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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70화 (70/205)

< 70화. 플레잉 코치(5) >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했다.

오퍼를 안 넣는다고?

“아무리 게임 메이커라고 해도······. 관객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을 텐데요. 지금도 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는 신들이 수두룩하지 않습니까.”

“하아. 어디서부터 설명해 드려야 할지. 게임 메이커가 누군지는 아시나요?”

아세리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커뮤니티를 뒤져봐도, 게임 메이커라는 직책만 나올 뿐, 누구인지 특정해서 얘기가 나온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저, 등급이 좀 높은 신이 아닐까 추정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 상위 리그의 게임 메이커는 1급 치천사熾天使 라파엘이에요. 다섯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 대천사죠.”

“······ 그래봤자 천사 아닙니까. 아세리안님이 더 높은 것 아닌가요?”

“아뇨. 계급상으로도 저보다 높을뿐더러, 애초에 치천사들은 그런 계급의 범주를 넘어선 존재들이에요.”

아세리안의 말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 상식으로는 당연히 천사보다 신이 더 높은 존재들이었으니까.

“좀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음. 천사들이 일정 계급이 되면 신으로 승격할 수 있는 건 아시나요?”

“예.”

“4급 주천사主天使 가 되면 하급신으로 승격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3급 좌천사座天使 가 되면 중급신이, 2급 지천사智天使는 상급신으로 승격할 수 있죠. 그래서 1급 치천사는 고신과 같은 존재들이란 거예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어떤 시스템인지는 알겠습니다. 그런데 고신 위에 대신과 주신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치면 엄청 높은 계급은 아닐 텐데요.”

“이론상으론 그런데, 사실 치천사들은 주신과 거의 비슷한 예우를 받아요. 왜냐하면, 아버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시는 다섯 천사라는 상징성 때문이죠.”

“······.”

“우리에게 계속 오퍼를 넣지 않고 있는 라파엘은 그런 다섯 천사 중 한 명이구요.”

“······!”

젠장.

아세리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실수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한마디로, 주신과 일개 상위 플레이어가 힘 싸움을 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높은 존재라면 관객들의 요구사항을 무시할 수 있을 것이다.

나 하나쯤 매장시키는 거야 일도 아니겠지.

‘내가 검자루를 쥐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까 상대가 내민 검날을 쥐고 있던 상태였다.

그렇다면 아세리안의 말대로 계속해서 이렇게 뻗대고 있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고위 리그로 올라가지 못한 채 평생 상위 리그에서 썩을 수도 있는 상황.

손해를 보냐 안 보냐를 따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음. 말씀을 들어보니, 제가 거절할 수가 없는 상황이네요. 알겠습니다.”

“휴우. 현명한 선택이세요. 그럼 게임 메이커한테 성계 대항전에 참가하겠다고 전할게요.”

그제야 아세리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게 어떻게 말해야 하나 속으로 전전긍긍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쯧. 내가 너무 경기에 관한 것만 생각했군.’

앞으로는 경기 외적인 부분에서도 충분히 체크해둬야 할 것 같았다.

성계 대항전에 참석하겠다고 얘기한 이후, 나는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되었다.

“주창범씨. 요즘 표정이 안 좋네요. 무슨 일 있습니까?”

“아, 형. 요즘 제 실력이 늘질 않아서요. 스텟은 오르는데, 뭔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느낌이에요.”

“오, 아주 좋네요.”

“좋다구요?”

“네. 최상급을 코앞에 두고 있다는 뜻이니까요. 고작 9개월 만에 최상급이라니, 정말 대단합니다.”

“앗, 그렇게 생각하니까 진짜로 좋아해야 하는 상황이었네요! 감사해요, 형.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어요.”

“또 무슨 걱정이 있으면 얘기해요. 안에 담아두지 말고.”

그동안은 플레이어들의 스텟과 테크닉 등 경기에 관한 부분만 챙겼다면, 이제는 경기 외적인 부분까지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할 일이 특별하게 많아진 건 아니었다.

“모용악님. 무슨 일 있습니까?”

“아······. 제가 이곳에 적응이 덜 됐다 보니까, 평소 친하게 지내던 루치아노님께 말실수를 했습니다. 그래서 요즘엔 저를 멀리하더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루치아노씨도 모용악님이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걸 알 겁니다. 다만, 앞으로는 더 조심해줬으면 좋겠다, 라는 어필을 하고 있는 걸 테니까 며칠 동안 모용악님이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면 루치아노씨도 평소처럼 돌아올 겁니다.”

그저 내 훈련을 하면서.

뭔가 힘들어 보이는 플레이어들이 있으면 얘기를 들어주었을 뿐.

거기에 그치지 않고 나는 아세리안에게 팜에 내려진 금주령을 풀어달라고 건의했다.

“금주령을요?”

“예. 플레이어들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것 같더군요. 사소한 일에도 예민한 모습을 많이 보이네요. 사실, 인간인 이상 기계처럼 매일매일 훈련만 하면서 살 순 없으니까요.”

“음······. 스트레스 해소하기에 음주만큼 좋은 게 없죠. 근데 괜찮을까요?”

“물론 전보다 사건 사고가 많아지긴 하겠죠. 하지만 이대로 두면 더 크게 문제가 될 겁니다. 그동안 우리가 너무 편하게 플레이어들을 관리해왔다고 생각하시죠. 그리고 이젠 천사도 두 명이나 있지 않습니까.”

“하긴, 요즘 모두들 표정이 안 좋더라구요. 음, 좋아요. 금주령을 해제하도록 하죠.”

플레잉 코치를 맡고, 플레이어들을 케어하기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이다.

그들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안 그래도 경기에 나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들.

거기에 매일같이 고된 훈련을 하다 보니, 정신적으로 맛이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아세리안에게 허락을 받은 나는 모든 플레이어들을 공터로 불러 모았다.

“오늘부터는 술을 마셔도 됩니다. 이세연씨에겐 제가 미리 얘기해 두었으니, 일과가 끝난 이후로는 자유롭게 드세요.”

“우와아아아아! 술이다!”

“정말요? 정말 마셔도 됩니까?”

“하······. 살았다······.”

내 말이 끝나자마자 플레이어들은 웃음꽃이 핀 채 환호했다.

무척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그동안 다들 술을 간절하게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 차가운 얼굴로 일관하던 카이로시아까지 옅은 미소를 짓고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끝내면 안 되지.’

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순간적으로 내 몸에서 어마어마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진득한 살기가 공터를 가득 메웠다.

“마시는 건 좋습니다.”

그러자 시끌벅적하던 플레이어들이 순식간에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모두들 환호하던 자세 그대로 얼어붙었다.

“음주로 인해 사망사고나 성범죄에 관련된 일이 발생한다면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 제 이름을 걸고 맹세하죠. 그 입에서 제발 죽여 달라는 말이 나오도록 해드리겠습니다.”

“······!”

내뿜는 살기로 인해 플레이어들이 온몸을 벌벌 떨었다.

기쁨과 환희로 가득 차 있던 플레이어들의 감정을 한순간에 밑바닥으로 처박았다.

그렇기에 녀석들은 내 경고가 더 섬뜩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 정도면 경각심은 충분히 심어준 것 같고.’

싸늘하게 깔리던 살기를 거둬들인 나는 방긋, 미소 지었다.

“허억, 허억.”

그러자 플레이어들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모두 제 말을 알아들은 것 같으니, 여기까지만 하죠.”

금주령 해제는 무척 예민한 문제인 만큼, 녀석들을 들었다 놨다 함으로써 오늘 일을 확실하게 각인시켜 주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내 계획은 성공적이었다.

‘나쁘지 않군.’

지난 일주일 동안 음주로 인한 사건 사고가 단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전날 과음해서 훈련에 지장이 생기는 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성공적으로 음주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다.

“우진이 형. 오늘 술 한잔 어떠세요? 다른 형들도 같이 먹기로 했거든요.”

일과가 끝나고 저녁 시간.

주창범의 제안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아, 넵! 혹시나 마음이 바뀌면 제 방으로 오세요!”

주창범에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숙소로 향했다.

일과도 끝났겠다, 이제 방에 들어가서 쉴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흑흑······.”

누군가 소리 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지?’

소리의 진원지는 내가 카이로시아와 함께 훈련을 하는 체력 단련장 뒤쪽이었다.

조용히 다가가 보니, 카이로시아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쯧.’

자존심 강한 카이로시아 이기에, 섣불리 위로를 건넬 수도 없는 상황.

나는 그녀를 못 본 척 한 채,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는 이세연의 방 문을 노크했다.

“누구세요? 앗, 안우진님!”

“쉬고 있는데 미안합니다. 잠시 시간 괜찮으십니까?”

“아, 아뇨! 혹시 시키실 일이라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세연에게, 나는 카이로시아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이세연씨가 카이로시아님의 술친구가 되어주실 순 없을까 해서요. 무리한 부탁인 걸 알지만, 제가 마땅히 도움을 청할 만한 분이 이세연님 밖에 없더군요.”

“아······.”

“물론 불편하시면 안 하셔도 됩니다. 이건 지시가 아닌, 부탁입니다.”

내 말에 잠시 고민하던 이세연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가 지금 체력 단련실 뒤편으로 가 볼게요.”

“아, 다음날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따로 얘기해 둘 테니, 내일은 편한 시간에 출근하세요.”

플레이어들보다 더 일찍 일어나 식사와 청소 같은 일을 하는 이세연에 대한 배려였다.

“앗, 감사합니다.”

이세연이 식당에서 술을 챙겨 카이로시아에게 향하는 모습을 본 나는 근처 건물의 지붕으로 숨어들었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 엿듣고자 함은 아니었다.

그저, 압도적으로 강한 카이로시아가 이세연에게 어떤 해코지라도 할까 걱정되었을 뿐.

‘내 부탁 때문에 이세연이 피해를 보는 건 안 되지.’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우는 모습을 들킨 카이로시아가 잠시 까칠하게 나왔지만, 이내 이세연이 가져온 술을 마시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기 시작한 것이다.

그 모습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 쉽지 않네.’

마치 보모가 된 느낌.

카이로시아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네임드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울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기엔 내 갈 길이 너무 바빴으니까.

‘이렇게 여유롭게 밤하늘을 보고 있는 것도 오랜만이군.’

밤하늘 가득 뿌려지는 별빛을 보고 있자니, 문득 가족들 생각이 났다.

순간 가슴이 아릿하게 아파왔다.

‘오랜만에 한잔해야겠네.’

천장에 몸을 기댄 나는 품속에서 술 한 병을 꺼내 들었다.

이세연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챙겨온 술이었다.

‘보고 싶다.’

한 모금 들이켜자 목구멍이 불에 데인 듯 화끈했다.

1회차까지 합쳐서, 가족들의 얼굴을 보지 못한지 어느덧 11년.

‘어머니. 형.’

정말 미안해.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가족들 얼굴이.

정확하게 그려지지 않았다.

‘약해지지 말자.’

나는 곧바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럼에도 한 번 고개를 든 그리움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휙!

‘어?’

내 창을 피하는 카이로시아의 모습에 등골이 서늘했다.

내 공격이 실패했다는 건.

【사그라드는 눈꽃!】

그녀의 마법이 발동된다는 거였으니까.

‘그림자 이동.’

콰과과과과과과광!

주창범의 뒤로 그림자 이동을 사용하는 것과 동시에 엄청난 폭음이 귀를 때렸다.

뿌옇게 생겨난 먼지 위로, 카이로시아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다.

“내가 그랬죠? 이젠 이길 수 있다고.”

그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특전과 그림자 표식을 안 쓴다는 조건이었긴 하지만, 설마 날 쓰러트릴 줄이야.

내 예상보다, 카이로시아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인정합니다. 이젠 정말 못 당해 내겠네요.”

“그럼 저도 이제 경기에 출전할 수 있는 거죠?”

카이로시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데뷔전을 가진 모용악, 고건하와 달리 카이로시아는 아직까지 경기에 뛰지 못한 상태였다.

나를 이기기 전까진 출전시키지 않겠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이제 충분할 것 같군요. 물론, 앞으로도 근접 대련은 계속할 겁니다.”

사실 카이로시아가 이렇게 빨리 성장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적어도 3개월 이상은 걸릴 줄 알았는데······.

‘근접전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고작 5주 만에 내 공격을 막아낼 줄이야.’

물론, 특전을 켜면 여전히 상대도 안 될 수준이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는 하위 리그에서 경기를 치를 것이기에.

나보다 뛰어난 네임드가 아닌 이상, 그녀를 위협할 수 있는 존재는 없을 것이다.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고생 많으셨어요, 형.”

“오늘도 정말 감사합니다.”

어느새 저녁 6시.

일과를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할 시간이었다.

함께 대련했던 플레이어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남긴 나는 대련장을 나섰다.

그러자 카이로시아가 익숙한 몸짓으로 내 뒤를 따라왔다.

“요즘은 지내는 게 좀 어떻습니까.”

“똑같아요.”

“어렵거나 힘든 점은 없습니까?”

“네.”

카이로시아는 여전히 쌀쌀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벽을 세우고 있달까.

하지만 나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래도 요즘은 이세연과 친하게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고위 귀족이었던 그녀가 사용인인 이세연을 무시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잠시나마 노예의 삶을 살았기 때문인지 이세연과 죽이 척척 맞았다.

‘카이로시아가 상위 리그까지 올라오면 포인트가 제법 되겠어.’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중인 모용악과 고건하.

요즘 한참 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사인방.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을 찾은 카이로시아.

수월하게 성장하고 있는 3기수와 4기수까지.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남은 건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그런 생각을 하며 식당으로 향할 때였다.

“안우진님!”

집무실 창문으로 고개를 빼꼼 내민 아세리안이 나를 불렀다.

나는 카이로시아에게 먼저 식당으로 가라고 손짓한 후 집무실 창문 쪽으로 다가갔다.

“부르셨습니까?”

“네! 드디어 왔어요! 첫 경기 오퍼가!”

“후. 이제야 들어왔군요.”

아세리안에게 성계 대항전에 참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지 2주째.

그동안 감감무소식이었던 게임 메이커에게 오퍼가 들어온 것이다.

“네. 오래 기다리셨죠? 안 그래도 요즘 답답해하시는 것 같았는데, 다행이네요.”

“경기는 언제입니까?”

“하이블러드나이트112, 1경기에요. 유형은 팀 PvM.”

< 70화. 플레잉 코치(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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