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화. 단독 미션(1) >
―지구에 등장한 세 번째 네임드? 그 주인공은 지금까지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컨텐더, 주창범!
―끊이지 않는 지구 플레이어들의 약진! 룬을 시작으로 지구 플레이어들이 대거 상위로 넘어갈 것.
―열두 성계의 밸런스가 맞춰질 날이 머지않았다.
‘호평 일색이군.’
개인 집무실에서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을 확인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직접 경기를 직관한 아세리안이나, 포르도엘에게 주창범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는 얘기를 듣긴 했지만, 객관적으로 파악하기에는 커뮤니티 게시글만 한 게 없었으니까.
근데 게시글에 주창범의 닉네임이 도배된 걸로 보아, 이정도면 충분히 안심해도 될 것 같았다.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특별한 이상 징후는 보이지 않았어.’
빠르게 향상된 실력에 녀석이 제법 들떠 보이긴 했지만, 그 정도는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어제 모용악이나 루치아노 등과 대련시켰을 때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었고.
‘더 이상 내가 신경 써야 할 문제는 없는 것 같군.’
주창범 말고도 혹시 이전과 행동이 달라진 사람이 있나 꼼꼼히 체크했다.
그리고 한 명씩 개인 상담까지 진행한 결과, 주창범과 같은 문제가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걸로 팜에 생긴 문제는 일단락된 셈.
‘이제 슬슬 성계 대항전을 준비해야겠어.’
마음을 먹은 나는 아세리안의 집무실로 향했다.
이전에 계획해 두었던, 상위 리그 네임드들의 정보를 모아달라는 부탁을 하려는 생각이었다.
원래 주창범의 얘기를 듣고 바로 부탁하려 했지만, 당시 아세리안의 표정이 너무 좋지 않아 일단 주창범의 문제부터 해결한 뒤에 얘기하려고 뒤로 미뤄두었던 것이다.
똑똑-
“아세리안님, 안우진입니다.”
“네에. 들어오셔도 돼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집무실 책상 앞에 앉아있는 아세리안이 방긋 웃으며 나를 맞이해 주었다.
‘여전히 일이 많나 보네.’
책상 위에 수두룩하게 쌓여 있는 각종 서류들.
내가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주고 있고, 또 피넛엘과 포르도엘이 들어오면서 그녀의 업무 상당수를 대신해주고 있지만, 그럼에도 아세리안의 업무는 너무 많았다.
어느덧 팀에 소속된 플레이어의 숫자가 1,500명을 넘어선 상황.
이전에 비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숫자인데도 여전히 생존율이 높다는 것은, 다 아세리안이 그들 하나하나를 꼼꼼히 체크하고 있는 덕분일 것이다.
“여전히 바쁘시군요.”
“헤헤, 먹고 살려면 열심히 해야죠. 차 한잔 하시겠어요?”
“아뇨, 괜찮습니다. 아, 커뮤니티를 체크해 보니, 주창범의 반응이 나쁘지 않더군요.”
“저도 확인했어요. 바로 직전 경기에서 엄청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 짧은 시간에 문제도 해결하고, 오히려 더 강해졌다고 모두들 놀라더라구요. 덕분에 저한테도 문의가 엄청 들어오는 거 있죠? 정말 감사해요, 안우진님.”
아세리안이 두 손을 맞잡은 채 내게 고마움을 표했다.
상위 리그 승급을 앞두고 있는 주창범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질 뻔했기 때문일까.
그 탓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안색이 무척 좋지 않았는데, 이제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 같았다.
“제가 한 거라곤 약간의 조언 뿐입니다. 결과적으로 제 조언을 따르고, 골드도 모두 아세리안님이 부담하지 않으셨습니까. 아세리안님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주지 않으셨다면 주창범은 제법 오랫동안 방황했을 겁니다.”
내 말에 아세리안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안우진님이 아니었다면 전 해결 방법을 찾지 못했을 거예요. 그니까 모두 안우진님 덕분이 맞아요. 전에 주창범씨의 스킬을 고를 때 제가 드렸던 말씀 있죠? 그거 빈말 아니에요. 그니까 안우진님도 뭔가 필요한 게 있다면 꼬옥 말씀해주세요. 꼭이요. 알겠죠?”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내가 원하는 대답이 나온 것이다.
“안 그래도 마침 그것 때문에 왔습니다. 아세리안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거든요.”
“응응. 주저하지 말고 말해봐요. 제가 뭘 해드리면 될까요?”
아세리안이 빠르게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한다면 플래티넘 등급의 스킬이라도 구해줄 기세.
하지만 나는 플래티넘 스킬을 구해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구해달라고 해서 구해줄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얘기했겠지만.
‘하늘의 별을 따다 달라고 말하는 격이지.’
중개 거래소를 체크하는 사용인을 구해달라, 그리고 클로에한테 플래티넘 등급 스킬이 보이면 바로 얘기해달라는 식으로 아세리안에게 은연중에 내비쳤다.
그리고 내가 보유한 골드로 구입하겠다는 의사를 충분히 표현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세리안은 지금껏 아무런 액션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한마디로 아무리 그녀라고 해도 플래티넘 등급의 스킬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아무래도 곧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이 열릴 것 같더군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상위 리그 네임드들의 정보를 구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기존에 계획한 대로, 그녀에게 정보를 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주창범의 문제를 해결해 준 대가로 치자면 무척 가벼운 부탁.
“아······.”
하지만 내 예상과 달리, 아세리안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
흔쾌히 수락할 줄 알았던 나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하위 리그 성계 대항전 당시에도 그녀가 네임드들의 정보를 구해줬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저만 믿으세요!’ 라는 식으로 나올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았다.
아세리안은 지금까지 내 부탁을 거절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한동안 눈을 빠르게 깜빡이던 아세리안이 이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구해드리고 싶은데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그런 건 아닌데요. 음······. 혹시 하위 리그는 매 경기가 몇 시간이 걸리든, 관객들에겐 무조건 딱 1시간만 소요된다는 걸 아시나요?”
“네. 그래서 매주 토요일 오후 3시에 시작해서 새벽 1시에 끝나지 않습니까.”
내 대답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근데 상위 리그부터는 조금 달라요.”
“어떤 부분에서 다릅니까?”
그러자 아세리안이 아무것도 적혀져 있지 않은 새 종이를 꺼내 거기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가 천상계, 그리고 여기가 지하 마계예요. 그 가운데에 열두 중간계가 존재하는 거구요.”
“예.”
“안우진님이 최근에 다녀오셨던 지옥은 지하 마계와 중간계 사이에 있어요. 일명 삼지옥이라고 불리는 곳이죠.”
“그것도 알고 있습니다.”
아세리안이 큰 동그라미 두 개를 그렸다.
하나는 천상계와 중간계, 그리고 삼지옥의 일부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지하 마계와 삼지옥의 절반 가량이었다.
“이 원은 신성력이 미치는 곳이에요. 그리고 이 원은 마기가 미치는 곳이죠. 전에 경기하셨던 루에타 요새의 마성석 있죠? 그런 요새와 성, 그리고 거점 같은 게 지옥 곳곳에 퍼져 있어서 삼지옥에는 신성력이 통하지 않는 곳이 많아요.”
“그거랑 경기랑 무슨 상관입니까?”
“아버지의 신성력을 통해 시간을 왜곡해서 한 경기를 한 시간 만에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근데 상위 리그부터는 삼지옥이라든가, 혹은 중간계라고 해도 마기의 기운이 강한 곳에서 펼쳐지잖아요. 그래서 경기가 펼쳐지는 동안 관객들이 소모해야 하는 시간이 훨씬 길어요. 대략 세 배에서 길게는 다섯 배 쯤.”
“······!”
* * *
높이가 30미터를 훌쩍 넘는 거대한 돔형 건물.
원형 테이블에 열두 주신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열두 주신이 뿜어내는 엄청난 신성력 덕분인지, 회당에는 엄숙함이 감돌았다.
졸본을 다스리는 주신, 환웅이 입을 열었다.
“결국 마요엘을 놓쳤군요.”
“쿠 훌린 파티가 전력을 다해 뒤쫓았지만, 마요엘이 록탄 성城으로 들어갔으니. 방법이 없었을 것이오.”
티르너노그의 주신, 누아다의 말에 다른 주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작 열 명의 상위 플레이어들로 성을 공략할 순 없는 노릇.”
“권능과 능력을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될 테니, 마계의 죄수 입장에선 상급 악마 한 명을 얻은 셈이 되었네요.”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타천사들은 모두 제거했다는 것이오. 만일 그들마저 넘어갔다면 타격이 제법 컸겠지.”
천사라는 존재는 신들에게 있어, 중요한 전략 물자였다.
마계와의 대전쟁을 통해 지금은 중간계의 영향력을 모두 천계가 차지할 수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들이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모르는 일이니까.
그날을 대비해 플레이어들을 키우고 있다곤 해도, 결국 천계의 주력은 천사들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우리의 전력이 줄어들고, 마계의 전력이 늘어난 것은 분명한 사실.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면 나중에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이오. 역시 고위 플레이어들을 보냈어야 한 건데······.”
무림을 다스리는 주신, 반고의 말에 주신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저마다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미 지나간 일일 뿐. 그리고 애초에 가용 가능한 고위 플레이어가 없었지 않습니까. 물론 타천사를 놓친 건 뼈아픈 일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결과가 어찌 나왔든 간에, 우리로선 최선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때, 환웅이 침묵을 깨며 말했다.
“아, 환웅님을 욕보이려 했던 것은 아니오. 단지······.”
“반고님이 무슨 말씀을 하려고 하신 건지는 알고 있습니다. 고위 플레이어의 숫자가 부족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신 것 아닙니까.”
“그렇소.”
반고가 고개를 끄덕이자 환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라고 왜 아쉽지 않겠습니까. 그렇다고 타천사를 잡는 일에 천사들을 보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러다 오히려 천사들이 사로잡혀, 마계로 끌려간다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이오. 이번 일은 어쩔 수 없이 플레이어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는 일이었소. 천사가 갔다면, 저들도 고작 하위 악마들 따위를 보내진 않았을 테니까.”
“······.”
주신들의 입장에선 언제나 이게 문제였다.
다섯 명의 대천사들은 플레이어의 육성을 맡고, 주신들은 그렇게 성장한 플레이어들을 이용해 마계의 공세를 틀어막는다.
그게 아버지께 받은 자신들의 사명.
하지만 마계의 공세는 점점 더 심해져 가고 있는데, 보유하고 있는 고위, 초월 플레이어의 숫자는 그대로다.
그렇기에 늘 인력난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다.
“결국 상위 리그에서 쓸만한 플레이어들이 많이 나오길 바라는 수밖에 없겠군. 요즘 상위 리그에서 쿠 훌린과 주소월의 활약이 대단하던데, 이 두 사람은 어떻소.”
오딘의 물음에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주신들이 말을 쏟아냈다.
“쿠 훌린은 정말 훌륭하더군요. 센스도 좋고, 판단력도 뛰어나고. 그런데 그런 걸 다 떠나서 일단 강합니다.”
“오랜만에 상위 리그에서 대단한 플레이어가 나왔다고 생각하오. 그라면 지금 당장 올라와도 웬만한 고위 플레이어들만큼 활약해 줄 것이오.”
“스타일이 저돌적인데도 안정감이 있어요. 얼마 전에 라그나 로드브로크와 싸우는 걸 봤는데, 상대가 안 되더군요. 분명 고위 리그에서도 멋진 활약을 보여줄 겁니다.”
“주소월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점을 확실하게 알고 싸우는 것 같던데요. 오히려 쿠 훌린보다 주소월의 생존율이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기존의 플레이어들에게선 보이지 않던 새로운 유형이죠. 강하고 약하고를 떠나, 주소월 같은 플레이어가 고위 리그로 들어온다면 분명 기존의 플레이어들과 시너지를 발휘할 겁니다.”
무척 격한 반응.
모두들 두 사람을 호평하기에 바빴다.
“그 두 플레이어 뿐만이 아닙니다. 긴급 미션 3일 뒤에 경기가 예정되어 있어 참가하지 못한 헥토르나 랜슬롯, 시르카, 몽연, 엔키두 같은 네임드들도 앞전에 얘기한 두 사람 못지않습니다.”
긴급 미션이 열리고, 3일 뒤에 하이블러드나이트 125가 예정되어 있었다.
거기에 참가할 플레이어가 긴급 미션에서 죽게 되면, 리그에 큰 차질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긴급 미션 명단에서 빠진 이들이었다.
죽으면 대체할 자원이 없었으니까.
아니, 대체할 자원이 모두 긴급 미션으로 끌려갔었으니까.
“을지문덕과 카시아, 예천화, 아시카가를 빼먹으셨군요. 그들도 즉시 전력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모습에 오딘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 플레이어들을 빠른 시일 내에 올리는 걸로 하겠소.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그들보다 한 단계 아래인 온달과 오디세우스, 그리고 플로이드 같은 다른 네임드들은 어떻소?”
“음······.”
“······.”
하지만 이어지는 주신들의 반응은 방금 전과 딴판이었다.
모두들 쉽게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탐리엘의 주신, 일루바타르가 대답했다.
“그들이 약한 건 아니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긴급 미션만 봐도, 고위 플레이어 서너 명이면 클리어 가능한 미션을 그들은 열 명이나 되는데도 제대로 깨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고위 리그로 올렸다간 첫 번째 경기에서 대부분 죽어 나갈 겁니다.”
“내 생각에도 그렇소. 아직은 좀 더 담금질이 필요할 것 같더군. 언젠가 고위 리그의 한 축을 맡아 줄 소중한 인재들을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모두 날려 먹을 순 없으니.”
무림의 주신, 반고도 일루바타르의 말에 동조했고, 다른 주신들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두 동의한다는 뜻.
그러자 환웅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지금 당장 올릴 수 있는 전력은 고작 열 명 정도밖에 없다는 뜻이군요.”
“예.”
물론 열 명만 해도 커다란 보탬이 될 것이다.
워낙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으니.
하지만 요즘처럼 마계가 빠르게 성세를 늘려나가고 있는 상황에선 택도 없는 숫자였다.
“상위 리그의 투자금을 이전보다 늘려야 할 것 같소. 더 많은 포인트를 투자해 그들을 빠르게 성장시킨다면, 분명 그들도 빠르게 성장할 것이오.”
“건의하시는 겁니까?”
“그렇소.”
환웅의 물음에 오딘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 모습에 환웅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건의라고 보기엔 통보에 가까웠던 탓이다.
하지만 환웅은 금세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때였다.
“렌은 어떤가요?”
지금껏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알프헤임의 주신, 위그드라실이 말했다.
< 119화. 단독 미션(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