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94화 (94/205)

< 93화. 진일보(3) >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성과가 드러나는 훈련 커리큘럼과 다르게, 장비 대여와 시너지 좋은 스킬의 무상 분배는 금방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냈다.

80%를 웃돌던 생존율이 90% 위로 올라온 것이다.

물론, 오른 건 생존율만이 아니었다.

―어메이징 팀 투지! 블러드나이트 239에 참가한 모든 플레이어들이 승리를 챙겨가다!

―요즘 하위 리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고 있는 팀 투지. 생존율이 무려 91.7%. 역대 2위의 생존율을 자랑하던 팀 불꽃의 79.8%보다 무려 11.9%나 높은 수치!

―보고도 믿기지 않을 정도의 활약. 어떻게 저게 가능한 걸까? 팀 투지의 모든 것!

└와 진짜 미쳤다.. 생존율 91퍼센트가 나올 수 있는 숫자였구나..

└ㅋㅋㅋㅋ 우리 팀 생존율이 얼마였더라.. 너무 암울해서 안 본 지 한참 됐는뎈ㅋㅋㅋㅋ

└어이구 빙신들아 ㅋㅋ 니들도 많이 뽑아서 쓸만한 애들만 경기에 내보내 봨ㅋㅋㅋ 저 정도는 쉬움 ㅎ

└ㅋㅋㅋㅋ 역대 1위 기록이 쉽다고?

└응 방구석 여포 들어가. 2위부터 10위까지 고작 3프로 차이 나는데, 2위랑 1위가 12프로나 차이남 ㅋㅋㅋㅋㅋ 조금만 생각이 있다면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지 ㅋㅋㅋㅋ

└쉽다고 얘기할 거면 인증하고 까라 그럼 ㅇㅈ해줌

└ㅂㅅ이네 ㅋㅋㅋ 그럼 쓸만한 애들만 던지고, 나머지는 팜에 썩혀 두냐? 더미로 안 던짐?

└그러고 보니까 팀 투지에서 더미로 던지는 거 한 번도 못 봄;; 쟤넨 진짜 플레이어를 ㅈㄴ 잘 키운다는 뜻임..

└와 진짜 존나 궁금하다 ㅠㅠ 도대체 어떻게 키우길래 저게 가능한 거지? 훈련 매뉴얼 공유 좀 해줘라 ㅠㅠ

└생존율에 가려져 있어서 그렇지 승률도 엄청 높음. 거의 30프로에 육박하던데.. 세 명 나오면 한 명은 승리를 챙겨간다는 뜻임 ㅎㄷㄷ

경기에서 활약하는 플레이어의 숫자도 엄청나게 늘어난 것이다.

그 말은 한마디로.

‘기본급도 빠르게 높아지고, 승리 수당까지 챙긴다는 거지.’

물론, 내가 특수 대련장에서 다양한 무기의 상대법과 스타일에 따른 공략법을 가르쳐 준 것도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뭐, 어쨌든.

덕분에 내게 들어오는 포인트도 단기간에 엄청나게 상승했다.

저번 달에 들어온 포인트가 5,271 포인트.

그런데 이번 달엔······.

[남은 포인트 : 19,732 P]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게 882,934 포인트.

거기서 스텟을 올리는 데 878,000 포인트를 사용했다.

그리고 저번 달에 들어온 5,271 포인트를 제외하면.

‘7,527 포인트나 들어왔어.’

고작 한 달 만에 42%나 성장한 것이었다.

물론 장비와 스킬이 전력을 즉시 올려주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이만한 성장율을 보이긴 힘들겠지만.

‘조금 있으면 6기수 신입들을 받을 차례지.’

며칠 전 경기에서 죽은 5명을 제외하면, 현재 팀 투지의 팜엔 259명의 플레이어가 있다.

그런데 6기수로 뽑을 플레이어의 숫자는 대략 950명.

단숨에 소속 플레이어의 숫자가 천 단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초기 교육에 어느 정도 시간이 들어가긴 하겠지만.

‘6기수까지 활약을 펼치기 시작하면 포인트가 어마어마하겠군.’

벌써부터 그날이 기다려졌다.

그렇게 한동안 대련장에서 살다시피 하며 2기수부터 5기수까지 골고루 갈아버리고 있을 때였다.

‘쯧.’

나는 2기수 사인방, 카이로시아, 모용악, 그리고 고건하까지 일곱 명을 동시에 상대하면서도 답답함을 느꼈다.

녀석들이 빠르게 성장해가는 건 좋은데, 문제는 내가 너무 강해졌다는 데에 있었다.

이제는 저주셋을 끼고도 저 일곱을 상대로 별로 어렵지 않게 상대할 수 있다 보니, 정작 내가 대련에서 얻는 게 없었다.

‘다른 대련 방법이 없을까.’

“카이로시아님! 못 도망가게 뒤쪽으로 불의 장벽을!”

끄덕.

“어어! 돌파에 뚫렸어요! 제이스형, 커버 좀!”

“으윽, 나도 뚫렸어!”

“아, 안 돼!”

서걱!

오죽했으면 저들을 상대로 싸우는 와중에도 더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할 정도였다.

내 돌파를 저지하는 주창범과 모용악, 제이스를 가볍게 뚫어낸 나는 원거리 딜러인 카이로시아와 고건하를 단숨에 베어버리곤, 남은 이들을 서서히 정리해 나갔다.

“와, 우진이형.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아예 상대도 안 되네요.”

자신들이 철통같이 세워 둔 저지선을 내가 너무 가볍게 뚫어버리다 보니, 주창범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두 수고했습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형. 오늘도 대련해주셔서 감사해요.”

“가르침 감사합니다, 안우진님.”

“안우진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너무나 허무하게 끝난 대련.

모두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여준 나는 특수 대련장을 나섰다.

‘다시 스텟을 올리기 위한 단련이라도 시작해야 하나.’

이렇게 마의 구간을 한참 뛰어넘는 스텟을 가져본 게 처음이다 보니, 성장이 멈춘 것 같은 이 기분이 너무나 찜찜했다.

대련을 한다고 해도 설렁설렁하게 되니, 내 성장 자체에는 큰 의미가 없는 것 같고.

그렇게 고민을 하며 집무실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안우진님?”

“아, 아세리안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벤치에 앉아 햇살을 맞으며 어깨를 톡, 톡 두드리고 있던 아세리안이 나를 보며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피식 웃은 나는 그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가면을 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고민을 하고 있는 게 티 났던 모양.

나는 아세리안에게 솔직하게 얘기하기로 했다.

“성장이 멈춘 것 같아 요즘 좀 답답해서요. 좋은 방법이 없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마의 구간을 넘어서 그러시군요. 그래도 여전히 엄청 바쁘게 움직이시잖아요? 매일 수백 명이랑 대련도 하시고.”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대련을 하고 있긴 한데, 스텟이 너무 높아지니까 저도 모르게 쉬엄쉬엄하게 되더군요. 이건 대련이 아닙니다.”

“아······.”

“물론 알고는 있습니다. 이런 일을 저만 겪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손 놓고 있을 순 없으니까요.”

내 말에 아세리안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결국 나 스스로 이겨내야 할 문제라는 것을, 그녀 또한 알고 있을 것이다.

“분명 잘 이겨내실 거예요.”

그래서 아세리안은 언제나와 같이 날 응원해줄 뿐이었다.

그날 밤.

똑똑-

자려고 침대에 누운 나는 누군가의 노크 소리에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누구지?’

나, 그리고 2기수 사인방, 이세연, 카이로시아, 모용악, 고건하까지.

현재 내가 사용하는 숙소엔 9명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팀에 소속된 플레이어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건물을 여러 개로 나눈 것이다.

거기다 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으므로, 이 시간에 노크할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서둘러 협탁에 내려 둔 가면을 쓴 나는 방 문을 열었다.

철컥-

“······피넛엘님?”

“음. 자려고 준비 중이었던 모양이군. 잠시 들어가도 되겠는가?”

오밤중 내 방을 찾은 것은 다름 아닌, 한참 전에 퇴근했어야 할 피넛엘이었다.

“예, 들어오시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활짝 열고 그녀를 안내했다.

침대와 간단한 티테이블, 그리고 의자 하나를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는 10평 정도 크기의 방 안.

나는 그녀에게 의자를 내어 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늦은 시간에 미안하군.”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내 물음에 피넛엘이 한쪽 다리를 꼬으며 입을 열었다.

“그대가 요즘 마땅한 대련 상대가 없어서 답답해하고 있다고 아세리안님께서 그러시더군. 맞는가?”

“······예.”

“음, 그대만 괜찮다면 내가 대련 상대 역할을 해줄 수도 있다.”

피넛엘의 말에 나는 눈을 치켜떴다.

그녀가······ 나와 대련을 해줄 수도 있다고?

“그게 정말이십니까?”

“그렇다.”

“괜찮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제가 오히려 부탁드리고 싶은 일입니다.”

사실, 그녀가 얼마나 강한지는 나도 알지 못했다.

‘악마의 눈.’

띠링!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피넛엘]

[<권능:능천사의 눈>이 <악마의 눈>을 방어합니다.]

악마의 눈을 통해 그녀의 정보를 확인하면.

그녀의 능력이 악마의 눈을 방어했다고 떴기 때문이다.

하위 리그 성계 대항전에서 고주몽이 사용한 신궁의 눈을 악마의 눈이 방어했던 것처럼.

다만 피넛엘은 내가 악마의 눈을 통해 그녀의 스텟을 스캔하려 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았다.

피넛엘이 아무런 반응도 없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강할까?’

한 쌍의 날개를 가진 9급 천사만 해도 어지간한 상위 플레이어보다 강할 것이다.

하급 악마인 헬리퍼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피넛엘은 무려 네 쌍이나 날개를 가진 6급 능천사能天使.

거의 고위 플레이어들과 비슷하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강하지 않을까 예상만 할 뿐이었다.

“그럼 준비해서 나오거라. 나는 특수 대련장으로 가 있겠다.”

“······지금 대련하잔 말씀이십니까?”

현재 시각은 밤 10시 52분.

내일 훈련을 위해 모두들 잠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나도 슬슬 잘 생각이었고.

“우리의 대련은 비밀로 진행되어야 하니, 어쩔 수 없구나.”

그런데 이어지는 피넛엘의 말에 나는 그녀가 어째서 이 시간에 날 찾아왔는지 알 수 있었다.

천사.

말 그대로 우리보다 상위 차원의 존재다.

그런 존재가 일개 플레이어와 대련했다는 소문이 퍼져 봤자 좋을 게 없을 테니까.

“아뇨. 이렇게라도 대련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바로 준비해서 가도록 하죠.”

그렇게 해서 나와 피넛엘의 대련이 성사되었다.

[맵 : 폐허 원형 투기장]

[3초 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후우.”

나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곳곳이 무너져 폐허가 된 건물, 경기장을 감싸고 있는 10미터 높이의 외벽.

그리고 잔잔하게 불어오는 옅은 바람까지.

그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느껴졌다.

[2초 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이 느낌이지.’

싸늘한 긴장감이 온몸을 잠식했다.

주창범이나 카이로시아를 상대했을 땐 느낄 수 없었던.

마치 경기를 뛰기 직전인 것 같은 이 팽팽하게 조여진 감각이.

너무 좋았다.

[1초 후 대련이 시작됩니다.]

맞은편에는 얇은 흉갑과 각반을 착용한 피넛엘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와 똑같은 복장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검을 썼었군.’

피넛엘이 팜으로 들어온 지 어느덧 38주.

무려 9개월이란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처음 봤다.

그런데······.

‘기세부터가 다르네.’

검을 쥐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형용할 수 없는 위압감이 흘러나왔다.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대련 시작!]

그녀가 나보다 한참 더 강하다는 것을.

‘전력으로.’

탐색전 따윈 필요 없었다.

잘못하면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으니까.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직!

“흐읍!”

나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닥을 박찼다.

여유롭고, 고고하게 스타팅 포인트에 서 있는 피넛엘.

나는 그녀에게, 벽력섬전을 힘껏 내리쳤다.

채애애앵!

‘윽!’

분명 내가 돌진해 들어갔음에도, 엄청난 반발력이 손끝으로 전해졌다.

피넛엘은 고작 한 걸음 밀려났을 뿐.

[근력 : 165(+5)(+50)] [민첩 : 165(+5)(+50)] [체력 : 145(+5)(+32)]

[정신 : 134(+5)(+30)] [지력 : 44(+10)] [마력 : 109(+5)(+24)]

‘스텟 차이가 엄청나군.’

피의 강화 특전이 활성화 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 근력과 민첩 스텟은 165.

혁명 미션을 수행할 때 당시, 모든 특전을 다 켠 것보다도 30 포인트나 높은 수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넛엘한테 밀려난 것이다.

[6급 능천사 ‘피넛엘’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호오, 정말 대단하구나.”

피넛엘은 본인이 밀려났다는 것만으로도 놀라 보였지만.

한 번의 격돌로 내 스텟이 마냥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피넛엘이, 이내 먼저 공격을 펼치며 달려들었다.

챙! 챙! 챙! 챙! 챙!

‘팔이 저릿저릿하네.’

그녀의 검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내 몸이 한 움큼씩 뒤로 밀려 나갔다.

‘뭔가 이상해.’

하지만 나는 그녀와의 싸움이 생각보다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텟의 차이는 절망적이었다.

못해도 근력과 민첩에서 40 스텟 이상 차이 나는 수준.

챙! 챙! 챙!

그녀의 검을 막아낼 때마다 창의 각도가 기형적으로 틀어지고.

“어딜!”

아무리 뒷걸음질 치며 거리를 벌려 보려고 해도, 그녀는 금세 따라붙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막기가 쉬운 거지?

만약 테루오미와 스텟이 이렇게 많이 차이 났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을 테니까.

‘할 만한데?’

나는 그녀가 대쉬해 올 때마다 창을 찔러 넣으며 들어오지 못하도록 견제했다.

피넛엘이 검으로 내 공격을 쳐내며 다가오면 슬쩍 외곽으로 빗겨 돌아, 공간과 거리를 확보했다.

그리고 또다시 공격.

피넛엘은 쳐낸 뒤 파고 들어온다.

그런 일들이 반복되자 나는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가짐부터가 달랐던 거야.’

매일같이 생존을 위해 콜로세움에서 피를 뿌리며 싸워야 했던 우리와 달리.

피넛엘은 그저 플레이어들을 가르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다 보니, 애초에 누군가와 싸울 일 자체가 별로 없었던 것.

‘이 정도면 싸워볼 만 하겠어.’

그때부터 나는 전략을 바꿔, 그녀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 94화. 진일보(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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