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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96화 (96/205)

< 96화. 진일보(5) >

서걱!

피넛엘의 왼쪽 어깨에 달린 네 개의 날개를 베어버리자, 공중에 떠 있던 그녀의 몸이 한쪽으로 쏠리며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후. 겨우 날개를 처리했군.’

그 모습에 나는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아무리 그녀를 몰아붙여도, 위기의 상황 때마다 하늘로 날아오르면 닭 쫓던 개 꼴이 될 테니까.

그래서는 절대 그녀를 피니쉬 시킬 수 없었다.

하지만 한쪽 날개밖에 남아있지 않은 이상, 더 이상 날 수 없을 것이다.

‘이 정도면 피의 강화 특전까지 활성화 시켰을 땐 충분히 이길 수 있겠는데?’

물론 피넛엘이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지금도 바짝 긴장하지 않으면 그녀의 검을 막아낼 수 없을 정도.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는 상대할만 하다는 게 내 감상이었다.

‘이대로 소모전을 계속해서 강요하면 충분히 버틸······.’

“정말 대단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전투에만 집중하던 피넛엘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그에 따라 나도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에서 상대가 말을 꺼냈다면 무시하고 창을 휘둘렀겠지만.

“인정하겠다, 그대여.”

‘쯧.’

어찌 됐든 그녀는 적이 아니고, 내 대련을 도와주는 상대였으니까.

아무래도 이대로 대련을 끝내려는 모양.

“지금부터는 권능을 사용할 것이다.”

하지만 이어지는 피넛엘의 말에 풀어지려던 긴장감이 다시 팽팽하게 조여지기 시작했다.

‘권능?’

권능이란 게 정확하게 어떤 걸 의미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스킬 같은 게 아닐까 추측되었다.

“그러니 조심하도록.”

‘지금까지 봐주고 있던 거군.’

그렇게 생각하자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젠장.

지금만 해도 상대하기 버거울 정도였는데, 그게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있었던 거라니.

‘쉽지 않겠군.’

당장 나만 해도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을 때와, 사용했을 때의 수준이 넘사벽으로 차이가 났다.

사용하지 않으면 사인방, 카이로시아, 모용악, 고건하에게도 질 정도.

하지만 스킬을 쓰면 마음먹고 그 일곱 명을 죽이는 데 5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때였다.

띠링!

[<섬마천사殲魔天使의 권능>에 의해 일시적으로 마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상태창을 보는 순간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마력을 사용할 수가 없어······?

“그럼, 다시 가겠다.”

그와 동시에 쇄도해 들어오는 피넛엘의 검.

나는 그녀의 공격을 막아내며 최대한 뒤로 빠졌다.

살면서 처음으로 겪는 마력 봉인.

그렇기에 일단 현재 상태부터 점검해야 했다.

‘특전들은 상관없고. 천둥의 숨결도 체력 소모로 유지되는 거라 괜찮아.’

하나하나 따져 보니, 평소 잘 쓰지 않는 침묵의 망토와 뇌신 스킬을 제외하면 크게 변하는 건 없었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크게 손해를 보는 거나 다름없었지만.

챙! 채챙! 챙! 챙!

‘그것만이 아니었군.’

마력이 담긴 피넛엘의 검에 나는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부딪힐 때마다 벽력섬전 창날의 이가 나가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얼마 못 가 날이 깨져나갈 것이다.

띠링!

[<벽력>이 발동합니다.]

순간 근력이 220까지 오르며 방금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던 붉은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젠장.’

하지만 내 창은 피넛엘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민첩 스텟이 워낙 많이 차이 나다 보니, 벽력으로 증폭된 내 근력에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스텟만 놓고 본다면 확실히 이전에 상대했던 플레이어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

뭐, 닿았다고 해도 그녀의 근력이 워낙 높기에 큰 치명타를 주긴 힘들었겠지만.

‘방법이 없군.’

뇌신과 벽력섬전, 둘 다 마력에 뇌전이 깃드는 효과였다.

한마디로 마력이 없으면 뇌전 공격을 할 수 없다는 뜻.

그렇게 되는 순간부터, 장기전은 오히려 내게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남은 체력 : 29%]

지금도 천둥의 숨결로 인해 빠르게 체력이 닳고 있었으니까.

어떻게든 체력을 다 소진하기 전에 승부를 봐야 했다.

‘동귀어진이라도 하는 수밖에.’

나는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방법이 없다고 나 혼자 죽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내가 죽는다면 최소한 상대의 팔 한 짝이라도 가져가고 싶었다.

누가 보면 대련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나 혼자서는 안 죽어.’

그게 내가 여태껏 콜로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마음가짐이었으니까.

“흐읍!”

피넛엘이 내 창을 쳐내며 압박해 들어온다.

검 끝이 향하는 방향은 내 왼쪽 옆구리.

피넛엘에게 찔러 넣은 창을 회수한 나는 곧바로 창을 짧게 잡았다.

‘심장만 보호하면 돼.’

그리고는 피넛엘의 검을 막으려는 척하며 손목을 비틀었다.

그녀의 검을 무시한 채 가슴으로 쏘아져 나가는 창날.

“······!”

피넛엘이 눈을 치켜떴다.

‘됐어.’

지금까지 수비를 워낙 견고하게 세우고 있었기에, 설마 내가 그녀의 공격을 무시할 거란 생각을 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러자 피넛엘의 검 끝도 내 옆구리에서 심장 쪽으로 옮겨갔다.

피하고자 몸을 틀어도, 피넛엘의 검은 예민하게 반응할 것이다.

결국 심장이 찔리겠지.

‘왼팔을 줘야겠군.’

과감하게 판단한 나는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찔러 들어갔다.

그리고 왼쪽 팔을 피넛엘의 검에 가져다 댔다.

어떻게든 검의 경로를 바꾸기 위함이었다.

푹!

‘젠장.’

하지만 마력이 담긴 피넛엘의 검은 내 왼팔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찢으며 날아오고 있었다.

조금이나마 경로를 틀게 만드는 데 실패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몸을 비트는 피넛엘.

‘어딜!’

나는 그대로 손목을 비틀어, 피넛엘이 비트는 만큼 창의 궤도를 수정했다.

그렇게 서로의 심장으로 검과 창이 쏘아지려는 찰나!

“그만!”

“······?”

피넛엘의 외침에 나는 그녀의 심장을 코앞에 둔 채 멈춰서야 했다.

그녀의 검 역시 정확하게 내 심장의 바로 앞에서 정지해 있었다.

싸움이 계속되었다면 분명 피넛엘과 나, 둘 다 죽었으리라.

“고생 많았노라. 오늘 대련은 여기까지 하겠다.”

대련이 끝났다는 피넛엘의 선언에, 끊어질 듯 말 듯 팽팽하게 조여진 집중력이 한순간에 풀어지고, 온몸의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헉, 헉. 고생 많으셨습니다.”

나는 그대로 털썩 바닥에 드러누웠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정신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한순간이라도 집중력이 흐트러지면 그녀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을 만큼, 스텟의 격차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거의 반으로 잘린 왼팔과, 피부 가죽 채로 뜯겨져 나간 오른쪽 손아귀.

얼마나 집중했는지, 그 통증들이 이제서야 느껴지기 시작했다.

격렬하게 움직였던 후유증인지, 몸이 잘게 떨렸다.

“정말······ 정말 대단하구나. 그대가 잘 싸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 수준이었을 줄이야. 오히려 대련을 하며 내가 배우는 게 많았을 정도였다.”

피넛엘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린 청록색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말했다.

무척 감탄한 표정.

그녀의 상태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찢어진 한쪽 날개에선 계속해서 피가 흐르고 있었고, 허벅지와 어깨의 상처도 제법 벌어져 있었다.

‘쉽지 않았어.’

사실, 이렇게 많이 차이 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최고의 훈련법으로만 훈련했고, 포인트도 아껴뒀다가 한 번에 사용했다.

그야말로 효율적인 성장의 정석이었달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난 약자였다.

처음부터 그녀가 권능을 사용했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겠지.

그녀와의 대련을 통해 얻은 게 무척 많았다.

‘고위 리그는 최대한 천천히 올라가야겠군.’

피의 강화 특전까지 활성화 시킨다면 충분히 고위 리그에서도 통할 것이다.

스텟이 오를수록 특전을 통해 오르는 스텟의 양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니까.

하지만 피의 강화 특전을 킬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

지금 가지고 있는 스텟만으로 고위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찢기겠지.’

피넛엘과 다르게 그들은 처음부터 스킬을 사용할 것이다.

그리고 리그가 높아질수록 더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사실.

그들 중에는 그림자 표식급의 플래티넘 스킬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도 있을 것이고.

아마 상대도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자 한숨이 흘러나왔다.

‘언제부턴가 특전이 켜지는 걸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군.’

기초 스텟을 기준으로 생각했어야 했다.

콜로세움은 게임과 다르게.

한 번 죽으면 끝인 곳이었으니까.

‘다음에는 피넛엘에게 처음부터 권능을 키고 싸워달라고 부탁해야겠어.’

뭐, 그녀가 앞으로도 대련을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정도 숨을 돌린 나는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어느새 내게 존재했던 상처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피넛엘의 상태도 처음처럼 회복된 상태였고.

이걸로 내가 얻은 피드백 정리는 끝.

이제는 피넛엘의 조언을 들을 차례였다.

“혹시 보완할 점이나 고쳐야 할 점이 있다면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내 물음에 피넛엘이 고개를 저었다.

“나로서는 그대의 단점을 찾을 수가 없었다. 스텟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불구하고 수비가 견고하니 뚫고 들어갈 수가 없더구나.”

“······.”

“기본기가 뛰어난 것도 대단했지만 내가 특히 놀랐던 건, 그대가 수 싸움에 능통하고, 스타일이 변화무쌍하다는 점이었다. 거기다 움직임도 창의적이고, 스킬도 까다로워 혁명 경기에서 테루오미라는 플레이어가 압도적으로 밀렸던 게 이해가 될 정도였다. 나도 애를 먹을 정도였으니. 아마 비슷한 스텟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 중에선 그대의 창을 받아내는 상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생각지 못한 극찬이었다.

피넛엘은 나와의 전투가 무척 감명 깊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제 무엇이 가장 큰 장점이었는지라도 알려주시겠습니까.”

“음, 장점이라······. 스킬도 까다로웠고, 그대의 창술도 매서웠지만 내 기준에서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스타일이 가장 큰 문제였다. 그나마 내가 스텟이라도 높았기에 뚫고 들어갈 시도라도 가능했지, 그게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피넛엘이 꼽은 내 가장 큰 장점은 초감각이었다.

상대의 스타일을 빠르게 파악하고, 한발 먼저 패턴을 바꾸기 위해서는 감각적인 반사 신경이 필수였으니까.

초감각은 공간 전체를 읽어내는 능력.

내가 한 템포 빠르게 스타일을 바꿔가며 카운터를 칠 수 있던 것은 모두 초감각 덕분이었다.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내 보는 눈이 부족한 탓이겠지.”

피넛엘의 말에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련해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혹시 앞으로도 꾸준히 대련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음. 그대에게 도움이 된다면야 언제든지. 물론 지금처럼 비밀로 해야겠지만 말이다.”

‘도움이 되고말고.’

지금 상황에서 나보다 스텟이 한참 높은 상대와 싸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그것도 죽음이라는 리스크 없이.

오늘도 이렇게 대련을 펼치는 것 하나만으로 얼마나 많은 피드백을 얻었던가.

“그럼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는 진심을 담아 그녀에게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 한동안은 그녀가 고생 좀 하게 될 테니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나는 일과 시간엔 팀원들과 대련을 하며 그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고, 늦은 밤엔 피넛엘과의 대련을 통해 실전 감각을 계속해서 쌓아나갔다.

“카이로시아님! 뒤쪽 공간부터!”

【핏빛 여명의 칼날!】

서걱!

“오! 형들! 드디어 제가 우진이형의 옷깃을 갈랐어요!”

콰지지지지직!

“아악! 항복! 항복!”

어느덧 징계를 먹은 지 3개월째.

매일같이 굴려댔더니, 팀원들의 실력이 쭉쭉 상승해 나갔다.

이제 웬만한 공격들은 모두 막아낼 정도.

물론 팀원들의 실력만 늘어난 것은 아니었다.

“음. 대련을 하면 할수록 상대하기가 버거워지는 구나. 이젠 시작부터 권능을 사용하지 않으면 내가 그대에게 질 정도다.”

“오늘 대련도 감사드립니다.”

“그대도 애썼다. 온 종일 플레이어들을 가르치고, 밤에는 나와 대련까지 하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들어가 쉬거라.”

나 또한 피넛엘과 대련을 펼치며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버티기에도 급급했다면, 이젠 간간이 매서운 반격까지 넣을 정도로 발전한 것이다.

거기다 그녀와의 대련 덕분에 나보다 스텟이 높은 상대와 싸울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메커니즘을 정립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어지간히 스텟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이상, 어이없게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쿠 훌린이냐, 라그나 로드브로크냐. 그동안의 논쟁에 종지부를 찍다!

―이제는 명실상부 상위 리그의 최강자가 된 쿠 훌린. 더 이상 그의 적수가 없다.

―쿠 훌린의 아성에 도전한 라그나 로드브로크. 결국 쿠 훌린의 매서운 창을 넘지 못하다.

방으로 돌아와, 오랜만에 커뮤니티로 들어가니 온통 쿠 훌린의 얘기로 가득했다.

티르너노그의 네임드인 쿠 훌린과 미드가르드의 네임드, 라그나 로드브로크가 최근에 전투를 펼친 모양이었다.

그 게시글들을 읽으니, 나도 모르게 팔에 힘이 들어갔다.

이제 나도 충분히 강해졌기에, 녀석과 한번 겨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세려나.’

사실 나는 쿠 훌린을 실제로 만나본 적이 없었다.

1회차 시절, 내가 상위 리그로 올라왔을 때 그는 이미 고위 리그로 승격한 후였으니까.

쿠 훌린은 고위 리그로 넘어가서도 이름을 떨친, 진짜 강자였다.

‘후. 조급해하지 말자.’

플레잉 코치로 들어오는 포인트도 늘어나고 있고, 피넛엘과의 대련을 통해 나 역시 계속해서 강해져 가고 있는 상황.

이대로만 계속한다면.

언젠간 맞부딪힐 날이 올 것이다.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커뮤니티를 닫으려 할 때였다.

‘어?’

게시글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게 있었다.

―상위 리그에서도 성계 대항전이 열리나?

< 96화. 진일보(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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