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화. 타락 천사(4) >
몸 안에서 흘러나온 검붉은 뇌전이 창날에 압축되어 강렬한 빛을 뿜어댔다.
챙! 채챙! 챙!
그 강렬한 빛은 시노엘의 검과 부딪힐 때마다 작은 알갱이가 되어 주변으로 흩뿌려졌다.
현재의 나는 모든 특전이 켜지며 근력과 민첩이 200을 넘어선 상황.
“키에에에에에엑!”
‘불개미들이라도 많아서 다행이군.’
그런데도 시노엘은 곳곳에서 달려드는 불개미들을 처치하면서 동시에, 여유롭게 내 창을 막아냈다.
[5급 역천사 ‘시노엘’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과연. 5급 역천사라 이건가.’
피의 강화 특전이 활성화된 상태라면 피넛엘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시노엘은 피넛엘보다 날개 한 쌍이 더 많은 5급 역천사.
피의 강화 특전이 켜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하기가 굉장히 까다로웠다.
스텟 차이가 제법 많이 나는 것이다.
‘난전 상황이 아니었으면 힘들었겠는데.’
서걱!
나와 시노엘, 둘 다 곳곳에서 몰려드는 불개미를 죽이랴, 서로를 상대하랴, 정신이 없는 상황.
‘5시 방향에서 두 마리.’
‘3시 방향. 몸을 틀면 시노엘이 어글을 먹겠어.’
‘방향을 바꿔야겠군. 12시에서 오는 녀석들까지 상대하면 곤란할 수도.’
하지만 나는 초감각과 마력장 덕분에 이런 난전에 특화되어 있었다.
내가 슬쩍슬쩍 방향을 바꾸며 치고 빠질 때마다 시노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내가 의도적으로 불개미를 그녀에게 붙여 버리니까, 날 죽일 기회를 노리던 시노엘의 입장에선 성가신 방해물처럼 느껴질 것이다.
‘체력이 금방 빠지겠군.’
거기다 지형도 좋지 않았다.
현재 우리가 싸우고 있는 곳은 황폐한 사막의 땅.
모래 사이로 발이 푹푹 빠져들어 갔다.
그 바람에 움직일 때마다 하체 힘을 더 많이 줘야 했다.
띠링!
[<악마의 눈>이 5급 역천사 ‘시노엘’의 <권능:역천사의 눈>을 방어합니다.]
쐐액! 챙! 쐐애애액!
창을 쳐낸 시노엘이 순간, 내 간격 안으로 뛰어들었다.
‘더 빨라졌어!’
갑작스럽게 시노엘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바람에, 내 반응 속도가 조금 더뎠다.
바닥을 박차며 최대한 뒤로 빠졌으나, 어느새 시노엘의 검 끝이 내 가슴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오고 있었다.
‘젠장.’
나는 재빨리 창대로 시노엘의 손목 부분을 쳐내며 몸을 비틀었다.
서걱!
그러자 들려오는 피륙음.
왼쪽 어깨에서 불에 데인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챙! 채챙! 챙!
‘어떻게든 떼어놔야 해.’
나는 곧바로 시노엘에게 창을 휘두르며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다.
“키에에에엑!”
그리고는 등 뒤로 크게 창을 휘둘러, 달려드는 네 마리의 불개미들을 단숨에 베어버렸다.
“후후, 발버둥 쳐 보거라.”
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무시무시한 속도로 쇄도해 들어오는 시노엘.
‘무슨 권능이지?’
창과 검을 맞댈 때마다, 그녀의 움직임이 계속해서 빨라지고 있었다.
챙! 챙! 챙!
단순히 일시적으로 민첩이 상승하는, 그런 종류의 능력은 아닌 모양이었다.
띠링!
[<율마천사律魔天使의 권능>에 의해 체력 소모가 30% 증가합니다.]
[<마력 상쇄>가 <율마천사의 권능>을 상쇄했습니다.]
[5급 역천사 ‘시노엘’의 권능이 마력 상쇄를 무시합니다.]
[체력 소모가 30% 증가합니다.]
‘씨발.’
몸을 격렬하게 움직일수록 빠르게 호흡이 가빠져 왔다.
현재 내 체력 스텟은 183.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까마득히 높은 수치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근력과 민첩 스텟이 상승할수록 체력 소모도 커진다는 것.
“후후, 표정이 좋지 않구나.”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100킬로그램의 힘을 쓰면,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를 소비한다.
마찬가지로 200킬로그램의 힘을 쓰면, 그만큼 소비량도 더 늘어난다.
안 그래도 200 포인트가 넘는 근력과 민첩 스텟을 감당하느라, 체력 소모가 무척 심했던 상황.
‘천둥의 숨결을 꺼야 하나······?’
천둥의 숨결로 인해 체력 소모가 50% 증가했고, 앞으로는 율마천사의 권능으로 30%가 추가로 소모되기에 순식간에 체력이 바닥날 것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시노엘의 권능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띠링!
[<봉마천사封魔天使의 권능>에 의해 일시적으로 보유 스킬 한 가지가 랜덤으로 봉인됩니다.]
[<천둥의 숨결>이 봉인되었습니다.]
“······!”
천둥의 숨결이 꺼지며 내 움직임이 빠르게 느려졌다.
근력과 민첩을 15% 상승시켜주는 효과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시노엘이 내 품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서걱!
옆구리에서 밀려오는 아릿한 통증.
공격을 허용한 대신에 그녀를 창으로 밀어내며 거리를 벌렸기에, 이어지는 후속타만큼은 피할 수 있었다.
“왜 그런 것이냐? 분명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자신감이 철철 흘러넘쳐 보였거늘.”
시노엘이 이죽거리며 계속해서 나를 밀어붙였다.
‘차라리 잘 됐어.’
나는 시노엘의 검을 맞받아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천둥의 숨결이 봉인된 것은 뼈아프지만, 어마어마한 체력 손실 때문에 스킬을 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상황.
뇌신이나 마력 상쇄, 그림자 표식을 봉인 당하는 것보다 천둥의 숨결이 꺼지는 게 훨씬 나았다.
띠링!
[<궐마천사蹶魔天使의 권능>에 의해 마기가 깃든 아이템의 능력이 봉인됩니다.]
[<가면:블라디미르의 희열>의 능력이 봉인됩니다.]
‘뭐, 뭐라고······!’
알림창을 본 나는 두 눈을 부릅떴다.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블라디미르 가면이 봉인된다면, 나는 죽은 목숨인 거나 마찬가지.
띠링! 띠링!
[<가면:블라디미르의 희열> 아이템의 등급이 훨씬 높습니다.]
[<가면:블라디미르의 희열> 이 <궐마천사의 권능>을 무시합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알림창에서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큰일 날 뻔했어.’
찰나의 순간, 나도 모르게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었다.
안 그래도 천둥의 숨결을 쓸 수 없어서 피지컬로도 엄청나게 밀리는 상황.
거기다 블라디미르 가면까지 사용할 수 없어 스텟이 30% 더 깎여 나갔다면 이 싸움은 해보나 마나였다.
단 한 번의 공격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것이다.
검을 막는 순간 창이 튕겨져 나갈 것이기에.
“렌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때마침 사막의 구릉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파티원들이 언덕을 넘어오며 합류했다.
찌잉! 찌잉! 찌잉! 찌잉!
시노엘의 검이 강기가 실린 온달의 화살을 막을 때마다 찌르르 울리고.
【심연에 잠긴 소나기!】
마법사들은 마법을 날리며 날 지원해 주었다.
‘후. 살았다.’
적절한 타이밍에 파티원들이 합류해준 덕분에, 아찔했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나는 겨우 한숨 돌렸다.
“스읍, 후. 헉, 체력이······!”
“스킬도 봉인되었습니다!”
“키에에에에에엑!”
“키에에엑!”
“마사노부님은 불개미부터 정리를! 율리안님이 탱킹을 부탁드립니다! 수무아붐님과 오스카님은 퇴로 차단부터!”
“알겠습니다!”
그때부터 온달의 지휘하에 시노엘 레이드가 시작되었다.
스킬이 봉인되거나, 체력 소모가 늘어나 당황하던 파티원들은 금세 침착하게 시노엘을 밀어붙였다.
레이드를 할 때는 주변 잡몹의 존재가 거슬리기 때문에 몇 명은 불개미를 정리하러 가야 했다.
‘쉽지 않겠군.’
[날개 제어 능력 유지 시간 : 00:03:07]
시노엘은 에워싸이지 않도록 영리하게 움직였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어차피 꼭 우리를 쓰러트릴 필요가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무리하게 맞상대하는 것보다, 치고 빠지는 식으로 최대한 시간을 벌며 전투를 펼쳤다.
마침 우리 쪽에서 불개미들을 정리해주고 있으니, 그녀가 움직일 공간도 확보된 상황.
그와 반대로 우리 쪽에서는 마음이 다급했다.
‘일단 저 발을 묶어야 돼.’
그녀의 민첩 스텟이 워낙 높기 때문에, 에워싸지 않고서는 저 날개를 처리할 수가 없었다.
“양초풍님, 하레크누드님! 아예 크게 돌아주시죠!”
“알겠소!”
“에디든님, 11시 방향 좀 불바다로 만들어 주시겠습니까. 아예 한쪽 방향을 지워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온달도 나처럼 일단 시노엘의 발을 묶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았다.
그때그때 파티원들에게 지시를 내리며 시노엘을 몰이 사냥하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렌님은 커버 좀 부탁드립니다.”
“예.”
나는 리치가 긴 창의 이점을 이용해 정면에서 시노엘의 공격을 막고 있는 율리안을 지원했다.
율리안, 오스카가 시노엘과 공방이 벌어질 때마다 빈틈을 노려 창을 찔러 넣은 것이다.
내 공격 덕분에 시노엘의 템포가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온달이 마력을 강하게 압축시킨, 강기罡氣 화살들을 쏘며 지원해 주었고.
【찰나의 섬광!】
【아련하게 내려앉거라, 부나방이여!】
마법사들도 마법을 쏟아내며 압박해 들어갔다.
하지만 시노엘은 여유로운 미소만 흘릴 뿐이었다.
‘그 웃음이 언제까지 가나 보자고.’
그렇게 한동안 지루한 공방전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율리안님! 오스카님! 대쉬를!”
“흐읍!”
온달의 외침에 율리안이 방패를 앞세워 시노엘을 밀어붙이고, 오스카가 측면에서 검을 찌르며 들어갔다.
“쓸데없는 짓을 하는구나.”
그러자 시노엘이 뒤로 훌쩍 빠지며 거리를 벌렸다.
그때였다.
“키에에에에엑!”
무리를 이탈하고 한동안 보이지 않던 양초풍과 하레크누드가 불개미들 사이에서 튀어나오며 시노엘의 후방으로 짓쳐들어왔다.
곳곳에 구릉처럼 솟아오른 지대가 많았던 데다가, 우리가 싸우는 곳이 약간 음푹 파인 곳이었기에, 시노엘은 양초풍과 하레크누드가 뒤에서 나타나는 것을 알 수가 없었을 것이다.
“후후.”
하지만 그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시노엘은 높은 민첩을 이용해 그 둘의 검을 피하며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려 했다.
아마 큰 변수가 없다면 이대로 탈출을 할 것이다.
큰 변수가 없다면.
‘지금!’
[5급 역천사 ‘시노엘’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그림자 이동으로 순식간에 뒤를 점한 나는 창을 크게 휘둘렀다.
목표는 날개가 아닌.
시노엘의 목이었다.
“······!”
‘내가 날개를 노릴 줄 알았지?’
피넛엘과 싸우면서 느낀 것이 있었다.
날개는 분명 무척 유용한 무기였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그만큼 지켜야 할 게 많아졌다는 뜻.
지금처럼 창끝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지켜야 할 게 많아졌다는 것은, 판단력이 느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시노엘이 급하게 뒤를 돌며 날개를 방어하려다, 내가 애초부터 그녀의 목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다급하게 마력이 깃든 날개를 펼쳐 들었다.
서걱!
‘아쉽군.’
회심의 일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창은 결국 시노엘의 날개 열 장 중에, 세 장만을 베어버렸을 뿐이었다.
“으읏······.”
뭐, 그것만으로도 작지 않은 성과였지만.
[날개 제어 능력 유지 시간 : 00:01:57]
거기다 가장 중요한 건, 내가 여전히 시노엘의 퇴로를 막고 있다는 것.
“지금입니다!”
온달의 외침에 모두들 총공세를 때려 넣었다.
순식간에 에워싸여진 시노엘이 지금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러자 시노엘은 과감하게 움직였다.
‘판단력이 좋은데.’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최악의 상황만큼은 피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나마 마사노부를 뚫고 나가기 쉽다고 판단한 시노엘.
그녀는 날개를 방패 삼아 단숨에 마사노부를 쳐내고는 우리의 포위망을 빠져나갔다.
서걱! 서걱! 서걱! 서걱! 서걱!
물론 그녀 또한 남은 일곱 장의 날개 중 여섯 장이 잘려져 나갔지만.
“크윽! 젠장!”
한순간에 시노엘을 놓치게 된 마사노부가 욕지거리를 내뱉었지만, 다른 파티원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남은 한 장의 날개론, 더 이상 날 수 없을 테니까.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율마천사律魔天使의 권능>이 해제 되었습니다.]
[<봉마천사封魔天使의 권능>이 해제 되었습니다.]
줄줄이 해제되는 시노엘의 권능.
‘뭐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현재 시노엘은 현재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다.
그런데도 권능을 해제한다고?
그럴 이유가 있나?
‘혹시 날개에 권능이 담겨져 있는 건가?’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가능성 있는 추론이었다.
“습, 후우. 권능이 해제됐군요. 조금만 더 힘냅시다! 거의 끝났습니다!”
“이, 이 하등한 것들이······!”
온달의 외침에 파티원들이 마무리를 위해 전력으로 공격을 퍼부었다.
나도 천둥의 숨결을 다시 켠 채로 끊임없이 시노엘을 쫓아다니며 괴롭혔다.
권능도 해제됐겠다, 더 이상 시간에 쫓길 필요도 없으니, 데미지를 쌓는 방식으로 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노엘이 애처롭게 버둥거렸지만, 우리의 공세는 그치질 않았다.
그때였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무슨!’
우리의 주변으로 마법 폭격이 떨어졌다.
땅이 뒤집어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우리 마법사들이 사용한 마법은 아니었다.
‘설마?’
고개를 돌려 보니, 저 멀리서 누군가 우릴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온달님!”
“저도 봤습니다!”
달려오는 존재의 숫자는 열 명.
모두 새까만 갑옷과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머리 위로 조그마한 뿔이 솟아 있었다.
‘씨발.’
머리 위에 뿔이 있는 존재는 많지만.
지금 이 순간에 등장할 법한 존재들은 딱 하나였다.
‘악마.’
열 명의 악마들이 무서운 속도로 우리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 100화. 타락 천사(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