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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20화 (120/205)

< 120화. 단독 미션(2) >

“렌이라······.”

“그도 이번 긴급 미션에서 충분하다 싶을 정도의 활약을 보여준 것 같은데 말이죠. 그런데 약. 속. 한. 것처럼 앞서 얘기한 여섯 분 중 한 분도 렌을 언급하지 않으시네요.”

위그드라실이 오딘과 반고, 자이로스, 제우스, 샤, 아마츠카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순간 싸해지는 회당.

그러자 알라가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

“실력이 뛰어나더군. 나도 그가 충분히 고위 리그에서 잘 싸워 줄 거라고 생각하오.”

“상위 리그로 올라온 지 얼마 안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성장세가 무섭더군요. 저도 렌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은 벌써부터 쿠 훌린 급으로 생각하고 있더군요. 뭐, 직접 싸워봐야 결과를 알겠지만 말입니다.”

그를 시작으로 누아다, 일루바타르가 위그드라실의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좋은 반응만 있던 건 아니었다.

“난 반대하오.”

“나도 반대.”

오딘을 시작으로, 아까 위그드라실이 언급한 여섯 주신들의 반대 릴레이가 이어졌다.

그러나 찬성하는 신들과 달리, 모두들 아무 이유나 근거 없이 오딘처럼 짧게 반대라고만 얘기할 뿐이었다.

“그는 지구 출신 아니오? 게다가 이제 막 상위 넘버링으로 올라왔고. 아직 상위 리그에서 더 검증해야 한다고 생각하오만.”

그러다 마지막으로 나선 나카츠쿠니의 주신, 아마츠카미가 이유를 곁들어 반대했다.

그 모습에 위그드라실이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긴급 미션에서 검증이 된 거 아닌가요?”

“그니까 한 경기만 보고 판단하기에는······.”

“아, 지구 출신이란 게 걸리셨던 거군요. 아마츠카미님은 천하태평이시네요?”

“뭐, 뭐라?”

위그드라실이 말을 자르며 조소를 짓자, 아마츠카미가 미간을 찌푸렸다.

순간 싸늘한 분위기가 회당에 퍼져나갔다.

“말이 지나치시군. 주신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줄 수 있겠소.”

오딘이 위그드라실을 타박했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더 검증한다? 충분한 실력을 보여준 것 같은데요? 아마츠카미님은 그저, 렌이 지구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색안경을 끼고 보시는 것 같아 드리는 말씀이에요.”

“······.”

“당장 마계에서 끊임없이 지옥을 점령해 나가고 있어요. 이번에 마요엘을 놓친 것도 마계에서 무스펠하임의 록탄 성을 차지했기 때문인 것 아닌가요? 원래 우리, 천계가 차지하고 있던.”

위그드라실의 말에 다른 주신들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중간계와 마계 사이의 완충지대인 삼三지옥을 모두 차지하면 그들이 중간계를 노릴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사실. 그런 위급한 상황에 지구 출신이라서 마음에 안 드신다고요? 모두들 벌써 대전쟁을 잊으신 건 아니겠죠?”

“어찌 대전쟁을 잊었겠습니까. 무슨 취지에서 하신 말씀인지는 알지만, 일단 좀 진정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흠, 흠. 소녀가 실례했네요.”

오딘의 만류에는 듣는 시늉도 않던 위그드라실이, 환웅이 나서자 헛기침을 하며 자리에 앉았다.

또다시 찾아온 정적.

환웅이 검지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리며 생각을 정리하다 입을 열었다.

“음. 렌이라······. 다른 네임드들과 다르게, 의견이 나뉘는 것 같군요. 그렇다면 주신 회의의 오랜 관례에 따라 다수결로 정하는 걸로 하죠. 저부터 한 분씩 돌아가며 렌의 고위 리그 승격에 대한 의견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전 찬성에 한 표 걸겠습니다.”

“전 찬성해요.”

알프헤임의 주신, 위그드라실이 말했다.

“나도 찬성하오.”

티르너노그의 주신, 누아다가 말했다.

“찬성.”

탐리엘의 주신, 일루바타르가 말했다.

“찬성입니다.”

바빌론의 주신, 알라가 말했다.

“반대.”

나카츠쿠니의 주신, 아마츠카미가 말했다.

“반대하겠소. 뭔가 꺼림직한 기운이 느껴져서 말이오.”

미드가르드의 주신, 오딘이 말했다.

“나도 반대.”

무림의 주신, 반고가 말했다.

“반대입니다.”

웨스테로스의 주신, 자이로스가 말했다.

“반대.”

하이퍼보리아의 주신, 제우스가 말했다.

“저도 반대입니다.”

발리노르의 주신, 샤가 말했다.

찬성 다섯 명.

그리고 반대 여섯 명.

이제 남은 주신은 단 한 명 뿐이었다.

모든 주신의 시선이 한 명을 가리켰고.

찬성표를 던진 주신들은 미소를.

그리고, 반대 의사를 밝힌 여섯 명의 주신이 고개를 저었다.

“전 찬성하겠습니다.”

지구의 주신, 퀴리오스(주 라는 뜻)가 말했다.

결과가 나오자 환웅이 상황을 정리했다.

“음. 동률이 나왔군요. 혹시 지금이라도 의사를 바꾸실 분 계십니까.”

“······.”

“그럼 주신 회의의 의장으로서, 타협안을 제시하겠습니다.”

“타협안이라면?”

환웅의 말에 아마츠카미가 물었다.

“지금 반대 의사를 밝히신 분들의 주된 의견은 렌이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이유 때문인 것 같더군요.”

“그렇습니다.”

환웅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시험대에 올려 보는 걸로 하죠. 그것도 혼자서 말입니다.”

“혼자서······?”

“예. 상위 리그를 담당하고 있는 라파엘에게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렌의 경기를 잡아달라고 하겠습니다. 단독 미션으로.”

“······.”

“단독 미션이라면 렌의 정확한 수준을 가늠할 수 있을 겁니다. 거기서 렌이 성공적으로 미션을 수행한다면 최대한 빨리 고위 리그로의 승급을 추진하도록 하죠. 타협안에 동의하시겠습니까?”

환웅의 말에 주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동의하오.”

“저도 동의하겠습니다.”

그 모습에 환웅이 손뼉을 짝! 하고 쳤다.

“자, 그럼 오늘 주신 회의는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위그드라실님.”

“네, 환웅님. 말씀하세요.”

“대전쟁을 언급하신 건 무척 좋았습니다. 우리 모두, 대전쟁에서 승리하고 경각심이 옅어진 모양입니다.”

환웅이 다른 열한 명의 주신을 쓸어보았다.

“고위 악마 블라디미르와 싸우다 대신大神 아르테미스가 영면에 들던 모습을 똑똑히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저와 오딘님, 둘이나 나서야 블라디미르를 처치할 수 있었죠.”

“······.”

“아르테미스 다음은 우리 차례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환웅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파벌 싸움을 하시려거든, 마계를 쳐부순 다음에 하시죠. 다음 회의에서는 오늘과 같은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리라 믿겠습니다.”

환웅이 한 명 한 명 눈을 마주치다, 마지막에 오딘을 뚫어져라 보았다.

오딘이 그 눈빛을 똑바로 마주하더니, 잠시 후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지.”

* * *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였군.’

어쩐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데도 그녀가 난색을 표한다 싶었다.

단순 계산을 해보자면, 한 경기당 최대 5시간으로 잡고.

네임드가 못해도 50명은 될 테니, 한 경기당 한 명을 분석한다 쳤을 때 250시간이 소요된다.

잠을 한숨도 안 자고 봐도 열흘이 넘는 시간이었다.

‘분석한 걸 정리하는 시간은 그보다 배로 걸리겠지.’

잘하면 한 달 넘게 소요될 수도 있고.

안 그래도 바쁜 아세리안이 한 달 이상을 통째로 날리며 경기를 직관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내 부탁을 들어줬다간 팜의 운영이 무너질 테니까.

“제가 너무 과한 부탁을 드렸군요. 어쩔 수 없죠.”

나는 아세리안에게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았다.

“저······ 직접 분석해서 드릴 순 없지만, 자료를 긁어서 모아드릴 순 있어요.”

그런 나를 올려다보며 말하는 아세리안.

그녀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료를 긁어서 모아준다······?”

“네.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 보면 각 플레이어별로 공략법 비슷하게 올려놓는 신들이 있거든요. 다만 제가 직접 분석한 게 아니라서 그들의 정보를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지는 판단할 수가 없어요.”

“아, 괜찮습니다. 안 구해주셔도 됩니다.”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정보들은 아무리 모아봤자 쓸모가 없지.’

신뢰할 수 없는 정보는 정보가 아니다.

대부분의 정보가 사실이라고 해도, 거짓된 정보가 하나라도 껴 있는 이상, 나머지 정보를 다 폐기처분해야 할 테니까.

‘그걸 노리고 자기 팀 플레이어의 공략집을 작성하는 녀석들도 있었지.’

90%의 사실 속에 10%의 거짓을 섞어서 뿌리는 경우는 은근히 많았다.

사실이지만 쓸모없는 정보를 통해 신뢰를 주고, 그 속에 비수를 숨기는 거다.

단 한 번의 공방으로 승패가 좌우되는 콜로세움에서, 그 10퍼센트의 거짓 정보는 무척 치명적일 수밖에 없었다.

‘직접 무기를 맞대는 와중에 얻는 정보도 신뢰할 수 없을 테니까.’

“제가 어떤 무기를 쓰는지, 어떤 스타일을 주로 구사하는지 정도는 어떻게든 알아봐 드릴게요.”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뇨, 이 정도는 충분히 해드릴 수 있어요! 제가 만들어지는 대로 가져다 드릴게요.”

“음,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뇨, 제가 오히려 죄송하죠. 모처럼 하신 부탁인데.”

제대로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에 미안해하는 아세리안을 뒤로하고, 나는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변한 건 없다.

구해봤자 성향이나 다루는 무기, 예상되는 스텟 정도겠지.

어차피 분석해 봤자 어떤 스킬을 가지고 있고, 발동 조건이 어떻게 되고, 그런 중요한 정보들은 얻지 못할 것이다.

‘초감각으로 충분히 커버할 수 있어.’

스텟도 악마의 눈으로 확인하면 된다.

결국 그런 정보가 없어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우세한 조건에서 싸운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중개 거래소 오픈.’

특수 대련장으로 향하는 길.

나는 그 잠깐의 틈을 이용해 중개 거래소로 들어갔다.

꼭 플래티넘 등급이 아니더라도, 혹시 나와 시너지가 잘 맞는 스킬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쯧.’

하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스킬은 보이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중개 거래소에 올라오는 매물의 숫자가 많이 줄어있었다.

아무래도 어디선가 대규모로 골드가 풀린 모양.

내가 에덴과 안타레스의 보물 창고를 털었던 것처럼, 간혹 미션 중에 대량의 골드를 얻는 플레이어들이 있었다.

그럴 경우, 지금처럼 일시적으로 매물의 숫자가 많이 줄어들게 된다.

갑자기 생겨난 꽁돈에 흥청망청 써버리는 것이다.

‘성계 대항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련으로 실전 감각이나 끌어올려야겠군.’

마침 이번에 카이로시아가 승급샷 오퍼를 받은 상황.

내 실전 감각도 유지할 겸, 카이로시아, 그리고 다른 플레이어들을 마구 굴려줄 생각이었다.

카이로시아 다음으로는 주창범이 승급샷 오퍼를 받을 가능성이 높을 테니까.

그렇게 한 명씩 상위 리그로 끌어올리다 보면 플레잉 코치로 받게 되는 포인트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특수 대련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우진이형!”

특수 대련장에서 나온 주창범이 나를 발견하더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평소와 다르게 무척 다급해 보이는 모습으로.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형, 형! 빨리 커뮤니티 들어가 보세요! 상위 리그에서 성계 대항전이 열린다고 공식 오피셜이 나왔어요!”

‘드디어 떴군.’

분명 주창범의 후기를 확인할 때만 해도 없었는데, 방금 막 올라온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나는 바로 커뮤니티를 열었다.

―공식 오피셜. 상위 리그에서도 성계 대항전이 열린다! 총 다섯 경기!

―상위 리그 게임 메이커. “다가오는 하이블러드나이트134에서 성계 대항전 열린다.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각 성계 상위 100명까지 참가. 그런데 지구는 렌, 단 한 명? 이걸 성계 대항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방금 전까지 경기에 관련된 게시글로 가득했던 커뮤니티가 성계 대항전 얘기로 도배되어 있었다.

하이블러드나이트 134이면 앞으로 3개월.

내가 예상한, 자격 정지 6개월이 끝나고 딱 2주일 뒤였다.

“형, 이게 말이 돼요? 상위 100명이라고 해도, 지구는 형 한 명 뿐이잖아요!”

주창범이 내게 열변을 토했다.

‘이게 당연한 반응이지.’

성계 대항전을 열려는 라파엘이 비정상적인 거였다.

아마 대부분의 신들 반응 또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어쩔 수 없죠. 미리 저한테 의견을 묻기도 했고요. 그리고 제게 그만큼 어드밴티지를 주기로 했습니다.”

“휴우. 형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다행이긴 한데······.”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주창범.

나는 녀석에게 살짝 미소 지은 후, 게시글 중 한 개를 클릭해 들어갔다.

―각 성계 상위 100명까지 참가. 그런데 지구는 렌, 단 한 명? 이걸 성계 대항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상위 리그 게임 메이커가 다가오는 하이블러드나이트 134에서 성계 대항전을 개최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성계 대항전은 총 다섯 경기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성계 상위 100명이 참가한다.

참가하는 모든 플레이어들은 다섯 경기에 모두 참가 신청을 넣을 수 있고, 최종 우승하는 성계에게는 차원 특전을 부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지구 성계의 플레이어는 단 한 명, 렌 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렌은 혼자서 다른 성계의 1,100명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

과연 이걸 성계 대항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필자는 의심스럽다.

그에 대해 상위 리그의 게임 메이커는 “플레이어 렌에게 특별한 어드밴티지를 제공하기로 했다.” 라는 답변을 내놓았다.

어드밴티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계 대항전에 한하여, 플레이어 렌이 보유 중인 스킬 다섯 개 중, 두 개를 플래티넘 등급으로 업그레이드 해준다.

어느덧 상위 리그 최상위 네임드로 군림하고 있는 렌.

하지만 애초에 성계 대항전에 참가하는 조건이 상위 1위부터 100위까지인 만큼, 대부분 비슷한 실력일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렌이 과연 저 어드밴티지를 받아들이고 성계 대항전에 참가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

게시글을 읽자, 내 입매가 싸늘하게 굳었다.

‘내가 지금······ 잘못 본 건가?’

서둘러 다른 게시글을 클릭해 읽어보았지만, 내용은 똑같았다.

두 개의 스킬을 플래티넘 등급으로 업그레이드 해주겠다는 것.

‘하, 이것 봐라.’

세 개라고 분명 얘기가 됐는데, 막판에 이런 장난을 쳐?

‘정말 멍청하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막 상위 리그로 올라와, 데뷔전도 안 치렀던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같을 거라고 생각한 건가?

그렇다면 정말 멍청하다고밖에 할 수 없었다.

‘일단 아세리안과 얘기를 나눠봐야겠군.’

만약 미리 얘기가 된 내용이 아닌, 일방적인 통보였다면.

그것도 직접 얘기해준 것도 아닌, 이렇게 게시글을 통해 통보한 거라면.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다.

‘차라리 잘 됐어.’

안 그래도 어떻게 때려줘야 할지 고민이었는데.

자기가 알아서 맞을 짓을 하고 있었다.

< 120화. 단독 미션(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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