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단독 미션(5) >
“와아아아아아!”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챙! 채챙! 챙! 챙! 챙!
무림맹에 도착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시체도 별로 없고, 피를 묻은 사람들도 거의 없었다.
그렇다는 건, 이제 막 전투가 시작되었다는 것.
서걱!
나는 곧장 창을 휘두르면서 마인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뭐지?’
근데 뭔가 이상했다.
‘마인들의 스텟이 너무 높은데?’
무림맹에 쳐들어온 마인의 숫자는 대충 어림잡아도 5천 명 이상.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연정만]
[성향 : 광신]
[근력 : 86(+?)] [민첩 : 84(+?)] [체력 : 59(+?)]
[정신 : 58(+?)] [지력 : 18(+?)] [마력 : 80(+?)]
[업적 특전 : 천마신교의 교인]
그런데 그들 하나하나의 스텟이, 하위 리그 코메인 이벤트 급이었다.
아무리 무림이 열두 성계 중 가장 강한 네 개의 성계라곤 하지만, 이건 말이 안 되는 거였다.
‘발리노르의 소드 마스터들도 100을 겨우 넘겼는데.’
사실, 아까 만났던 청성파의 장로, 남우태가 싸우던 마인들도 비슷한 스텟이었다.
그땐 200명밖에 안 돼서 그냥 마교의 정예들인가 보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들도 모두 마졸에 불과했던 것.
‘이게 가능한 건가?’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상한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근력이랑 민첩, 마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보통 근력과 민첩을 단련하다 보면 체력은 자연스럽게 상승한다.
뭘 수련하든 체력을 소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근민체를 묶어서 부르는 것.
그런데 이들은 근력과 민첩에 비해 체력이 너무 낮았다.
‘근력과 민첩을 인위적으로 보정 받았다는 뜻이군.’
거기다 중요한 건.
‘업적 특전에 천마신교의 교인?’
저들 모두 업적 특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냥 마교에 소속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특전을 받는다고?
혹시 일부 마인들만 그런 건가 싶어, 다른 마인들도 확인해봤지만 모두들 업적 특전을 가지고 있었다.
‘뭔가 있군.’
일단 여기 있는 마인들을 모조리 죽인 뒤에, 정파인들에게 정보를 구해봐야 할 것 같았다.
“흑살대! 저 가면 녀석부터 처치하라!”
“옛!”
그때, 중심부에 있던 누군가가 마인들에게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적장.’
이런 집단전에선 대장부터 처치하는 게 정석.
나는 몰려드는 마인들을 베며 적장에게 내달렸다.
‘악마의 눈.’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궁소무]
[성향 : 광신]
[근력 : 138(+?)] [민첩 : 134(+?)] [체력 : 96(+?)]
[정신 : 91(+?)] [지력 : 34(+?)] [마력 : 142(+?)]
[업적 특전 : 천마신교의 장로]
[종족 특전 : 악마의 권속眷屬]
‘미친.’
적장의 상태창을 확인한 나는 어이가 없었다.
마교의 교주도 아니고, 고작 장로에 불과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근력과 민첩이 130을 넘어가고 있었다.
중간계의 존재가 상위 리그, 그것도 하위 넘버링에서 최상위 수준이라는 뜻.
거기다 녀석은 종족 특전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였다.
‘악마의 권속?’
아마 저 악마라는 게 마교의 교주를 뜻할 것이다.
[현재 마교 교주의 악마화 진행률은 92% 입니다.]
저 단어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사실을 추가로 알 수 있었다.
‘악마화 진행률이 100퍼센트 다 차야만 되는 게 아닌가 본데.’
하긴, 인간인 상태에서 진행률이 100%가 됐다고 뿅! 하고 악마가 되진 않을 것이다.
내 생각엔, 신체 일부가 서서히 악마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악마의 능력을 조금씩 사용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뭐, 어쨌든.
“크윽······. 도, 도대체······?”
서걱!
고작 세 번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마교의 장로, 궁소무의 머리가 하늘을 날았다.
‘굳이 뇌신강림을 쓸 필요도 없지.’
중간계의 상식에서 벗어나는 스텟을 보유했기에 놀란 거였지, 그게 내 상대가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
피의 강화 특전이 활성화되며 내 근력과 민첩은 250을 넘어섰으니까.
“이럴 수가! 장, 장로님이!”
궁소무가 죽자, 마인들이 크게 동요했다.
“젠장! 빨리 맹주부터 처치해!”
내가 엄청난 고수라는 걸 알아차린 마인들이 그때부터 등을 돌려 정파 무림인들에게 달려들었다.
‘멍청하긴.’
서걱!
덕분에 나는 등을 보인 마인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트렸고.
“크아악!”
그때부터 내 독무대가 펼쳐졌다.
꽈광! 꽝! 꽈아아아아아아앙!
벼락이 흩뿌려지고, 간간이 벽력이 터지며 순식간에 마인들을 도륙해나간 것이다.
한 번 창을 휘두를 때마다 너덧 명의 마인들이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띠링!
[<피의 흡수> 능력으로 극소량의 체력 스텟을 흡수합니다.]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후우.’
30분 남짓한 짧은 시간.
5천 명이 넘는 마인들을 모조리 죽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상위 넘버링 경기이기에 쉬운 미션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일단 상황부터 파악해야겠어.’
정파인들은 계속해서 마교와 전쟁을 치루어 왔을 터.
저들에게 물어보면 마인들의 스텟이 원래부터 저렇게 높았던 건지, 아니면 마교 교주의 악마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벌어진 일이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정파인들에게 향했다.
악마의 눈을 사용해 보니, 대부분이 평균 스텟 60.
가장 높은 사람의 근력과 민첩이 130에 턱걸이로 걸쳐 있었다.
‘역시 마인들의 스텟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거였군.’
“무량수불······.”
다가갈수록 뒷걸음질 치는 정파인들.
‘쯧.’
청성파의 장로 남우태도 그렇고, 이곳에 있는 정파인들도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마인들을 학살했음에도 아군이라고 확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엔 또 뭐라고 둘러대야 하려나.’
그래도 일단 말문을 트긴 해야 한다.
마인들이 원래부터 저렇게 강했는지, 그리고 현재 정파의 상황은 어떤지.
마교의 어디를 공략해야 하고, 마교 교주를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는지 알아내려면 이곳에서 평생을 살아온 저들의 도움이 꼭 필요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며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뭐지?’
다른 정파인들과 다르게, 우두커니 서서 날 빤히 바라보고 있는 20대 중반 정도의 여자가 있었다.
너무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기에, 한순간 날 아는 사람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을 정도.
싸우기 편하게 머리칼을 위로 틀어 올려 동그랗게 묶고, 짙은 초록색 무복을 입은 여인이었는데, 길다란 검이 하늘하늘 거리는 걸로 보아, 연검을 사용하는 것 같았다.
‘저 사람에게 물어봐야겠군.’
마침 모두들 뒤로 물러서고 있어서, 계속 다가가면 여인과 정면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상황.
나는 그대로 여인에게 똑바로 걸어갔다.
* * *
“맹주님을 지켜라!”
“한 놈이라도 더 길동무로 데려가야 한다!”
검은 무복을 입은 마인들 무리가 단체로 무림맹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치 검은 태풍이 불어오는 모습.
검은 바람에 닿을 때마다 무림인들이 픽픽 쓰러져 나갔다.
‘하아. 하아.’
그 광경을 보면서 당소소는 숨을 몰아쉬었다.
검을 쥔 그녀의 손에서 식은땀이 한가득 배어 나왔다.
‘적의 숫자가 너무 많아.’
마교의 공세는 무척 매서웠다.
천하 오대 세가라고 불리는 사천당가.
정파 무림을 대표하는 무림맹.
그리고 정파 무림을 구성하는 다양한 문파들.
오랜 역사, 오랜 전통, 그 안에 담긴 많은 사람들의 땀과 눈물.
그 모든 것들이 오늘부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겠지.
거센 태풍 앞에서, 아름답게 핀 작은 꽃송이는 버티지 못할 테니까.
‘한 명이라도 더 내 손으로 죽이고 말겠어.’
당소소는 친우와 선배들을 베어 넘기는 마인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이 팔랑팔랑 휘며 적의 급소로 날아들었다.
챙! 채챙! 챙! 챙!
하지만 당소소의 검은 마인들에게 너무나 쉽게 제지당했다.
강호에 이름난 마두가 아닌, 마졸들임에도 불구하고.
“호오. 제법 반반하게 생긴 년이구나.”
“엉덩이라도 흔들어 볼 테냐? 그럼 살려주도록 하지.”
당소소를 본 두 명의 마인이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귀를 씻어내고 싶을 만큼 치욕적인 모욕이었지만, 당소소가 할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 거지?’
오랜 전쟁으로 인해, 독과 암기들은 모두 떨어진 상태.
하지만 그것들이 있어도 결과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 없는 마졸들조차,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했으니까.
마교에 소속된 무인들 전부가, 천하에 이름난 영약을 하나씩 먹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아무리 휘둘러도 당소소의 검은 저들에게 닿지 않았다.
“앙칼진 년이군.’
“후후, 차라리 잘 됐어. 이런 년들이 길들이는 맛이 있는 법이지.”
당소소는 모욕적인 말을 들을 때마다 이를 악물고 검을 휘둘렀다.
챙! 채챙! 챙!
그럼에도 마음 한켠엔, 절망이 내려앉았다.
저들은 그녀를 상대하면서도 웃고 떠들며 장난치고 있었다.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난다는 것.
‘곧······ 만나러 갈게.’
죽는 건 두렵지 않았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형제도, 자매도.
그리고 친구들도.
모두 저 더러운 마인들의 손에 죽었으니까.
다만, 한 명이라도 더 죽이지 못한다는 게 천추의 한일 뿐.
‘천지신명이시여.’
많은 걸 바라지 않겠나이다.
부디 제가.
단 한 명의 마인들이라도 더 벨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당소소가 작게 읊조렸다.
그때였다.
쾅! 콰과과광! 콰광! 쾅! 쾅!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빛이 번쩍였다.
열 줄기 벼락이 암흑으로 잠긴 하늘을 갈랐다.
천둥소리에 당소소의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누구냐!”
“끄아아아아악!”
“이런 미친!”
그와 동시에 무림맹의 대문을 넘는 마인들 쪽에서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무슨?”
그 소란에 당소소를 압박하는 마인들의 시선이 잠시나마 대문 쪽으로 향했고.
‘빈틈!’
당소소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커헉······.”
서걱! 서걱!
바로 자세를 낮춘 채 파고들어, 마인들의 목을 베어버린 것이다.
“하아. 하아.”
당소소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왼쪽 어깨가 화끈거렸다.
그녀가 목을 베기 전, 마인들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검에 당한 것이다.
‘이깟 상처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부욱- 부욱-
소매를 뜯어 어깨에 난 상처를 감싼 그녀는 곧장 다음 상대를 물색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
순간, 대문 쪽에서 엄청난 빛기둥이 하늘로 솟구쳤다.
비명 소리를 동반한 엄청난 굉음이 그녀의 귀를 때렸다.
그리고 보게 된 광경.
‘저게······ 사람이 보일 수 있는 위용이라고?’
가면을 쓴 채 온몸에서 검붉은 벽력이 뿜어져 나오는 괴인.
그의 창이 한 번 번뜩일 때마다 마인 서너 명의 목이 하늘을 날았다.
‘아름다워······.’
무척 잔인한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한순간 당소소가 그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너무 빨라 눈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지만, 한 번 나타날 때마다 춤을 추듯 창을 휘둘렀다.
그때마다 피가 흩뿌려졌는데, 붉은 꽃이 사방으로 흩날리는 느낌이었다.
꽈광! 꽈과과과광!
암흑에 잠긴 하늘이 번쩍! 하고, 열 줄기 벼락이 괴인의 곁을 산산조각 냈다.
마치 강한 벼락이 검은 태풍을 찢어발기는 것 같았다.
‘뇌공雷公······?’
뇌공은 천제天帝의 명을 받아 천둥 번개를 일으켜 악한 인간이나 귀신, 요괴들을 징벌한다는,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존재다.
한마디로 허구 속의 존재라는 것.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끄아아아아악!”
하지만 괴인의 무위는 당소소가 뇌공을 떠올릴 정도로 대단했다.
“이, 이럴 수가! 저 악귀 궁소무가······!”
“무량수불······.”
천하백대고수 중 한 명이라는 마교의 화우신군火羽神君 궁소무가 고작 세 번의 공격을 받아내지 못한 채 죽었으니까.
서걱! 서걱! 서걱!
‘천지신명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당소소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저 사람이라면.’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을 잔인하게 죽이고.
어머니와 자매들을 겁탈한, 악마들.
이 세상에 존재해선 안 되는 불구대천의 원수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을 것이다.
“······.”
“······.”
마지막 남은 마인의 머리가 떨어지는 걸 끝으로, 무림맹 내부에 싸늘한 정적이 깔렸다.
그의 근처로 수천 구나 되는 시체들이 쌓여 있었다.
괴인이 살아남은 사람들을 한 번 쓸어보자, 그 눈길에 닿은 사람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당소소도 괴인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치자 순간 숨이 멎을 정도였다.
후우―
길게 한숨을 토한 괴인이 팔을 한 번 크게 털자, 창에 묻은 피가 후두둑 쏟아졌다.
모두들 검을 들어 올린 채 침을 꼴깍 삼키며, 괴인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뚜벅. 뚜벅. 뚜벅.
“으으······.”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걸어오는 괴인.
붉은 피안개를 동반한 괴인이 다가오자, 모두들 뒷걸음질을 쳤다.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결사 항전을 펼치던 무림인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질린 것이다.
하지만 당소소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괴인을 똑바로 바라볼 뿐이었다.
어깨에 난 상처와 마인들을 죽이며 뒤집어쓴 핏물이 뚝, 뚝 흘러내렸다.
“다, 당 소저!”
“위험하오! 어서 뒤로!”
주변에 있던 동료들이 그녀를 불렀지만, 당소소의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
그렇게 마주하게 된 두 사람.
가까이에서 본 괴인의 인상은, 그가 무척 강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슬픔을 간직한 눈동자야.’
분명 흔들림 없는 강한 눈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녀는 괴인의 눈이 무척 슬퍼 보였다.
그때였다.
“피를 흘리고 계시군요. 괜찮으십니까?”
괴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묵직한 저음.
그 목소리가······.
그리고.
희망이라는 단어가.
그녀의 가슴에 팍! 하고 꽂혔다.
< 123화. 단독 미션(5)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