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화. 단독 미션(4) >
[주의!]
[외부적 요인 없이, 스스로 악마화 진행을 통해 악마로 진화할 경우, 상급 이상의 악마가 탄생합니다.]
[반드시 악마화 진행이 완료되기 전에 마교 교주를 처치하세요!]
[경기 시작!]
알림창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회차, 그리고 2회차를 통틀어 무림은 처음이었다.
유독 잘 안 걸리는 몇 개 성계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무림.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
그리고 지구.
[Tip]
[이들은 믿는 신이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원활한 미션 진행을 위해서, 자연스럽게 무림 성계의 인물로 녹아들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알림창에 나는 눈을 치켜떴다.
원활한 미션 진행을 위해서 무림 성계의 인물로 녹아들라고?
‘연기를 하라는 뜻인가 본데.’
팁으로 나온 내용을 본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저들은 모두 무복을 입고 있었다.
근데 나는 로브에, 그 안에는 가죽 갑옷을 입고 있다.
아마 저들에겐 내 복장이 무척 생소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내게 맞는 무복을 구할 수도 없는 상황.
‘산속에서 혼자 살아왔다는 식으로 가는 게 좋겠군.’
지금으로선 내 복장 때문에 저들이 경계심을 가지면, 어떻게든 둘러대서 넘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 ‘렌’이 <화살:봉마의 화살>을 획득했습니다.]
[<화살:봉마의 화살>]
[죽은 사람의 영혼을 봉인시킵니다.]
[죽은 뒤 마계로 넘어가는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화살입니다.]
[<화살:봉마의 화살>을 사용한 뒤 반드시 회수해야 합니다.]
내 손바닥에 한 개의 화살이 나타났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 깃으로 이루어져 있는 화살이었다.
‘일단 지금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교의 교주가 어딨는지 정보를 얻어야겠군.’
콰지지지지지지직!
미션 내용의 파악을 끝낸 나는 곧장 검은 무복을 입은 사내들에게 달려들었다.
굳이 누가 마교고 누가 정파인지 물어볼 필요도 없었다.
‘악마의 눈.’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광무해]
[성향 : 광신]
[근력 : 83(+?)] [민첩 : 86(+?)] [체력 : 59(+?)]
[정신 : 58(+?)] [지력 : 18(+?)] [마력 : 81(+?)]
[업적 특전 : 천마신교의 교인]
검은 무복을 입은 녀석들의 업적 특전에 천마신교의 교인이라고 떡 하니 쓰여 있었으니까.
마교로 추정되는 사람의 숫자는 200명.
하지만 그들의 숫자가 몇 명이나 되든 상관없었다.
녀석들의 평균 스텟은 70에서 100 사이.
그런 녀석들이 백 명이 됐든, 천 명이 됐든.
서걱!
내 앞에선 무의미한 숫자일 뿐.
“누구냐!”
“감히 천마신교天魔神敎의 행사를 방해하다니!”
단숨에 마인 세 명의 목을 베어버리자, 전투가 한창이던 다른 녀석들이 내게 덤벼들었다.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천둥의 숨결이 뇌룡의 포효로 업그레이드 되면서, 한층 더 검붉어진 뇌전이 사방을 휩쓸었다.
피의 강화 특전이 켜져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크기의 구덩이가 만들어지며, 단숨에 열 명의 몸이 터져나갔다.
“미, 미친!”
“엄청난 고수다!”
벽력의 위력을 본 마인들이 그때부터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상대가 안 되지.’
사실, 이들은 하위 리그 플레이어들이나 상대할 법한 수준.
이제는 중급 악마와도 일대일로 싸울 수 있는 내게, 녀석들은 불에 달려드는 부나방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서걱! 서걱! 서걱!
띠링!
[<피의 강화> 능력으로 모든 스텟이 1% 상승합니다. (30/30)]
[<피의 강화> 로 올릴 수 있는 스텟을 끝까지 채웠습니다.]
[<피의 강화>로 상승한 스텟이 30분간 유지됩니다.]
가볍게 창을 서너 번 휘둘렀을 뿐인데 어느새 30명을 넘게 죽인 모양이었다.
피의 강화 특전까지 켜지면서 내 근력과 민첩이 200 중반대로 올라섰다.
“끄아아악!”
콰직! 콰지지직!
덕분에 200명 정도의 마인들을 단 3분 만에 전멸시킬 수 있었다.
‘상위 넘버링 경기치고는 너무 쉬운데?’
왜 이런 미션이 상위 넘버링에서 나온 거지?
‘아냐. 분명 뭐가 있어.’
일단 현재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생각을 정리한 나는 살아남아 있는 무림인들에게 다가갔다.
모두들 얼이 빠진 표정.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 정파인들이 흠칫 몸을 떨었다.
일단 이들에게 현재 위치와, 상황, 그리고 마교 교주가 어디 있는지 정보를 알아내야 하기에, 나는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모두들 괜찮으십니까?”
“아, 아수라!”
“아수라가 분명해······.”
“······후우.”
그 말을 들은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들이 또 시작이네.
└ㅎ.. 쟤들 입장에선 무서울 수밖에 없징.. 일단 거울부터 보고 오라구..
└ㅋㅋㅋㅋㅋㅋ 아수라가 쟤들 기준으론 악마 같은 거지?
└맞음 ㅋㅋ
└ㅋㅋㅋ 근데 얼핏 보면 마계에서 올라온 인물 같긴 함 ㅋ
‘가면 때문에 그런가?’
어딜 가도 모두들 날 악마로 오인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가면을 버릴 수도 없는 노릇.
가볍게 고개를 저은 나는 정파인들에게 다가갔다.
“저는 아수라가 아닙니다. 산속에서만 혼자 살아와서 복장이 이럴 뿐.”
“······.”
“혹시 지금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
“······?”
그러자 정파인들이 똑같은 거리만큼 뒷걸음질을 쳤다.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저들을 도와주기 위해 온 내 입장에선 어이가 없는 상황.
‘쯧.’
하는 수 없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멈춰선 나는 정파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여기, 대장이 누굽니까.”
“······내, 내가 주장主將이오만······.”
내 물음에 똘똘 뭉쳐 있던 무림인들 사이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짙은 남색 무복을 입고 있는 노인이었는데, 가슴께까지 흘러 내려온 길다란 수염이 무척 중후해 보이는 인상을 주었다.
“현재 상황을 좀 듣고 싶습니다만.”
“현재 상황이라면······?”
“여긴 어디고, 여러분은 여기서 왜 싸우고 있었고, 현재 무림맹 상태는 어떤지. 마교는 어디까지 내려왔는지 등등 전체적인 전세를 알고 싶다는 뜻입니다.”
긴급 미션이 떨어졌던 무스펠하임에서와 다르게, 여기선 지도가 나타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내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다는 뜻.
미션 내용이 나오기 전에 맵에서 개봉이라는 말이 나오긴 했지만, 무림 초행길인 내게 있어서 그건 있으나 마나 한 정보였다.
“아······ 나는 청성파의 남우태라고 하오. 과분하게도 강호의 동도들께 청성삼검이라는 별호로 불리고 있소. 혹시 귀하의 존성대명을 여쭤봐도 되겠소?”
뜬금없이 통성명을 하는 노인.
잠시 고민한 나는 입을 열었다.
“······저는 모용악······.”
“······.”
“······의 친구인 고건하라고 합니다.”
관객들이 보고 있는데 내 실제 이름을 밝힐 수도 없고.
그렇다고 렌이라는 닉네임을 말하자니, 저들에겐 무척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래서 모용악이라고 하려 했는데, 저들의 눈초리가 매서워지는 걸 본 나는 곧장 고건하라고 바꿔 얘기했다.
“오······ 모용 공자의 친우분이셨구려! 실례했소이다. 모용 공자의 일은 들었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
“아, 예.”
“미안하지만, 우린 현재 급히 어딜 가고 있던 길이라오. 혹시 다음에 얘기하면 안 되겠소?”
임기응변으로 급히 고건하라는 이름으로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청성파의 남우태라고 소개한 노인의 몸에선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급히 어딜 가고 있다는 것, 아니면 다음에 얘기하자는 것.
둘 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뜻이었다.
―여 소협. 장로님께서 왜 저분을 데려가지 않으려고 하시는 거죠? 마인들을 죽였으니, 정도를 걷는 분이시지 않을까요?
―적의 기만계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소. 복장도 이상하고.
―하지만 혼자서 200명이나 되는 마인들을 죽였잖아요.
―마인들이라면 기만계를 위해 충분히 그럴 수 있소. 적인지 아군인지 속단하긴 너무 이르오. 그래서 장로님께서도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고.
―하긴······.
그때, 남우태의 뒤쪽에서 뭉쳐 있던 무림인들이 소곤거리는 게 들렸다.
마인들을 닥치는 대로 죽여댔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날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눈앞에 있는 남우태도 웃는 낯을 하고 있지만, 끊임없이 내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어쩔 수 없군.’
싸아아아아아아―
내 몸에서 찐득찐득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급히 어디를 가야 한다라······. 그럼 묻는 말에 빠르게 대답해 주시면 되겠군요.”
“······!”
“······!”
내 살기에 노출된 무림인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모두들 식은땀을 흘리며 온몸을 벌벌 떨고 있었다.
‘이런 방법을 쓰고 싶진 않았는데.’
나는 이들에게 정보를 얻고, 협력해야 하는 입장.
그래서 되도록 강압적인 방법은 피하고 싶었는데, 당장 대화가 안 통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분명 찾아보면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문제는 내가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
‘상위 넘버링이 이렇게 쉬울 리 없어.’
적들이 아무리 많아봤자 결국 하위 플레이어들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미션 난이도가 너무 낮아 보인다는 뜻.
그런 의미에서 되도록 빠르게 마교의 교주를 처치하고 싶었다.
‘여기서 변수는 교주라는 존재밖에 없지.’
미션창에선 분명 악마화가 끝나면 상급 이상의 악마가 탄생한다고 했다.
직접 만나본 중급 악마의 스텟은 200 중반대.
그렇다면 상급 악마는 300이 넘을 수도 있었다.
‘문제는 상급 이상이라고 했단 말이야.’
최악의 경우 최상급 악마가 등장할 수도 있다는 것.
그렇기에 최대한 빨리 교주를 처치하는 것만이 변수를 줄일 수 있는 길이었다.
‘여기서 낭비할 시간이 없어.’
힘은 곧 법이다.
만고불변의 법칙답게, 그 효과는 굉장했다.
“무, 묻는 것에 답해 주겠소!”
처음엔 저항하려는 기색이던 남우태의 반응이 180도 달라졌다.
‘살기를 통해 내 경지를 가늠해 본 모양이군.’
현재 내 스텟을 보면 저항이라는 게 무의미하게 느껴질 테니까.
그의 대답을 들은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헉, 허억, 헉.”
“우웩. 우우웩.”
어느새 특급의 경지로 올라선 살기라서 그런지, 짧은 시간 노출되어 있었음에도 모두들 숨을 몰아쉬고, 개중엔 헛구역질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이들을 뒤로하고, 나는 남우태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럼 하나씩 하죠. 마교 교주는 어디 있습니까.”
“······그걸 알고 있었다면 우리가 먼저 그 천하의 마구니를 도륙하러 갔을 것이오.”
‘마교 교주가 어디 있는지는 따로 알아봐야겠군.’
남우태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린 나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마교의 본거지는 어디입니까.”
“신강의 천산이오.”
“지도 있습니까?”
“없소.”
“······.”
“······여기 있소.”
내가 한참을 노려보자, 남우태가 마지못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지도를 꺼냈다.
그리고는 바닥에 펼쳐, 서북쪽 끄트머리의 한 산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천산이오. 거리가 제법 있는 편이지.”
“우리가 현재 있는 위치는 어디입니까?”
“······?”
“······.”
“여, 여기가 개봉이오.”
‘제법 먼데?’
남우태가 가리킨 곳은 지도의 중심 부근.
이 지도가 몇 배율의 축척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나의 성계인 만큼 아마 상당한 거리가 있을 것이다.
“현재 마교와의 전황은 어떻습니까.”
내 물음에 한동안 날 빤히 쳐다보는 남우태.
그가 한숨을 내쉬며 개봉을 가리켰다.
“여기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교의 손에 들어갔소.”
‘생각보다 더 최악의 상황이군.’
굳이 예를 들자면,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북한군에게 떨어졌다고 볼 수 있을 정도.
거의 궤멸 당했다고 봐도 될 것이다.
“개봉만 남았군요.”
“아니. 정확히는 무림맹만 남았소.”
“······.”
정정해야겠다.
청와대만 남겨놓고 다 뺏겼다는 것으로.
하지만 남우태의 말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쯤 마교의 총공세가 시작되었을 것이오. 외부에 숨어 유격전을 펼치던 우리는 그 소식을 듣고 무림맹으로 지원을 가던 길이었고.”
“······!”
‘뭐라고?’
“무림맹이 정확히 어딥니까.”
나도 모르게 싸늘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현재 위치는 깊은 산 속.
심지어 여기가 무슨 산인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지도를 봤음에도 무림맹의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이, 이쪽으로 쭉 가면 되오. 한 삼십 리 정도······.”
남우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바닥을 박찼다.
[현재 마교와 정파 무림의 균형은 20:1 입니다.]
[마교 고수를 대거 처치해 균형을 5:5로 만드세요.]
승리 조건은 마교 교주를 처치할 것.
그리고, 5:5로 균형을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파 무림의 비율이 0이 되면.
‘마교의 교인들을 모조리 죽인다고 해서 5:5 비율을 인정해줄 리가 없어.’
아마도 미션 실패로 처리될 것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지금 마교의 교주부터 족치니 어쩌니 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씨발! 늦지 않았길······!’
< 122화. 단독 미션(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