중년인이었는데, 녀석이 수라대를 이끄는 대주인 것 같았다.
“수라대주! 방심하지 마시오! 녀석은 천하십대고수라고 해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고수요!”
근위대주라고 불린 사내가 조심하라고 조언했지만, 수라대주는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흥. 근위대에게나 어려운 상대겠지. 잘 보시오. 수라대의 힘을 보여줄 테니. 수라대! 공격!”
“이보시오, 수라대주!”
그와 동시에 달려드는 백 명의 마인들.
녀석들은 가장 기본적인 도, 검, 창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도끼나, 편, 유성추 등등 다양한 무기들을 사용했는데, 공격이 날아오는 각도가 무척 매서웠다.
확실히 마교 최고의 전력이라고 자부할 만 했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의 등장이 오히려 반가웠다.
‘나한테는.’
고수의 숫자가 많다는 건 놀랍지만, 그래봤자 하위 넘버링 수준.
그런 녀석들이 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피의 흡수 제물일 뿐이지.’
나도 녀석들의 공격에 맞서, 뇌전을 끌어올리며 돌진했다.
콰지지지지지지직!
내게 날아드는 각종 무기.
녀석들이 내뿜는 찐득찐득한 살기들.
그 모든 것들이.
서걱!
내가 흩뿌리는 뇌전에 절단되었다.
순식간에 열 명이 넘게 죽자, 수라대주가 경악했다.
“미친! 모, 모두 정지! 수라염왕진修羅炎王陣을 펼쳐라!”
그때부터 전투의 양상이 바뀌었다.
무작정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르던 수라대가 체계를 갖춘 채 유기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검과 도가 쇄도하고, 동시에 창이나 철퇴 같은 중거리 무기가 날아든다.
그 사이사이에 유성추나 사복검 같은 채찍류 무기들의 공격이 들어온다.
마치 백 명 가까이 되는 마인들이 한 몸이 되어 움직이는 것 같았다.
‘확실히 마법이 없다 보니까 이런 쪽으로 많이 발전했군.’
굉장히 까다로운 진형陣形.
그럼에도 내게 위협적인 상황은 연출되지 않았다.
근위대와 달리, 수라대의 숫자는 백 명 밖에 되지 않은 상황.
한 명씩 차근차근 공략하며 수라염왕진을 무너트리기 시작한 것이다.
굳이 이전처럼 개미지옥을 파놓고 녀석들의 전력을 빨아먹는 식으로 싸울 필요가 없었다.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꺄악!”
“헉! 이럴 수가! 벼락을 부리는 무공이라니!”
단 한 번의 공격에 열 명이 넘는 마인들의 몸이 터져 나갔다.
수라염왕진을 이루는 한 축이 단숨에 사라진 탓인지, 녀석들의 움직임이 조금씩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꺄악!”
“미, 미친! 근위대! 어서 수라대를 도와라!”
‘가면이 진짜 개 사기긴 하네.’
가면의 특성은 죽일수록 강해진다는 것.
그렇기에 약한 다수를 상대하는 데 특화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들의 숫자가 얼마나 됐든, 무슨 무기를 사용하든, 어떤 환경에서 전투를 펼치든.
그 모든 상성들을 가면이 씹어먹는다.
한마디로 나보다 약한 존재에게는 절대적 우위를 점하게 해준다는 것.
‘가면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약자라는 기준은 결국 현재의 내 스텟이 좌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여기서 내가 더 강해진다면?
더 많은 약자들이 생겨날 것이다.
당장 몇 개월 전만 해도 나를 쩔쩔매게 했던 하위 넘버링 수준의 플레이어들이 나에게 아무런 위협이 되지 못하는 것처럼.
근데 만약 내가 고위 리그를 넘어, 초월 리그까지 올라간다면?
‘날 상대할 수 있는 존재가 거의 없겠지.’
이론적으로, 초월 리그 미만의 플레이어들은 나 혼자서도 싹쓸이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내가 죽지 않고 제일 꼭대기까지 올라간다면, 아주 극소수의 최강자 몇 명을 제외하곤 날 위협할 수 있는 존재가 없을 거라는 뜻이었다.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그럼 내가 조심해야 할 플레이어의 숫자는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못난 놈들! 고작 한 명을 어쩌지 못해서 쩔쩔매는 꼴이라니! 모두 비켜라!”
그렇게 내게 달려든 수십 명의 고수들 중 절반가량이 죽였을 때였다.
“오오! 소교주님과 사대호법께서 오셨다!”
“와아아아아아아!”
날 에워싸던 마인들이 홍해처럼 갈라지고, 그 너머로 한 명의 미남자와 네 명의 노인이 걸어들어왔다.
미남자는 거대한 대도大刀를, 네 명의 노인은 각각 검, 도, 창, 편을 들고 있었는데, 다른 이들과 다르게 제법 고급스러운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다는 건.
‘마교에서 제법 영향력이 있는 녀석들인가 본데.’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천무악]
[성향 : 광신]
[근력 : 156(+?)] [민첩 : 152(+?)] [체력 : 102(+?)]
[정신 : 99(+?)] [지력 : 42(+?)] [마력 : 155(+?)]
[업적 특전 : 천마신교의 소마小魔]
[종족 특전 : 악마의 권속]
악마의 눈으로 녀석들의 스텟을 확인한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중간계에서는 볼 수 없는 스텟이었다.
완전 밸런스 파괴 수준.
‘교주의 악마화 하나로 이렇게까지 스텟이 올라가다니.’
뭐, 그랬으니까 상위 넘버링으로 미션이 내려왔을 것이다.
“정파의 끄나풀 중에서도 제법 쓸만한 녀석이 있었군. 어느 문파 출신이지?”
소교주, 천무악이 내게 다가오며 물었다.
그의 얼굴엔 감탄한 기색이 역력했다.
‘엄청난 숫자의 마인이 죽었는데 신경도 안 쓰는 눈치군.’
그 모습에서 나는 마교라는 집단이 무엇에 중점을 둔 곳인지 알 수 있었다.
오로지 힘.
‘약육강식의 세계.’
그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나는 천무악의 물음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콰지지지지지지지직!
달려들어 창을 휘두를 뿐.
“흥! 감히 내 말을 무시하다니. 본때를 보여주도록 하지.”
그러자 대도를 치켜세우는 천무악.
그와 동시에 사대호법이라 불린 네 명의 노인이 각자의 무기를 휘둘러왔다.
‘제법인데?’
검, 도, 창 세 가지 무기가 정면의 세 방위를 점한 채 들어오고, 각도가 없는 방향에서 편이 벼락처럼 날아들었다.
제법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대호법은 호흡이 척척 맞았다.
한마디로 일대일 승부에만 익숙하던 십장로들과 다르게, 이들은 네 명이서 한 명의 강자를 상대하는 데 최적화 되어 있다는 것.
스텟도 제법 높기에, 상대하기가 제법 까다로울 것 같았다.
‘일단 사대호법부터 처리해야겠군.’
전략을 정한 나는 녀석들의 공격을 여유롭게 피하며, 다섯 마인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곧장 천무악에게 창을 휘둘렀다.
다섯 마인 중에서 가장 약한 건 소교주, 천무악.
그러면서 동시에, 녀석의 신분이 가장 높은 것 같았다.
사대호법이 그의 좌우에서 수행하는 듯한 모양새였으니까.
녀석을 공략하면 사대호법에게 빈틈이 생길 것이다.
챙! 콰지직! 콰직! 챙! 챙! 콰직!
“읏!”
나와 무기를 맞댄 소교주가 뇌전으로 인해 몸을 움찔했고, 그로 인해 녀석의 곳곳에 빈틈이 드러났다.
“암경暗勁! 소마, 어서 내공을 끌어올려 방어하시오!”
무려 4중첩이나 된 뇌전.
천무악의 스텟이 높다곤 하지만, 데미지가 제법 쌓일 것이다.
뇌전은 속으로 스며들어, 내부를 파괴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으니까.
“큭! 내공을 올려도 통하지가 않소!”
“노옴! 감히!”
그걸 본 사대호법이 대경실색하며 천무악을 커버하기 위해 무기를 휘둘러왔다.
그러다 보니 철벽같았던 사대호법의 공세에 빈틈이 드러났고.
‘역시.’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서걱!
“끅······!”
검을 든 호법의 목이 허공을 날았고.
서걱!
그리고 도를 든 호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동강난 채 고꾸라졌다.
잠깐의 빈틈만으로도 무려 두 명이나 죽인 것이다.
“안 돼! 둘째야!”
“놈! 감히이이!”
두 사람의 죽음에 경악하는 천무악과 호법들.
‘남 걱정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을 텐데?’
그 틈에 나는 뇌전을 뿌려대며 나머지 녀석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챙!
“크윽!”
압도적인 근력 차이에 내 창과 부딪힌 녀석들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여 나갔고.
서걱! 서걱!
압도적인 민첩 차이에 창을 쓰는 호법은 내 움직임을 따라오지 못했다.
단 한 번의 공방으로도 목숨이 오가는 와중에, 움직임을 놓쳤다는 건.
딱 한 가지 결과밖에 나올 수 없었다.
서걱!
“이, 이럴 수가······! 사대호법님들도 상대가 안 된다니!”
다섯 명의 초고수가 내게 압도당하는 모습을 본 마인들이 경악했다.
이제 남은 건 소교주와 한 명의 호법 뿐.
“도대체 이런 녀석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그런 내 무위에 소교주가 당황하기 시작했다.
“모, 모두들 소교주님을 지켜라! 놈이 절대로 지나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소교주님! 어서 뒤로!”
순식간에 뒤집힌 전황에 마지막 남은 호법이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사이, 다른 마인들도 개떼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잘 가라고.’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그 순간, 빛기둥이 뿜어져 나오며 사방을 집어삼켰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 128화. 인연(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