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69화 (69/205)

< 69화. 플레잉 코치(4) >

그날 이후 고건하, 모용악, 카이로시아에 대한 교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어차피 이론적인 부분은 아세리안의 수업 때 들을 터.

나는 그들에게 스텟과 싸우는 법에 관련된 부분만 채워주면 됐다.

“여러분이 살았던 세상과 달리, 이곳에선 무한히 강해질 수 있습니다. 시스템의 보정을 받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가장 먼저 했던 훈련은 역시 근민체 단련이었다.

“저주셋을 착용하고 훈련하면 스텟이 훨씬 빠르게 오릅니다. 이걸로 여기 있는 사인방도 빠르게 강해질 수 있었죠. 물론 더 빠르고, 강하다고 해서 무조건 이기는 건 아닙니다만, 적어도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는 있죠.”

“예.”

“네.”

끄덕.

“그래서 모용악님과 고건하님은 앞으로 여기, 2기수로 들어온 플레이어들과 함께 훈련을 진행하게 될 겁니다. 주창범씨, 이 두 분을 잘 부탁합니다.”

“네, 형. 걱정하지 마세요!”

모용악과 고건하의 교육은 사인방에게 거의 맡길 생각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은 무기에 대한 기초가 잡혀 있기에 훈련 방법과 이곳의 룰 정도만 알려주고, 그 외적으론 사인방과 대련시키면서 경험을 쌓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관리한다고 한 이유는 하나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잘 녹아들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

만약 주창범이나 지그 같은 사인방의 밑으로 들여보냈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사인방은 방금 들어온 모용악과 고건하가 자기들보다 강하기에 질투심을, 그리고 두 사람은 자기들보다 약한 사람에게 선배 대우를 해줘야 하기에 불만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세 사람을 직접 관리함으로써 서로 간의 알력 다툼을 없애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내 걱정은 기우일 뿐이었다.

“전 검을 잡은 지 15년 정도 됐습니다. 그런데도 저와 비슷한 수준이라니······.”

“헉, 15년이나 되셨어요? 전 이곳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검을 잡았어요. 아직 9개월밖에 안 됐죠.”

“그래서 더 허탈하군요. 내 15년은 무엇을 위한 시간이었는가······.”

“에이, 모용악 형도 금방 강해질 수 있어요. 저희가 도와드릴게요.”

오히려 같이 훈련을 하거나 대련을 하는 등 오히려 모용악과 고건하가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사인방이 무척 세심하게 도와주었다.

덕분에 고건하와 모용악의 훈련은 순조로웠다.

이제 남은 건.

“······.”

옆에서 어울리지 않은 기초 가죽 갑옷 세트를 입은 채 멀뚱멀뚱 날 쳐다보고 있는 카이로시아 뿐이었다.

후.

‘머리가 아프네.’

그날 이후로 카이로시아가 다른 사람에게 반말을 한다거나 하는 일은 없어졌지만, 그와 동시에 말 수도 줄어들었다.

그저 차가운 표정으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있을 뿐.

그래서 다른 사람들 사이에 끼지도 못한 채 내 주위에서만 서성이고 있었다.

‘쯧. 내가 더 잘 챙기는 수밖에.’

소중한 포인트 수급원을 잃을 순 없으니까.

파이팅 넘치게 훈련을 하고 있는 사인방과 고건하, 모용악을 뒤로하고 나는 카이로시아를 데리고 새로 지어진 체력 단련장으로 이동했다.

내가 카이로시아를 교육 시킬 때 필요하다고 새로 지어달라고 한 것이었다.

그녀의 외모를 힐끔힐끔 쳐다보느라 다른 플레이어들이 훈련에 집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시죠?”

나와 단둘이 있게 되자 카이로시아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카이로시아님은 저 두 사람과 다른 방법으로 훈련해야 하거든요.”

“······?”

“콜로세움은 단체전도 있지만, 개인과 개인의 전투 비율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렇기에 개인전, 특히 근접 전투 훈련을 많이 해야 하죠.”

끄덕.

“그런데 카이로시아님은 근접전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어 보이시더군요. 주로 후방에서 다수의 적을 향해 마법 폭격만 하셨던 것 같은데, 맞습니까?”

“그게 마법사의 역할이었으니까요.”

카이로시아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는 현대로 치면 전술 무기와 같은 존재.

한 명의 적을 죽이기 위해 미사일을 투하하거나 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거였다.

하지만 이곳은 콜로세움.

전술적 활용을 위한 마법사는 이곳에서 필요 없다.

‘그래서 전투 마법사라는 혼종이 생겨난 거지.’

어제 그녀를 상대해보고 확실하게 깨달았다.

1회차에서 이런 존재가 이름을 떨치지 못하고 죽은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그건 바로.

‘근접전이 너무 약해.’

아무리 마법을 마음껏 폭격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해도, 칼 맞으면 죽는 건 똑같았다.

그렇기에 공수 밸런스에서 수비의 비중이 높은 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공격 몰빵 타입.

엉뚱한 곳에서 비명횡사할 확률이 무척 높았다.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어서 이곳에 들어오셨겠죠.”

“당연한 것 아닌가요?”

카이로시아가 무슨 그런 당연한 질문을 하냐며 눈을 치켜떴다.

“그럼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때요, 이렇게 가까운 거리까지 누군가 다가온다면,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

“가, 가까이 오지 마세요!”

내가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가자 그녀가 학을 떼며 뒤로 물러났다.

예를 들기 위해 했던 행동에 이렇게 과민한 반응을 보일지 몰랐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

“흠, 흠. 숙녀를 대할 땐 좀 더 예의를 갖춰 줬으면 좋겠네요.”

그녀도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걸 알았는지, 헛기침을 했다.

‘하. 쉽지 않네.’

이전이라면 카이로시아가 죽든 말든 상관 안 했겠지만, 지금은 내가 너무나도 아쉬운 입장이었다.

상위 리그, 어쩌면 그 이상으로 올라갈지도 모르는 플레이어였으니까.

“어쨌든, 요점은 일대일 싸움에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죠?”

“예.”

“그럼 왜 이곳으로 데려온 거예요? 그러려면 아까 있던 대련장에서 훈련하는 게 맞지 않나요?”

카이로시아의 눈빛엔 여전히 경계심으로 가득했다.

뭔가 불안해하는 모습이었는데, 이럴 땐 해결 방법이 있었다.

‘마구 굴리는 거지.’

지옥 훈련을 할 때 아세리안이 유독 기분이 좋아 보였던 이유를 깨달았다.

카이로시아를 갈아버릴 생각을 하니까 나도 모르게 미소가 나왔다.

안 그래도 그녀의 태도로 인해 조금씩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상황.

이번 기회에 제대로 굴려줘야겠다.

“일대일을 하려면 먼저 몸부터 만들어야겠죠.”

“그거랑 몸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다시 이전으로 얘기가 돌아가서, 이렇게 근접 거리에서 누군가 검을 날린다면. 막을 수 있겠습니까?”

“보호 마법을 펼치면 되잖아요.”

쉬이이이익!

그녀의 대답에 나는 기습적으로 주먹을 뻗어 그녀의 코앞에서 멈췄다.

내 주먹이 일으키는 바람의 그녀의 은발이 조금 흩날렸다.

“······!”

뻐끔, 뻐끔.

갑작스러운 공격에 놀란 카이로시아가 입을 벌린 채 얼어붙었다.

나는 주먹을 거두며 다시 물었다.

“다시 한번 여쭤보죠. 막을 수. 있겠습니까.”

“······아뇨.”

그래.

이렇게 재깍재깍 대답해야지.

“대답이 됐군요.”

나는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방독면을 건넸다.

“······?”

“일단 체력부터 만들어보죠.”

내가 했던 지옥의 훈련을.

그녀에게도 경험시켜 줄 생각이었다.

* * *

중급신 루디악은 요즘 기분이 무척 좋았다.

렌 덕분에 엄청난 대박이 터졌고, 덕분에 낭떠러지에서 구사일생했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요즘 지구 플레이어들 성적이 무척 좋네.’

내보내기만 하면 죽었던 지구 출신들이 연달아 생존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기도 했고.

이게 다 플러스 10프로나 되는 차원 특전 덕분이었다.

덕분에 렌의 광팬이 된 루디악은 요즘, 지구 출신 플레이어들에게 가면을 사준다거나, 검은색 로브를 입히는 등 렌 따라 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와, 저 플레이어는 누구죠? 제2의 렌인가요? 센스가 무척 좋네요.

―하하하, 닉네임도 그렇고. 복장이나 가면까지 쓰고 있으니까 정말 렌처럼 보이는군요. 어디 보자······. 아, 여기 있네요. 얼마 전까지 ‘안우정’ 닉네임을 쓰던 플레이어였군요. 어쩐지 처음 보는 닉네임이다 싶었습니다. 이전 경기에서는 위태위태해 보였는데, 오늘 경기에서는 여유가 넘치네요.

―네, 말씀드리는 순간! 또다시 두 명의 플레이어를 처치하며······.

‘확실히 센스가 좋아.’

루디악은 안우정의 플레이를 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상위 리그 플레이어를 몽땅 잃어버리며 나락으로 떨어지나 했는데.

팀 불굴에서도 어느새 새싹이 자라 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요즘 특히 눈에 띄는 녀석은 바로 안우정.

‘언제나 눈에 독기로 가득 차 있는 녀석이지.’

루디악은 저렇게 악에 받쳐 있는 플레이어들을 선호했다.

저런 녀석들은 거름만 잘 줘도 쑥쑥 큰다는 것을 경험에 의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 보유 포인트도 넉넉하다 못해 넘치는 상황.

이번 기회에 안우정을 중심으로 팀을 다시 한번 키워볼 생각이었다.

‘아이템도 쓸만한 것들로 맞춰주고. 아 맞다, 유능한 트레이너 엔젤도 고용해야겠어.’

스킬도 빼먹을 수 없었다.

렌처럼 온몸에서 번개가 뿜어져 나오게 만들고 싶었지만, 번개 속성은 희귀해서 잘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마침 불꽃 관련된 스킬들이 줄줄이 올라와 있는 상황.

루디악은 검은색 로브에 하얀 가면을 쓴 채 온몸에서 불꽃이 이글이글 올라오는 모습을 상상했다.

‘개 멋지잖아!’

띠링!

[<스킬북:화신> 을 3,850,000 G 에 구입했습니다.]

[<스킬북:화룡의 분노> 를 3,000,000 G 에 구입했습니다.]

[<스킬북:염왕> 을 4,770,000 G 에 구입······.]

그 모습을 떠올리자, 자신도 모르게 구입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스킬북 하나하나가 무척 비쌌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루디악은 자신의 팀에서도 렌 같은 플레이어가 나오길 희망했다.

그렇기에 스킬북의 가격이 비쌌지만, 주저 없이 구입한 것이다.

‘좋았어. 이 정도면 충분할 거야.’

마침 안우정이 경기를 승리로 끝내고 나왔기에, 루디악은 그를 붙잡고 승리 포상이라며 스킬북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꼭 초월 리그까지 올라가겠습니다.”

“내가 그대에게 거는 바가 크다는 것을 명심하며 언제나 정진하도록.”

“예.”

대답하는 안우정의 눈은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 * *

“새로 들어온 신입들은 어때요?”

점심시간.

내 앞에 앉는 아세리안의 물음에 나는 포크를 내려놓았다.

“나쁘지 않습니다. 모용악과 고건하는 이미 완전히 적응한 분위기더군요. 당장 경기에 출전해도 충분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내 대답에 아세리안이 방긋 웃었다.

“정말 다행이네요. 사실, 네임드 급 플레이어들이 들어온 건 좋은데, 기존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랑 마찰이 있으면 어쩌나 걱정했거든요. 안우진님이 잘 이끌어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제가 한 게 있나요. 2기수가 편견 없이 잘 받아준 덕분이죠.”

“그래도요. 안우진님이 사전에 교통정리를 잘 해주시지 않았다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렇다고 저나 피넛엘, 포로도엘이 나서서 관리했다면 차별 대우를 받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구요. 같은 플레이어인 안우진님이 해주시는 게 그나마 모양새가 보기 좋은데, 아무래도 워낙 바쁘시다 보니까······.”

아세리안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네임드를 뽑고 나서 팀의 케미가 박살 나는 일이 워낙 흔했기에.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에 예민하게 반응하니, 특히 조심해야 했다.

“카이로시아는 어때요? 잘 돼 가고 있나요?”

“음······. 아직은 좀 더 보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워낙 수비적인 부분이 취약해서요. 그것만 보완하면 바로 상위 리그도 노려볼 수 있을 겁니다.”

“좋네요. 팜에 적응하는 부분은 어때요?”

아세리안의 질문에 나는 눈두덩이를 문질렀다.

“쉽지 않습니다. 뭐랄까, 두터운 벽을 세워놓은 것 같더군요.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내 말에 아세리안이 미소를 지었다.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없는 웃음이었다.

아니, 조금은 쓸쓸해 보이는 것 같기도.

“잘 해주세요. 아마, 뭔가 상처가 있어서 그럴 거예요. 얘기를 들어보니까, 고위 귀족에서 단번에 노예로 전락했다죠? 그래서 그럴 수도 있어요.”

“음.”

“거기다 또 엄청 예쁘잖아요. 얼마나 모욕적인 일들이 많았겠어요. 잘 좀 부탁드릴게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의미로 하는 말인지 잘 알았으니까.

“아 참, 먼저 전해야 할 소식이 있었는데, 말이 너무 길었네요. 게임 메이커한테 연락이 왔어요. 플래티넘 급 스킬 3개는 어렵다고 하더라구요.”

아세리안이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럴 것 같았지.’

애초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림자 표식 같은 스킬을 세 개나 달라고 한 것은 정말 양심 없는 요구였으니까.

“그렇군요.”

“대신, 안우진님이 기존에 보유하고 있는 스킬 중 3개를 성계 대항전에 한해서 업그레이드 시켜 주면 안 되냐고 묻던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보유 중인 스킬 3개를 업그레이드 시켜준다라······.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검지로 식탁을 톡, 톡 두드렸다.

너무 애매모호한 말인데?

어떤 식으로 업그레이드를 해준다는 거지?

“너무 추상적인 말이군요. 좀 더 자세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내가 거절한다는 뜻을 내비치자 아세리안이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그······ 안우진님. 제 생각엔 아무래도 그냥 승낙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뜻밖이었다.

아세리안이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죠?”

“제 생각엔 아무래도 게임 메이커가 시위를 하고 있는 것 같거든요.”

“시위······?”

그러자 아세리안이 한숨을 폭, 내쉬었다.

“상위 리그로 올라온 지 어느새 10주나 지났잖아요. 그런데 아직도 오퍼가 안 들어오고 있어요. 뭔가 이상하지 않으세요?”

“좀 늦긴 하군요.”

“제 생각엔 아무래도······. 안우진님이 성계 대항전을 수락할 때까지 게임 메이커가 오퍼를 안 넣을 생각인 것 같아요.”

“······!”

< 69화. 플레잉 코치(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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