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02화 (102/205)

< 102화. 타락 천사(6) >

라파엘의 집무실.

열한 명의 주신이 떠나고 집무실엔 라파엘과 오딘, 단둘만이 남아 있었다.

둘 사이에서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오딘은 긴급 미션이 끝난 후에야 떠날 생각인지, 경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중이었다.

“역시 하급 악마들까지 왔군.”

오딘의 말에 라파엘이 얼른 대답했다.

“이번에 타락한 시노엘과 마요엘, 미누엘, 레시엘 모두 5급 천사들이니까요. 마계 죄수의 입장에선 곧 상급 악마 수준으로 승급시킬 수 있는 타천사들이 열 명의 하급 악마보다 훨씬 귀중할 겁니다.”

―결국 쿠 훌린 파티가 가장 먼저 타천사 사냥에 성공합니다!

―정말 대단하네요. 상위 리그의 최강자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습니다. 거기다 주소월까지 같은 파티에 속해 있다 보니, 이건 뭐 다른 파티들과 비교가 불가한 속도군요.

―맞습니다. 그런데 왜 이런 식으로 전력이 불균형하게 파티를 짰는지는 좀 의아하군요. 주소월이 사사키······.

“정말 뛰어난 플레이어를 키웠어. 고생이 많았노라, 라파엘.”

“아닙니다, 주신님께서 매번 후원해주신 덕분입니다.”

“음. 확실히 쿠 훌린과 주소월, 저 두 플레이어는 완숙의 경지에 들었군. 언제쯤 고위 리그로 올릴 생각이느냐.”

“앞으로 1년 정도 예상하고 있습니다.”

라파엘의 대답에 오딘이 가슴까지 풍성하게 흘러내린 수염을 쓸어내렸다.

“1년이라······. 충분히 완성됐다 싶을 때 올리거라. 고위 리그엔, 약한 존재는 필요 없으니.”

“알겠습니다. 쿠 훌린 파티는 이만 회수할까요?”

“비프로스트를 한 번 여닫는데 많은 포인트가 들지 않느냐. 일단 그냥 두거라. 그나저나, 저 렌이란 아이 말이다.”

오딘의 말에 라파엘이 긴장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자꾸 렌한테 관심을 보이는 거지?’

그녀의 입장에선 주신들이 한 번씩 렌의 닉네임을 언급할 때마다 무척 불안했다.

렌은 상위 리그에서 성계 대항전을 열고자 한다면 반드시 필요한 플레이어.

그렇기에 성계 대항전을 준비하느라 어마어마한 포인트를 쏟아부은 라파엘의 입장에선, 렌이 혹여나 죽게 되면 그 포인트가 모두 날아가는 셈이었으니, 달가울 리 없었다.

“저 아이가 쓰고 있는 가면을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말이지.”

“가면······ 말씀이십니까?”

라파엘의 물음에 오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 아이를 내가 한 번 만나볼 수 있겠느냐. 아무래도 뭔가 찜찜하단 말이지. 이런 홀로그램 말고, 직접 대면해보고 싶구나.”

“······.”

“후후, 왜 그런 표정을 짓는고.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는가?”

“아, 아닙니다.”

오딘이 묘한 눈빛을 보내오자, 라파엘이 서둘러 대답했다.

그녀는 지금 이 자리가 무척 불편했다.

의미심장하게 툭툭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자신의 내면을 슥슥 훑어보는 느낌이랄까.

‘후우. 침착하자. 지금까지도 잘 상대해 왔잖아. 침착해.’

라파엘이 티 나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의 주신은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기로 유명한 존재.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쫄 것 없었다.

자신 또한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다섯 천사 중 하나.

오딘이 뭘 알고 있다 해서,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다.

“그럼 플레이어 렌과의 만남을 주선해 보거라.”

“알겠습니다.”

전혀 만나게 해줄 생각이 없지만, 라파엘은 티 내지 않은 채 고개를 숙였다.

그때였다.

―어어! 지금 뭐 하는 거죠!

―이건 정말 뼈 아프네요! 순식간에 전세가 뒤바뀝니다!

해설신들의 고함에 홀로그램으로 고개를 돌린 라파엘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네 파티 모두 순조롭게 타천사를 사냥하고 있었는데.

―아······. 너무 무리했습니다. 누가 봐도 타천사가 미끼로 나온 게 뻔한 상황이었는데, 그걸 물어 버리네요.

―네에. 이렇게 사사키 코지로 파티가 마요엘의 날개를 꺾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전멸하고 맙니다.

오딘과 대화하는 그 잠깐 사이에 파티 하나가 전멸하고 만 것이다.

그 모습에 라파엘은 아랫입술을 꾸욱, 깨물었다.

상위 리그의 흥행을 이끌 네임드 열 명이 사라진 셈이었으니까.

지금 상황에선 타천사를 놓치냐 마냐가 제일 중요한 문제.

하지만 성계 대항전이 워낙 초대형 이벤트다 보니, 라파엘의 입장에선 그런 생각부터 들 수밖에 없었다.

“쯧. 그나마 날개라도 꺾어서 다행이군. 가장 근처에 있는 파티가······.”

“쿠 훌린 파티입니다.”

“당장 쿠 훌린 파티를 보내, 도주하는 타천사를 사살하라.”

“바로 지시하겠습니다.”

―아, 오디세우스 파티도 결국 타천사를 놓치고 맙니다. 악마들이 시간을 끌어준 사이에 이미 너무 멀리 도망갔네요.

―물론 열 명의 악마를 처치한 건 대단한 공적이지만, 그래도 5급 타천사 한 명에 비할 바가 아니거든요?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오디세우스 파티도 날개를 꺾었다는 거죠.

―하지만 바로 근처에 마계에서 만든 요새인 루에타가 있습니다. 루에타 요새 안에는 마성석魔聖石으로 구동되는 치료의 샘이 있죠. 치료의 샘에서 12시간 동안 있으면 잘려 나간 날개가 재생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완벽하게 놓치고 말 겁니다.

―거기다 루에타 요새에 심어져 있는 마성석 때문에, 반경 천 킬로미터 안쪽으로는 비프로스트를 열 수도 없습니다. 결국 지금 있는 플레이어들로 어떻게든 처리를 해야 한다는 뜻인데요!

“뭐 하나 뜻대로 풀리는 것이 없군. 루에타 요새를 오디세우스 파티 혼자서 뚫어낼 수 있겠는가.”

오딘의 물음에 라파엘이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할 겁니다. 마성석을 지키고 있는 하급 악마만 해도 50명 가까이 될 테니까요.”

“그나마 온달 파티는 시노엘을 사냥할 수 있겠군. 온달 파티가 시노엘 사냥을 완료하면 오디세우스 파티와 합류해 루에타로 도주한 레시엘을 사냥하라.”

“차라리 고위 플레이어를 보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저들만으로 루에타를 뚫기엔 역부족일······.”

“후후. 고위 플레이어라······.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거라. 지금 상황에서 먼 곳에 있는 고위 플레이어를 보내는 게 타천사를 처치할 확률이 높겠는가, 아니면 온달 파티를 보내는 게 낫겠는가. 무엇이 더 합당한 방법이지?”

오딘의 말에 라파엘은 내심 뜨끔했다.

높은 난이도에 혹여나 렌이 죽을까 봐 고위 플레이어 얘기를 꺼낸 것이기 때문이다.

“······사냥이 끝나는 대로 바로 이동하게끔 지시하겠습니다.”

하지만 오딘이 묘한 웃음을 짓는 순간 라파엘은 알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라파엘에게 원하는 대답을 들은 오딘이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상위 리그의 재정 상황이 많이 열악해졌다지. 내, 다른 주신들께 건의해서 투자금을 올려달라고 얘기해 보겠노라.”

“감사합니다, 오딘이시여.”

라파엘이 오딘에게 고개를 조아렸다.

하지만 그녀의 머릿속엔 다른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드시 성계 대항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말겠어. 열두 주신들보다 내 방법이 더 옳다는 것을 아버지께 증명해 보여야 해.’

고개를 숙인 라파엘의 눈동자엔 독기로 가득했다.

* * *

고작 악마 네 명을 죽였을 뿐인데, 벌써 스텟이 1 포인트나 올랐다.

혁명 미션을 진행할 때 안타레스에서 죽인 소드 마스터들보다, 악마들이 훨씬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스텟 흡수율이 어마어마하게 높았다.

‘남은 여섯 마리를 다 죽이면 1 포인트 정도 더 오르겠는데.’

그렇게 생각하자 기분이 좋았다.

마의 구간에 돌입 후, 스텟이 오르지 않아 내심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으니까.

거기다 마력 상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거슬렸던 마법사들은 다 죽인 상황.

이 정도라면 내가 밀릴 이유가 없었다.

판단을 내린 나는 그때부터 더욱 과감하게 악마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모두 조심! 녀석의 스타일이 달라졌다!”

내 움직임에 악마들의 리더가 예민하게 반응했지만.

챙! 채챙! 챙! 챙!

“으윽! 손이······!”

악마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콰지지지지지직!

벽력섬전이 부딪힐 때마다 사방으로 뇌전이 흩뿌려지며 악마들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루스펠! 백업해! 고르긴은 뒤쪽 공간을!”

‘에워싸려고 하는 거군.’

그것도 문제없지.

“드디어 잡았······.”

“키에에에에에엑!”

“으윽! 고르긴! 룩소나! 몬스터부터 처리해!”

사방에서 몰려드는 몬스터 때문에 날 에워싸는 순간, 저들도 등 쪽이 빌 수밖에 없었다.

이젠 저 몬스터들을 광역 마법으로 처리해 줄 마법사들이 없는 상태였으니까.

어쩔 수 없이 남은 악마 중 몇 명은 몬스터들을 처리하며 다른 악마들의 등을 지켜줘야 했다.

‘잘 처리해 보라고.’

나는 곧장 녀석들에게 짓쳐들어가 난전을 유도했다.

히트 앤 런 스타일에서 토 투 토(toe to toe-발 붙이고 하는 근접 난타전) 스타일로 바꾼 것이다.

6대1의 상황에서 몬스터를 정리하기 위해 2명이 빠져나갔고.

나를 상대하는 악마는 고작 네 명.

서걱!

[플레이어 ‘루스펠’ 을 처치했습니다.]

[<피의 흡수> 능력으로 극소량의 체력 스텟을 흡수합니다.]

스텟에서 내가 훨씬 높은데, 고작 네 명을 상대하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젠장! 루스펠! 이 더러운 광대 자식이 감히 루스펠을!”

그때, 나와 맞상대하는 악마 중 한 명이 내 창을 무시한 채 돌진하며 손톱을 휘둘러 왔다.

언뜻 보기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서 달려드는 것 같지만.

‘뭔가 목적이 있는 것 같은데.’

녀석의 눈동자가 빠르게 내 몸을 훑고 있었다.

이성을 잃은 사람이 저런 식으로 눈동자를 굴린다고?

그렇다고 작전일 가능성도 없다.

아직 완벽하게 불리한 상황도 아닌데, 동귀어진을 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으니까.

‘피해야겠군.’

나는 단숨에 악마의 심장을 꿰뚫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곧장 뒤로 빠져나갔다.

명백하게 상식에서 벗어난 행동.

꿍꿍이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일전에 싸운 레기아가 그랬던 것처럼, 녀석들 또한 내가 모르는 어떤 능력을 사용할 수도 있고.

그 능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미 한 번 겪어 봤기에 애초에 그들이 능력을 사용할 기회도 주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

내가 완벽한 기회인데도 그냥 뒤로 빠지자, 달려들었던 악마 녀석이 눈을 치켜떴다.

‘역시 능력에 관련된 행동이었어.’

나는 계속해서 치고 빠지며, 악마들이 특이한 행동을 할 때마다 그것들을 머릿속에 입력해 나갔다.

‘이 녀석도 피를 주워 먹으려고 발악을 하는군.’

‘데미지 반사 관련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 같은데.’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대쉬한다라. 자폭 관련 능력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렇게 한동안 했더니, 어떤 악마 앞에서 어떤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지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미친! 이 자식은 도대체······!”

그렇게 악마들이 능력을 사용할 기회조차 주지 않자, 녀석들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미칠 지경이겠지.’

힐끗 보니, 시노엘이 궁지에 많이 몰려 있었다.

저들은 서둘러 시노엘을 구하러 가야 하는 상황.

그런데 난 맞상대도 해주지 않고, 무시하고 가기엔 내 민첩 스텟이 너무 높다.

그런 식으로 내게 완벽에 가깝게 차단되어 있다 보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우선순위를 미리 정했으면 됐을 것을.’

각각의 팀에서 개인적으로 모이는 우리와 다르게, 악마들은 한 팀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당장 누군가가 죽었을 때의 반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우리 파티였다면 누가 죽든 말든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 테니까.

그저 묵묵히 미션 수행을 했을 것이다.

왜냐고?

어차피 이번 경기만 끝나면 이후에 적으로 만날지도 모르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 슬퍼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였다.

‘하지만 같은 팀원이라면 얘기가 다르지.’

내가 적 파티장이었으면 세 명을 희생양 삼아 시노엘과 합류했을 것이다.

개개인으로 모인 플레이어들에겐 희생이라는 개념이 없으니 절대 불가능한 방법.

애초에 팀전으로 참가하지 않은 이상 희생 같은 단어가 존재할 수 없었다.

반면에 적들은 하나의 팀.

희생을 강요한다면 충분히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뭐, 이미 늦었지만.’

“대장님! 귀순하기로 한 천사가······!”

“제에엔장!”

시노엘이 궁지에 몰릴수록 악마들의 움직임 또한 조급해졌고, 그로 인해 동작이 조금씩 커져 갔다.

‘빈틈!’

서걱!

[플레이어 ‘룩소나’ 를 처치했습니다.]

[<피의 흡수> 능력으로 극소량의 민첩 스텟을 흡수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는 계속해서 녀석들에게 데미지를 쌓아가며 한 명씩 처치할 수 있었다.

나와의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고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는 순간, 승부는 정해진 거나 다름이 없었다.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었으니까.

그런 내 철벽같은 수비에 악마들은 알아서 무너져 내려갔다.

“지독한 자식······.”

서걱!

[플레이어 ‘카시오’ 를 처치했습니다.]

[<피의 흡수> 능력으로 극소량의 민첩 스텟을 흡수합니다.]

[민첩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끝났군.’

결국 나는 열 마리의 피의 흡수 제물을 모두 먹어 치웠다.

* * *

―온달 파티에서 대이변이 일어났습니다! 설마 렌 혼자서 열 명의 악마를 모두 처치할 줄이야······!

―렌에 대한 평가는 지금까지 항상 수정되어 왔죠! 잘 싸우네! 상위 리그에서도 잘 버틸 수 있겠어! 어어? 생각보다 더 강한데? 이 정도면 상위 넘버링까지 가능할지도! 그런데 오늘! 렌이 그 평가를 또 수정해 버렸습니다! 이젠 명실상부 상위 리그의 컨텐더(도전자) 계열에 올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위 리그도 렌이 등장하면서 많은 지각 변동이 생겼거든요? 그런데 상위 리그 조차도 렌에게는 너무 좁은 무대였던 모양입니다! 단숨에 두각을 드러내네요!

< 102화. 타락 천사(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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