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21화 (121/205)

< 121화. 단독 미션(3) >

주창범에게 양해를 구해, 대련 일정을 취소한 나는 곧장 아세리안의 집무실로 향했다.

“마침 잘 오셨어요, 안우진님.”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방금 전과 달리 무척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아세리안의 모습이 보였다.

‘성계 대항전 오피셜을 봤군.’

저 모습으로 보건데, 그녀 또한 아무런 얘기도 듣지 못한 것 같았다.

하지만 제대로 확인해 봐야 할 일.

나는 그녀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게시글을 보니까 스킬 업그레이드가 두 개로 줄어있더군요. 혹시 이와 관련해 전달받은 사항이 있으십니까?”

“아뇨. 저도······ 게시글을 통해 알았어요.”

아세리안이 불쾌하다는 기색을 내비쳤다.

“후우.”

그녀의 대답을 들은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의도한 제스쳐였다.

‘여기선 내가 기분 나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맞겠지.’

라파엘 뿐만 아니라 아세리안에게도 빌드업을 깔아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 내 모습을 본 아세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단 제가 직접 게임 메이커를 만나보고 올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

일단 라파엘이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보고 나서, 아세리안에게 얘기를 꺼내는 게 맞을 것이다.

그날 저녁.

띠링

[팀 ‘투지’의 주인, 아세리안 님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집무실로 좀 와주세요!

아세리안의 메시지를 본 나는 곧장 그녀의 집무실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안우진님.”

어두운 표정의 아세리안을 본 나는 그녀가 라파엘과의 대화에서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애초에 우리에게 신경 써 줄 생각이 있었으면 이런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겠지만.

“고생 많으셨습니다. 게임 메이커는 뭐라고 하던가요.”

“휴우. 성계 대항전을 준비하느라 포인트가 부족해서 어쩔 수 없었다고 하네요. 이미 협의가 끝난 부분 아니냐고 물었더니,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할 뿐이었어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생각보다 일이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렇군요.”

“이런 변동 사항이 있으면 당연히 안우진님께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하는 건데······ 하아. 라파엘님이 이전과 달리 많이 달라지셨더라구요. 타락이 걱정될 정도로.”

긴 한숨을 내쉬는 아세리안.

그녀는 머리가 아픈지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꾹 누르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을 것 같은데?’

포인트가 부족하다?

그건 그들의 사정이지, 내 알 바가 아니었다.

하다못해, 정말 포인트가 부족했다면 직접 찾아와서 사정을 설명해줬어야 했다.

뭐 그래봤자 결과가 달라지진 않았겠지만.

‘성계 대항전에 불참해도 되겠군.’

사실 이전부터 계속해서 생각해왔던 부분이었다.

성계 대항전을 뛴다고 내가 이득 볼 게 있을까?

그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잘 해봐야 본전이야.’

성계 대항전에 우승하고 특전을 얻는다?

그게 뭐?

이미 지구는 최강의 성계 특전을 가지고 있는 상태.

여기서 내게 이득이 있으려면 최소 10% 이상의 특전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손해지.’

예를 들어서 모든 스텟 12% 상승이라는 특전을 준다고 치자.

그래봤자 지구는 고작 2%밖에 추가되지 않는 셈이었다.

그 2%를 쟁취하기 위해 혼자서 다른 1,100명과 경쟁해야 한다?

굳이 저울에 올려볼 필요도 없었다.

‘최소 20%를 주지 않는 이상엔 고민할 가치도 없어.’

하지만 그전까진 거절하기가 떨떠름했다.

물론 성계 대항전이 말이 되냐는 신들도 있겠지만.

‘절반 정도의 신들은 성계 대항전이 열리길 바랄 수도 있지.’

근데 나 하나로 인해 성계 대항전이 어그러진다?

그럼 최소 절반의 팬들이 안티팬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었다.

‘근데 이젠 아니야.’

상황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애초에 약속했던 걸 라파엘이 먼저 무너뜨렸다.

그것도 아무런 상의도 없이, 일방적인 통보로.

‘아세리안은 게시글을 작성할 수 있지.’

그녀를 통해 내 이름으로 성명서를 내면 역풍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림도 무척 좋았다.

1. 혼자서 지구를 대표해 참가한다는 것.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매치다. 참가하는 것 만으로도 내겐 손해가 날 수밖에 없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관객분들을 위해 그걸 감수하고 참가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3. 다만 아예 형평성에 어긋나면 관객분들도 납득하지 못할 것이기에, 플래티넘 등급의 스킬 3개를 ‘임시’로 받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상위 게임 메이커도 제안에 수락했다.

4. 그런데 우리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2개만 주겠다는 오피셜을 발표했다. 우리는 오피셜이 나오고 나서야 어드밴티지의 규모가 축소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 그에 대해 상위 게임 메이커에게 직접 방문해 항의했다. 하지만 우리의 의견은 묵살되었다.

이런 내용의 성명서가 발표되면 관객들은 과연 나를 욕할까, 아니면 라파엘을 욕할까.

‘굳이 생각해 볼 필요도 없지.’

아마 라파엘의 입장이 무척 곤란해질 것이다.

‘관객들은 그렇게 설득하면 되겠고.’

이제 라파엘과의 관계를 짚어볼 차례.

처음 제안을 들을 때와 달리, 현재의 난 상위 리그 최상위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은 상태다.

적어도 내게 한해선 더 이상 오퍼 가지고 장난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팀원들은 다르지.’

이게 내가 성계 대항전을 거절하지 못했던 두 번째 이유였다.

내게 직접 제재를 내리지 못한다면, 내가 소속된 팀 투지를 건드릴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상황이었으니까.

슬슬 팀 투지에서도 하나둘씩 상위 리그로 올라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승급샷을 받은 카이로시아.

그 뒤를 이어 올라올 주창범.

아마 녀석들에게 불이익이 올 것이다.

그 후폭풍을 감당하는 게 내가 아니라, 아세리안이 되기 때문에 지금까지 얘기를 하지 못했을 뿐.

‘빌드업은 충분해.’

“저······ 아세리안님께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나도 아세리안에게 떳떳하게 말 할 수 있게 됐다.

그쪽에서 먼저 협상 테이블을 엎은 상황.

아세리안도 내게 불만을 품지 못할 것이다.

“네,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성계 대항전에 불참할 생각입니다.”

“······.”

“포인트가 없다? 그럼 우승 이후에 받을 보상을 더 신경 써준다던가, 하다못해 어떠한 성의라도 보이는 게 맞습니다. 왜냐? 제가 없으면 성계 대항전이라는 타이틀을 쓸 수 없을 테니까요.”

“그렇죠.”

“그런데도 아무런 상의 없이 오피셜을 뿌렸다는 것 자체가, 저와 아세리안님을 개무시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나는 일부러 아세리안의 이름도 함께 곁들였다.

나만 맞았냐? 너도 함께 뒤통수 맞은 거야.

이런 뉘앙스를 풍긴 것이다.

내 말에도 아세리안은 미동 없이 관자놀이를 꾹, 꾹 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기회가 지나면 더 이상 제가 게임 메이커를 상대로 우위에 설 수 있는 무기도 없습니다. 결국 이렇게 계속 끌려다니기만 하겠죠. 이번에 제가 그냥 넘어간다면, 다음에도 또 저를 쥐고 휘두르려 할 겁니다. 그러니······.”

그때였다.

“저도 안우진님 생각과 같아요. 그냥 참가하지 마세요. 저도 이번에 똑똑히 느꼈거든요.”

어떤 결심이 느껴지는 아세리안의 대답.

그녀의 모습에 나는 눈을 치켜떴다.

생각보다 그녀가 너무 순순히 응했기 때문이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야 상관없지만, 팀 투지에 상당한 불이익이 올 수도 있을 텐데요.”

아세리안이 고개를 들어,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그녀의 눈동자엔 어떠한 망설임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건 제가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안우진님께선 충분히 할 도리를 다하셨어요. 이후에 어떤 불이익이 오든 감내하겠습니다. 그러니 안우진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셔도 돼요.”

“······.”

‘하.’

똑 부러지는 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새내기에 불과했던 팀의 주인이.

‘이제야 제법 팀 주인으로서의 풍모가 느껴지는군.’

어느새 완연한 팀의 주인으로 성장해 있었다.

지금까진 초월 리그로 올라가기 위해, 그녀와 전략적 동맹을 맺은 관계였지만.

‘이젠 그녀와 운명을 함께해도 되겠어.’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알겠습니다.”

“다행히도 좋은 소식이 있어요.”

“좋은 소식······?”

내 물음에 아세리안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일부러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것 같았다.

“네. 라파엘님의 집무실에 갔더니, 주신 환웅님이 자리해 계시더라구요. 그분이 말씀하셨어요. 안우진님께 하이블러드나이트 126의 6경기 오퍼를 주겠다고.”

하이블러드나이트 126이면 앞으로 2주 뒤에 열린다.

그런데 나는 아세리안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근데 저는 플레이어 자격 정지 중이지 않습니까? 풀리려면 두 달 정도 남았을 텐데요.”

“제 생각엔 아무래도 주신님들께서 긴급 미션 당시, 안우진님을 인상 깊게 보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오퍼가 들어온 게 아닐까 싶네요. 라파엘님이 주신에 필적하는 처우를 받는다는 거지, 실제로는 주신님들이 더 높으니까요.”

‘어쩐지.’

성계 대항전이 코앞으로 다가온 상황에서 오퍼가 들어왔다길래 이상하다 싶었다.

라파엘이라면 절대 주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비명횡사하면 그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될 테니.

그나저나 6경기라면······.

“상위 넘버링이군요.”

“맞아요. 게다가 단독 미션이에요.”

“그게 뭡니까?”

“안우진님 혼자서 경기를 뛴다는 거죠.”

“······!”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혼자서······ 경기를 뛴다고?

‘정말로?’

1회차와 2회차를 통틀어, 처음 들어보는 개념이었다.

개인 PvP 미션이라고 해도, 결국 여러 명이서 함께 뛰었으니까.

“아마 생소하실 거예요. 고위 리그에만 있는 개념이거든요. 콜로세움이 시작된, 지난 5년 동안 상위 리그에서 단독 미션이 열리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에요.”

“아······. 어쩐지, 처음 들어본다 싶었네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데?’

안 그래도 상위 리그에 거대한 폭풍을 몰고 오려는 상황.

거센 폭풍에 뿌리째 뽑혀 나가지 않으려면, 그 전에 최대한 내 입지를 다져놔야 한다.

‘빌드업은 충분하지만.’

이런 일은 리스크를 최소화할수록 좋을 것이다.

내가 정말 대단한 활약을 보여줬다곤 하지만, 나는 하위 넘버링에서 두 경기, 그리고 긴급 미션 한 경기밖에 뛰지 못한 상황.

온달이나, 오디세우스 같이 수십 경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준 네임드들과는 처지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상위 넘버링은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단독 미션은 내게 딱 맞는 미션이었다.

모든 관객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테니까.

이번 기회에 주신들, 그리고 관객들에게 렌이라는 닉네임을 제대로 각인시켜 줄 것이다.

‘판을 깔아주겠다니, 제대로 보여주지.’

나는 조용히 각오를 다졌다.

―언제까지 최초 기록을 써 내려갈 것인가. 떠오르는 신예, 렌! 하이블러드나이트126에서 상위 리그 최초로 단독 미션을 수행한다.

└와 단독 미션 ㄷㄷㄷㄷ 심지어 상위 넘버링이네.. 상위 리그에서 성계 대항전이 열리기 전에 렌 제대로 띄워주려는듯..

└ㅁㅊ 게임 메이커가 관객들 제대로 우롱하네. 지구에 꼴랑 한 명 있는데 성계 대항전이 가당키나 하냐니까 렌한테 단독 미션 줘서 성계 대항전 이슈 묻으려고 하는 거자나ㅡㅡ

└윗댓, 대가리가 있으면 생각 좀 하고 사셈 ㅋㅋㅋㅋ 오히려 렌이 단독 미션 뛴다는 걸로 어그로가 더 끌리지, 뭘 이슈가 묻혀 ㅋㅋㅋㅋ 당장 게시글만 봐도 성계 대항전에 대한 글이 폭발적으로 올라오는뎈ㅋㅋㅋㅋ

└근데 렌한테만 너무 특혜를 주는 거 아님? 단독 미션은 선 넘었지 ㅡㅡ

└누구한테 들은 건데, 주신 환웅께서 직접 렌에게 단독 미션을 내렸다는 소문이 있음.

2주일 후, 하이블러드나이트 126 경기가 열리는 날.

“부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다녀오겠습니다.”

배웅해주는 아세리안에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경기장으로 입장했다.

[모든 상태를 100%로 회복합니다.]

게이트를 넘어서자, 우거진 나무와 덤불들이 보였다.

태양은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있었다.

‘산속이군.’

챙! 채챙! 챙! 챙! 챙!

어둠이 내리깔린 산속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숫자는 대략 200에서 300.

검은 무복을 입은 무리와, 각양각색의 무복을 입은 무리 간의 전투였는데, 검은 무복을 입은 무리가 압도적으로 다른 이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장로님! 장로니이이임! 이 마구니 자식이!”

“크윽······. 반드시 네 놈만은 길동무로······ 커헉!”

‘처절하게도 싸우네.’

곧 전멸할 것이 분명함에도, 각양각색의 무복을 입은 이들은 눈에 불을 켠 채 검을 찌르고, 휘둘렀다.

심지어 팔이나 다리 한쪽이 잘려 나간 채로 덤벼드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띠링!

[경기 : 상위리그-하이블러드나이트126의 6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형 : 척살(개인 PvP)]

[게임명 : 이무기 사냥]

[맵 : 개봉(대)]

[관객 수 : 1,056,667 명]

[미션1 : 마교 교주가 마공을 극성으로 익힌 탓에, 악마화惡魔化가 진행 중입니다. 마교 교주를 처치하세요.]

[미션2 : 마교의 준동으로 인해, 정파 무림이 궤멸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마교의 고수들을 대거 죽여, 마교와 정파 무림의 균형을 유지시키세요.]

[현재 마교 교주의 악마화 진행률은 92% 입니다.]

[악마화 진행률이 100%가 될 경우 마교 교주가 완벽한 악마로 진화합니다.]

[마교 교주를 죽인 뒤에 반드시 <봉마의 화살>을 꽂아야 합니다.]

[예상되는 소요 시간 : 199:12:17]

[현재 마교와 정파 무림의 균형은 20:1 입니다.]

[마교 고수를 대거 처치해 균형을 5:5로 만드세요.]

‘여기가······ 무림인가 보군.’

그들의 복장을 보자 이곳이 어디인지 대략적으로 유추할 수 있었다.

이번 단독 미션의 맵은 무림 성계였던 것이다.

< 121화. 단독 미션(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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