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4화. 단독 미션(6) >
“당 소저! 어서 뒤로!”
“당 소저에게 털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반드시 도륙을······!”
여인과 조금씩 거리가 좁혀지자,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던 무림인들 사이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다.
눈앞의 여인은 카이로시아와 비견될 정도로 엄청난 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젊은 남자들이 죽음을 무릅쓰고서라도 내게 달려들어 검을 휘두를 기세였다.
“모두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하지만 그 소란은 여기서 스텟이 가장 높은 한 노인의 외침과 동시에 사그라들었다.
유일하게 스텟이 130에 걸쳐 있는 노인이었다.
‘일단 내가 적이 아님을 먼저 보여줘야겠군.’
여인에게 다가간 나는 가장 먼저 그녀의 안부부터 물었다.
“피를 흘리고 계시군요. 괜찮으십니까?”
“······아, 네.”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
나는 품속에서 하얀 손수건을 꺼내 그녀에게 내밀었다.
“······?”
“피가 많이 묻으셔서요. 일단 이걸로 닦으시죠.”
“가, 감사합니다.”
그러자 여인이 두 손으로 내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이 정도면 적이 아닌 건 충분히 보여줬겠지.’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지금 정파 무림의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만.”
“······.”
하지만 그녀는 내 물음에도 건네준 손수건을 빤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 돌아온 지 얼마 안 돼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후.’
한숨을 내쉰 나는 소란을 진정시킨 노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곳의 책임자 되십니까?”
그러자 노인이 나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
눈앞의 여인을 걱정하는 내 모습에서 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았다.
“매, 맹주님! 안 됩니다!”
“뭣들 하는 게냐! 당장 맹주님을 안 모시고!”
그와 동시에 열댓 명의 정파인들이 무림 맹주 뒤로 우르르 따라왔다.
모두들 숨을 짧게 끊어 쉬고 있는 게, 많이 긴장한 것 같았다.
“진초풍이라고 하오. 과분하게도 무림 맹주 직을 맡고 있소. 이렇게 도와주어서 감사하오.”
내게 다가온 노인이 허리를 살짝 숙이며 주먹을 감싸 쥐었다.
나도 어색하게나마, 노인을 따라 주먹을 쥐고 허리를 숙였다.
“고건하 입니다. 제가 산속에서만 살아와 세상 물정을 몰라서 그러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 좀 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혹시 사문을 여쭈어도 되겠소?”
내 물음에도 불구하고 무림 맹주 진초풍은 내 출신 성분부터 물었다.
“······.”
‘젠장.’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보면 출신 성분을 묻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것만큼 적아를 나누는데 효율적인 게 없을 테니까.
문제는 내가 무림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는 것.
당신네들의 신이 보내준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싶지만, 미션 소개에서도 나왔듯 이들은 믿는 신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당신들을 구하러 온 신의 전사라는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랬으니까 상태창에도 자연스럽게 무림의 인물로 녹아들라고 팁을 준 거겠지.
우물쭈물하는 내 모습을 본 진초풍이 입을 열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귀하는 청룡문의 문주 같소만.”
“······.”
청룡문?
그게 뭐지?
진초풍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오지 않는 걸로 보아, 날 떠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청룡문이 맞다는 얘기를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 청룡문이라는 곳의 문주를 아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남우태에게 모용악이라는 이름을 꺼내자마자 알아봤듯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여기서 괜히 내가 입을 잘못 놀렸다가, 거짓말이라는 게 들통난다면 시작부터 신뢰 관계가 깨지는 셈.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진초풍이 말을 이었다.
“내 전해 듣기로 일인전승의 신비 문파, 청룡문은 벼락을 자유자재로 다루는데, 강호에 큰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등장해서 정파 무림인들을 구해주었다고 들었소. 이번에도 정파 무림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은거를 깨고 등장한 것 아니오?”
진초풍의 말을 들은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인전승, 신비, 은거.
언급한 키워드들로 미루어 봤을 때, 이곳에 있는 누구도 청룡문이라는 게 실존하는 줄 몰랐던 모양이었다.
‘차라리 잘 됐어.’
무림이 다른 성계보다 이런 쪽으로 더 깐깐하다는 것은 충분히 느꼈다.
거기다 마침, 나는 뇌전 속성에 특화되어 있다.
적당한 신분이 없는 내게, 청룡문은 저들에게 녹아들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숨기려고 했는데, 한눈에 알아보셨군요.”
내 대답에 진초풍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정파 무림이 내 대에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줄 알았소. 그래서 등선하신 선배님들을 뵐 낯이 없었지. 그런데 이렇게 은거를 깨고 나와주어 감사하오. 정말 감사하오.”
진초풍이 아까보다 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그와 동시에 뒷걸음질 치던 다른 무림인들도 한 명씩 내 쪽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경계심이 한결 사라진 모습이었다.
파밧! 파바밧! 파바밧!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무림맹의 정문으로 빠르게 달려 들어왔다.
“오! 청성삼검께서 무사히 돌아오셨다!”
아까전에 내가 구해준 정파인들이었다.
정파인들은 나를 보고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빠르게 다가와 진초풍 앞에서 허리를 숙였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맹주님을 뵈옵니다!”
“모두들 얼굴이 말이 아니구려. 고생 많으셨소.”
“아닙니다. 더 빨리 오지 못해 죄송할 뿐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남우태가 말끝을 흐리자, 진초풍이 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입을 열었다.
“아, 이쪽은 청룡문의 문주, 고건하 대협이시오. 마교 천하가 도래할 위기에 처한 걸 알고, 은거를 깨고 나온 귀인이시지. 조금 전에도 혼자서 간악한 마구니들을 모조리 도륙했소. 그 중엔 화우신군 궁소무도 있었지.”
“······!”
진초풍의 말에 남우태가 나를 보더니 입을 벙긋거렸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또 만나는군요.”
“음? 두 분 이미 일면식이 있으시오?”
진초풍의 물음에 남우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오는 길에 마교의 흑풍대와 마주쳐 전멸할 위기에 처했었는데, 고건······ 고 대협께서 구해주셨습니다.”
“역시 청룡 문주님!”
“하아. 천지신명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남우태의 말에 그동안 긴가민가하던 무림인들이 완전히 나에 대한 경계를 풀었다.
모두들 앞다퉈 다가와 내게 고마움을 표하기 바빴다.
그런 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진초풍에게 본론을 꺼냈다.
“마인들이 원래 저렇게 강했습니까?”
계속해서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다.
마교의 일반 병사들조차 근력과 마력이 70을 넘는다는 것.
근데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만약 사후에 콜로세움으로 들어온다면 준네임드 급으로 분류될 정도였으니까.
‘근데 그런 녀석들을 내가 방금 5천 명이나 죽였지.’
당장 콜로세움에 준네임드 급 플레이어 5천 명이 풀린다면 혼돈의 도가니가 될 것이다.
무림인들이 하위 리그를 씹어 먹는 건 당연한 거고.
거기다.
‘정파인들과 마인들 간의 스텟 차이가 너무 커.’
처음부터 세력의 균형이란 게 이루어질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도 무림맹의 건물들을 보면 꽤 오랜 역사가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 건.
‘원래 정파와 마교 간에 균형을 이루고 있었을 거야.’
아니면 정파가 조금 더 우세했거나.
“음······. 후우. 원래는 그렇지 않았소. 그동안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해 왔지만, 그래도 정파 무림이 더 우세한 편이었지. 그런데 석 달 전쯤부터 무슨 영약을 단체로 집어 먹은 건지, 갑자기 일반 마졸들도 어지간한 대문파의 제자들을 능가하기 시작했소.”
진초풍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생각대로 마인들은 인위적으로 강해진 것이었다.
‘대충 짐작 가는 부분은 있어.’
현재 마교 교주의 악마화 진행률은 92%.
남은 시간은 198시간 정도.
퍼센트 당 시간이 비례한다고 쳤을 때, 3개월 전부터 악마화가 시작되었을 것이다.
‘교주의 악마화가 진행되면서 모든 마인들이 특전을 얻은 거였어.’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상황이 설명되지 않았다.
“현재 상황은 어떻습니까.”
“음. 상황을 설명할 것도 없소. 이곳, 무림맹에 있는 인원이 남은 정파 무림인의 전부요.”
“마교는 몇 명 정도 됩니까?”
“각 문파에서 마지막으로 날아온 전서구들을 종합해 봤을 때, 60만 정도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소.”
‘60만이라······. 뭔가 이상한데?’
현재 무림맹에 있는 인원은 대략 5천에서 6천 정도.
미션 알림창이 설명한 전력 비율은 20대 1이었다.
거의 100배나 차이 나는 숫자.
그런데도 세력비가 20대 1이라는 건.
‘어딘가에 정파 무림인들이 숨어 있는 모양이군.’
그렇지 않고서야 저 전력 비율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마교 교주는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진초풍이 무겁게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도 백방으로 수소문 해봤으나, 어디 있는지 찾을 수 없었소.”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상위 넘버링이었군.’
내가 죽여야 할 타깃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을 지키며 마교 교주를 찾아내 죽여야 한다는 것.
궁소무라는 장로의 스텟으로 추정해 보건데, 마교 교주의 스텟은 200을 넘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 상황에서 제한 시간까지 걸려 있다.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은데.’
하지만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나는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나가기로 했다.
띠링!
[무림인 ‘진초풍’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앞으로 3일을 드리겠습니다.”
“······?”
“3일 동안만 여러분을 위해 창을 휘두르고, 그 뒤로는 마교 교주를 찾으러 다닐 겁니다.”
“그 말은······?”
“3일이란 한정된 시간 동안, 저를 이용해 최대한 많은 마인들을 죽이란 뜻입니다.”
미션창에선 분명 악마화 ‘예상’ 시간이라고 했다.
오차 범위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최대한 빨리 마교 교주를 처치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일단 정파 무림이 안전해져야지.’
그 시간 동안 정파 무림의 안전을 위해 마인들의 숫자를 대폭 줄일 것이다.
‘한 30만 명 정도 죽이면 저들도 우왕좌왕하겠지.’
잘하면 나를 저지하기 위해 마교의 교주가 직접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고.
‘나는 스텟 쭉쭉 빨아먹고.’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었다.
촤락!
나는 남우태에게 강탈한 지도를 꺼내 바닥에 펼쳤다.
“어디를 먼저 부셔드리면 되겠습니까?”
저들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마교와 전쟁을 해왔다.
내가 임의대로 돌아다니는 것보다, 저들이 원하는 곳을 부셔주는 게 훨씬 전략적일 것이다.
“······일단 섬서에 있는 마인들부터 정리해주면 좋겠소.”
“그다음은요?”
“······?”
“계속 쭉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순서대로 돌아다니면서 처리해 드릴 테니까요.”
난 저들보다 월등한 신체를 소유하고 있고, 가면 덕분에 체력적인 부담도 없다.
하루에 서너 군데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그럼 섬서, 호북, 안휘······.”
진초풍이 이름을 쭉 나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더 얘기해 보라는 듯 턱짓하자, 최종적으로 스무 곳 정도가 추려졌다.
“그럼 그렇게 알고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지도를 돌돌 말아, 품속에 넣었다.
그때였다.
“저, 저도 데려가 주세요.”
지금까지 날 빤히 쳐다보고 있던 여인이 나와 진초풍 사이로 끼어들었다.
“산속에만 계셨다고 그랬죠? 그럼 아무리 지도가 있다고 해도 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소소.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다.”
그러자 진초풍이 그녀에게 한마디 했지만, 소소라고 불린 여인은 포기하지 않았다.
“3일이란 시간밖에 없다고 하셨죠? 근데 길이라도 잃으면요? 시간이 낭비되지 않겠어요? 전 무림맹의 모든 정보를 맡고 있는 은월각의 부각주. 제 머릿속엔 마인들이 어디에 있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요. 절 데려가시면 분명 쓸모가 있을 거예요.”
사실 여인의 말처럼 길잡이가 있으면 지도를 보고 혼자서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효율적일 것이다.
물론 250이 넘는 민첩을 따라오진 못하겠지만, 그거야 내가 업고 뛰면 된다.
체력적으로 손해 보는 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피의 회복 덕분에 계속해서 체력이 회복될 테니까.
‘근데 여자라면 말이 다르지.’
이곳은 딱 봐도 지구의 조선시대 쯤 되는 세상.
과연 여인이 외간 남자의 등에 업히려고 할까?
나는 진초풍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길잡이가 있으면 더 효율적인 건 분명한 사실. 하지만 저는 데려가야 한다면 한 명만 데려갈 겁니다. 제 속도를 못 따라올 테니까 업고 달릴 생각이거든요.”
‘괜히 방해만 될 뿐이니까 길잡이를 붙여주려면 알아서 남자로 골라주시죠.’
그런 속뜻을 담아 얘기했다.
연륜이 풍부한 노인답게, 내 말뜻을 알아들을 것이다.
하지만 진초풍보다 소소라고 불린 여인이 더 빨랐다.
“그럼 더 잘됐네요. 남성분들보다 제가 훨씬 가벼우니까 절 데려가면 체력 소모도 더 적으실 거예요. 거기다 여기서 마인들이 어디 있는지 저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어요. 절 데려가 주세요.”
당소소라는 여인이 근거를 들어, 자신을 데려가 달라며 설득한 것이다.
뭐, 체력 소모가 적은 건 내 입장에선 별로 큰 메리트가 아니었지만.
그러자 진초풍이 여인을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현재 당가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소소, 너 뿐이지 않느냐. 당가는 데릴사위를 들인다는 전통도 있으니, 네가 살아있다면 대가 끊겼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목숨을 보전하거라. 내 알아서 영민한 사람을 붙여줄 것인즉.”
하지만 소소라고 불린 여인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전 반드시 당가의 사람을 해친 마인들이 도륙당하는 모습을 직접 봐야겠습니다.”
“하지만······.”
“맹주님도 고 문주님이 화우신군을 단숨에 베어버리는 걸 직접 보지 않으셨나요? 고 문주님을 따라간다고 제가 위험할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는 길 안내만 할 뿐,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 않을 거예요. 한쪽에 숨어 있겠습니다.”
여인이 뜻을 꺾지 않자, 곁에 있던 미남자도 앞으로 나섰다.
“그럼 제가 당 소저와 함께하겠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남자를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말씀드렸다시피 동행은 한 명만 받을 생각입니다. 제 속도를 따라올 수 있다면야 모르겠지만요.”
“그럼 당 소저 대신 저를······.”
그러자 여인이 미남자의 말을 잘랐다.
“팽 공자.”
“예?”
“당장 첫 번째 목적지인 섬서 어디에 마인들이 주둔하고 있는지는 아시나요? 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곳으로 가는 최단 거리도 제 머릿속에 있죠. 그리고 말씀드렸지만 저는 양보할 생각이 없어요. 반드시 마인들이 죽는 걸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말 거예요.”
“하지만 업고 달린다고 하지 않소! 당 소저는 지금 고 문주님의 등에 업히겠다는 뜻이오?”
“네. 그래야만 절 데려가 준다면요.”
‘시간이 아깝군.’
이대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기에 나는 먼저 선수를 쳤다.
“맹주님. 그냥 저 혼자 가겠습니다.”
하지만 진초풍이 한 손을 들어, 잠시만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했다.
“소소야. 정녕 꼭 가야만 하겠느냐?”
“예. 은혜는 열 배로, 복수는 천 배로. 그게 저희 당문입니다. 직접 죽일 수 없다면 제 두 눈으로나마 똑똑히 보고 싶습니다.”
당소소가 단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했다.
그러자 진초풍이 눈을 질끈 감더니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그런 그가 다시 눈을 뜬 건 1분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제 아비의 고집을 그대로 빼다 박았군.”
당소소를 보는 그의 눈빛이 무척 아련했다.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는 모양.
작게 한숨을 내쉰 진초풍이 말을 이었다.
“알겠다. 그래도 몸조심해야 한다.”
“제 억지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맹주님.”
기뻐하며 고개를 숙이는 당소소를 뒤로하고 진초풍이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염치없지만 잘 부탁드리겠소.”
진초풍의 말에 뭐라 말하려던 나는 당소소와 눈을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싫다고 하면 혼자서라도 따라올 기세였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3일간의 시간 동안, 나는 당소소와 함께 다니게 되었다.
< 124화. 단독 미션(6)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