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새로운 네임드(2) >
*2연참 입니다!
“주창범씨가 요즘 좀 이상한 것 같아요. 못 느끼셨나요?”
“이상하다고요?”
“네. 지금도 되게 잘 해주고는 있는데, 뭔가 쎄한 느낌이 들어서요. 마치 위태위태한 외줄 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달까.”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주창범이 이상하다고?
‘평소랑 똑같아 보였는데?’
주창범.
나와 같은 지구, 그리고 대한민국 출신 플레이어.
‘아이돌 가수라고 그랬던가.’
그래서일까, 무척 잘생긴 외모를 가지고 있다.
물론 나는 주창범이라는 아이돌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TV도 안 보고, 심지어 걸 그룹도 아닌, 보이 그룹을 기억할 리 없으니까.
특징은 웃음이 많고, 성격이 쾌활함.
여태껏 인상 찡그리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밝은 녀석이었다.
‘팜 내의 분위기 메이커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지.’
덕분에 3기수나, 4기수 플레이어들.
그리고 모용악이나 고건하 같은 준네임드 급 플레이어들까지.
모두 주창범의 친화력과 도움 덕분에 금세 팜에 녹아들 수 있었을 것이다.
‘특이사항으로는 우유를 정말 싫어함.’
아니, 거의 혐오하는 수준이었다.
모두에게 아침 식사로 빵과 우유, 수프가 나올 때, 주창범만은 커피나 티 같은 게 나왔으니까.
뭐, 어쨌든.
‘어제까지만 해도 별다른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주창범은 팀 투지의 입장에선 무척 중요한 플레이어다.
일단 하위 플레이어임에도 불구하고 상위 리그에서도 보기 드물 정도로 기초가 잘 잡혀 있다.
그동안 내가 해온 걸 옆에서 빠트리지 않고 봐 온 탓인지, 그는 절대로 기초 훈련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초가 훌륭한 데다가 방패까지 사용하고 있으니, 어지간한 플레이어들은 그의 수비를 뚫고 들어갈 수 없을 정도.
‘이대로만 성장하면 상위 리그로 올라오는 건 시간 문제지.’
그래서 주창범은 팀 투지의 경영자인 아세리안 뿐만 아니라, 나한테도 무척 중요했다.
상위 리그로 넘어오는 순간, 훨씬 많은 포인트를 벌어다 줄 녀석이었으니까.
“어떤 부분에서 이상함을 느끼셨죠.”
“사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묘하게 눈이 가긴 했어요. 안우진님은 주창범씨가 한 번이라도 인상을 찡그리는 걸 보셨나요?”
“못 봤습니다.”
“제 말이 그거예요. 희로애락 중에서 희만 빼놓고 남은 감정은 아예 없는 것 같은 모습이잖아요. 그걸 평범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지금까진 그저, 아이돌 가수라는 이유로 언제나 웃음을 달고 산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직업병 같은 거라고나 할까.
하지만 아세리안의 말을 들어보니,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아무리 아이돌 가수라고 해도, 사람인 이상 카메라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까지 웃음을 달고 살진 않을 것이다.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군.’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창범은 마치 뭔가에 씌인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주변 인물과의 유대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건 나한테도 마찬가지였고.
―형. 근데 언제까지 존댓말 하실 거예요?
―존댓말이요?
―네. 다른 사람들은 이제 형누나동생 하면서 친하게 지내는데, 형은 끝까지 존댓말만 하시잖아요.
―그게 그렇게 이상합니까?
―음······ 별다른 뜻은 아니에요. 그냥 형이 다른 사람들에게 벽을 세워두고 계신 거 같아서요.
긴급 미션에 들어가기 전.
주창범이 했던 말을 통해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아무도 나와의 관계를 지적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그걸 아쉬워했던 게 주창범이었으니까.
“음. 언제부터 이상함을 느끼셨죠.”
내 질문에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곰곰이 생각하던 아세리안이 입을 열었다.
“아마······ 저번 경기를 뛰고 온 뒤로 그랬던 거 같아요.”
“피넛엘님이나 다른 분들도 이상함을 느꼈답니까?”
“안우진님께 오기 전에 먼저 얘기해 봤죠.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모용악님이라든가. 아니면 피넛엘이라든가. 근데 아무도 그런 걸 못 느낀 모양이에요. 그냥 평소와 같은 모습이란 것 뿐?”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이상함을 감지하지 못했으니, 다른 사람들이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세리안님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원래도 눈여겨보고 있던 플레이어였거든요. 아시다시피, 주창범씨는 제가 직접 뽑은 첫 번째 플레이어잖아요.”
아.
맞네.
‘아세리안이 직접 뽑은 첫 플레이어가 주창범이었지.’
나도 외부에서 영입해 들어온 케이스고, 내 손에 죽었던 트리오도 외부 영입으로 들어왔던 플레이어였다.
그 뒤에 뽑은 게 주창범을 비롯한 사인방이었으니.
뭐든 처음은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내가 아세리안이 갖게 된 첫 번째 플레이어라면, 주창범은 직접 뽑은 첫 번째 플레이어.
애착이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군.’
“거기다 웃는 모습이 마치 가면처럼 느껴져서 더 눈이 가기도 했구요.”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이상해졌습니까?”
“주창범씨가 원래부터 신입 플레이어들을 잘 챙겼잖아요. 모르는 게 있으면 알려주고,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고민 상담 같은 것도 많이 해주고. 근데 뭐랄까······ 요즘은 자기가 훈련해야 할 시간에도 남들을 도와주느라 통 집중을 못 하고 있더라구요. 거기다 전에는 없던 손톱을 깨무는 버릇까지 생겼구요.”
“음.”
“물론 제 기분 탓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주창범씨를 불러다 물어보기 전에 안우진님께 온 거예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마 느끼신 게 맞을 겁니다. 원래 정신적으로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기존에 갈구하던 것에 더 집착하는 증상을 보이거든요. 아마 저번 경기에서 주창범한테 정신적으로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 꾹 눌렀다.
‘골치 아프네.’
사실 콜로세움을 뛰는 플레이어들은 정신적으로 무척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언제나 죽음의 압박을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고층 건물에서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느낌이랄까.
불안감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가야 한다.
거기다 쳇바퀴를 돌듯, 매일같이 고된 훈련도 수행해야 하고.
‘미치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런 의미에서 정신적으로 이상 증세를 보이는 사람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문제는, 지금 그걸 겪고 있는 사람이 상위 리그의 승급을 앞두고 있는 주창범이라는 것.
“제가 한번 주창범과 얘기해 보겠습니다.”
“안우진님이 직접요?”
“예. 일단 문제점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니까요. 같은 플레이어인 제가 대화를 나눠보는 게 문제를 찾기 더 쉬울 겁니다.”
내 말에 아세리안이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감사해요, 안우진님.”
“아닙니다. 주창범은 어딨죠?”
“아, 곧 경기를 앞두고 있어요. 오늘 블러드나이트 249가 열리거든요.”
“오늘······?”
내가 어제 경기를 뛰었는데?
‘아, 긴급 미션이라 평소 리그가 열리지 않는 날에 들어갔다 왔지, 참.’
나는 아세리안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경기가 끝나고 나오면 제가 얘기를 나눠보겠습니다.”
* * *
나카츠쿠니 성계, 해룡의 군도.
그곳엔 크고 작은 섬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쾅! 쾅! 쾅!
그 한가운데에서 수백 척의 배가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저들끼리 부딪혀 깨져나갔다.
박살 난 배의 잔해물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복장을 한 시체들이 바다 위를 새까맣게 뒤엎고, 바다에 사는 온갖 몬스터들이 몰려들어 그 시체들을 물어뜯었다.
“끄아아아악!”
“살려줘!”
개중에는 살아있는 채로 바다에 빠진 이들도 있어서, 피라냐 같은 몬스터들에게 살점이 뜯길 때마다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몸부림칠 때마다 붉은 핏물이 사방으로 뿜어져 나갔다.
[승리 조건 : 경기 종료 시점에 생존해 있는 자]
[게임명 : 절망의 소용돌이]
[맵 : 해룡의 군도群島]
[현재 생존자 수 : 782명]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 : 00:37:29]
‘시간이 부족해.’
주창범은 바다 위에 널브러져 둥둥 떠다니는 나무판자들 사이를 빠르게 넘나들며 적들에게 검을 찔러 넣고, 방패를 휘둘렀다.
갑옷에, 검, 방패까지 착용하고 있다 보니 무게가 많이 나갔지만, 다행히 바다에 떠다니는 나무판자들은 주창범의 무게를 잘 견뎌 주었다.
챙! 채챙! 챙! 챙! 빡!
나무판자가 주창범과 상대방이 움직일 때마다 무게 중심이 바뀌며 크게 흔들렸고, 그때마다 적은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하지만 적을 상대하는 주창범의 검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안우진과의 대련을 통해 이런 상황엔 이골이 나 있었던 것이다.
발이 푹푹 빠져드는 사막이라든가, 늪지대 뿐만 아니라, 이렇게 배 위에서 대련했던 경험도 있었으니까.
“크윽!”
하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은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모양.
파도에 의해 나무판자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다 보니, 제대로 서 있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플레이어들은.
서걱!
주창범에겐 아주 좋은 먹잇감들이었다.
걸음마도 제대로 못 하는 녀석들을 상대로, 주창범이 고전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끄아아아아악!”
주창범의 검에 찔린 플레이어가 바다로 빠져 허우적댔다.
그가 한 번 버둥거릴 때마다 피가 튀기고 살점이 뜯겨져 나갔다.
바다에 사는 물고기형 몬스터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어 플레이어를 물어뜯고 있는 것이다.
‘더 많이 죽여야 돼.’
주창범은 이번 경기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생각이었다.
그렇기에 눈살이 찌푸려질 만큼 잔인한 광경임에도 불구하고, 주창범은 곧장 다른 플레이어들을 물색했다.
하지만 경기 종료 시점이 임박한 상황.
플레이어들이 보이지 않았다.
[이름 : 주창범(닉네임 : 주창범)] [소속 : Team 투지]
[리그 : 하위 리그]
[근력 : 86(+5)(+7)] [민첩 : 85(+5)(+7)] [체력 : 82(+5)(+7)]
[정신 : 82(+5)(+7)] [지력 : 44(+4)] [마력 : 93(+5)(+8)]
[각성 능력 : <최상급검방술> <최상급살기> <상급검술> <상급방패술> <최상급마나운용> <상급단검술> <상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보유 스킬(5/5) : <타격 회복> <수호의 의지> <마력 방패> <결자해지> <심판의 갑옷>]
[업적 특전 : 없음] [차원 특전 : 최강의 성계(모든 스텟 +10%)] [종족 특전 : 없음]
그때였다.
쿵!
주창범이 올라타 있는 나무판자가 근처에 떠다니는 배와 부딪히며 둔탁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챙! 채챙! 챙! 챙!
그리고 들려오는 쇳소리.
‘배 위.’
주창범은 손을 뻗어, 바로 곁으로 다가온 배 위로 올라갔다.
바다를 떠다니며 서로 부딪히고 있는 배의 종류는 판옥선.
직접 노를 저어 이동하는 배인 만큼, 선체가 그렇게 높지 않았다.
배가 움직이려면 노가 바닷물과 닿아야 했으니까.
한달음에 노 젓는 부분을 통해 배 위로 오른 주창범은, 곧바로 계단을 올라 갑판 쪽으로 향했다.
챙! 채챙! 챙! 챙! 챙!
전투가 한창인 여덟 명의 플레이어들.
현재 킬 순위를 곁눈질로 힐끔 살핀 주창범이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서 시간 낭비를 하면 안 돼.’
주창범은 망설이지 않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플레이어들에게 달려들었다.
“철벽의 주창범······!”
“젠장. 결국 여기서 만나다니······.”
그런 주창범의 모습을 본 플레이어들이 이내 싸움을 멈추곤, 주창범을 곁눈질했다.
하위 리그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탓에, 그를 경계하는 것이다.
“이 개 같은 자식!”
“죽어!”
주창범이 달려들자, 주변 플레이어들이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한꺼번에 달려들기 시작했다.
경기의 룰은 서바이벌.
한마디로 이곳에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들은 서로의 적이라는 뜻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해선 주창범을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빨리!’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나무판자보다 흔들림이 적어, 모두들 균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는 것.
주창범 또한 달려드는 플레이어들을 향해 거칠게 방패를 휘두르고, 검을 찔러 넣으며 날뛰었다.
서걱! 서걱!
잘려 나간 팔과 목이 허공을 날며 온갖 피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 113화. 새로운 네임드(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