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화. 플레잉 코치(2) >
아세리안과의 면담을 나눈 다음 날부터 나는 4기수 신입들을 대량으로 받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3기수로 들어온 플레이어들을 안정화시키는 것.
네트워크 시스템의 성장법은 기수가 내려갈수록 플레이어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특징이 있지만, 욕심을 부리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단점도 있었다.
그렇기에 4기수 신입들을 대량으로 받기 위해선 먼저 3기수가 안정화 되어야 했다.
‘아무래도 맞춤 훈련을 시켜야겠어.’
나는 아세리안이 이론 수업을 하기 위해 만든 강의실로 사인방과 신입 플레이어들을 불러 모으고, 각자에게 종이를 한 장씩 나눠주었다.
“이게 뭐예요?”
“근력 운동, 민첩 훈련, 체력 단련, 식사, 숙면, 휴식, 명상, 대련, 무기 숙련 등등, 여러분의 하루 일과를 세분화한 표입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일주일 동안 해당 항목에 얼마의 시간을 투자하고, 각 훈련을 몇 세트, 몇 번 하는지 적어주시면 됩니다.”
“정확하게 적어야 하나요?”
“제대로 적을지, 대충 적을지 결정하는 건 여러분의 몫입니다. 다만, 정확하게 적을수록 더 빨리 강해질 수 있다고 장담하죠.”
내 말에 플레이어들은 진지한 표정이 되어 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생각에 잠긴 채 자신이 일주일에 얼마나 훈련을 하는지 산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평소에 주어진 커리큘럼 대로만 훈련하다 보니, 자신이 일주일에 얼마나 훈련하는지 알고 있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게 가장 큰 문제지.’
남들보다 더 빠르게 강해지기 위해선 스스로의 위치를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계속해서 성장해 나갈 수 있을 테니까.
“다 적었다면 잘 들으세요. 앞으로 3일에 한 번, 지금 적은 항목들을 1%씩 개선시켜 나가야 합니다.”
“1%씩이요?”
“예. 근력 운동으로 100개를 했다면 3일 후엔 101개를 한다든지. 더 잘 자기 위해 숙소의 환경을 바꾼다든지. 그런 식으로 계속 1퍼센트씩 개선시켜 나가는 겁니다.”
내가 신입 플레이어들에게 제시한 전략은 영국의 브리티쉬 사이클링 팀 감독, 데이브 브레일스퍼드가 쓴 방법이었다.
‘사소한 성과들의 총합 전략.’
그리고 실제로 검증된 전략이기도 했다.
이 방법으로 브리티쉬 사이클링 팀은 110년간 단 한 번도 우승해 보지 못했던 투르 드 프랑스 대회에서 6년 동안 다섯 번이나 우승했으니까.
1%는 일견 무척 사소해 보일 수 있지만, 이게 복리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일 년만 이런 방식으로 해도 모든 부분에서 처음보다 333%나 상승하는 셈이었다.
“그런 방식으로 꾸준히 하다 보면, 여러분은 금세 강해질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내 말에 반신반의하는 눈치였다.
“고작 1%씩 늘려서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까요?”
“직접 해보면 알 겁니다. 그 1%를 3일마다 늘려나가는 것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다음날부터 플레이어들은 내가 지시한 방법대로 훈련을 시작했다.
성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그날 컨디션에 따라 훈련을 덜 하거나, 혹은 다른 플레이어들과 한 묶음으로 훈련이 진행되다 보니, 체력이 남던 사람들도 각자가 할 수 있는 수준까지 쥐어짰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꾸준히 할 수 있는 개개인의 맞춤형 훈련이 만들어졌달까.
신입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에 가장 고무된 건 다름 아닌 피넛엘이었다.
“한 달 사이에 성장률이 20%나 상승했다. 훈련법을 바꾼 것도 아니고 그저 종이 한 장 쥐여주는 걸로 이게 가능하다니······.”
“꾸준하게, 그리고 점진적으로 과부하를 주는 게 가장 빨리 성장할 수 있는 법이니까요. 전 단지 그게 가능하도록 생각을 바꿔줬을 뿐입니다.”
“그대 덕분에 내가 고정 관념에 갇혀 있었다는 걸 알았다. 단순히 훈련의 효율화만 생각했지, 정신적인 부분으로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노라. 앞으로는 나도 더 넓게 보는 능력을 길러야겠군.”
이 훈련법 덕분에 피넛엘도 한 단계 성장한 느낌이었다.
그녀라면 앞으로 내가 보지 못한 부분까지 생각해 주리라.
새로운 훈련 도입 결과는 대성공으로 돌아왔다.
[플레이어 ‘카밀라’ 가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212의 3경기에서 생존했습니다.]
[팀 ‘투지’의 수수료로 300 P를 지급합니다.]
[플레이어 ‘주창범’ 이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213의 7경기에서 승리했습니다.]
[팀 ‘투지’의 수수료로 1,800 P를 지급합니다.]
[플레이어 ‘지그’ 가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214의 6경기에서 ······.]
[플레이어 ‘루치아노’ 가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214의 7경기에서 ······.]
하위 리그에 참가한 신입 플레이어들 중에서 사망자가 3명 밖에 안 나온 것이다.
무려 생존율 81%.
물론 두 번째 경기까지 사망률이 제법 높지만, 이 상태라면 생존율이 크게 차이 나지 않을 것이다.
‘3%가 적긴 적구나.’
[플레잉 코치 ‘렌’에게 9 P가 정산되었습니다.]
[플레잉 코치 ‘렌’에게 54 P가 정산되었습니다.]
[플레잉 코치 ‘렌’에게 45 P가 정산······.]
그야말로 한숨만 나오는 수준.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포인트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중에 가면 3%가 내 파이트 포인트보다 높아질 수도 있지.’
뭐, 어쨌든.
3기수의 플레이어들이 많이 안정화되었으니, 이제 4기수 신입들을 뽑을 시간······.
벌컥!
“안우진님!”
그때 집무실 문을 열며 아세리안이 급하게 들어왔다.
무슨 일이라도 났나?
“왜 그러십니까?”
“상위 리그 게임 메이커한테 연락이 왔어요.”
게임 메이커한테······ 연락이 왔다고?
‘오퍼다!’
그녀의 말을 듣는 순간 직감했다.
그게 아니라면 굳이 게임 메이커한테 연락 올 일이······.
“상위 리그에서도 성계 대항전을 개최하고 싶대요.”
아세리안이 한걸음에 다가와 내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성계 대항전?
내 기억으론 상위 리그 성계 대항전은 열린 적이 없었는데?
무엇보다······.
“상위 리그에는 지구 출신 플레이어가 몇 명 없을 텐데요?”
내가 회귀하기 전에도 상위 리그엔 지구 출신이 드물었다.
나까지 포함해서 5명 정도였나?
고위 리그는 아예 한 명도 없었고.
“현재로서는 안우진님 말고는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성계 대항전을 어떻게 연다는 겁니까?”
“그······ 각 성계마다 100명에서 200명 정도 출전할 것 같은데, 지구 출신은 안우진님 한 분만이라도 참여해줄 수 있냐고······.”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이 조건을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한 건가?
물론 하위 리그 성계 대항전처럼 경기장 안에서 죽어도 부활하겠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우승 성계가 차원 특전을 받는다는 것.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결국 어떤 성계가 더 강해진다는 뜻이었으니까.
“말도 안 되는 제안이군요. 갑자기 왜 이런 무리수를······?”
“하위 리그 게임 메이커가 성계 대항전을 대성공으로 이끌면서 엄청난 수익을 가져갔다고 하더라구요. 그걸 보고 상위 리그 게임 메이커가 배가 아팠던 거죠.”
음.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알 것 같았다.
1회차 때와 달리 이번 성계 대항전은 나로 인해 대성공을 거둔 상황.
그런데 성공을 이끈 주역이 마침 상위 리그로 올라왔으니 자기도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겠지.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거절하겠습니다.”
상위 리그의 수준은 하위 리그와 차원이 다르다.
특히 상위 넘버링으로 넘어가는 순간 준고위급 플레이어들이 득실댄다.
그런 녀석들과 1대 100 혹은 1대 200으로 싸우라고?
잘해야 본전. 그게 아니면 손해밖에 나지 않을 일이었다.
내게 큰 메리트를 주지 않는 한, 상위 리그에서 성계 대항전이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알겠어요. 게임 메이커한테는 그렇게 전달할게요. 참, 이제 랜덤 뽑기를 해야죠?”
“네. 이제 슬슬 4기수를 받을 때가 된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뽑으러 가죠!”
나는 아세리안과 함께 공터로 나갔다.
그곳엔 이미 포로도엘과 피넛엘이 나와 있었다.
새로 들어와 혼란스러울 신입들을 통제하기 위함인 것 같았다.
“이번 랜덤 뽑기는 안우진님이 해보시는 건 어떠세요?”
“음.”
“한 번도 안 해보셨잖아요. 솔직히 저도 좀 궁금하네요. 안우진님이 금손일지 똥손일지.”
랜덤 뽑기라.
솔직히 1회차 때부터 랜덤 뽑기 하는 모습을 워낙 많이 봐 왔기 때문인지, 굳이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세리안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였다.
금손인지 똥손인지 궁금하다는 말에 흥미가 동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해보죠.”
[<잡화:주사위>]
[평범한 주사위다. 아무 효과도 깃들어있지 않다.]
[등급 : 일반]
[판매가 : 100 G]
나는 중개 거래소에서 주사위를 구입해서 굴리기 시작했다.
연속으로 같은 숫자가 세 번 나온 이후에 랜덤 뽑기를 할 생각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지구의 RPG 게임 같은 걸 보면, 이런 식으로 굴려서 운이 좋은 타이밍이 왔을 때 강화 같은 걸 했단 말이지.’
물론 아무 검증도 되지 않은 방법이었다.
사실상 미신과 같은 거랄까.
그럼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앞으로 내게 포인트를 벌어다 줄 소중한 신입들을 뽑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운이 좋은 순간에 랜덤 뽑기를 진행하고 싶었다.
기왕 뽑는 거 네임드 같은 애들이 나와주면 이후에 들어올 포인트가 제법 많아질 테니까.
“뭐 하시는 거예요? 혹시, 그렇게 하면 네임드를 뽑을 수도 있나요?”
아세리안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제 나름의 의식 같은 겁니다.”
“무슨 의식인데요?”
“운이 조금이라도 좋을 때 뽑으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내 대답에 아세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주사위를 던지는지 깨달은 것이다.
그렇게 한참을 던져 숫자 6, 6, 6이 나왔을 때였다.
“뽑겠습니다.”
나는 상태창에서 랜덤 뽑기 버튼을 눌렀다.
신입으로 뽑을 인원은 52명이었다.
띠링!
[<랜덤 뽑기>를 하셨습니다.]
[<랜덤 뽑기>를 하셨습니다.]
[<랜덤 뽑기>를 하셨습니다.]
[<랜덤 뽑기>를 하셨······.]
그러자 공터에 하얀 빛무리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 안에서 밀짚모자를 쓴 농부, 가죽 갑옷을 찬 용병, 정장 차림의 회사원 등등 각양각색의 복장을 입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타났다.
새로 들어온 신입들 답게, 모두들 혼란스러워하는 표정이었다.
“여, 여긴······?”
“이곳이 콜로세움인가······.”
“천사다! 대, 대체!”
“조용, 조용!”
웅성대는 플레이어들을 피넛엘이 통제하는 사이, 나는 악마의 눈을 이용해 스텟부터 체크했다.
확인하는 족족 평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의 사인방 수준.
그렇기에 기대감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는데, 그 뒤의 사람들 스텟을 차례로 확인할수록 내 눈이 점점 커져갔다.
‘준네임드 급!’
띠링!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모용악]
[성향 : 중용]
[근력 : 46] [민첩 : 49] [체력 : 44]
[정신 : 47] [지력 : 19] [마력 : 42]
[각성 능력 : <최상급검술> <상급살기> <중급마나운용> <중급박투술>]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고건하]
[성향 : 선]
[근력 : 51] [민첩 : 42] [체력 : 45]
[정신 : 49] [지력 : 16] [마력 : 39]
[각성 능력 : <최상급궁술> <상급살기> <상급마나운용> <하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랜덤 뽑기에서 준네임드 급이 두 명이나 뽑혔다.
지금 막 들어온 녀석들이 9개월 차가 된 주창범보다 스텟이 높은 것이다.
천 번 뽑아야 두세 명 나올까 말까 하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성과였다.
“헐, 대박.”
아세리안도 모용악과 고건하의 스텟을 확인하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경지도 최상급이었고, 스텟도 코메인 이벤트에 참여하던 케일 정도의 수준이었다.
‘잘만 키우면 상위 리그까지 노려볼 만 하겠는데.’
생존을 위한 싸움 경험도 충분할 거고.
물론 부족한 것도 있겠지만, 그건 앞으로 채워 나가면 된다.
준네임드 급이 두 명이나 들어왔기에, 안심하며 나머지의 스텟도 확인하려고 고개를 돌릴 때였다.
‘미친······!’
주변이 환하게 느껴질 정도로 밝은 은발에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여성의 스텟을 확인한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카이로시아 아타나신느 폰 퀘이사]
[성향 : 신념]
[근력 : 3] [민첩 : 4] [체력 : 4]
[정신 : 64] [지력 : 102] [마력 : 88]
[각성 능력 : <천재> <원소통달> <고급마법> <특급마나운용> <고속영창> <상급치료술> <마력관통>]
상태창을 보는 순간 뒷목이 쭈뼛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뭐야, 이 괴물은?
천재? 원소 통달?
마치 아르웬의 스텟창을 봤을 때와 비슷한 충격이었다.
< 67화. 플레잉 코치(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