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화. 혁명(7) >
에베렛의 신성 마법에 맞춰, 나는 역천자와 최강의 성계 특전을 해제했다.
그리고 언제 벽력이 터질지 모르니, 천둥의 숨결도 비활성화 시켰다.
이제 내게 남아 있는 특전은.
초반의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활성화 시킨 피의 강화, 단 하나뿐.
‘제대로 해야겠군.’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상위리그]
[근력 : 104(+5)(+23)] [민첩 : 106(+5)(+23)] [체력 : 108(+5)(+24)]
[정신 : 134(+5)(+30)] [지력 : 44(+10)] [마력 : 109(+5)(+24)]
특전을 끈 현재 내 스텟은, 테루오미보다도 낮은 수준.
그런 상황에서 키아라와 고치우까지 상대해야 하기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
애초에 관객들에게 연극인 것처럼 느껴지지 않도록, 팀원들에게도 진심으로 할 것을 주문했고.
나는 곧장 스텝을 밟으며, 테루오미와 거리를 벌리는 데 주력했다.
“어딜······헉!”
그리고는 빈틈이 보일 때마다 빠르게 파고들며 허점을 공략했다.
인앤아웃으로 스타일을 바꾼 것이다.
“젠장!”
그때부터 전투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내가 계속해서 공격하고, 테루오미는 수비만 하는 상황이 그려진 것이다.
그러자 테루오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한가득 묻어나왔다.
스텟에서 자신이 더 높은데도 불구하고, 거의 일방적으로 내가 몰아붙이고 있는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질 않는 것 같았다.
리치에서부터 워낙 차이가 많이 나기에, 테루오미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쉭! 쉭! 쉭! 쉭! 쉭!
그 사이, 고치우가 쏜 화살들이 날아왔지만, 그것도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테루오미에겐 초감각이 없지.’
나와 다르게 테루오미는 등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의 방향을 알 수가 없으니까.
테루오미에게 위협이 되지 않는 방향에서밖에 날아올 수 없기 때문에, 예측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과광!
[마력 상쇄율 : 50%]
쏟아지는 키아라의 마법 폭격도 마찬가지.
띠링!
[<청천벽력>이 발동합니다.]
꽈아아아아아앙!
섬광이 번뜩! 하더니, 하늘에서 수많은 벼락이 내 주위로 떨어졌다.
“으윽!”
뇌전이 사방을 휩쓸고, 청천벽력에 맞은 테루오미가 몸을 움찔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벽력과 다르게 목숨을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움찔하는 테루오미를 돌파한 나는 말뚝 딜을 하고 있는 고치우와 키아라에게 쇄도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바닥을 박차고 뒤로 이동하면서 내게 화살과 마법들을 쏟아냈다.
팅! 팅! 팅! 팅! 콰과과과광!
두 사람이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며, 내게 쫓기는 쪽에서는 피하는 데 주력하고, 반대쪽에선 내가 따라갈 수 없도록 속도를 줄이는 데 주력해 나갔다.
날아오는 화살은 쳐내고, 마법은 부수며 따라다니길 한참.
‘제법이군.’
두 사람을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테루오미와 가렌이 내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마법과 화살 세례를 통해, 나를 몰이한 것이었다.
“악마여! 내 검을 받아라!”
그리고 등 뒤에서 날아오는 가렌의 검.
‘조심.’
순간 나는 최대한 힘 조절을 하며 가렌의 검을 받아내기 시작했다.
가렌은 미션을 완수하기 위해선, 절대로 죽어선 안 되는 존재.
거기다 그를 영웅으로 만들어야 하기에, 전투에서 뺄 수도 없다.
그래서 내가 최대한 집중하며 힘 조절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죽엇!”
가렌에게 발이 묶인 사이, 테루오미도 합세하며 나를 밀어붙였다.
전력을 다하면서 동시에, 힘 조절을 해야 하는.
그런 총체적 난국 속에서도 나는 집중력을 잃지 않으며 녀석들을 맞상대해 나갔다.
【포근한 생명의 가호!】
거기다 날아오는 에베렛의 신성 마법까지.
그러다 보니, 필연적으로 내가 조금씩 밀릴 수밖에 없었다.
‘쉽지 않네.’
확실히 스텟이 낮아지니까,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챙! 채채챙! 챙!
거기다, 이들 중에서 그 누구도 죽여선 안 되는 상황.
그저 수비를 견고하게 하고, 기회가 생길 때마다 한 명씩 떼어놓는 방법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제발······!”
라스그리드의 성벽 위에서 내가 쩔쩔매는 걸 본, 수많은 백성들이 함성을 쏟아냈다.
“생명의 신께서 보내주신 전사들과, 가렌 남작님이 악마를 몰아붙이고 있어!”
“저 무시무시한 악마가······! 생명의 신이시여! 제발, 저희를 구원해 주세요.”
인류의 멸망이라는, 절망 가득한 상황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이 피어난 것이다.
‘됐어.’
다행히 우리의 전투를 보는 그 누구도, 연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뭐, 애초에 서로가 진심으로 무기를 겨눈 채 싸우고 있는 것이었으니, 알아차리기 쉽지 않았을 테지만.
거기다 내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악마의 이미지도 있었다 보니, 스토리텔링 적으로도 완벽했다.
이제 남은 건.
이 클라이맥스를 최대한 끌어, 여운을 깊이 새기는 것.
“모두들 이럴 게 아니라 생명의 신께 기도를 드립시다!”
“생명의 신, 이둔이시여!”
“저 악마만 물리쳐 주신다면, 평생 이둔님을 섬기며 살겠습니다!”
“이둔이시여!”
“저희를 불쌍히 여기사, 굽어살펴 주시옵소서!”
테루오미가 견제를 위해 내가 내지른 창을 피하며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스강!
간신히 테루오미의 공격을 막자마자 뒤쪽에서 가렌 남작이 검을 찔러 넣으며 짓쳐들어왔다.
스텝으로 거리를 벌리며 가렌의 공격을 피하자, 귀신같이 내가 피하는 곳으로 마법과 화살이 날아왔다.
쐐애애애애애애액!
‘젠장.’
피하는 것은 불가능.
그렇다면 피해라도 최대한 줄이는 수밖에.
푹! 푹! 푹! 푹!
나는 급소가 아닌 곳으로 날아오는 화살은 맞아주고, 그 외로는 쳐내거나 부수면서 갇혀 있던 공간을 빠져나왔다.
‘얼마 안 남았어.’
그리고는 마지막 남은 힘을 불태우기 시작했다.
└와.. 진짜 ㅈㄴ 잘싸운다..
└다른 애들은 진심으로 렌 죽이려고 싸우는 거 같은데 ㅋㅋㅋ
└저렇게 많은 페널티를 갖고 싸우는데도 버티네.. 렌은 테루오미 밀어붙일 때도 일부러 안 죽이고, 가렌한테도 힘 조절하면서 싸우는 중 ㄷㄷ
└ㅋㅋㅋㅋㅋㅋ 윗댓글 동감 ㅋㅋㅋ 가렌한테 힘 조절 하기 전까지는 진짜로 서로 죽이려고 싸우는 중인 걸로 알았음 ㅋㅋㅋㅋ
그렇게 한참 동안 버티는 데 중점을 둔 채 전투를 펼칠 때였다.
서걱!
가렌의 검에 내 왼팔이 허공을 날았다.
테루오미에게 공간을 차단당하고, 그사이 날아온 고치우의 화살과 키아라의 마법을 막느라 가렌의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지금!’
나는 키아라를 보며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엄청난 마법 폭격이 일대를 휩쓸었다.
살상, 혹은 타격용이 아닌 소리만 크고 먼지만 요란한 광역 마법이었다.
“처, 처치했나!”
“제발······!”
“이둔이시여!”
‘끝났군.’
어마어마하게 피어난 먼지 속에서, 가렌과 테루오미가 내게 고생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이, 나는 가렌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먼지가 걷어지면, 관객들은 가렌이 날 쓰러트린 것처럼 보일 것이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악마를 쓰러트렸다!”
“가렌 남작, 만세! 생명 신의 전사님들 만세!”
내가 쓰러진 걸 본 백성들이 어마어마한 함성을 내질렀다.
그 함성만으로도 땅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
순간 닭살이 쫙, 돋았다.
‘해냈어.’
나는 무릎을 꿇은 상태에서 상체를 앞으로 고꾸라트렸다.
그리고.
띠링!
[발리노르인 ‘질베스터’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며, 가렌 남작 저택의 접객실이 눈에 들어왔다.
마계에 역소환된 척 연출하기 위해 그림자 이동을 사용한 것이다.
아마, 내가 사라지는 타이밍에 맞춰 키아라가, 내 몸에서 검은 연기가 흩날리도록 뒤처리를 했을 것이다.
“수고 많으셨······ 헉, 팔이······!”
“괜찮습니다.”
질베스터가 내 잘린 왼팔을 보고 당황하자, 나는 그에게 진정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리고는 바닥에 아무렇게나 철퍼덕 누웠다.
체력적 압박, 그리고 정신적 피로감이 한 번에 쏟아졌다.
[생명의 신을 믿는 신도의 비율 : 1.7%]
0.1%에 불과했던 비율이 순식간에 1.7%까지 상승했다.
그리고 그 상승은 실시간으로 계속해서 높아져 가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난 속도로.
‘내가 해야 할 일은 끝났어.’
지금쯤이면 아마, 가렌 남작이 검을 번쩍 들며 악마를 처치했다는 선언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제 이 소문이 대륙 곳곳으로 퍼져 나갈 때까지 기다리는 일과.
가렌을 황제로 세우는, 신성 제국을 만드는 일만 남았다.
나는 인벤토리에서 회복의 물약을 꺼내 단숨에 비운 뒤, 질베스터를 향해 입을 열었다.
“이 접객실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해주시겠습니까.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무래도 눈을 좀 붙여야 할 것 같았다.
괜히 누군가가 나를 침대로 옮기려고 하거나, 내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잠결에 휘두른 창에 맞을 수도 있기에, 나는 질베스터에게 경고의 말을 남겼다.
“예, 옛!”
물론 질베스터는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것 같지만.
당황하며 접객실을 나서는 질베스터를 뒤로하고.
‘피곤하군.’
나는 눈을 감았다.
“대륙 전역에 악마를 토벌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다이애나 교국은 가렌 남작님에게 세상을 구한 영웅이라고 칭하고 있다고 합니다.”
1주일 후.
나는 가렌 남작 저택의 접객실에서 한쪽 팔로 푸쉬업을 하며 질레스터가 구해온 정보들을 듣고 있었다.
악마의 인상착의가 퍼져나간 탓에 이곳에서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가렌 남작과 만난 첫날, 성벽 위에서 날 봤던 병사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 모두에게 키아라가 해당 사실을 말하거나, 작성하거나, 누구에게 알리면 사망하게 되는, 죽음의 서약을 맺게 했으니까.
“기존의 라 제국 영토 내에 있던 모든 귀족들이 가렌 남작님을 지지한다는 뜻을 밝혔다고 합니다. 또한, 생명의 신을 국교로 하는, 새로운 제국을 세우는 것에도 찬성했습니다.”
“······.”
“그래서 먼저, 에베렛 사제님이 교황의 자리에 오르고, 그 뒤에 가렌 남작님이 황위에 등극하는 대관식을 치르기로 했습니다.”
[승리 조건2 : 라 제국을 멸망시키고 황제와 교황이 함께 통치하는 신성 제국을 세워라]
[생명의 신을 믿는 신도의 비율 : 92.3%]
푸쉬업 2천 개를 끝낸 나는,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질베스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관식은 언제 열린다고 합니까.”
“내일 입니다. 라 제국이 멸망하고, 나라 전체가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지지하는 귀족들만 모여서 간략하게 치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그림자 이동으로 그라센에 온 이후, 다른 파티원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모두들 가렌 남작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생명 신이 보내준 전사들이라는 타이틀로 얼굴마담을 자처한 까닭이었다.
‘완전히 끝났군.’
생명의 신을 믿는 신도의 비율은 92퍼센트를 넘어갔다.
내일, 가렌이 황위에 오르는 순간 미션이 자동으로 성공 처리 될 것이다.
그래서 상태창을 보며, 혹시 모를 변수가 있나 체크하고 있을 때였다.
띠링!
[승리 조건1 : 안타레스에 있는 황제와 흑마법사를 처치하라]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승리 조건2 : 라 제국을 멸망시키고 황제와 교황이 함께 통치하는 신성 제국을 세워라]
[생명의 신을 믿는 신도의 비율 : 92.3%]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승리 조건3 : 앞으로 1,000 명 미만으로 살해하라]
[살해한 생명체 수 : 692 명]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익숙한 알림음과 함께, 미션의 조건 내용들이 주르륵 떴다.
순간 나는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었다.
승급전 경기에서도 이런 상황이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혁명> 미션을 완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스토리 미션 <혁명>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기본급 x 1 의 승리 수당이 지급됩니다.]
‘게임 메이커가 자체적으로 판단을 내린 모양이군.’
별다른 변수가 없어, 내일 가렌이 황위에 오르고, 새로운 신성 제국이 탄생하는 게 확정되었다고 판단되어 경기를 종료하기로 한 것 같았다.
[공헌도에 따른 보너스를 책정합니다.]
[공헌도]
[렌 : 80%] [고치우 : 8%] [키아라 : 7%] [테루오미 : 5%]
[스토리 미션의 공헌도 1위를 기록했습니다.]
[공헌도 1위를 달성하셨기 때문에 50,000 포인트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공헌도 1위를 달성하셨기 때문에 추가로 x 2 의 포인트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상위리그-하이블러드나이트 118의 두 번째 경기를 종료합니다.]
[파이트 머니로 240,800 P 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103,200 P 차감)]
[기본급 +35,000 P / 승리 수당 +35,000 P / 추가 보너스 +100,000 P / 서브 미션 수당 +174,000 P / 수수료 -103,200 P]
[다음 경기부터는 기본급을 50,000 P 로 책정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종료 콜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번 경기에서도 정말 많은 걸 얻었다.
황궁을 털어 4천만 골드를 추가로 얻었고.
피의 흡수 덕분에 엄청나게 많은 스텟을 올릴 수 있었다.
이제는 기초 스텟이 80을 육박하는 상황.
그리고 무엇보다.
‘스텟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어.’
정말 오래 기다려 왔던.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 91화. 혁명(7)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