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85화 (85/205)

< 85화. 혁명(1) >

‘저게······ 왜 여기에 있는 거지?’

가면의 조각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했다.

여기에 있을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왜냐하면.

‘분명 파란 가면 조각은······ 마계에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라이언의 트레이너 엔젤이 커뮤니티에 올렸던 게시글에는, 저 조각이 마계에 있다고 나와 있었다.

그래서 가장 마지막에나 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팜으로 돌아가면 회귀했을 때 적어놓은 노트를 다시 펼쳐봐야 할 것 같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나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가면 조각을 주워들었다.

가까이에서 보니 확신할 수 있었다.

블라디미르 가면에 합성하는 아이템이 확실했다.

‘아이템 합성.’

띠링!

[<가면:블라디미르의 유희> 와 <소모 아이템:가면의 파편(파랑)> 을 합성하시겠습니까?]

[한번 합성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Yes(선택) / No]

띠링!

[<가면:블라디미르의 유희> 와 <소모 아이템:가면의 파편(파랑)> 의 합성을 성공했습니다!]

[<가면:블라디미르의 희열> 을 획득합니다!]

[<가면:블라디미르의 희열>]

[고위 악마, 블라디미르 공작이 착용하던 가면이다. 오랜 시간 동안 착용하면서 주인의 능력 일부가 깃들어 있다.]

[착용 시 <피의 회복>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착용 시 <악마의 눈>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착용 시 <피의 강화>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착용 시 <피의 흡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

[<피의 회복> ― 생명체를 처치할 때마다 체력이 1% 회복된다.]

[<악마의 눈> ― 대상의 상태창을 일부 엿볼 수 있다. 상대의 거짓말을 알아챌 수 있다. 밤에도 대낮처럼 환하게 볼 수 있다.]

[<피의 강화> ― 생명체를 처치할 때마다 모든 스텟이 일시적으로 1% 상승한다. 3분 이내에 다른 생명체를 처치하지 못하면 스텟 상승이 초기화되며, 최대 30%까지 상승한다.]

[<피의 흡수> ― 생명체를 처치할 때마다 극소량의 스텟을 흡수한다. 한 가지 스텟만 흡수할 수 있으며, 흡수된 스텟은 영구적으로 유지된다.]

[등급 : 준신화]

상태창을 보는 순간, 내 몸이 잘게 떨렸다.

‘생명체를 죽일 때마다 영구적으로 스텟이 상승한다고?’

정말로?

아무리 스텟이 높아도?

서둘러 심호흡하며 들뜨려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시험해 보는 건 골드랑 아이템을 챙기고 나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일단 골드랑 아이템부터.’

당장이라도 나가서 병사들을 죽여, 피의 흡수 능력을 써보고 싶지만, 이곳에 온 이유를 잊어선 안 된다.

나는 부지런히 비밀 창고에 쌓여 있는 골드와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챙겼다.

비밀 창고답게 제법 높은 등급의 아이템들이 제법 많았지만, 아이템 정보를 확인할 생각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엔 이미, 피의 흡수를 사용해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기에, 어차피 눈에 들어오지 않을 테니까.

창고에서 3천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거금과 각종 아이템들을 챙긴 나는 곧바로 교황청을 빠져나갔다.

띠링!

[관객들이, 당신이 교황청 내부에서 무엇을 했는지 궁금해 합니다.]

“헉! 기사님, 이교도가 교황청에서 나옵니다!”

“이놈! 이교도 주제에 감히 성역을 더럽히다니!”

‘피의 흡수를 사용할 제물들!’

그러자 애타게 찾고 있었던, 죽여야 할 생명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곧장 달려들어, 녀석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체력이 회복되고, 피의 강화 스텍이 쌓였다는 알림창과 함께 한 가지 창이 더 나타났다.

[<피의 흡수> 능력으로 극소량의 민첩 스텟을 흡수합니다.]

바로 미량의 민첩 스텟을 흡수했다는 알림창이었다.

‘얼마나 오르는지는 안 나오는군.’

‘극소량의’ 라는 말로 미루어 보건데, 아무래도 시스템 창이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낮은 양인 모양이었다.

‘그래도 상관없어.’

어차피 이곳엔 내가 죽여야 할 생명체가.

한가득 쌓여 있었으니까.

미친 듯이 죽여대다 보면.

대충 얼마나 오르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서걱!

[승리 조건2 : 악마를 소환한 어둠의 교단 소속 교인들을 모조리 처치하라]

[남은 교인 수 : 136,667 명]

내성과 외성을 돌아다니며 닥치는 대로 창을 휘두르며, 피의 흡수 능력을 얻기 전보다 5만 킬 정도 더 했을 때였다.

띠링!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드디어 기다리던 알림창이 등장했다.

그동안 0.0001 단위로 오르고 있던 스텟이 결국 1을 채우며 스텟이 상승한 것이다.

물론 지력 스텟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

내게 쓸모없는 스텟이라 굳이 카운팅하지 않았을 뿐.

지력은 계속 오르고 있었다는 것과, 근민체 중에서 상대적으로 스텟이 낮은 근력이 가장 먼저 오른 걸로 보아,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스텟이 높을수록 피의 흡수로 올리는 것도 어려워지나 보군.’

그래도 상관없었다.

5만 킬에 1 포인트만으로도.

내겐 너무나 값지고 소중했으니까.

거기다가.

‘아직도 죽여야 할 녀석들은 차고도 넘쳐.’

이 정도라면 이번 경기에서 제법 많은 스텟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신이시여······.”

내가 벼락을 뿌리며 대규모 학살을 자행하자, 적들의 눈에도 서서히 두려움이라는 감정이 깃들기 시작했다.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오늘 자신들은 이곳에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들이 믿는 신이란 존재는, 그들을 구원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콰과과과과과과광!

거리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굉음과 함께 엄청난 먼지가 피워 올랐다.

다른 쪽에서도 병장기가 부딪히고, 비명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던 파티원들이 다시 사냥을 재개한 것 같았다.

‘뺏길 수 없지.’

벽력섬전을 휘두르는 내 팔에 더욱 힘이 들어갔다.

체력이 거의 무한대로 회복되는 이상.

“어째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내리시나이까······.”

부지런히 움직이면 충분히 많은 킬 수를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서걱!

└ㅋㅋㅋㅋㅋㅋㅋ 눈에 불을 켜고 죽여대넼ㅋㅋㅋㅋ 저 정도면 사실 쟤가 악마 아니냐ㅋㅋㅋㅋ

└악마가 렌의 모습으로 변신한 건지 체크해 봐야 할듯ㄷㄷ

└ㅋㅋㅋㅋ 뭔 개소리야 미션 자체가 에덴에 있는 생명체 멸절인뎈ㅋ 근데 아무것도 모르고 보면 쫌 그런 면도 있는거 같기도 하닼ㅋㅋㅋㅋㅋㅋㅋ

└아까 왜 렌이 교황청 들어갔을 때 맵 안보임? 원래 플레이어 들어가면 안 보이는 곳도 보여져야 하는거 아님?

└하위 리그 게임 메이커 엿먹으라고 펼쳐놓은 장막 아직 회수 안된듯 ㅇㅇ;;

└그런거 치곤 아까 전에 하위 플레이어들 들어갔을 땐 보였잖아?

└???? 뭐임? 그 사이 새로운 장막을 쳤나? 이미 악마도 죽여서 그럴 이유는 없을텐데.

‘후. 완전 대박인데.’

에덴을 가득 채웠던 비명 소리도 어느새 사그라들었고.

밤하늘에 고고하게 떠 있던 보름달도 슬슬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거의 밤새도록 학살을 하며 돌아다닌 것이다.

[승리 조건2 : 악마를 소환한 어둠의 교단 소속 교인들을 모조리 처치하라]

[남은 교인 수 : 1,405 명]

[킬 수 현황]

[1위. ‘렌’ 176,662킬]

[2위. ‘키아라’ 39,762킬]

[3위. ‘고치우’ 34,012킬]

[4위. ‘테루오미’ 29,607킬]

파랑 가면 조각을 획득하고 내가 처치한 생명체의 숫자는 15만 명 정도.

그동안 오른 스텟은 근력 2, 민첩 1, 체력 1, 지력 17, 마력 1 포인트.

지력을 제외하고 스텟이 5 포인트나 상승한 것이다.

‘그것도 고작 하룻밤 만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성과였다.

물론 이렇게 대규모 학살을 펼칠 수 있는 기회가 앞으로는 별로 없을 것이긴 하지만.

“쿨럭. 신이시여. 당신의 종을 구원해주소서······.”

“으······ 내, 내 다리······.”

“엄마······. 엄마······.”

이제는 팔이나 다리가 잘리거나, 치명상을 입은 상태에서 숨이 끊기길 기다리는 녀석들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이쯤 되자 두 부류로 나뉘어 있었다.

죽기 직전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신을 찾는 녀석들.

그리고, 신의 부질없음을 느끼고.

“어, 엄마······.”

자신의 어머니를 찾는 녀석들.

쩍! 쩍!

나는 돌아다니며 살아 있는 녀석들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죽이라는 미션이 떨어진 이상.

광신도든, 그게 아니든.

죽일 수밖에 없었다.

신음과 울부짖는 소리가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결국 끝끝내 에덴 성에 서 있는 존재는 나와 파티원들 밖에 남지 않았다.

띠링!

[남은 교인 수 : 0 명]

[승리 조건1 : 에덴에 소환된 악마를 처치하라]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승리 조건2 : 악마를 소환한 어둠의 교단 소속 교인들을 모조리 처치하라]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기본급 x 1 의 승리 수당이 지급됩니다.]

귓가로 들려오는 경기 종료 콜.

그러자 맥이 탁, 풀리며 긴장을 놓을 수 있었다.

‘끝났군.’

상위 리그 미션치고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지만, 밤새도록 돌아다니며 학살을 한 탓에 정신적 피로감이 상당했다.

[하급 악마 사냥에 성공하셨습니다.]

[보너스로 20,000 P 를 지급합니다.]

[킬 수에 따른 보너스를 책정합니다.]

[킬 수 현황 ― 1위. ‘렌’ 177,392 킬]

[압도적 킬 수를 기록하셨습니다.]

[추가로 x 3 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긴급 미션 <어둠의 태동> 경기를 종료합니다.]

[파이트 머니로 147,000 P 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63,000 P 차감)]

[기본급 +25,000 P / 승리 수당 +25,000 P / 추가 보너스 +60,000 P / 서브 미션 수당 +100,000 P / 수수료 -63,000 P]

[다음 경기부터는 기본급을 35,000 P 로 책정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처음 겪어 본 서킷 브레이커.

예상치 못하게 가면 조각을 얻었고.

‘덕분에 스텟을 엄청 많이 올렸지.’

루디악이 걸어 준 서브 미션 덕분에 포인트도 굉장히 많이 벌었다.

거기다 무려 3천만 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거금과 각종 아이템들까지.

이번 경기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다.

‘나쁘지 않았어.’

이제 남은 건.

띠링!

[하위 리그 플레이어들은 각자의 팜으로 돌아갑니다.]

[서킷 브레이커가 해제되었습니다.]

[원래 진행되던 <킹 메이커> 미션을 계속해서 진행합니다.]

‘돌아가는 일만 남았······ 뭐라고?’

눈앞에 뜬 알림 창에 나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하위 리그 플레이어들만······ 팜으로 보내준다고?

이대로 미션이 끝난 게 아니었나?

나는 곧바로 그림자 표식의 목록창을 열었다.

거기엔, 내가 등록해 둔 3황자의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한마디로 사망했다는 뜻.

그것도 고작 반나절 만에.

‘승리 조건에 3황자가 사망하면 안 되는 게 들어있지 않나?’

그럼 다시 미션이 시작되자마자 실패한 거나 다름이 없었다.

띠링!

[<킹 메이커> 미션의 핵심 인물이었던 3황자가 라 제국의 소드 마스터들에 의해 사망했습니다.]

[안티푸스가 1황자에 의해 함락되었습니다.]

[<킹 메이커> 미션이 <혁명> 미션으로 변경됩니다.]

[장기 스토리 미션입니다.]

[이번에 라 제국의 황제가 된 ‘루카스 프란츠 알브레히트 슈테판 폰 라’ 의 배후에는 악마를 소환하려는 흑마법사가 있습니다. 황제와 흑마법사를 처단하고, 라 제국을 멸망시켜, ‘생명의 신’ 을 믿는 신성 제국으로 만드세요.]

[승리 조건1 : 안타레스에 있는 황제와 흑마법사를 처치하라]

[승리 조건2 : 라 제국을 멸망시키고 황제와 교황이 함께 통치하는 신성 제국을 세워라]

[신성 제국의 황제는 ‘가렌 레온하르트 폰 그라센’ 남작입니다. ― 그라센에 있습니다. 하얀빛이 흘러나옵니다.]

[생명의 교단 교황은 ‘에베렛’ 입니다. ― 그라센에 있습니다. 자색빛이 흘러나옵니다.]

[여러분을 ‘생명의 신’이 보낸 전사로 소개해야 합니다.]

[황제 후보와, 교황 후보, 둘 중 한 명이라도 사망하면 미션에 실패합니다.]

[새로운 신성 제국 국민의 60% 이상이 ‘생명의 신’을 믿게 하지 못하면 미션에 실패합니다.]

“······.”

새롭게 내려온 미션을 본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미션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상승한 것이다.

계승권자 중 한 사람을 황제로 만드는 것과, 아예 새로운 제국을 세우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키아라와 고치우, 테루오미도 알림창을 봤는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도착한 키아라가 당황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렌님, 새로운 미션 내용 보셨나요? 미션 내용이······ 너무 말도 안 되는데요?”

“예. 봤습니다. 쉽지 않겠더군요.”

“쉽지 않다뇨! 거의 불가능한 미션이잖아요!”

그사이 도착한 고치우와 테루오미도 키아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내려온 미션이 취소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군요. 그렇지만, 서킷 브레이커 같은 이벤트가 흔하지 않다는 걸 아시지 않습니까. 내려온 이상 수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수행하기 어려울 뿐이지, 위험한 미션은 아니지 않습니까. 하나씩 소거해가며 진행하다 보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을 겁니다.”

“하나씩 소거해가며 진행한다······?”

“예. 일단 남작과 교황 될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 시작해보죠.”

내 말에 파티원들이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들 경기가 끝났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고 있다가, 새로운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는 말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 그라센으로 가야겠네요. 그라센이 어디더라······?”

“3황자가 보여준 지도에서는 남서쪽 끝에 있었습니다.”

내 말에 모두들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북동쪽 끝에 있는 에덴에서.

라 제국을 횡단해, 남서쪽 끝까지 가야 한다는 뜻이었으니까.

* * *

라 제국의 서남부 끝, 그라센 영지.

그곳에서는 전투가 한창이었다.

“남작님! 맹스크 자작군을 막기 위해 출전한 병력이 발레타에서 전멸했습니다!”

“총대장, 벤야민 경이 전사했다고 합니다!”

“출전한 지 하루 만에 3천 병력이 전멸했다는 말인가? 도대체 어떻게!”

“전령으로 온 병사가 맹스크 자작군 사이에서 일리아스 백작님을 봤다고 했습니다!”

기사의 말에 가렌 남작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었다.

맹스크 자작이 자신들에게 처들어온 것도.

그리고 소드 마스터인 일리아스 백작이 맹스크 자작군 사이에서 등장한 것도.

‘도대체 왜?’

그것도 같은 1황자 파벌인 자신에게 공격해 들어오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일단 성 내에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남자들을 소집하라! 로이크! 그대는 지금 당장 수성전을 펼칠 준비를 하라. 바위, 고철, 하다못해 농기구까지! 전부 다 쓸어오거라! 어서!”

“알겠습······.”

“남작님! 맹스크 자작군이 도착했습니다!”

“벌써! 젠장. 로이크! 당장 뛰어가게!”

“예, 옛!”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병사들을 뒤로하고, 남작은 서둘러 갑옷을 챙겨 입고 성벽으로 달려갔다.

이미 성 밖으로는.

뿌우――

척! 척! 척! 척! 척! 척!

1만이라는 대병력이 열을 맞춰 진군해 오더니, 뿔피리가 울리자 일사불란하게 멈춰 서고 있었다.

‘젠장······.’

그라센의 병력은 고작 3천.

무기를 들 수 있는 모든 남자들까지 합쳐야 1만을 간신히 넘길 것이다.

그와 반면에 적들은 전문적으로 싸우는 병사의 숫자만 1만.

거기다 소드 마스터라는 전술 병기까지 포함된 상황.

가렌 남작은 머리를 부여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까맣게 깔린 적 병력들 사이에서, 은빛 갑주를 입은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가렌 남작! 거기 있소!

그는 자신들을 쳐들어온 적 병력의 주인, 맹스크 자작이었다.

가렌은 성벽 앞으로 나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함께 현 황제 폐하를 모시던 사람들 아니오! 어찌하여 나를!”

―폐하께선, 제국의 국교로 녹스교를 생각하고 계시오! 하지만 경은 개종 할 생각이 없다고 했지 않소!

“아니 뭔! 그딴 말 같잖은 이유로!”

맹스크 자작의 말에 가렌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고작 그런 이유로 쳐들어온다고?

그것도 오랫동안 1황자를 모셔 온 자신에게?

‘전쟁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

라 제국은 따로 국교를 두지 않은 채 본인이 모시고 싶은 신을 섬겼다.

그런 의미에서, 모시는 신이 다르다고 전쟁을 벌인다?

지금까지 가렌이 살아온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개, 개종하겠소! 그러니 이만 병력을 물려 주시오!”

가렌의 가문은 대대로 생명의 신을 모셔 왔다.

하지만, 이대로 멸문당할 순 없는 일.

일단 개종하겠다고 해놓고, 몰래 모시면 그만이었다.

소나기는 피해 가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니까.

―이미 늦었소! 나는 폐하의 명을 받아, 귀하에게 신의 징벌을 내리고자 온 몸! 귀하가 어찌하여 징벌을 받는지 알려줄 뿐, 돌아갈 수 없소!

하지만 이어지는 맹스크 자작의 말에 가렌은 절망해야 했다.

아무래도.

본보기로 찍힌 모양이었다.

확실하게 한 명을 찍어눌러 놔야, 이후에 생길 반발들을 없앨 수 있을 테니까.

‘생명의 신이시여······.’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황까지 온 것 같았다.

이렇게 된 이상 가렌은 최선을 다해 저항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은 함락되고, 그라센의 백성들은 모조리 도륙당하겠지.

저들에겐 소드 마스터라는 존재가 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한 명이라도 더 길동무로 데려가겠어.’

가렌이 이를 악물었다.

―전군! 진군하라!

뿌우우우―

적 병력들이 빠르게 진격해 들어왔다.

그 최전방에서는, 소드 마스터가 앞장서며 성문을 부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다.

‘생명의 신이시여······!’

그때였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뒤에서 적 습격이다!”

갑자기 적들에게 떨어지는 마법 폭격들.

쉴새 없이 쏟아지는 화살비.

그리고.

“으악!”

꽈아아아아앙! 꽈아아아아앙!

갑자기 적 진영 한복판에서 나타난 가면을 쓴 괴인.

마른하늘에 다섯 줄기의 벼락이 떨어졌다.

“누, 누구냐!”

성벽 위에서 수성전을 지휘하려던 가렌 남작이 우뚝, 멈춰 섰다.

빛줄기가 뿜어져 나오고.

“끄아악!”

뿌연 붉은 안개가 전장을 잠식해 나가며.

서걱!

공기 중에 흩날리는 시뻘건 피들로 범벅이 된 괴인의 모습은.

“아, 악마다!”

악마의 재림이었다.

< 85화. 혁명(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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