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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62화 (62/205)

< 62화. 승급전(5) -유료 시작- >

플레이어들을 데리고 중앙 광장에 도착한 나는 가장 먼저 역할부터 재분배했다.

네부드네자르, 야스케, 녹스가 죽으면서 북쪽 성문을 막을 플레이어가 없어진 상황.

“고군백과 안젤라가 내일부터 북쪽 성문을 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결국 서쪽과 남쪽에서 각각 한 명씩 차출해 북쪽 수비를 맡길 수밖에 없었다.

[플레이어 ‘카롤’의 그림자에 표식이 등록되었습니다.]

그다음으로 나는 곧장 아이작부터 찾아 나섰다.

아까는 시간이 없어서 대략적인 내용밖에 물어보지 못했지만, 좀 더 많은 정보들이 필요했다.

아이작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남쪽 성벽 보수가 시급합니다!”

“얼마나 무너졌지?”

“아마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겁니다.”

“북쪽은 남은 병사 숫자가 너무 적습니다!”

중앙 광장에서 부관들에게 정신없이 보고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아이작이 날 발견하곤 부관들을 물리며 다가왔다.

“앗, 신의 사자시여. 오늘 엄청난 활약을 하셨다고 전달받았습니다.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예.”

“그런데 어째서 쉬시지 않고 이곳을······?”

아이작이 불안감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여나 우리가 다시 돌아간다고 얘기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아, 물어볼 게 있어서요. 혹시 성 밖에 있는 산을 드나드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약초꾼이라던가, 나무꾼이라던가.”

내 물음에 아이작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 있습니다. 이봐, 직스! 가서 루델 좀 불러오게.”

“옛!”

직스라는 병사가 중앙 광장을 달려 나가더니, 이내 30대 중반 정도의 남성을 데려왔다.

“데려왔습니다, 아이작 경.”

“아, 루델. 인사드리게. 이분은 태양신께서 우릴 구원하기 위해 내려주신 사자님일세.”

“뵈,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사자님! 헤르세벨그에서 3대째 나무꾼으로 가업을 이어온 루델이라고 합니다.”

루델이 과할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의 눈빛에서는 경외심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여기 산에 대해서 잘 아신다고요?”

“옛. 몬스터 웨이브가 터지기 직전까지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오르고 그랬습니다요.”

“그럼 어떤 영역에 어떤 몬스터가 사는지 잘 알겠군요.”

“맞습니다. 그걸 모르면 숲에 나무를 하러 갈 수가 없습니다. 영역에 잘못 들어가는 순간 곧바로 몬스터들의 공격을 받게 되니까요.”

“제게 그것 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 그······.”

루델이 말을 끌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아이작이 품속에서 지도와 만년필을 꺼내 바닥에 펼쳤다.

그러자 루델이 지도에 슥슥 표시를 해가며 영역을 설명했다.

“여기, 헤르세벨그를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산이 나자란이고, 남쪽에 있는 산이 둠베스 입니다. 그리고 서쪽부터 북쪽까지 길게 뻗어 있는 게 아리투아포 산맥이고, 이 두 개의 산과 아리투아포 산맥을 통틀어 데스 벨리라고 부릅니다.”

“예.”

막상 지도로 보니 몬스터의 영역이 엄청나게 거대했다.

가장 크기가 작은 나자란 산만 해도 헤르세벨그보다 10배는 더 방대할 정도였다.

“여기, 그리고 여기에 오크들이 살고, 이쪽은 블랙 오크의 영역입니다. 다른 곳 같으면 벌써 블랙 오크들한테 흡수당했을 텐데, 산이 워낙 크다 보니까 두 개체가 잘 공존하면서 살고 있습죠.”

“······.”

“여기랑 여기엔 코볼트랑 고블린들이, 그리고 이 뒤쪽으로 트롤과 오우거의 영역입니다.”

루델이 지도에 영역을 사선으로 표시하며 알려준 덕분에 영역 범위가 훨씬 더 머리에 잘 들어왔다.

그나저나 군사 지도로 보이는데, 이렇게 낙서를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

뭐,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게 더 중요하니까 아이작이 만년필을 건넨 거겠지.

“여기, 표시가 안 된 부분들은 뭡니까?”

“아, 거긴 뿔 오크들이 사는 곳입니다.”

“······뿔 오크요?”

나는 루델의 말에 깜짝 놀랐다.

하위 종족으로 분류되는 블랙 오크와 달리, 뿔 오크는 중위 종족이다.

한마디로 엘프나 드워프와 같은 등급이라는 것.

오우거는 상위 종족에 들어가지만 개체 수가 몇 안 되는 반면에 뿔 오크는 중위 종족이면서도 블랙 오크들처럼 엄청난 대군락을 이룬 채 살아간다.

그렇기에 오우거들도 뿔 오크는 쉽게 건드리지 못했다.

사실상 이 데스 벨리라는 곳에서 먹이 사슬의 가장 위에 있는 녀석들이 뿔 오크인 셈이었다.

“그들의 숫자는 얼마나 됩니까?”

“글쎄요······. 헤르세벨그의 인구가 40만 정도였으니, 못해도 100만은 될 겁니다.”

“100만이요?”

“예. 하지만 그들은 인간처럼 고도의 지능을 가진 존재들. 인간을 건드리면 대규모 전쟁이 일어날 것을 알기에, 먼저 공격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번 몬스터 웨이브 때도 없었습니까?”

내 물음에 답한 건 아이작이었다.

“예, 뿔 오크들이 공격한 적은 없습니다. 애초에 그들이 공격해 들어왔다면, 지금까지 무사할 수 없었을 겁니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뿔 오크들까지 침입해 왔다면, 나는 그대로 미션을 포기했을 것이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막아내지 못했을 테니까.

하위 리그 플레이어들이 상대하기엔, 뿔 오크는 너무 강한 녀석들이었다.

“이 지도, 제가 좀 챙겨가도 되겠습니까?”

“예. 그런데 어디에 쓰시려고······.”

“여기, 나자란 산에 좀 들어갔다 오려고 합니다.”

“거, 거긴! 사자님의 무력을 의심하는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아이작의 만류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뭔가 건질만한 게 있을까 싶어서요. 가서 간단하게 조사만 하고 돌아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나는 동쪽 성문으로 향했다.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는 이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왠지 누군가 인위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만들어 헤르세벨그로 보내고 있는 느낌이었으니까.

당장 오늘 밤부터는 또 얼마나 많은 몬스터들이 날뛸지 모르는 상황.

시간이 날 때 확인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산이 엄청 넓네.’

숲속으로 들어오니 금세 어제 내가 정찰했던 곳까지 나올 수 있었다.

지도로 보니 아직 산의 초입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곳이었다.

몬스터들의 영역으로 들어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했다.

‘뭔가 있는 것 같긴 한데.’

산속 깊숙이 들어갈수록 어제의 위화감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숲이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였으니까.

원래 몬스터 웨이브라는 것이 각자의 영역을 지키며 살아가는 몬스터들의 숫자가 폭증하면서 생겨나는 현상이었다.

생태계의 크기는 한정되어 있고, 물량은 증가하니까 중심부에 있는 먹이 사슬 최정점의 몬스터로 인해 파동처럼 밀려 나오는 것이다.

그 도미노 현상으로 외곽의 몬스터들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게 되는 거고.

‘근데 그런 것 치고는 숲이 너무 평온해.’

몬스터 웨이브에도 전조 증상이 있는데, 이곳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누군가가 특정 시간에 인위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조장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뜻.

그리고 그 생각은 루델이 표시해 준 오크의 영역에 도착하고 나서 더 강해졌다.

‘조용하군.’

아무리 둘러봐도 전투의 흔적 같은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던 오크가 갑자기 누군가의 명령에 의해 산 밑으로 내려온 것 같았달까.

‘아무래도 오늘 밤까지 여기서 기다려 봐야겠어.’

어제 대규모로 쳐들어왔기 때문인지 오크의 영역에는 그렇게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장 유력한 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블랙 오크였다.

나는 지도를 품속에 넣으며 블랙 오크의 영역으로 이동했다.

전투는 최대한 자제할 생각이었다.

‘최우선 목표는 일단 누가 인위적으로 몬스터 웨이브를 만들어 내는지 확인하는 거니까.’

괜히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였다가 이 일의 배후에 있는 존재가 알아차리면 곤란했다.

그리고 만약 실제로 확인했는데, 단순한 자연 현상이라면 그때 가서 사냥을 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참 동안 산을 타고 이동하다 보니, 어느새 블랙 오크와 오우거의 영역이 서로 맞닿는 경계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직 해는 중천에 떠 있는 상황.

‘밤이 올 때까지 좀 쉬어야겠군.’

나는 근처에 있는 나무 위로 올라갔다.

우거진 나뭇잎이 내 모습을 감춰줄 것이기에 밤까지 휴식을 취하기엔 나쁘지 않은 공간이었다.

‘부디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 거였으면 좋겠는데.’

그렇다면 보다 쉽게 이 미션을 클리어 할 수 있을지도.

나는 나뭇가지에 편안하게 몸을 기댔다.

달이 뜨고 나면.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깊은 산속의 어둠은 빠르게 찾아왔다.

밤이 되면서 싸늘한 한기가 몸을 감쌌다.

띠링!

[<달의 메아리> 가 외부 온도를 차단합니다.]

잠시 후면 달이 뜨기 시작할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아무런 특이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이상해.’

이렇게 조용하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띠링!

[상현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 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3% 상승합니다.]

그때였다.

쑤앙!

‘이게 뭐지?’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마치 공간의 파동? 공간의 뒤틀림? 같은 게 날 훑고 지나간 듯한 느낌이랄까.

나는 곧장 나무를 박차고 떨림이 시작된, 오우거의 영역 쪽을 향해 달려갔다.

“취이이이이이익!”

“쿠오오오오!”

“취이이이이이이이익!”

그러자 방금 전까지 잠잠하던 산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마치 단체로 약을 잘못 먹고 미쳐 날뛰는 느낌이랄까.

‘역시 인위적인 거였어.’

“취이이익! 인간이다! 췩!”

“인간을 죽여라! 취이익!”

나를 발견한 몬스터들이 거대한 도끼를 휘둘렀다.

콰지지지지직!

서걱-

나는 죽이기보다, 최대한 돌파하며 떨림의 진원지를 찾아 나섰다.

서둘러야 했다.

앞으로 20분에서 30분 후면.

이 미쳐 날뛰는 몬스터들이 헤르세벨그에 도착할 테니까.

‘내게 남은 시간은······ 25분 정도.’

그림자 이동으로 넘어간다고 해도 그 이상의 시간을 벌긴 어려울 것이다.

“······.”

그때 내 귓가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지? 근처에서 나는 것 같은데.’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다가가니, 곧 정체불명의 인간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검은색 로브에 후드까지 뒤집어쓴, 5명의 인간들이 숲의 외곽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찾았다.’

가운데에 있는 한 명의 괴인이 손바닥만 한 구슬을 들고 뭐라고 중얼거리고 있었고, 나머지 네 명의 기사가 가운데에 있는 괴인을 호위하는 모양새였다.

나는 체력 소모 때문에 꺼둔 천둥의 숨결을 활성화 시키며 곧장 녀석들을 향해 짓쳐 들어갔다.

“헛, 어떻게 알고!”

“사제님을······!”

“모두 경거망동하지 말게.”

날 발견한 기사들이 구슬을 든 괴인의 앞을 가로막으며 방패를 세웠다.

‘악마의 눈.’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리암 발데스그라이츠 폰 레인하르트]

[성향 : 광신]

[근력 : 105(+?)] [민첩 : 101+?)] [체력 : 102(+?)]

[정신 : 88(+?)] [지력 : 41(+?)] [마력 : 101(+?)] [신성력 : 99(+?)]

[각성 능력 : <특급검방술> <특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박투술> <하급치료술> <특급신성술>]

[업적 특전 : 팔라딘의 의지]

악마의 눈으로 스텟을 보는 순간 소름이 쭈뼛 돋았다.

이 미친 새끼.

‘스텟이 왜 이래?’

눈앞의 기사는 엄청난 강자였다.

심지어 특전도 존재했다.

‘팔라딘이라면 교단이나 교국의 소드 마스터 같은 존재들이잖아.’

헤르세벨그는 발리노르 성계에 있는 도시.

아무래도 발리노르 성계의 최강자 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이래서 발리노르가 무림, 알프하임, 웨스테로스와 함께 4강이라고 불리는 것 같았다.

‘다른 녀석들은 평범하군.’

다행히도 다른 세 명의 기사들은 성계 대항전 10경기 플레이어들의 평균 수준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중급 기사 정도랄까.

결국 내가 조심해야 할 녀석은 저 팔라딘 한 명뿐이라는 것.

콰지지지지지지지직!

녀석들의 코앞에 도착한 나는 창을 휘둘렀다.

그러자 팔라딘이 정면에서 상반신을 다 가릴 만큼 거대한 방패를 내밀었다.

채앵!

‘크윽!’

피의 강화 특전을 켜지 못한 상황이라서 그런가, 근력에서 너무 많이 차이가 났다.

녀석의 방패에 실린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뒤로 크게 튕겨져 나간 것이다.

“제법 강한 이교도로군. 오늘은 운이 좋지 않았다고 생각하시오. 내, 그대의 생명을 취하면 곧바로 신께 기도를 올려 드리리다.”

단 한 번의 격돌만으로도 내 수준을 간파한 팔라딘이 성호를 그었다.

십자가는 아니고, 자기 이마와 양 어깨를 긋는 삼각형 모양이었다.

“자신만만하네. 그러다가 뒤의 사제가 죽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궁금하군.”

“신께서 우릴 보우하시는 이상,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오.”

내 말에 팔라딘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디, 그 표정이.

[표식 목록]

[플레이어 ‘카롤’]

[발리노르인 ‘아이작 머니쿠츠 드 데이커’]

[발리노르인 ‘리암 발데스그라이츠 폰 레인하르트’]

얼마나 일그러지는지 보자고.

‘그림자 교환.’

순식간에 팔라딘과 내 위치가 뒤바뀌었다.

녀석은 내가 튕겨 나간 곳에.

그리고 나는.

콰지지지지지지지직!

사제의 바로 앞에.

서걱!

사제를 지키고 있던 세 사람의 반응이 느렸다.

그림자 교환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

덕분에 나는 손쉽게 사제의 목을 벨 수 있었다.

사제가 죽자마자 몬스터들의 포효 소리가 잦아들었다.

미쳐 날뛰던 녀석들이 잠잠해진 것이다.

‘역시, 이 녀석을 죽이는 게 정답이었어.’

“이노오옴!”

순간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팔라딘이 내 쪽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하지만 난 녀석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나머지 세 명의 기사들에게도 창을 휘둘렀다.

서걱!

순식간에 세 개의 머리가 추가로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팔라딘의 검이 내 등을 찌르려는 순간!

‘안녕.’

[발리노르인 ‘아이작 머니쿠츠 드 데이커’에게 <그림자 이동> 능력을 사용합니다.]

시야가 한순간에 뒤틀리며 팔라딘의 검이 아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아이작의 얼굴이 보였다.

< 62화. 승급전(5) -유료 시작-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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