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8화. 플레잉 코치(3) >
‘이 정도의 플레이어가······ 어째서 1회차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거지?’
카이로시아는 특수한 각성 능력들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보아하니 마법사 계열인 것 같았다.
지금까지 봤던 게 고주몽 분신의 신궁과 패왕, 아킬레우스의 대영웅, 시구르드의 용살검 정도.
아무리 내가 악마의 눈을 얻은 지 얼마 안 됐기에 다양한 플레이어들의 상태창을 보지 못했다고는 하지만, 적어도 저게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란 건 알았다.
‘뭐가 됐든 대박이 터진 건 분명해.’
이 정도 수준이라면 상위 리그는 거의 확정인 셈이었다.
그리고 내가 받을 포인트도 덩달아 껑충 뛰겠지.
아세리안과 나, 둘 다 횡재를 한 것이다.
“아, 이······ 이게······.”
고개를 돌려 보니, 아세리안도 기쁨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반응에 4기수 신입들을 통제하고 있던 피넛엘과 포로도엘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이내 카이로시아의 스텟을 확인하곤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준네임드 급이 천 명 뽑아야 두세 명 나올 정도라면, 카이로시아는 십만 명 뽑아야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수준이었으니까.
“아, 안우진님. 지금 이거. 꿈, 아니죠?”
얼마나 놀랐는지, 아세리안의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침착하시죠. 새로 들어온 신입들이 보고 있는 자리 아닙니까. 여신으로서 그리고 팀의 주인으로서 체통을 지킬 필요가 있습니다.”
“흐읍, 후우. 흐읍, 후우. 고마워요, 안우진님. 저도 모르게 너무 흥분했네요.”
내 말에 아세리안이 심호흡을 하더니, 이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 세 사람은 내가 직접 관리해야겠어.’
원래대로라면 3기수의 밑에서 교육을 받겠지만 카이로시아와 모용악, 고건하의 실력이 너무 뛰어났다.
주창범 정도나 돼야 상대가 가능할 정도로.
한마디로 나 말곤 이 안에서 저들을 이길 사람이 없달까.
저들도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이 탐탁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시스템에 균열이 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상황.
어쩔 수 없이 내가 관리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세 사람은 제가 직접 훈련 시키겠습니다.”
“앗, 그래 주시면 저야 감사하죠! 그런데 이미 사인방도 관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괜찮으시겠어요?”
다행히 아세리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물론 저들을 관리함으로 인해 내 시간을 제법 뺏기게 되겠지만, 저들이 벌어다 줄 포인트를 생각하면 오히려 내가 관리하는 게 나았다.
괜히 분란을 일으키고, 경기에서 비명횡사해 버리면 곤란할 테니까.
“괜찮습니다. 2기수 사인방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왔고. 새로 들어온 사람들도 이미 기초가 잡혀 있는 상태니까 초반에만 반짝 신경 써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환한 미소를 짓는 아세리안에게 고개를 끄덕인 난 카이로시아와 고건하, 모용악에게 다가갔다.
“안우진입니다. 앞으로 제가 여러분을 담당할 겁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 소협. 무림에서 온 모용악이라고 합니다.”
“졸본에서 온 고건하입니다. 많은 가르침 바랍니다.”
“카이로시아 아타나신느 폰 퀘이사. 탐리엘.”
내 소개에 모용악이 포권했고, 고건하가 고개를 숙였다.
그와 다르게 뻣뻣한 자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카이로시아.
순간 내 눈썹이 꿈틀했다.
그때였다.
“엇! 퀘이사 공작가의 카이로시아 영애다!”
“퀘이사 가문이 반역으로 몰려 풍비박산 나면서 노예로 팔려나갔다지?”
“레이폴드 후작한테 팔려나갔다더니 여기 있었군.”
탐리엘에서 들어온 신입들이 그녀를 바라보며 웅성댔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주제에 말이 짧다 했는데, 꽤 고위 귀족이었던 모양이다.
“와, 엄청 예쁘다.”
“노예로 팔려나갔다면······ 성 노예라는 뜻이겠지?”
그러자 다른 신입들도 그녀를 바라보며 저마다 한 마디씩 뱉었는데, 정작 카이로시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듯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 도도함을 유지했다.
“분명 조용히 하라고 했을 텐데! 지금부터 한 번만 더 입을 연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쯧, 이곳에선 안 되겠군.’
피넛엘이 4기수 신입들을 다시 통제하는 사이, 나는 고건하와 모용악, 카이로시아를 대련장으로 이끌었다.
그리고는 그들에게 이곳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소원을 이루기 위해 콜로세움에 들어오셨죠. 여러분은 하위, 상위, 고위 리그를 거쳐 초월 리그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그래야 간절하게 바라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
“네.”
끄덕.
“이곳은 말하자면 투기장과 같은 곳으로, 관객은 모두 신들입니다. 그리고 상태창이란 시스템이 있는데······.”
“예.”
“네.”
끄덕.
그렇게 필수적인 정보들을 빠르게 설명한 나는 말을 이었다.
“저는 얼마 전에 하위 리그에서 상위 리그로 승급했습니다. 아직 상위 리그에서는 경기를 한 번도 뛰어보지 못했죠. 즉, 여러분은 적어도 저보다는 강해야 상위 리그로 올라갈 수 있다는 겁니다.”
사인방을 받기 전에 내가 죽였던 찬경, 지든, 듀라크를 통해 깨달은 게 있었다.
“궁금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강해야 상위 리그로 올라올 수 있는지.”
그건 바로.
서열 정리를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특별히 여러분에게 제 실력을 보여드릴까 합니다. 그러니까 옆에 있는 무기고에서 각자 원하는 무기를 골라서 대련장으로 올라오시죠.”
특히나 이 세 사람은 각자 성계에서 이름 좀 날렸던 강자들.
그러다 보니, 룰에 어긋나는 행동이라든가, 아니면 내 지시에 불응할 수도 있다.
‘시작부터 제대로 밟아놓고 시작해야겠어.’
그래서 초장부터 그 싹을 잘라버릴 생각이었다.
[플레이어 ‘카이로시아 아타나신느 폰 퀘이사’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왜 혼자 올라옵니까? 다른 사람들도 전부 올라오시죠.”
“저희 세 사람을 혼자서 상대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예.”
“음······. 상위 리그란 것에 대해 자부심이 강하신 것 같소만, 일단 한 명씩 상대하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저는 눈이 있지만, 제 검에는 눈이 달려있지 않습니다.”
모용악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당신 같은 사람 100명이 와도 상대할 수 있으니 올라오기나 하시죠.”
“······소협의 그 오만함이 곧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오.”
그러자 모용악이 서늘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검을 쥐고 대련장 위로 올라왔다.
고건하의 표정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카이로시아는······.
“······.”
무시로 일관할 뿐이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제대로 실력 좀 보여 줘 볼까.’
나는 벽력섬전을 꺼내며 역천자, 최강의 성계, 천둥의 숨결을 활성화시켰다.
‘다시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지.’
콰지지지지지지지직!
그리고는 뇌전을 피우며 단숨에 녀석들에게 달려들었다.
“무, 무슨!”
“위험!”
고건하와 모용악이 놀라 피하려고 했지만, 애초에 스텟에서부터가 넘사벽이었다.
고작 녀석들 정도의 수준으로는, 내 창을 받아낼 수가 없었다.
서걱! 서걱!
단번에 녀석들의 목을 베어버린 나는 곧장 카이로시아에게 창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바람의 춤!】
카가가가가강!
순간 카이로시아가 만든 마법의 회오리가 내 창에 부딪히며 금속이 갈리는 소리를 만들었다.
띠링!
[마력 상쇄율 : 50%]
[플레이어 ‘카이로시아 아타나신느 폰 퀘이사’의 마법이 마력 상쇄를 무시합니다.]
눈앞에 뜨는 메시지 창을 본 나는 뒤로 물러났다.
어쩐지 마력 스텟 100이 넘는 뇌전으로도 마법을 부술 수 없다 했더니, 내 마력 상쇄를 카이로시아의 마법이 무력화 시킨 것이다.
그녀의 각성 능력에 있던 마력 관통 효과인 모양이었다.
【폭렬하는 붉은 꽃잎!】
카이로시아의 손에서 작은 구체 하나가 내게 쏘아지더니 이내 팍, 하고 터졌다.
낯이 익은 마법이었다.
‘빛의 이면에서 도로시가 썼던 마법이군.’
나는 바닥을 박차고 뒤로 물러났다.
【퍼져라!】
그러자 작게 피어난 불꽃이 강하게 회전하며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마치 빨간색 꽃잎이 바람에 휩쓸려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다.
마법은 단숨에 대련장 전체를 휘감았다.
‘제법이네.’
띠링!
[<달의 메아리> 가 외부 온도를 차단합니다.]
달의 메아리가 있기 때문에 여유롭게 피하긴 했지만, 정말 무시무시한 화력이었다.
‘영창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
도로시는 저 마법을 쓰기 위해 한참을 캐스팅해야 했는데, 카이로시아는 고작 몇 마디 중얼거리는 걸로 마법이 발동한 것이다.
【들이치는 격류의 메아리!】
또다시 이어지는 마법.
파바바바바박! 파바박!
이번엔 물방울이 비비탄 총알처럼 사방으로 퍼지며 곳곳을 때리고 있었다.
바람에, 불에, 물 속성 마법까지.
그제야 그녀의 원소 통달이라는 능력이 뭔지 알 수 있었다.
‘4대 속성을 모두 다룰 줄 안다는 거였어.’
보통은 한 계통의 마법을 특화시켜 나가는 쪽으로 마법의 숙련도를 올리는데, 그녀는 네 가지 원소 마법을 모두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르던 대련장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으며 곳곳에서 수증기가 퍼져나갔다.
이제 그녀에게 알아볼 만한 것들은 다 알아본 상황.
‘슬슬 끝내야겠군.’
[플레이어 ‘카이로시아 아타나신느 폰 퀘이사’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안개처럼 퍼져나가는 수증기 사이로, 무언가를 읊고 있는 카이로시아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내가 갑자기 코앞에서 나타나자 눈을 치켜뜨며 무언가를 외치려고 했다.
‘그렇게는 안 될걸.’
나는 곧장 그녀의 목에 창을 찔러 넣었다.
푹!
그걸로 끝이었다.
그와 동시에 내게 목이 날아가고 카이로시아의 마법으로 인해 갈기갈기 찢겨졌던 고건하와 모용악의 시체가 꿈틀대더니 이내 원래의 형체를 되찾았다.
“헛!”
그들은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흠칫 몸을 떨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에서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니까요.”
잠시 시간이 지나자 죽었던 카이로시아도 다시 살아나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카이로시아는 어안이 벙벙한 모습으로 자기 목을 감싸더니,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고건하와 모용악도 이전과 달리 자중하는 모습이었다.
“뭐 하십니까?”
“······?”
“고작 한번 싸운 걸로 끝낼 거라고 생각하신 건 아니겠죠.”
“······!”
내가 창을 겨누자, 고건하와 모용악이 각자의 무기를 챙기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이로시아도 이전과 달리 경계하는 표정으로 그들의 뒤에 가서 섰다.
그리고.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굉음이 터지며 세 사람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고작 단 한 번의 공격에 벽력이 발동된 것이다.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나는 녀석들이 부활할 때마다 계속해서 죽여댔다.
나에게 덤비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아예 내면 깊숙한 곳까지 심어줄 생각이었다.
카이로시아의 화력이 가장 좋기 때문에 그녀를 우선적으로 공략하고, 나머지를 죽이는 순이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내게 단 한 번도 공격을 하지 못한 채 계속 무력하게 죽기만 해야 했다.
“저, 저희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우진님의 실력을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안우진님이 지시하시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끄덕끄덕끄덕.
그렇게 열 번쯤 죽이자 세 사람이 기겁하며 내게 양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싸울 의사가 없다는 뜻이었다.
‘이쯤 하면 됐나.’
“좋은 교훈을 얻어서 다행이군요. 그럼 앞으로는 제 지시를 잘 따라주실 거라 믿습니다. 그리고 카이로시아님?”
“······?”
“이곳은 엄연히 당신이 살아왔던 세상과 다른 곳이고, 이곳만의 룰이란 게 존재합니다. 단체 생활을 하려면 지금의 태도로는 좋지 않습니다. 이곳에선 절대로 귀족임을 내세우지 말아 주세요.”
“······.”
“대답하셔야죠?”
“······네.”
작은 목소리였지만, 어쨌든 카이로시아가 존댓말로 대답했다.
그 모습에 만족한 나는 세 사람을 이끌고 대련장을 나섰다.
확실하게 정신 교육을 했으니, 이제 사인방과 인사를 시켜줄 차례였다.
한순간에 플레이어의 숫자가 급증함에 따라, 팜에도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있던 사용인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플레이어의 숫자가 늘었기 때문에, 식당이라든가 숙소, 체력 단련장 같은 건물을 더 지은 것이다.
그로 인해 조금은 휑해 보였던 공터에 수많은 건물들이 생겨나면서 조금은 꽉 차는 느낌이 들었다.
이제야 좀 중견급 팜 같은 모습이랄까.
‘나쁘지 않군.’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건물의 숫자가 더 늘어나면, 그때는 하나의 작은 도시 같은 모습으로 바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체력 단련장으로 향할 때였다.
“안우진님!”
날 부르는 아세리안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그녀가 나를 향해 한달음에 다가오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게임 메이커한테 다시 연락이 왔어요.”
게임 메이커한테?
또 나에게 할 말이 있나?
“그······ 적은 숫자를 무시할 정도로 많은 메리트를 안우진님께 주겠대요.”
“메리트라면?”
“아직 성계 대항전에 대한 기본 골자 정도만 계획해 둔 상태라, 어떤 식의 메리트를 주겠다는 얘기는 없었어요. 하지만 안우진님께는 차고도 넘칠 정도로 메리트를 줄 테니까 다시 생각해보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차고도 넘칠······ 정도로······?
아무래도 상위 리그 게임 메이커가 많이 급한 모양이었다.
그렇게 얘기할 정도라니.
‘하긴. 내가 승낙하지 않는 이상 진행할 수 없는 프로젝트니까.’
그나저나, 이렇게 된다면 얘기가 달라지는데?
만약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된다면.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도 지구를 우승으로 이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성계 대항전 내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플래티넘 급 스킬 3개를 달라고.”
< 68화. 플레잉 코치(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