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77화 (77/205)

< 77화. 닮은 두 사람(1) >

경기장을 빠져나오니, 평소처럼 파티가 준비되어 있었다.

“고생 많으셨어요, 안우진님!”

“예.”

이전처럼 성대한 규모는 아니었다.

요 근래 팀 투지에서 경기에 참가하는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난 덕분에 거의 매주 파티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금주령이 풀려 자유롭게 술을 먹을 수 있게 된 덕분에 더 이상 파티가 절실하지도 않은 상황.

이제는 파티라기보단 매주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목을 다지는 자리 정도의 인식으로 자리잡힌 상태였다.

‘나쁘지 않네.’

모두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술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

분위기도 잘 형성됐고, 최근 경기에 나간 플레이어들의 성적도 나쁘지 않다.

이제는 진짜로 내가 할 일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안우진님.”

“아, 네.”

그때,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세리안이 내게 술을 권했다.

“상위 리그 데뷔전을 치른 소감은 어떠신가요?”

“음. 상위 플레이어들부턴 기본기라든가, 수비적인 측면에선 어느 정도 완성돼 있다 보니까 쉽지 않더군요.”

“그게 하위 리그와 상위 리그의 가장 큰 차이점이죠. 그래도 저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웃기고 있네.

나올 때만 해도 분명 사색이 되어 있었으면서.

내가 피식 웃으며 그녀를 응시하자, 아세리안이 빙긋 웃었다.

“안우진님만큼 기본기와 수비가 탄탄한 플레이어를 본 적이 없거든요. 다들 일정 실력이 되면 더 난이도가 어려운 스킬들을 연마하는데, 안우진님은 매일같이 기본기 훈련을 하고 계시잖아요.”

음.

알고 있었구나.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초 공사가 튼튼해야, 높은 건물을 세울 수 있는 법이니까.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하루 1시간에서 2시간씩 기초적인 찌르기와 베기, 막기 훈련을 병행하고 있었다.

“앞으로 추가해야 할 훈련 같은 게 있을까요?”

아세리안의 물음에 잠시 고민한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건 내가 1회차 때 온갖 시행착오를 거친 후 만든 시스템이었으니까.

“지금처럼만 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내가 기초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기에 2기수 사인방도 나를 따라 하고 있었다.

그건 그 밑의 기수들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기에 지금처럼만 유지된다면, 충분할 것이다.

띠링!

[상위리그-하이블러드나이트112 경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관객들이 당신을 ‘퍼포먼스 오브 더 하이블러드’로 선정하셨습니다!]

[‘퍼포먼스 오브 더 하이블러드’ 보너스로 35,000 P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15,000 P 차감)]

‘퍼오블에?’

순간 상태창을 보고 눈을 치켜떴다.

1, 2회차를 통틀어 상위 리그에서는 처음으로 선정된 것이었다.

보너스는 무려 5만 포인트.

확실히 하위 리그와는 차원이 다른 보너스였다.

“어머! 안우진님! 정말 축하드려요!”

내가 퍼오블에 선정되었음을 본, 아세리안이 축하를 건네왔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상위 리그 첫 번째.

쉽진 않았지만.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온 것 같았다.

―상위 리그 데뷔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치다!

―첫 경기부터 퍼포먼스 오브 더 하이블러드 선정!

―얘가 진짜 네임드라고? 얘가 진짜 네임드라고!

└진짜 한편의 오케스트라를 본 것 같았음. 처음엔 조용하게 흐르다가 서서히 고조되더니 나중에 뽝!!!!!!!

└얘가 왜 유명한지 알 것 같더라. 스타 플레이어가 될 기질이 충만해 보임. 원래 필요할 때 해결해주는 게 네임드임.

└렌렌 거리길래 뭐하는 얜가 했는데, 어느 새부턴가 나도 렌렌 거리고 있음 ㅋㅋㅋㅋㅋ

└다른 팀에서 온 플레이어들과의 케미를 위해 초반에는 필요한 역할만 딱딱 해주고, 어느 정도 각이 서자마자 바로 운전대 잡고 팀원들 보스 룸으로 쾌속 안내. 보스 룸에서는 진짜 자기 실력 터트리더니, 깔끔하게 리치까지 슥삭. 얘는 롱런 가능성 100%

└비아냥거리던 신들 강제로 아닥시켰음 ㅋㅋㅋㅋ 진짜 개쩔었음.

소속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 참가하는 경기의 수도 빠르게 증가했다.

그리고 활약하는 녀석들도 많아졌다.

일단 가장 먼저 주창범.

콜로세움에 들어온 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는데, 벌써 7경기에 출전해서 5개의 승리를 챙겨 왔다.

거기다 퍼오블과 파오블까지 각각 1번씩 선정되었을 정도.

띠링!

[체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주창범이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구나.’

내가 가장 놀랐던 건, 당연히 모용악이나 고건하에게 밀릴 줄 알았던 주창범이, 오히려 녀석들을 밀어붙인다는 거였다.

그 둘과의 대련에서 승률 81%를 기록 중인 상황.

한마디로 팀 투지의 근접 물리 계열 중에선 두 번째로 강한 게 주창범이었다.

‘녀석도 충분히 상위 리그에 올라올 수도 있겠어.’

내게 제대로 배운 덕분에 기초도 탄탄하고, 수비도 좋다.

거기에 저주셋과 훈련 커리큘럼 덕분에 여전히 스텟이 빠르게 오르고 있는 중이다.

아직은 부족한 게 많지만, 지금처럼 꾸준히 해나간다면 상위 리그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띠링!

[민첩 스텟이 1 상승합니다.]

‘다른 녀석들도 잘 해주고 있고.’

제이스와 루치아노, 지그, 고건하, 모용악의 활약도 나쁘지 않았다.

주창범이 메인 이벤트에서 놀고 있다면, 사인방의 남은 세 사람은 코메인 이벤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준네임드로 들어온 고건하와 모용악도 마찬가지.

팜에 잘 녹아든 뒤로는 경기에 나갈 때마다 승리를 챙겨 오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띠링!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고작 두 경기 만에 메인 이벤트로 올라오다니.’

초특급 네임드, 카이로시아.

그녀는 두 경기에 나가 퍼오블과 파오블을 모두 따내며 승리했다.

한마디로 두 경기 모두 찢었다는 것.

‘이러다가 정말 몇 경기 안에 상위 리그로 올라오겠군.’

아직 근접 전투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다.

―요즘 팀 투지 소속 플레이어들의 활약이 대단하군요. 블러드나이트 221부터 227까지 매 경기 승리를 거두고 있네요.

―저 팀이 정말 1년밖에 안 된 신생팀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입니다. 나오는 플레이어들마다 하나같이 대단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뽑기 운이 좋은 것도 아닌 것 같네요. 소속 플레이어들이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어설픈 점이 많이 보였는데, 그 이후로 계속해서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거든요. 이건 팀의 훈련 커리큘럼이 무척 뛰어나다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죠. 이상하게도 팀 투지에서는 이적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팜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도 알려져 있지 않구요.

└투지가 진짜 애들 잘 키우긴 한가 봄. 어제 하위 리그 데뷔전 치른 투지 소속 플레이어 세 명도 보니까 엄청 잘 싸우던데.

└그래서 요즘 천사들이 팀 투지에 계속 문의 넣고 있다드라. 거기서 몇 년 구르고 나오면 경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테니까.

└거기가 렌 있는 곳 아님?

└ㅇㅇㅇㅇ 근데 걔는 원래부터 잘 싸웠···나? 초반에는 잘 모르겠네 ㅎ 하여튼 후반에는 원래 잘 싸웠음.

└하.. 씨발.. 우리팀 애들은 다 병신이던데.. 이게 다 내 탓인 걸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진짴ㅋㅋㅋ 한 천명 뽑아서 그중에 싹수 보이는 애들만 내보내는 거짘ㅋㅋㅋㅋ 설마 뽑는 애들마다 키워서 저렇게 내보내고 있겠냐? ㅉㅉ

3기수와 4기수의 활약도 도드라졌다.

물론 모두 다 생존해서 돌아오는 건 아니었다.

3기수에서 3명, 그리고 4기수에서도 7명의 플레이어가 죽었다.

죽은 3기수 플레이어의 조에 속해 있던 4기수들은 1명씩 나눠서 다른 조로 보내졌다.

그리고.

200명이 넘는 5기수 플레이어들이 새로 팜에 들어왔다.

[플레잉 코치 ‘렌’에게 270 P가 정산되었습니다.]

[플레잉 코치 ‘렌’에게 180 P가 정산되었습니다.]

[플레잉 코치 ‘렌’에게 225 P가 정산······.]

‘나쁘지 않네.’

첫 달에는 1천 포인트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플레잉 코치로 들어오는 급여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번 달에만 벌써 2,684 포인트.

첫째 달보다 무려 3배나 상승한 수치였다.

‘이대로라면 1, 2년 정도 뒤엔 한 달에 몇만 포인트씩 들어오겠어.’

띠링!

[근력 스텟이 1 상승합니다.]

“후.”

베드에 누워 벤치프레스를 하고 있던 나는 바벨을 내려놓았다.

팜의 상황은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필요도 없을 만큼 안정화됐고.

계속해서 들어올 포인트는 내게 큰 무기가 되어줄 것이다.

‘이제 남은 건.’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상위리그]

[근력 : 67] [민첩 :70] [체력 : 70]

[정신 : 99] [지력 : 16] [마력 : 83]

마의 구간에 돌입한 내 스텟을 올리는 일 뿐이었다.

스텟이 70을 넘는 순간, 그때부터는 훈련으로 올리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한 달동안 죽어라 한다고 해도 1포인트 올릴 수 있을까 말까.

그렇기에 마의 구간 이후부터는 스텟 1 포인트만으로도 큰 차이가 났다.

‘얼마 남지 않았어.’

그래도 아직까진 저주셋을 착용하고 훈련하면 미세하게나마 오르는 수준.

지금 이대로 포인트를 사용해 스텟을 92까지 올리냐.

아니면 80까지 어떻게든 끌어올린 다음에 100까지 올리느냐.

답은 정해져 있었다.

* * *

5평짜리 조그마한 방 안.

수명이 다된 형광등이 깜빡거렸다.

벽 깊숙이 스며든.

찌든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우진아. 배 안 고파?”

나를 부르는 따뜻한 목소리.

닮은 듯, 미세하게 다른 얼굴.

깡마른 몸에 다 해진 옷.

나보다 더 큰 키.

‘형······.’

형이 내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조미김이 딱 하나 남았네. 형은 그냥 맨밥만 먹어도 되니까 우진이 너 먹어.”

형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언제나 내게 양보만 하던 형.

자신의 졸업식 날에도 다른 학교 앞에 가서 꽃을 팔아.

내게 용돈을 쥐여주던.

‘바보 같은 사람.’

“응? 우진아 왜 울어? 밥 말고 다른 거 먹고 싶어? 형이 나가서 라면 사갖고 올까?”

흐릿해져 가는 눈을 서둘러 비볐다.

이까짓 눈물 따위 때문에.

형의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으니까.

나는 그저.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아니야. 라면 먹고 싶으면 말만 해. 형이 당장 나가서 사 올게.”

이 바보야.

당신 지금 라면 사러 가는 거 아니잖아.

바로 옆에 사는 같은 반 누나한테 거지소리 들어가며 구걸하러 가는 거잖아.

동생을 위해서.

‘대체 왜······.’

왜.

왜.

왜.

이런 사람을.

그렇게 허망하게 데려가야 했을까.

이렇게 천사 같은 사람을······.

‘아, 안돼!’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고 있는 형의 얼굴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제발.

제발 깨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 제발······.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목 놓아 울면서 부르짖었지만.

공허한 울림일 뿐.

“하.”

잠에서 깬 나는 내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내 뺨을 타고.

손바닥에 눈물이 툭, 툭 떨어졌다.

꿈에서나마 전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허락받지 못 할 일이었나······.

한숨을 내쉰 나는 숙소를 빠져나왔다.

띠링!

[<소모품:바카디 151>을 1,000 G 에 구입하셨습니다.]

환한 달빛이 팜을 은은하게 비치고 있었다.

저번에 혼자서 술을 마셨던 명상실의 지붕으로 올라간 나는, 내리쬐는 달빛을 맞으며 방금 구입한 양주를 꺼내 들었다.

독한 술이라도 마시지 않으면, 가슴 속에 사무친 이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끄윽.’

술을 들이켜자,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초월 리그.’

죽는 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아니, 우리 가족들을 되살려 주기만 한다면 이까짓 몸뚱이.

얼마든지 불살라 버릴 수도 있었다.

만약 왕이.

거래 조건으로 내 심장을 원했다면.

난 웃으면서 가슴을 갈라, 제단 위에 올려놓았을 것이다.

‘보고 싶다······.’

그렇게 하염없이.

달빛을 바라보며 술을 들이켜고 있을 때였다.

“어? 안우진님?”

고개를 돌려 숙소 쪽을 보니, 하얀 원피스 차림의 아세리안이 보였다.

그녀는 나를 발견하자마자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거기서 뭐 하세요?”

“잠이 안 와서요.”

내 말에 검지를 입가에 댄 아세리안이 뿅! 하고 사라지더니, 내 바로 옆에서 나타났다.

“잠이 안 오신다고, 어머. 지금 술을 드시고 계셨던 거예요?”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는 아세리안.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 꿈을 좀 꿨더니.”

“아······. 악몽을 꾸셨나 봐요.”

악몽이라······.

나는 또다시 술을 들이켰다.

술 때문에 내 온몸이 뜨거운 건지.

아니면, 그리움이라는 감정 때문에 뜨거운 건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아뇨. 좋은 꿈을 꿨습니다.”

“그럼 왜······?”

“깨기 싫을 정도로.”

나는 꾸미지 않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꿈에서 나마.

우리 형을 만난 건.

“좋은 꿈이었거든요.”

너무나 가슴 벅차고.

행복한 일이었으니까.

< 77화. 닮은 두 사람(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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