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단독 미션(7) >
3일간 내가 해야 할 것은 명확하다.
[현재 마교와 정파 무림의 균형은 20:1 입니다.]
[마교 고수를 대거 처치해 균형을 5:5로 만드세요.]
무림맹 근처의 마인들을 최대한 죽여, 세력비의 균형을 이룸과 동시에 정파 무림인들의 안전을 확보할 것.
그 과정에서 피의 흡수를 통해 스텟을 상승시킨다.
또한, 마인들을 고문해 마교 교주의 위치를 파악한다.
그런 이유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는 내 움직임엔 망설임이 없었다.
쐐애애애애애액!
한 번 바닥을 박찰 때마다 발아래로 빽빽하게 솟아있는 나무들이 빠르게 지나갔다.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는지, 바람이 갈리는 소리가 날 정도였다.
팟!
“힘들면 바로 말씀해주세요.”
“······괜찮아요.”
바닥을 힘차게 밟으며 질주하자, 당소소가 두 다리로 내 허리를 조였다.
한 번 반동이 생길 때마다 내 목을 끌어안은 그녀의 팔에 힘이 들어갔다.
예상과 다르게 당소소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내게 업혀 왔다.
덕분에 누군가의 속도에 맞출 필요 없이 전력 질주할 수 있었던 나는 첫 번째 목적지인 섬서까지 30분 만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기에요······.”
섬서의 서안.
대도시라는 당소소의 설명과 다르게, 달빛에 비친 서안의 모습은 버려진 폐도시를 연상케 했다.
야시장이다 뭐다, 하며 시끄럽게 돌아다녀야 할 길거리에는 돌아다니는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음습한 기운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이쪽으로.”
등에서 내려온 당소소가 조용한 목소리로 나를 이끈 곳은 거대한 대문이 딸린 대저택이었다.
대문 위의 현판엔 구룡파 라는 글씨가 적혀져 있었고, 대문을 통해 검은 무복을 입은 무인들이 빠르게 오가고 있었다.
근처 골목길에 숨은 채 그 모습을 보던 내게, 당소소가 작게 속삭였다.
“여기가 섬서에 있는 마교의 지부예요. 원래 구룡파라는 문파가 있었는데, 멸문시키고 자신들이 전진기지처럼 사용하고 있는 거죠.”
“저 안에는 몇 명이나 있습니까?”
“마지막으로 전서구를 주고받을 때만 해도 1만 명 정도의 마인들이 쳐들어왔다고 했어요. 마교의 십장로 중에선 세 명이 왔다고 했구요.”
“십장로라면 제가 무림맹에서 죽였던 궁소무 같은 녀석을 말하는 겁니까?”
“네, 맞아요.”
당소소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들을 통해 마교 교주의 위치를 알아내야겠군.’
“안전한 곳에 숨어서 기다리세요.”
말을 마친 나는 곧장 구룡파로 내달렸다.
기습이고 뭐고 필요 없었다.
녀석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도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부수고 이동할 뿐.
“누구냐!”
“고수다! 모두 조심······!”
단숨에 대문을 지키던 네 명의 마인을 도륙한 나는, 곧바로 구룡파 내부로 들어갔다.
피우우우웅! 파바바박!
그와 동시에 새카만 하늘 위로 여러 개의 불꽃이 터졌다.
누군가 침입했다는 걸 알리는 신호용 폭죽일 것이다.
그러자 구룡파 내부에 있는 여덟 개의 건물에서 검은 무복의 마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고작 한 명 때문에 폭죽을 터트렸다고?”
“곱게 죽을 생각 하지 마라, 정파의 끄나풀이여.”
‘악마의 눈.’
나는 습관처럼 녀석들의 스텟을 하나하나 체크했다.
딱히 날 위협할만한 존재는 보이지 않았다.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직!
그때부터 학살이 시작되었다.
30분 후.
서걱!
“크윽······.”
“마교의 교주는 어디 있지?”
“네, 네까짓 게 함부로 입에 담을 수 있는 분이······.”
서걱!
“다시 한번 묻겠다. 마교의 교주는 어디 있지?”
“크윽, 교주님께서 왕림하시면 네 놈을 틀림없이 찢어 죽이실 것이다.”
우드드득!
“다시 한번 묻겠다. 마교의 교주는 어디 있지?”
“퉤! 차라리 날 죽여라!”
우드드득!
“커······커헉······!”
털썩―
‘쯧. 결국 실패했군.’
십장로 중 한 명인 소천세의 몸이 축 늘어졌다.
도망가지 못하도록 두 다리를 자른 뒤, 손가락부터 몸에 붙어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그다음은 눈알을 뽑고, 코를 베고, 온몸의 관절 마디 하나하나 다 부숴놓았다.
그럼에도 소천세는 끝까지 마교 교주의 위치를 발설하지 않은 채 고통을 감내하다 죽은 것이다.
‘고통 증폭의 물약을 미리 챙겨두지 않은 게 아쉽네.’
다른 두 장로의 몸뚱이도 그리 보기 좋은 편은 아니었다.
뇌전으로 지지고, 꺾고, 뽑아내고, 잘라낸 상처가 녀석들의 시체에 한가득이었다.
[현재 마교와 정파 무림의 균형은 19:1 입니다.]
[마교 고수를 대거 처치해 균형을 5:5로 만드세요.]
마당에 쌓인 1만의 시체를 뒤로하고, 나는 한숨을 내쉬며 구룡파를 나섰다.
사실 마교의 교주는 본거지가 있다는 천산에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문을 통해 교주의 위치를 알아내려는 건 별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확신할 수가 없지.’
만약 3일이란 시간 동안 교주의 위치를 알아내지 못하면, 첫 행선지는 천산이 될 것이다.
다만, 가는 길에 있는 모든 도시에 들러 마인들을 족칠 게 분명했다.
천산에 있을지 확실하지가 않으니까.
‘다음 장소로 가야겠군.’
현재 남은 체력은 99프로.
체력적인 부담도 없고, 나를 위협할 만한 고수가 없었기에 정신력의 소모도 별로 없었다.
이제 다음 목적지를 향해 이동할 생각이었다.
당소소가 숨어있던 골목길로 향하자, 곁에 쓰러져 있는 다섯 개의 시체가 보였다.
“아, 고 문주님. 고생 많으셨어요. 잠시 쉬실 만한 공간을 알아뒀어요.”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나는 시체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뭡니까?”
“도망치려는 마인들이 있어서 죽였어요.”
말을 하는 당소소의 연검에서 피가 뚝, 뚝 떨어졌다.
방금 막 죽인 모양.
나는 그녀의 몸 상태부터 체크했다.
‘다친 곳은 없군.’
“도망치는 게 아니라 아마 전령이었을 겁니다. 앞으로는 그런 녀석들이 있으면 그냥 놔두세요.”
“왜요?”
“그래야 더 많은 숫자로 똘똘 뭉칠 테니까요. 잘하면 마교의 교주가 나타날 수도 있고.”
내 말에 당소소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앞으로는 도망치는 마인들이 있어도 굳이 뒤쫓지 않을게요.”
“네. 그럼 다음 목적지로 가시죠.”
“안 쉬고 바로 출발하시려구요?”
“예. 시간이 없어서요.”
나는 당소소에게 등을 보인 채 자세를 숙였다.
그러자 그녀가 풀쩍 뛰어 내 등에 업히고는, 양팔과 양 허벅지로 내 목, 허리를 감쌌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
“다음 목적지가 호북이죠? 이쪽으로 쭉 가면 소양촌 이라는 마을이 나와요. 거기서 북쪽으로 꺾는 게 제일 빠른 길이에요.”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나는 다시 힘차게 바닥을 박찼다.
당소소가 나를 꼬옥 껴안은 채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어, 어디서 이런 괴물이······.”
띠링!
[무림인 ‘송윤탄’ 을 처치했습니다.]
[<피의 흡수> 능력으로 극소량의 마력 스텟을 흡수합니다.]
[마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마지막 남은 마인을 벤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그러자 한쪽에 숨어있던 당소소가 쪼르르 달려와 내게 깨끗한 천 하나를 내밀었다.
몸에 한가득 묻은 피를 닦아내라는 뜻이었다.
‘확실히 길잡이가 있으니까 훨씬 빠르군.’
무림맹의 정보를 다루는 은월각의 부각주, 당소소는 굉장히 유능했다.
단순히 어디 있는지 설명하는 것을 넘어, 내 속도와 상태에 최적화된 길로 안내해준 것이다.
그녀와 동행한 지 어느덧 16시간째.
애초에 첫날 계획했던 건 섬서, 호북, 안휘, 강서, 이렇게 네 지역이었다.
그런데 벌써 다섯 번째 지역이었던 호남을 넘어, 우리는 호북의 무한까지 온 상태였다.
“어디서 구하신 겁니까?”
나는 깨끗한 천을 가리키며 물었다.
“쉬실 만한 공간을 찾다가 얻었어요.”
무한 역시 사람이 많지 않았다.
마인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모두들 도주한 것이다.
당소소는 그런 빈집들을 돌아다니며 내가 쉴 만한 곳이 있나 찾으러 다닌 것이고.
“따로 안가安家를 찾지 않으셔도 됩니다.”
“알겠습니다. 혹시 시장하지 않으신가요? 제가 요리할 만한 거리들도 구해놨거든요. 저 요리도 잘해요.”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함께 동행한 모든 순간, 당소소는 내가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필요한 것들을 구해두었다.
안전하게 쉴 수 있는 공간, 배고플 때 먹을 수 있는 육포나, 피를 닦을 수 있는 천까지.
그걸 통해 그녀가 무척 세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치가 빠르고, 똑똑하네.’
문제는 내가 일반인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넘은 초인이라는 것.
그리고 이들과 다르게 인벤토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면 덕분에 체력도 꽉 차 있고, 배가 고프면 인벤토리에 넣어둔 빵을 꺼내 먹으면 된다.
물론 그 안에 피를 닦을 천 또한 존재하고.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앞으로는 쉴 공간도, 요리 준비도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게 길 안내를 해주기 위해 따라오신 거지, 허드렛일을 하러 오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필요한 게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예. 다음 목적지는 어디죠?”
“다음 목적지는 사천······이네요.”
당소소가 말끝을 흐렸다.
지금까지 표정 변화 한번 없던 그녀가 처음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안색이 무척 창백했다.
‘고향이 사천이라 그랬지.’
아마 심란할 것이다.
지금까지 가는 곳마다 지옥도가 펼쳐져 있었다.
아마 그건 그녀의 고향이라는 사천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려서부터 자라온 고향이 초토화 되어 있는 모습을 직접 보려고 한다면 겁이 날 수밖에 없을 터.
그래서일까, 그녀의 가녀린 어깨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겠지.’
마침 타이밍이 좋았다.
어느덧 ‘16시간’이 흘렀으니까.
“잠깐만 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
“굳이 따라오진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내게 살포시 미소 짓는 당소소.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뒤로하고 나는 근처에 한적한 골목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그림자 표식 목록을 펼쳤다.
[표식 목록]
[무림인 ‘진초풍’]
[무림인 ‘당소소’]
[남은 재사용 대기 시간 : 없음]
어느덧 쿨타임이 돌아온 상황.
나는 진초풍에게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막아라!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저놈이 무림 맹주다! 무림 맹주의 목을 따는 사람에게 금전 1만 냥을 내릴 것인즉!”
그러자 보이는 아수라장.
‘이럴 줄 알았지.’
나는 곧장 적아가 뒤엉켜 있는 곳으로 달려들었다.
서걱! 서걱!
“미, 미친!”
벽력섬전이 한 번 번뜩할 때마다 마인들 너덧 명의 목이 허공을 날았다.
“고건하 대협이다!”
“고건하 대협이 왔다!”
“와아아아아아아!”
뇌전을 흩뿌리는 내 등장에 정파 무림인들이 소리를 질렀다.
얼핏 보기에도 마인의 숫자는 수천을 넘는 상황.
나는 곧바로 적장부터 찾았다.
물론 적장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악마의 눈.’
다른 녀석들보다 평균 스텟이 훨씬 높은 녀석이 적장일 테니까.
거기다 특전에 쓰여 있기도 하고.
띠링!
[<전광석화> 능력을 사용합니다.]
[10초 동안 민첩 스텟이 +20% 상승합니다.]
전광석화까지 발동시키자, 내 민첩이 305를 찍었다.
안 그래도 몸에서 뇌전이 뿜어져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305에 이른 민첩의 움직임은.
서걱! 서걱! 서걱!
움직일 때마다 벼락이 뿌려지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검마劍魔가 죽었다!”
“소마신군燒魔神君도 전사했다!”
적장부터 쓰러트린 내 판단은 정확했다.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녀석들이 죽은 것만으로도 전세가 역전된 것이다.
‘여기에 쳐들어온 녀석들까지 다 죽이면 세력비가 더 빨리 회복되겠는데.’
내가 각 지역을 휩쓰는 동안, 전령들을 내버려 둔 이유가 이것 때문이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했다.
내가 곳곳을 부수고 다니면, 마교 쪽에서 무림맹으로 쳐들어올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사실.
‘덕분에 시간을 아꼈군.’
녀석들이 무림맹으로 공격해 들어오면, 굳이 마인을 찾으러 다닐 필요가 없었으니까.
각 지역을 초토화 시키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남짓.
하지만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에서 3시간 정도 걸렸다.
그런데 적들이 알아서 그림자 표식이 등록된 진초풍에게 달려든다면?
‘찾으러 다닐 시간을 아낄 수 있어.’
덕분에 나는 수천에 가까운 마인들을 가만히 앉아서 잡아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전투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현재 마교와 정파 무림의 균형은 15:1 입니다.]
[마교 고수를 대거 처치해 균형을 5:5로 만드세요.]
나 혼자 처리해도 30분이면 되는 녀석들을, 정파 무림인들까지 힘을 합치자 고작 15분 만에 정리가 된 것이다.
“고 문주! 우리가 공격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와주셨구려. 헌데 소소는······?”
“현재 호북에 있을 겁니다.”
내 대답에 진초풍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소소를 어찌 혼자 두고······?”
“아, 괜찮을 겁니다. 안전한 곳에 있거든요.”
띠링!
[무림인 ‘진초풍’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그럼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이, 이보시오. 고 문주!”
진초풍의 그림자를 밟은 나는 곧바로 무림맹의 대문 밖으로 내달렸다.
그리고는 아무런 인적이 느껴지지 않은 곳에서 그림자 이동을 사용했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틀리고, 멍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는 당소소가 보였다.
“어, 언제 제 뒤에······?”
“아, 지금 막 왔습니다.”
이제 남은 그림자 표식은 진초풍 한 개.
앞으로 다시 여덟 시간을 기다려, 당소소의 그림자에 표식을 남긴다.
그리고 또 여덟 시간이 지나면 쿨타임이 끝난 상태로 진초풍에게 그림자 이동을 사용한다.
다시 진초풍의 그림자를 밟고 당소소에게 그림자 이동을 사용한다.
그렇게 하면 16시간에 한 번씩 별다른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무림맹에 다녀올 수 있었다.
‘진짜 개사기 스킬이라니까.’
“좀 괜찮아지셨습니까?”
내 물음에 당소소가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다시 출발하시죠.”
내가 등을 내밀자 당소소가 폴짝 안겼다.
그녀의 고향이라는.
사천으로 향할 시간이었다.
< 125화. 단독 미션(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