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95화 (95/205)

< 95화. 진일보(4) >

‘제법이군.’

피넛엘은 내심 감탄했다.

안우진의 근력과 민첩 스텟은 110 언저리.

그간의 경기들을 통해 그가 스텟을 상승시키는 다양한 스킬과 아이템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봤자 150을 조금 넘는 수준일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스텟은 200 초반대.

애초에 안우진이 자신을 상대로 버틴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랄까.

‘감각이 무척 예리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우진은 자신을 상대로 끈질기게 버티고 있었다.

특히 저 반사 신경.

자신이 대쉬를 하고자 상체를 조금 숙이는 순간, 안우진은 이미 두 걸음이나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어떻게 움직일지 미리 알고 행동하는 것 같은 느낌.

‘자유자재로 바꾸는 스타일도 대단하고.’

안우진의 창은 매 순간 다른 사람이 휘두르는 것 같았다.

날카롭다가도 묵직해지고, 예리하다가도 부드러워진다.

창을 쳐내고 공간을 만들어,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야 하는 피넛엘의 입장에선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알 수가 없을 정도.

‘저 뇌전도 문제야.’

창을 맞댈 때마다, 뇌전으로 이루어진 마나가 자신의 내부로 침투해 들어온다.

그렇다고 찔러 들어오는 창을 쳐내지 않을 수도 없고.

한마디로 안우진과 싸우는 동안엔 이 따끔한 통증을 계속해서 안고 가야 한다는 것.

피넛엘도 마력을 이용해 내부로 들어오는 안우진의 마력을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그저 통증을 조금 완화시킬 뿐.

직접 무기를 맞대고 싸워보니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굉장히 까다로워.’

전 경기에서 안우진과 비교되었던 플레이어······ 테루오미라고 했던가?

그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공격 하나하나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 밖에서 휘둘러져 오고, 막아내도 데미지를 입으며, 어떻게든 이 상황을 벗어나려 해도 놔주질 않는다.

아마 하위 넘버링 경기를 뛰는 상위 플레이어들은, 안우진을 상대로 큰 벽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어떻게 뚫고 들어가야 하는지 보이지가 않을 정도였으니.

‘압도적인 스텟으로 밀어붙이는 방법밖에 없겠군.’

분석을 마친 피넛엘은 그때부터 힘으로 안우진의 창을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이미 그의 실력은 흠잡을 곳이 없었다.

‘압도적 강자를 상대론 그런 기교들은 통하지 않는다는 걸 이번 기회에 알려줄 필요가 있겠어.’

그렇기에 현재 피넛엘이 안우진에게 해줄 수 있는 건 두 가지 뿐이었다.

압도적 강자와의 전투 경험과.

‘패배가 한 번도 없었던 안우진에게 패배를 경험시켜주는 것.’

챙! 콰지지직!

전력으로 창을 쳐내자, 안우진의 팔이 기형적으로 꺾여나갔다.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 싸울 때는 나올 수 없는, 힘으로 찍어 눌러 공간을 확보한 피넛엘은 곧바로 안우진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지금까지는 좁혀지지 않던 거리가, 순식간에 검이 닿을 만큼 좁혀졌다.

그러자 나타나는 수많은 빈틈.

‘대련이 끝나면 어디에 빈틈이 있었는지 알려줘야겠어.’

자신의 목적은 안우진을 쓰러트리는 게 아닌, 성장을 돕는 것.

힘으로 찍어 눌렀을 때 틈이 벌어지는 포인트들을 체크한 피넛엘이 곧장 검을 찔러 넣었다.

서걱!

“뭐······!”

순간, 왼쪽 어깨가 불에 데인 듯 화끈했다.

자신이 품으로 파고들자 창을 짧게 잡은 안우진이 오히려 대쉬해 들어오며 자신의 어깨에 상처를 입히고 빠져나간 것이다.

다시 안우진과의 거리가 벌어진 피넛엘은 힐끗 자신의 어깨를 살폈다.

견갑과 흉갑 사이의 작은 틈으로 시뻘건 핏물이 똑, 똑 떨어지고 있었다.

‘방금 움직임은 대체 뭐지?’

피넛엘은 안우진과 대치하며 방금 전 그의 움직임을 되새겨 보았다.

창을 쳐내자마자 안우진이 자신의 왼쪽 방향으로 움직였고.

검을 찔러 넣는 순간 그가 역으로 대쉬해 들어오며, 상대적으로 허점이 많은 자신의 어깨를 공략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우연일까. 아님 의도한 걸까.’

그래서 더 아리송했다.

의도한 것 치고는 움직임이 너무 빨랐고, 우연이라기엔 너무 치명적이었으니까.

피넛엘은 검을 치켜세웠다.

잘 모르겠다면.

‘다시 한번 확인해보는 수밖에.’

피넛엘은 또다시 안우진의 창을 쳐내며 그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서걱!

그러자 이번엔 왼쪽 허벅지 쪽에서 붉은 선혈이 생겨났다.

“······!”

순간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의도한 행동이었어.’

지금까지 안우진은.

일부러 허점을 드러내며 자신이 들어오길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피넛엘의 움직임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분명 없는 공간을 힘으로 찢어가며 만들어 냈는데.

그곳 또한 자신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였던 상황.

‘어디로 파고들어야 하는 거지?’

그걸 깨닫자, 안우진에게 파고들 방법이 사라졌다.

드러난 허점이 자신을 유인하는 함정인지 아닌지, 피넛엘로선 알 수가 없었으니까.

슬슬 검을 쥐고 있는 오른팔이 저릿저릿해 왔다.

초반, 안우진의 실력을 본다고 뇌전에 너무 오랫동안 무방비로 당한 여파였다.

거기다 왼쪽 어깨와 허벅지의 상처까지.

‘하.’

피넛엘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괴물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수준이었을 줄이야.

챙! 채챙! 콰지직! 챙! 챙!

피넛엘이 먼저 달려들지 못하니, 그때부터 전투가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안우진이 마음 놓고 자신을 두들기기 시작한 것이다.

‘빈틈!’

중간중간 너무나 매력적인 허점들이 보였지만, 피넛엘은 몸을 움찔할 뿐 감히 파고들 수가 없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은 허점을 만들어서 공략해도 자신이 손해를 볼 정도였는데, 저렇게 훤히 보이는 빈틈을 안우진이 그냥 보여줬을 리 없을 테니까.

분명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리라.

‘흠잡을 곳이 없네.’

피넛엘은 인정하기로 했다.

애초의 목적은 더 높은 스텟의 플레이어와 싸우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었는데.

안우진은 이미 자신이 알려줄 필요도 없을 정도로 완성되어 있었다.

펄럭!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겠어.’

네 쌍의 날개가 펴지자, 피넛엘의 몸이 순식간에 하늘로 날아올랐다.

플레이어와 싸우는 법을 안우진은 이미 마스터한 상태.

이제부터는 날개 달린 존재와 싸우는 법을 알려줄 생각이었다.

“······?”

무아지경으로 창을 휘두르던 안우진은, 그녀가 하늘로 날아오른 뒤부터 그저 자신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위로 올라온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창을 던지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생각하거라, 그대여. 날개가 달린 존재와 싸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늘은 날아다니는 존재들이 언제든 쉴 수 있는 피난처.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면 언제든 이곳으로 올라오면 된다.

그렇기에 안우진이 자신을 쓰러트리려면, 하늘로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야 했다.

‘이것도 미리 경험시켜 주는 게 좋겠지.’

순간 날개를 오므린 피넛엘이 빠른 속도로 활강했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액!

속력이 어찌나 빠른지, 바람이 터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그녀는 그 속도 그대로 안우진에게 달려들어 차징 공격을 때려 넣었다.

콰아아아앙!

엄청난 속도, 그리고 마력이 깃든 검이 바닥에 꽂히자 굉음과 함께 땅이 파헤쳐졌다.

“미친······!”

그녀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몸을 날린 안우진이 저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을 정도로 엄청난 위력.

그녀는 그대로 다시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언젠가는 안우진도 날개가 달린 존재들과 싸워야 할 순간이 있을 터.

‘제대로 느껴 보거라.’

창공을 날아다니는 존재의 무서움을 똑똑히 각인시켜줄 생각이었다.

쐐애애애애액! 콰아앙! 펄럭! 펄럭! 쐐애애애애액! 콰아아아앙!

그때부터 다시 일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피넛엘이 활강 후 차징 공격을 넣으면, 안우진은 피하기 바빴던 것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안우진은 절대로 조급해하지 않았다.

함부로 자신의 공격을 받아내는 대신, 끊임없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장기전으로 가는 게 자신한테 유리하다는 걸 알고 있군.’

잠시 공격을 멈춘 피넛엘은 공중에 뜬 채로 안우진에게 알려줄 피드백들을 정리했다.

이대로라면 체력이 먼저 떨어지는 쪽이 불리하다.

안우진이 지금 제법 지쳐 보이긴 하지만, 이런 전투가 지속되면 결국엔 자신이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다.

몸을 던져 한 번만 공격을 피하면 되는 안우진과 달리, 그녀는 날아오르고, 차징 공격을 넣는다.

당연히 피넛엘의 체력 소모가 더 심할 수밖에 없었다.

‘반사 신경 덕분에 차징 공격은 앞으로도 잘 대처할 수 있겠어.’

피넛엘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건 바로.

날아다니는 상태로 근접전을 펼치는 것.

자신이 하늘을 날게 된 순간, 안우진이 커버해야 하는 범위는 정면에서 머리 위까지 늘어나게 되었다.

아무리 그가 철벽의 수비를 자랑해도, 익숙하지 않은 머리 위까지 방어해내긴 쉽지 않을 것이다.

펄럭! 펄럭!

챙! 채챙! 챙! 챙! 콰지지직!

네 쌍의 거대 날개가 먼지를 일으키고, 검과 창이 맞부딪힐 때마다 스파크가 튀었다.

위에서 밑으로 공격을 퍼붓고 있는데도, 안우진은 침착하게 잘 막아내고 있었다.

‘공중전에 대한 경험도 있는 것인가? 아니면 그저 감각이 좋은 것인가?’

그러면서 공격 중간중간, 묘한 눈빛으로 자신의 날개를 바라보았다.

날개부터 처리하고자 하는 모양이었다.

‘날개부터 공략하는 건 좋지 않은 방법이지.’

피넛엘은 곧장 안우진의 전략을 꿰뚫어 보았다.

아니,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한 생각이었다.

날개로 인해 생긴 이점을 없애고자 한다면, 누구나 날개부터 처리하고자 할 테니까.

하지만 날아다니는 존재들 또한 그런 상황을 수없이 많이 겪어봤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날개를 보호할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사실.

챙! 챙! 챙! 챙! 채챙!

“흐읍!”

한동안 기합 소리와 서로의 무기가 부딪치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너무 신중한데.’

안우진은 절대로 무리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하게 기회가 생기길 기다리며 수비에 전념할 뿐.

점점 줄어가는 체력 때문에 조급해할 법 한데도 불구하고.

‘과감해야 할 때는 좀 더 확실하게 움직이라고 얘기해줘야겠군.’

장기전으로 갈수록 결국 그녀 쪽으로 승부의 추가 기울어지리라.

챙! 채챙! 챙!

한동안 계속해서 밀어붙이니, 안우진이 기를 쓰고 발악했다.

어떻게든 기울어진 전세를 바꾸기 위해 처절하게 창을 휘둘렀다.

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그러기엔 안우진은 이미 너무 많은 걸 손해 봤으니까.

“······!”

피넛엘의 검을 막던 안우진이 순간 휘청했다.

그의 동공이 빠르게 확장되었다.

놀랐을 때 나타나는 생체 반응.

‘결국 이렇게 끝나는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피넛엘이 순간적으로 안우진에게 파고들었다.

말로 설명해 주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겪어보는 것이 더 확실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

뭐야.

어디 갔지?

‘설마······!’

피넛엘이 순간 빠르게 등을 돌렸다.

그러자 자신의 뒤에서 창을 휘두르고 있는 안우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온몸이 쭈뼛했다.

확실한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그것마저도 함정이었던 것이다.

‘스킬!’

안우진은 너무 신중해서 타이밍을 놓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더 확실한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

그 결과로, 지금 그녀는 완벽하게 궁지에 몰려 있었다.

피넛엘은 과감하게 판단했다.

검으로 창을 쳐내는 것은 이미 늦은 상황.

급소 부위만이라도 막는다.

어떻게든 치명상을 피해야 했다.

서걱!

소름 끼치는 피륙음과 함께, 왼쪽 어깨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펄럭이던 네 개의 날개가 잘려버렸기에, 피넛엘은 고꾸라지듯 바닥으로 착지해야 했다.

‘처음부터 목적이 그거였나······!’

애초에 안우진은 자신이 급소 부위만 막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그래서 그쪽으로는 공격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날개를 노린 것이다.

‘하. 어이가 없군.’

분명 천사와 싸우는 것이 처음일 텐데도 불구하고.

그는 이미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안우진에게는 처음부터 가르침이란 것이 필요 없었던 것이다.

‘정말 대단해.’

안우진의 눈엔 흔들림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부릅뜬 눈동자에서 아주 사소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겠다는 집념이 느껴졌다.

고작 대련일 뿐인데도, 죽기 살기로 임하고 있다는 뜻.

안우진은 정말 말 그대로, 본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이용해 싸우고 있었다.

“내가 알려줄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래서 더욱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면 실력. 노력이면 노력. 집념이면 집념.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부턴 정말 조심해야 할 것이다.”

팜에서는 카리스마와 강함, 완벽한 자기 관리로 플레이어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 정신적 지주이자.

경기장에선 상대방에게 투사 같은 모습으로 악몽을 선사한다.

이 대단한 플레이어에게, 애초에 자신이 알려줄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지금부터는 권능을 사용할 것이니.”

강자와의 싸움이라는 경험.

그것 하나 뿐.

“이것도 상대해 보도록.”

[<섬마천사殲魔天使의 권능>을 활성화 합니다.]

그래서 피넛엘은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그게 안우진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이었으니까.

이제부터 진짜 제대로 된 싸움이 될 것이다.

* * *

띠링!

[<섬마천사殲魔天使의 권능>에 의해 일시적으로 마력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 95화. 진일보(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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