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승급전(4) -무료 마지막 화-
게이트가 사라지자, 그 자리에 성인 남성 팔뚝만 한 크기의 크리스탈이 보였다.
이게 시스템이 얘기한 신성석인 모양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57분.
일단 상황을 정리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일단 리딩부터 정하죠.”
나는 함께 출전하게 된 아홉 명의 플레이어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렌님이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전 카롤입니다. 보시다시피 검객이구요.”
“저도 렌님이 리딩을 하셨으면 좋겠어요. 전 엘리스에요.”
“아무래도 렌님이······.”
모두들 내가 출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지, 나에게 리딩을 맡겼다.
하긴, 그렇게 블러드나이트 207 메인 이벤트에 출전한다고 커뮤니티에서 떠들어댔으니, 모르는 게 이상할지도.
그렇게 만장일치로 이번 경기 리더가 된 나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 책임자가 누구죠?”
“예, 신의 전사시여. 이 성을 관리하고 있는 아이작이라고 합니다.”
내 물음에 한 기사가 앞으로 나오더니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현재 상황과 남은 병력, 그 외에 우리가 숙지해야 할 만한 것들이 있다면 설명해 주시죠.”
“옛. 오늘로 몬스터 웨이브 5일 차고, 녀석들은 달이 떠 있을 때만 공격해 들어옵니다. 해가 뜨면 거짓말처럼 물러났습니다. 몬스터의 종류로는 오크가 대다수이며, 간혹 트롤이나 오우거의 침입도 있었습니다.”
“오우거······?”
아이작의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다른 플레이어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젠장.
오크 정도는 다른 플레이어들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오크보다 훨씬 센 트롤도 숫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병사들까지 힘을 합치면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다.
하지만 몬스터의 제왕이라고 불리는 오우거는······.
‘쉽지 않겠는데.’
“예. 처음에는 침입하는 몬스터의 숫자가 얼마 안 됐는데, 날이 갈수록 몬스터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결국 어제 치렀던 전투로 네 개의 성문이 모두 박살이 났습니다. 원래 만 명이 넘던 병력 중에 남은 병력은 이제 2천. 그중에 중상자가 반이 넘어 실질적으로 싸울 수 있는 숫자는 천이 조금 안 됩니다.”
생각보다 전황이 훨씬 안 좋았다.
특히 성문이 박살 난 게 컸다.
“결국 우리가 성문 역할을 대신해야겠군요. 그럼 지금부터 역할 분담을 하겠습니다. 카롤, 고군백, 엘리스가 서쪽 성문을. 이청명, 제프리, 안젤라가 남쪽 성문을. 야스케, 네부드네자르, 녹스가 북쪽 성문을. 동쪽은 내가 맡습니다. 아이작?”
“예. 하명하소서.”
“그대가 중앙에서 병사들을 지휘하세요. 밀리는 성문이 있다면 유기적으로 병사들을 움직여 수비 하도록. 동쪽 성문은 성벽 위로 기어 올라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병력만 배치하면 됩니다. 그리고 다른 성문에서 오우거가 등장하면 곧바로 알려주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악마의 눈으로 최대한 밸런스가 잘 맞게끔 역할 분담을 한 뒤, 아이작의 그림자를 밟으며 표식을 등록했다.
그림자 표식의 쿨타임은 8시간.
현재로선 성문마다 한 명씩 표식을 등록해 두는 게 불가능하다.
‘그나마 그림자 이동이랑 그림자 교환은 쿨타임이 없어서 다행이야.’
그렇다면 중앙에서 지휘할 아이작의 그림자에 표식을 남기는 게 그나마 효율적으로 다른 쪽 성문을 커버하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신성석을 지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가장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위치기도 하고.
“이런 미션은 첫날을 버텨내는 게 관건입니다. 그러니까 모두들 건투를 빌겠습니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움직이죠.”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플레이어들이 세 명씩 찢어져서 각자의 성문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동쪽 성문을 향해 빠르게 내달렸다.
‘처참하군.’
가는 길 곳곳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인간과 몬스터의 사체들이 한가득 널려 있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지난 4일간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전속력으로 5분 정도 달리자 휑하게 뚫려 있는 동쪽 성문이 보였다.
‘소도시 규모인데도 생각보다 넓네.’
거의 여의도에 필적하는 크기였다.
이래서는 다른 쪽 성문이 뚫리더라도 도와주러 가는 게 쉽지 않을 것이다.
왕복 10분이면 도와주러 갔다 오는 사이 몬스터들이 성 내부로 쏟아져 들어올 테니까.
그저 다른 플레이어들이 잘 막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헉! 누, 누구!”
내가 도착하자, 성문 앞에 앉아서 쉬고 있던 병사들이 날 발견하곤 창을 들어 올렸다.
슬슬 주변이 어두워지고 있어서, 검은색 로브에 블라디미르 가면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은 충분히 놀랄만한 비주얼이었다.
“나는 그대들의 신께서 이곳을 구원하라고 보낸 전사입니다. 잠시 후 아이작이 보낸 병사가 도착할 테니, 그에게 자초지종을 들으면 됩니다.”
내 말을 들은 병사들이 벌떡 일어나더니 크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아! 태양신께서 자신의 사자를 보내주셨다!”
“태양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어!”
체념하고 있던 병사들의 얼굴빛에 화색이 감돌았다.
오늘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우리의 등장으로 희망을 찾은 것이다.
[30분 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합니다.]
‘일단 외부로 좀 나가봐야겠어.’
나는 사기가 잔뜩 오른 병사들을 뒤로하고 성문을 빠져나와 거대하게 펼쳐져 있는 숲속으로 향했다.
사방으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지만, 악마의 눈 덕분에 대낮처럼 환하게 느껴졌다.
숲 안으로 들어가도 특별한 건 없었다.
그저 고요함이 가득 묻어나올 뿐이었다.
‘폭풍전야 같군.’
[20분 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합니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숲이 무척 거대했다.
헤르세벨그보다 몇 배는 더 큰 것 같았다.
10분, 20분 정도 들어와서는 택도 없을 정도.
‘쯧.’
결국 별다른 소득을 올리지 못한 나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거대한 숲과 산이 자리하고 있다면 몬스터의 숫자도 어마어마할 것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문 안쪽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만큼은 막아내야 한다.
현재 헤르세벨그 성의 병력으로는 시가전을 치를 여력이 안 됐다.
몬스터들이 내부로 진입하는 순간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10분 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합니다.]
동쪽 성문으로 돌아오자 한 병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병사들에 비해 무장 상태도 괜찮고, 말도 타고 있는 걸로 보아 직급이 제법 높은 모양이었다.
병사는 날 발견하자마자 말에서 뛰어내려, 내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신의 사자시여. 저는 백부장 랄프손이라고 합니다. 동문의 병사들을 지휘하며 사자님을 보필하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합니다.”
“옛. 따로 지시하시거나 제가 숙지해야 할 사항을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음.
따로 지시할 만한 일이라.
“입구를 지키는 건 저 혼자 하겠습니다. 랄프손은 혹시나 성벽 위를 기어 올라가는 몬스터가 있다면 녀석들만 처리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랄프손이 병사들을 데리고 성벽 위로 올라가고, 성문 앞은 나 혼자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지며 헤르세벨그에 완전한 어둠이 찾아왔다.
띠링!
[그믐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 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3% 상승합니다.]
옅은 달빛이 지상을 비추었다.
고요한 가운데, 병사들의 거친 호흡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모두들 벌벌 떨고 있는 게 잔뜩 긴장한 것 같았다.
‘저들에겐 매일 찾아오는 이 시간이 악몽과도 같았겠군.’
오늘, 내가 그 악몽을 깨부숴버릴 생각이었다.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마침 경기가 시작된다는 알림창이 떴다.
헤르세벨그의 책임자, 아이작의 말처럼 달이 뜨자마자 웨이브가 시작된 것이다.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중급신 ‘루디악’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숨 쉬기.
[보상 : 10,000 P]
[중급신 ‘루디악’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창 휘두르기.
[보상 : 10,000 P]
[중급신 ‘루디악’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중급신 ‘루디악’님이 서브 미션을 ······.]
무수히 쏟아지는 서브 미션들.
내용도 별거 아니었다.
창을 휘두르고, 걷고, 숨 쉬고, 움직이는 등 살아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미션 완수가 가능한 것들 뿐이었다.
특히 마지막 미션 내용이 가관이었다.
[중급신 ‘루디악’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팀 투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근을 흔들어 주세요.
바로 팀 투지와 연락해서 영입을 추진해 보겠습니다.
[보상 : 1,000 P]
서브 미션 내용을 읽은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전에 봤던, 서브 미션으로 용돈을 주겠다는 신이겠지.
‘서브 미션 일괄 수락. 당근 흔들기만 빼고.’
띠링!
[서브 미션을 수락하였습니다.]
―내용 : 숨 쉬기, 창 휘두르기, 걷기, 움직이기, 몬스터 1킬 하기······.
[보상 : 100,000 P]
‘10만 포인트라. 엄청 좋은데?’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일단 10만 포인트는 확정해 놓은 셈.
이제 남은 건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는 것 뿐이었다.
“취이이익! 취이이이이익!”
때마침 울려오는 몬스터들의 포효소리.
녀석들의 울음소리엔 적의가 한가득 배어 나왔다.
숲속에선 방금 전까지 잠잠하던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오, 온다!”
“저 개새끼들! 아직도 저렇게 엄청난 숫자가······!”
“조용, 조용! 모두 침착해라! 우리에겐 태양신의 가호가 함께하노니!”
백부장, 랄프손이 벌벌 떨고 있는 병사들을 진정시켰다.
쿠구구구구구구구궁-
거리가 제법 되는데도 불구하고, 바닥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몬스터들이 이곳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는 것이다.
‘다른 성문 녀석들이 잘 버텨줘야 할 텐데.’
다행인 점이 있다면, 전투가 탁 트인 평야에서 치러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좁은 성문을 끼고 차분하게 상대해 나간다면 녀석들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시작해 볼까.’
띠링! 띠링! 띠링!
[<신화업적:역천자>를······.]
[<차원특전:최강의 성계>를······.]
[<천둥의 숨결>을······.]
특전을 켜자마자 성문으로 어마어마한 숫자의 오크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트롤이나 오우거의 모습은 아직까진 보이지 않았다.
“취이이이익!”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직!
벽력섬전까지 깃든 무시무시한 뇌전이 온몸에서 피어올랐다.
서걱!
창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서너 마리의 오크들이 바닥에 고꾸라졌다.
오크는 성계 대항전에서 상대했던 블랙 오크보다도 한 단계 아래의 종족.
수십만 블랙 오크 부대의 부락에서도 살아남은 나를, 일반 오크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 정도면 다른 쪽도 할만하겠는데?’
뇌전이 한번 번쩍일 때마다 성문에 쌓이는 오크 사체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고기 타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오오! 과연 신의 전사시다!”
“태양신이시여! 정말 감사합니다!”
“이 돼지 새끼들! 신의 징벌을 받아라!”
내 압도적인 위용에 성벽 위의 병사들이 소리를 질렀다.
서걱! 서걱!
나는 성문 앞에서 막아서는 것을 넘어, 조금씩 밖으로 격전지를 옮겨갔다.
길목이 좁은 게 오히려 내 사냥 속도의 발목을 잡았다.
‘어차피 몬스터의 숫자도 한계가 있을 터.’
몰려온 몬스터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다 죽여버릴 생각이었다.
띠링!
[<피의 강화> 로 올릴 수 있는 스텟을······.]
마침 피의 강화 특전까지 활성화된 상황.
그때부터 병사들이 말하는 신의 징벌이 시작되었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앙!
벽력이 터지며 사방으로 충격파를 발산하고, 청천벽력이 발동하면서 곳곳에 벼락이 흩뿌려졌다.
그저 창을 휘두른다는 간단한 행위만으로도, 오크들에겐 재앙과 같은 일들이 벌어졌다.
[근력 : 105(+5)(+44)] [민첩 :112(+5)(+47)] [체력 : 104(+5)(+38)]
[정신 : 153(+59)] [지력 : 23(+9)] [마력 : 124(+5)(+46)]
지력을 제외한 모든 스텟이 세 자리를 넘어선 순간, 인간의 범주에서 보일 수 없는 위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크워어어어어어!”
서걱!
간간이 트롤의 모습도 보였지만, 그래봤자 한방 컷이었다.
팡! 팡! 팡!
한번 창을 휘두를 때마다 공기 터지는 소리가 났다.
‘꼭 불에 뛰어드는 부나방 같군.’
뇌전이 피워낸 섬광은 깜깜한 전장을 밝게 비추었다.
“취이이이익!”
한참을 휘두른 나는 동쪽 성문으로 침입해 왔던 모든 몬스터들을 죽일 수 있었다.
그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플레이어 ‘네부드네자르’ 가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야스케’ 가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녹스’ 가 사망했습니다.]
‘씨발.’
데스 콜이 울리며 같은 팀원이 죽었음을 알려왔다.
북쪽 성문을 지키라고 보냈던 세 명의 플레이어가 모조리 죽은 것이다.
“랄프손! 뒷정리를!”
몬스터의 사체로 가득한 동쪽 성문을 백부장, 랄프손에게 맡긴 나는 곧바로 북쪽 성문을 향해 내달렸다.
“이 개새끼들!”
“절대 안으로 들여보내선 안 된다!”
“으으······. 저, 저리 가! 으아악!”
다행히 내가 도착할 때까지 북쪽 성문의 병사들이 성문 앞을 몸으로 막아내고 있었다.
오크와 트롤이 한 번 휘저을 때마다 엄청난 양의 피가 흩뿌려졌다.
병사들은 상반신이 통째로 뜯겨 나가거나 도끼에 팔다리가 토막 나는 등 굉장히 잔인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모두 뒤로!”
콰지지지지직!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나는 그런 병사들의 사이를 헤집으며 또다시 대학살을 시작했다.
다행히 북쪽 성문으로 침입한 몬스터들을 다 죽일 때까지 더 이상 죽는 플레이어는 나오지 않았다.
서걱!
“취, 취익······.”
내 창에 목이 베인 오크를 마지막으로, 북쪽 성문의 몬스터 웨이브도 끝.
나는 곧장 서쪽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을 다 정리한 뒤엔 남쪽 성문으로.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하룻밤 만에 2만 마리가 넘는 몬스터들을 학살할 수 있었다.
[킬 수 현황]
[1위. ‘렌’ 20,387킬]
[2위. ‘고군백’ 804킬]
[3위. ‘이청명’ 799킬]
[4위. ‘카롤’ 774킬]
“으으으윽! 내 다리! 으윽······.”
“여기 들 것좀 가져와! 어서!”
“어어, 이봐! 정신 차려! 이봐!”
“아아, 신이시여······.”
날이 밝자, 성문 앞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플레이어들의 체력이 떨어질 때마다 병사들이 나서서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었다.
얼마나 치열한 전투였는지, 몸이 성한 병사가 없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햇빛이 떠 있는 동안에는 몬스터들이 침입해 오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살아남은 플레이어들은 한쪽에서 회복의 물약을 마신 뒤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렌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게 감사 인사를 하는 플레이어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준 나는 곧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쯧. 이대로는 안 되겠어.’
몬스터 웨이브 첫날이었는데도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런데 아이작의 말로는 하루가 지날수록 몰려오는 몬스터의 숫자가 늘어난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장 내일부터는 더 많은 숫자의 몬스터들이 몰려온다는 것.
심지어 오늘 3명의 플레이어가 사망했다.
‘당장 오늘 밤에 쳐들어올 몬스터 웨이브도 쉽지 않겠군.’
나는 괜찮겠지만, 다른 플레이어들이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다른 쪽 성문이 뚫리는 순간 신성석을 지켜내기 어려울 테니까.
‘방법을 찾아봐야겠어.’
나는 중앙 광장으로 향했다.
이대로 가만히 몬스터가 침입하길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었다.
* * *
새벽의 여명이 비추기 시작한 깊은 산 속.
한 기사가 후드를 눌러쓴 여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여인은 손바닥만 한 구슬을 들고 있었는데, 온 세상의 빛을 모두 빨아들이는 것처럼 새까만 색이었다.
그때 산 아래를 내려다보던 기사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신성석을 부술 수 있을 줄 알았더니 실패했군.”
“괜찮습니다. 어차피 며칠 안으로 보름달이 뜰 테니까요. 그때가 되면 더 많은 몬스터를 웨이브로 내보낼 수 있을 거예요.”
여인의 호언장담에도 기사의 표정은 펴질 줄을 몰랐다.
“다른 사제님들은 언제 온다는 소식 없었소?”
“네. 더 이상 추가 지원은 힘들다고 하던데요. 대신 사도님들이 모두 오시기로 하셨어요.”
“그건 다행이군. 그럼 내일은 오우거를 보내 봅시다.”
그러자 여인이 기사를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러면 몬스터를 몇 마리 못 보낼 텐데요?”
“상관없소. 어차피 오우거가 성문만 뚫고 들어가 준다면, 그 숫자가 몇이든 신성석을 깨부수는 건 가능할 테니.”
“알겠어요. 오늘 밤엔 그럼 오우거의 영역으로 이동해야겠네요. 전 이동할 준비 좀 하고 있을게요.
말을 마친 여인이 자신의 이마와 양 어깨를 두드린 뒤 울창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런 여인을 뒤로하고 산 아래의 헤르세벨그 성을 응시하던 기사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 내일은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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