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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17화 (117/205)

< 117화. 새로운 네임드(6) >

“저······ 라파엘님.”

“말해.”

정신없이 서류를 보고 있는 라파엘.

그녀를 르니카엘이 조심스럽게 부르자, 까칠한 대답이 돌아왔다.

‘오늘도 무척 예민하시네.’

최근 들어 라파엘은 굉장히 신경질적으로 변해 있었다.

주신들이 렌을 긴급 미션에 투입한 뒤부터 조금씩 저기압인 날이 많아지더니, 요 근래에는 매일같이 기분이 나빠 보였다.

그 모습에 르니카엘은 옅은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자신이 보고할 내용을 들으면 좋은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으니까.

“저······ 하이블러드나이트 127 경기를 개최할 포인트가 부족합니다.”

르니카엘의 말에 서류를 넘기던 라파엘의 손이 뚝, 하고 멈췄다.

‘으. 숨 막혀.’

그리고 흐르는 정적.

‘아, 아버지······.’

르니카엘은 어서 이 침묵이 사라지길 기도했다.

“······왜?”

“······?”

“왜 포인트가 부족하냐고. 그 귀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모양이지?”

냉기가 잔뜩 실린 라파엘의 목소리.

그 모습에 르니카엘의 다리가 잘게 떨렸다.

“서, 성계 대항전을 준비하느라······.”

성계 대항전 개최를 준비하는 데 들어가는 포인트가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덕분에 미리 예산을 잡아놨던 것과 달리, 훨씬 더 많은 포인트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지옥 같은 경우는 맵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없기에, 포인트를 이용해 최대한 비슷한 모습으로 구현해내야 했으니까.

그런 과정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포인트가 필요하게 되었고.

“그래서? 포인트가 부족하니까 하이블러드나이트 127을 개최하지 말자고?”

“아, 아닙니다!”

“그게 아니면 뭘 그렇게 멀뚱멀뚱 서 있어. 빨리 가서 재무제표 안 가져와?”

노려보는 라파엘의 눈빛에 르니카엘이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재무제표를 가져와 건넸다.

사락- 사락-

다리를 꼬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재무제표를 넘기는 라파엘.

르니카엘은 그녀의 앞에서 양손을 공손히 모은 채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포인트는 뭐지?”

그때, 라파엘이 재무제표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서둘러 재무제표를 들여다본 르니카엘이 빠르게 대답했다.

“아······. 라파엘님께서 플레이어 렌에게 할당한다고 따로 빼 두라고 하신 포인트입니다.”

“흠······. 렌이라······.”

라파엘이 손가락으로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머리칼을 배배 꼬았다.

평소 무언가를 고민할 때 나오는 라파엘의 버릇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생각에 잠긴 라파엘이 꼬았던 다리를 풀며 곁에서 일하고 있던 두 명의 천사를 호출했다.

“타니엘! 주르엘!”

“찾으셨습니까?”

라파엘의 부름에 집무실 한쪽에서 정신없이 업무를 처리하고 있던 타니엘과 주르엘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렌에게 배정하기로 한 거 있지? 스킬 세 개 업그레이드 시켜주기로 했잖아.”

“네, 맞습니다.”

“그거 빼.”

“예······?”

“예······?”

‘뭐라고?’

라파엘의 말에 르니카엘도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알기로 저 포인트는 성계 대항전에 혼자서 참가하는 렌에게 어드벤티지를 주기 위해 빼 둔 것이었으니까.

저걸 빼겠다는 건 성계 대항전을 안 열겠다는 거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혹시 성계 대항전을 취소하시겠다는······?”

조심스럽게 말문을 연 주르엘.

그러자 라파엘이 코웃음을 쳤다.

“취소? 뭔 뚱딴지같은 소리니?”

“그, 그럼 이 포인트는 왜······?”

주르엘이 묻자 라파엘이 피식 웃었다.

“긴급 미션 보니까 충분히 강해졌던걸. 그 정도면 어드벤티지가 없어도 충분하잖아? 그리고 아예 주지 말자는 얘긴 아니야. 세 개를 두 개로 줄이자고.”

“아, 안 됩니다! 신들께 형평성에 관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렌이 출전 거부를 하기라도 하면······!”

열변을 토하는 주르엘과 타니엘.

하지만 라파엘은 이미 마음을 정한 모습이었다.

“제까짓 게 불만을 가져 봤자지. 오퍼를 안 주면 그만이야.”

“하, 하지만······!”

“그리고 형평성 문제는, 음. 그래, 이렇게 하자. 쿠 훌린 대 렌. 두 사람의 싸움을 성계 대항전에서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시글을 퍼트려. 형평성 이슈를 완전히 묻어버릴 수 있도록.”

“렌의 출전 문제는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주르엘의 물음에 라파엘이 씨익, 미소 지었다.

“이미 한 번 제대로 밟아놨어. 더 이상 까불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러니까 걱정 말고 진행해.”

그녀는 무척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도 르니카엘의 마음속엔 불안감이 떨쳐지지 않았다.

‘정말 괜찮을까.’

* * *

미션 중에 얻었다고 둘러대며, 주창범에게 스킬북을 건네준 지 일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주창범의 스킬 활용법과 이해도를 끌어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물론, 활용법과 이해도를 높이는 데에는 대련만 한 게 없었다.

챙! 채챙! 챙! 서걱!

“크윽!”

내 창에 목이 베이자, 주창범이 양손으로 목을 감싸며 무릎을 꿇었다.

녀석의 목에서 피가 한 움큼 뿜어져 나왔다.

‘쉽지 않았어.’

나는 창을 거두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주창범과의 대련은 끝.

“허억, 헉, 고생 많으셨어요, 형.”

“주창범씨도 수고 많았습니다.”

“와······ 이렇게 오래 버틴 건 처음인 것 같아요. 이게 1티어 급 스킬이구나.”

어느새 목에 난 상처가 회복된 주창범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다.

녀석이 나와의 대련 동안 버틴 시간은 12분.

간신히 5분을 버텨내던 이전과 비교하면 짧은 시간 만에 엄청나게 성장했다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녀석과 스텟을 맞추기 위해 많은 페널티를 감수하긴 했다.

특전도 다 끄고, 스킬도 사용하지 않고, 저주 아이템까지 일부 착용한 채 싸운 것이다.

‘이 정도면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진 않겠군.’

만약 내가 이 상태에서 스킬을 썼다면 단 1분도 버티지 못했겠지.

난 상위 리그에서도 최상위권의 플레이어고, 주창범은 그래봤자 아직 하위 플레이어였으니까.

‘확실히 주창범 스타일이 얼음 속성 스킬이랑 시너지가 좋네.’

이전과 비교해서 수비가 확실하게 좋아졌다.

전에는 빠르게 치고 빠지는 변칙적인 인 앤 아웃에 애를 먹던 녀석이었는데, 스킬로 인해서 사각 범위가 훨씬 줄어든 것이다.

기교에서 통하지 않고, 힘으로 없는 공간을 만들어서 공략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장기전도 쉽지 않고.’

녀석의 검이나 방패와 부딪칠 때마다 차가운 한기가 내부로 침투해온다.

거기다 겨울 방패 스킬로 인해 내가 때리는 데미지의 1프로가 반사되기까지.

오히려 몰아붙이는 사람에게 더 많은 데미지가 쌓이는 것이다.

가장 고무적인 건.

‘아직 스킬 이해도가 낮아.’

한마디로, 지금보다 더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뜻.

“직접 스킬을 써보니까 어떻습니까.”

“아······ 확실히 수비 하기가 한결 수월해졌어요.”

“그리고요?”

“제 공수 전환 타이밍이 더 뚜렷해진 것 같아요. 뭐랄까······. 형 스스로가 때릴수록 손해 본다는 생각에, 스타일을 바꾸는 순간 제가 공세로 전환했잖아요?”

“맞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형이 저를 상대할 때 애를 먹고 계시구나, 라는 게 느껴졌어요.”

‘애를 먹는다라······.’

주창범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녀석에게 저런 말을 듣는 순간이 올 줄이야.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마음이 이런 거였군.’

“맞습니다. 공략하기가 쉽지 않겠더군요.”

“사실 그때 저는 이겼다고 확신하고 있었거든요? 그동안의 경험으로 쌓인 감이란 게 있잖아요. 아, 이 타이밍에 어디를 노리고 들어가면 쓰러트릴 수 있겠다. 근데 형한텐 그게 안 통하더라구요, 헤헤.”

밝게 웃는 주창범.

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이다.

조급해하며 공세로 전환하던 것도 완전히 사라졌고.

“다음 경기가 블러드나이트 253이라고 했죠?”

“네, 맞아요.”

그 사이, 주창범에게 오퍼가 들어와 있었다.

블러드나이트 253이면 앞으로 3주밖에 남지 않은 상황.

“당분간 기초 스텟 훈련은 없습니다. 스킬 이해도를 최대한 끌어올리기 위해 대련 위주로 할 테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넵! 저는 형만 믿겠습니다!”

녀석이 힘차게 대답했다.

2주 뒤.

중간 점검을 위해 특수 대련장으로 제이스, 지그, 루치아노, 고건하, 모용악, 카이로시아를 불러 모았다.

그리고 시작된 주창범과 모용악의 대련.

“끄윽!”

“와······.”

“창범이 수준이 완전히 달라졌네.”

모용악이 제대로 손도 써보지 못한 채 주창범의 검에 쓰러졌고,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이 탄성을 내질렀다.

“고생 많으셨어요, 형.”

“수고했다, 창범아.”

대련을 펼친 모용악과 주창범이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사이,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티 나지 않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은데?’

스킬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할수록 빠르게 강해지더니, 이제는 모용악 정도의 실력자도 가볍게 이길 정도였다.

이제는 네임드라고 불려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

물론 룬이라는 플레이어처럼 압도적인 킬 수를 쌓는 건 여전히 불가능하겠지만, 적어도 녀석과 일대일로 붙으면 승부를 장담하기 어려울 것이다.

“다음은 고건하님이 대련해 주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고건하가 대련을 위해 주창범에게 향하고, 그사이 돌아온 모용악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모용악님.”

“아닙니다. 근데 창범이가 엄청 강해졌네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모용악.

그의 눈빛엔 의구심으로 가득했다.

제이스나 지그 등, 다른 사람들도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쯧.’

당연히 이런 상황이 올 거라고 예상했다.

갑자기 누군가가 엄청난 스펙업을 한다면, 팀의 경영에 많은 부분 참여하고 있는 내게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질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했으니까.

1티어 스킬로 도배했다는 걸 다른 이들에게 언제까지 숨길 수도 없고.

‘빠르게 화제를 전환시켜야겠군.’

결국 모르쇠로 일관할 수밖에 없다.

주창범 한 명에게만 좋은 스킬들을 몰아줬다는 게 알려지면 이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질 것이다.

“주창범씨가 저번 경기에서 좋은 스킬을 구했다며 찾아왔더군요. 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아, 직접 대련해 보니 어떠셨습니까.”

“눈앞이 캄캄하더군요.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힐 정도였습니다. 녀석의 수비를 단숨에 뚫고 들어가는 건 거의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장기전으로 가자니 감당이 안 되겠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는데, 아차 하는 순간 승부가 결판나 있었습니다.”

모용악이 허탈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주 좋군.’

내가 생각한 주창범의 공략법은 압도적인 화력으로 찍어 누르는 거다.

아니면 은신으로 다가가 암습을 하거나.

하지만 모용악은 둘 중 한 가지도 해당되지 않으므로, 현재로선 사실상 주창범을 공략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렇군요.”

“안우진님과는 다른 의미로 벽에 마주한 느낌이네요. 안우진님은 어떻게 손을 써보기도 전에 죽는다는 느낌이라면, 창범이는 너무 단단해서 깨부술 방법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주창범씨가 저번 경기에서 천운을 만났네요. 저렇게 좋은 스킬들을 얻게 되다니.”

내 말에 모용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긴가민가할 것이다.

그래서 날 떠본 거겠지.

다시 모든 이들의 시선이 대련 중인 주창범과 모용악으로 향했다.

그때였다.

“풋.”

무표정으로 주창범과 고건하의 대련을 보던 모용악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그를 시작으로 다른 사람들도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어떻게든 웃음을 참고자 하는 모습이었달까.

“······?”

“창범이가 지금 쓰고 있는 스킬, 안우진님이 주신 거 다 알고 있습니다.”

“······.”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흰 별로 섭섭하지 않거든요.”

모용악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알고 계셨군요.”

“팜에만 갇혀 있는 입장이라곤 하지만, 저희도 커뮤니티를 통해 다른 팀들이 어떤 식으로 굴러가는지 정도는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팀이 정말 좋은 팀이라는 것도 알고 있구요.”

“······.”

“아세리안님과 안우진님은 저희에게 차고도 넘치게 해주고 계십니다. 안우진님만 해도 경기에서 좋은 아이템을 구했다고 저희들에게 나눠주지 않으셨습니까. 여기 있는 우리 모두가 안우진님께 무언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서킷 브레이커가 터졌던 에덴의 보물 창고.

그리고 혁명 경기를 진행하며 라 제국의 황도, 안타레스의 보물 창고를 털고 많은 아이템들을 얻었었다.

골드도 충분하겠다, 굳이 아이템을 팔 필요가 있나 싶어 이들에게 나눠주었는데, 모용악은 지금 그때 나눠준 걸 얘기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저희에게 숨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흰 반복되는 호의를 권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지금도 안우진님께 무척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모용악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같은 마음이라는 것.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얘기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가 우리를 감돌고 있을 때였다.

“끄윽!”

어느새 고건하를 쓰러트린 주창범이 호기롭게 외쳤다.

“다음은 카이로시아님!”

그러자 날 힐끔 바라보는 카이로시아.

찌릿.

“안 봐줘도 되죠?”

냉기가 잔뜩 실린 느낌이었다.

‘왜 그러지?’

그녀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는 주창범에게 사뿐사뿐 걸어갔다.

뭐랄까, 평소보다 더 날카로운 모습이었다.

그리고.

【천중千重의 겁박!】

【소성의 새벽 폭풍!】

【옥죄어 오는 눈보라!】

【폭렬하는 붉은 꽃잎!】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물 속성, 불 속성, 바람 속성을 가리지 않고, 주창범의 스타팅 포인트로 어마어마한 마법 폭격이 쏟아졌다.

순식간에 엄청난 먼지가 사방을 휩쓸었다.

‘쯧.’

무려 고속영창에다가, 원소통달, 마력관통, 거기에 천재까지.

사실 화력만 놓고 봤을 때, 팀 투지에서 화력이 제일 좋은 플레이어는 카이로시아였다.

나까지 포함해서.

“쿨럭, 쿨럭.”

먼지가 걷히자, 피투성이가 된 주창범의 모습이 보였다.

“······.”

“······.”

“······.”

주창범이 1티어 스킬로 도배를 했지만, 카이로시아는 카이로시아였다.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군.’

괜히 애꿎은 화풀이를 당한 주창범이었다.

그리고 1주일 후.

주창범의 다음 경기가 돌아왔다.

< 117화. 새로운 네임드(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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