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화. 승급전(3)
―하위 리그에 나타난 초신성! 그의 하위 리그 마지막 경기가 곧 시작된다.
―지구의 유일한 네임드. 조금 있으면 상위 리그에서 보게 될지도.
―블러드나이트 207 메인 이벤트에 엄청난 괴물이 찾아온다. 게임 유형은 팀 PvM 미션!
아세리안이 전해준 오퍼를 수락한 다음 날 아침.
커뮤니티엔 나와 관련된 게시글로 도배가 되었다.
경기를 뛴 것도 아니고, 고작 내가 출전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게시글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관객들에게 제대로 도장을 찍었군.’
원래 네임드 경기가 잡히면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긴 한다.
아르웬이 출전하는 피의 여명 경기에서도 그랬고.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땐 고작 해봐야 네다섯 개 정도 올라왔지만, 지금은 수백 개가 넘는다는 것.
댓글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블나 207이면 게임 메이커가 판단 잘한듯. 렌을 최대한 오래 하위 리그에 남겨두는 것보다 반응 왔을 때 팔아먹는 게 더 낫긴 하지. 이 경기는 꼭 직관한다.
└렌 공략법 찾으신분? 수백 번을 다시보기로 돌려봤는데도 분석이 쉽지 않네요ㅠ
└ㅋㅋㅋㅋㅋㅋㅋㅋ 살다살다 내가 하위 리그 경기를 기다리는 날이 올 줄이야ㅋㅋ
└렌니이이이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서브 미션 빵빵하게 넣어드릴게요~♡
└ㅋㅋㅋㅋㅋ 윗댓글 딱 봐도 이번 성계 대항전에서 대박난 새끼넼ㅋㅋㅋ
└벌써부터 무슨 서브 미션 걸지 좀 기대 되는뎈ㅋㅋㅋ
└시발··· 나도 그냥 던진다 생각하고 지구에 좀만 걸어둘걸··· 천추의 한이다 진짜.
그중에 눈에 띄는 댓글도 있었다.
‘오. 서브 미션을 걸어 준다고?’
아마 이번 성계 대항전에서 지구에 걸어 대박을 터트린 신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안 그래도 플레이어들은 베팅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놔서 많이 아쉬웠는데, 덕분에 제법 포인트 벌이가 쏠쏠할지도 모르겠다.
‘특별한 건 없네.’
혹시나 경기에 대한 다른 정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게시글이나 댓글들 모두 내가 출전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결국 경기에 대해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한 나는 커뮤니티를 닫고 중개 거래소로 들어갔다.
다음 할 일은 침묵의 망토를 대신할 만한 스킬을 찾는 것.
은신이란 스킬이 활용도가 떨어지고, 뭐랄까 다른 스킬들과의 시너지도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이제는 내가 너무 강해져서 은신을 써야 할 만한 상황이 많이 줄어들기도 했고.’
거기다가 성계 대항전에서 계속 상대에게 은신이 발각되는 바람에 굉장히 짜증 나 있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뇌신이나 천둥의 숨결, 마력 상쇄처럼 더 활용도가 높은 스킬로 대체할 생각이었다.
‘하, 쓸만한 게 없네.’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괜찮은 스킬이 보이지 않았다.
활용도가 뛰어난 스킬은 시장에 안 풀고 보통 자기가 익히니까.
하지만 계속해서 눈팅을 하며 스킬을 찾고 있을 순 없는 상황.
어쩔 수 없이 아세리안한테 부탁해야 할 것 같았다.
그녀라면 알아서 나와 시너지가 잘 맞는 스킬을 찾아줄 것이다.
그럼 이제 경기에 들어가기 전까지 남은 일은 단 하나뿐이었다.
‘스텟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것.’
시스템 창을 끈 나는 눈을 감았다.
“제 훈련을 도와주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안우진님은 본인의 약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아세리안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내 약점에 관한 것은 나 또한 시간이 날 때마다 생각해 보는 부분.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딱히 이렇다 할 만한 약점이 없다는 게 내 평가였다.
“약점이 있습니까?”
“있죠.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약점이요.”
하지만 이어지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너무나 확신에 차 있었기 때문이었다.
“뭡니까, 그 약점이?”
“기본 스텟이 너무 낮아요.”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텟이 낮은 건 나도 인정하는 부분.
하지만 나는 그 약점을 가릴 수 있는 다양한 무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건 약점이라고 할 수 없군요. 스킬과 이번에 얻은 차원 특전을 켜면······.”
“만약 그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온다면요?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을 활용하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콜로세움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실 수 있나요?”
“······.”
그녀의 물음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으니까.
콜로세움에는 정말 다양한 스킬이 존재한다.
이번에 얻은 그림자 표식만 봐도, 내가 생각해 본 적 없는 것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스킬이었으니.
그렇다면 그녀가 얘기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는 스킬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내 놀란 모습을 본 아세리안이 픽- 하고 웃었다.
“물론 제가 말씀드린 게 다소 극단적인 가정이긴 해요. 하지만 부인할 수 없으시죠?”
“······예.”
“이번에 성계 대항전에서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안우진님이 그저 강하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막상 플레이어들의 평균 스텟을 보니까 제가 간과하고 있었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앞으로 훈련할 때마다 도와드릴 거예요.”
“어떻게 도와준다는 말씀이시죠?”
내 물음에 아세리안이 활짝 웃었다.
“헤헤, 보시면 알아요.”
어.
뭐랄까.
분명 평소와 같은 웃음인데.
왜인진 모르겠지만, 무척 사악해 보이는 미소였다.
“끄으으으윽!”
“마지막 한 개 남았어요! 조금만 더!”
“끄으으으으윽!”
“그만! 고생 많으셨어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들고 있던 1톤짜리 바벨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그러자 쿵! 소리와 함께 체력 단련실의 바닥이 울렸다.
“허억, 헉, 헉, 허억.”
온몸이 땀으로 범벅된 채 숨을 고르길 1분여.
미리 짜 놓은 대로 스쿼트 100개씩 3세트를 마친 나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쓰러지더라도 휴식의 방에서 쓰러져야 한다.
그렇게 체력 단련장을 벗어나려 할 때였다.
덥석!
“······?”
“아직 걸으실 만 한 걸 보니까 한 세트 더 하실 수 있겠는데요?”
아세리안이 내 팔을 잡더니 1톤의 무게가 걸려 있는 바벨 앞으로 끌었다.
“잠시만요. 허억, 한 세트를, 허억, 더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네!”
[남은 체력 : 22%]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양손을 저었다.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걸을 때도 벌벌 떨리고 있는데, 한 세트를 더 하라고?
남은 체력으론 절대 무리였다.
“안 됩니다. 허억, 이미 한계에요.”
“그럼 될 때까지만 하는 걸로 하죠! 아, 걱정하지 마세요! 기절이라도 하신다면 제가 휴식의 방에다가 고이 모셔다드릴 테니까.”
아세리안이 내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바벨을 번쩍 들었다.
그러더니 내 어깨 위에 막무가내로 올려놓았다.
“어, 어.”
순간 느껴지는 엄청난 무게감에 나는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할 정도였다.
진짜?
이걸 더 하라고?
당장 쓰러지기 직전인데?
아세리안에게 그런 무언의 눈빛을 보냈지만, 그녀는 활짝 웃을 뿐이었다.
“하나씩 차근차근해보죠! 자, 하나! 어어, 내려가셔야죠!”
그녀가 내 어깨를 꾸욱 눌렀다.
젠장.
도와준다는 게 이런 의미였구나.
나는 그녀의 손짓에 맞춰 하체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4세트.
쿵!
이를 악물고 30개를 더 했지만, 더는 무리였다.
나는 그대로 바벨을 던진 채 바닥에 고꾸라졌다.
“커헉, 더, 더이상은 허억, 이제 무리입니다.”
눈앞이 핑 돌았다.
정말 한계까지 끌어 쓴 탓인지, 온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눈을 감으며 사르르 기절하려 할 때였다.
스르릉- 쿵! 스르릉- 쿵!
옆에서 바벨에 달려 있는 중량 플레이트를 빼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내가 사용한 기구들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나 먼저 휴식의 방에 던져 주고 하지.’
지금 상황에선 일분일초가 소중한데.
그렇게 아세리안의 센스에 아쉬워하고 있을 때였다.
“일어나세요. 양쪽에 100kg씩 빼서 이제 800kg이에요.”
“······!”
아세리안의 귓속말에 나는 눈을 번쩍 떴다.
뭐라고?
훈련 마무리하는 것 아니었어?
“아, 혹시 못 하시겠어요? 약점 극복하셔야 할 텐데.”
“······.”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어머, 지금도 힘이 넘치네요. 벌떡 일어나는 것 봐.”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아세리안의 손길에 나는 그저 멍하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
젠장.
그녀의 눈동자에서 내가 어떻게든 남은 개수를 다 채우게 하고야 말겠다는 강한 집념이 엿보였다.
차라리 빠르게 4세트를 다 끝마치고 마음 편하게 쉬는 게 나을지도.
결국 나는 체념한 채 바벨을 들고 하체를 굽혔다.
“끄으으으으윽!”
그 뒤로 무게를 계속해서 줄여간 덕분에 4세트를 무사히 끝마칠 수 있었던 나는 곧바로 기절해 버렸다.
남은 체력은 9% 였다.
어느새 4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4주가 이렇게 길게 느껴진 적은 콜로세움에 들어오고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아세리안과 함께했던 지옥 훈련도 오늘로 끝.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56] [민첩 :60] [체력 : 61]
[정신 : 94] [지력 : 14] [마력 : 73]
[각성 능력 : <초감각> <특급창술>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최상급검술> <최상급단검술> <최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중급치료술> <고급궁술> <최상급검방술> <최상급채찍술> <중급둔기술>]
[보유 스킬(5/5) : <침묵의 망토> <뇌신> <천둥의 숨결> <마력 상쇄> <그림자 표식>]
[업적 특전 : 없음]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진짜 미친 듯이 올랐네.’
그 사이 근력이 10, 민첩이 8, 체력이 5나 상승했다.
저주셋을 착용하고, 한계의 한계까지 쥐어짠 덕분이었다.
아세리안이 옆에서 날 몰아세우지 않았으면 이렇게 빠르게 올리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뭐.
다음날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컨디션은 어때요?”
“좋네요. 오늘은 지옥 훈련도 없었겠다, 스텟도 많이 올렸겠다, 자신감이 넘치네요.”
“성과가 좋아서 다행이에요. 제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전담으로 도와드릴게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최근 내가 들은 것중에 가장 섬뜩한 말이었다.
그녀와 함께 훈련했던 4주간.
단 하루도 기절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앞으로도 하루하루가 기절의 연속이겠군요.”
“다른 사람들은 보니까 시켜도 기절할 때까진 못 하더라구요. 그래서 좀 놀랐어요.”
아세리안은 나를 훈련하면서 틈틈이 사인방에게도 같은 방식으로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나처럼 해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신 스텟이 높지 않으면 할 수 없는 훈련법이었다고나 할까.
띠링!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207 코메인 이벤트 경기가 끝났습니다.]
[잠시 후 메인 이벤트 경기가 시작되오니,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때마침 알림창과 함께 공터에 게이트가 형성되었다.
평소처럼 아세리안에게 가볍게 목례를 하고 게이트를 향해 걸어갈 때였다.
“오늘.”
“······?”
“우리 팀에서 최초의 상위 리그 플레이어가 나오겠죠?”
그녀의 물음에 뒤돌아보니, 말갛게 미소 짓고 있는 아세리안이 보였다.
그 모습에 나는 오랜만에 옅은 미소를 피웠다.
“파티 준비해 두고 계시면 될 것 같군요.”
그리고는 로브를 펄럭이며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띠링!
[모든 상태를 100%로 회복합니다.]
게이트를 통과하자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 너머로는 사방을 둘러싼 성벽이 보였는데, 곳곳이 무너져 있었다.
마치 방금 전까지 대규모 전투라도 치른 것 같은 광경이었다.
내 곁에서 아홉 명의 플레이어들이 더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신께서! 신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셨다!”
“신의 전사가 우릴 구하기 위해 나타났다!”
근처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이 눈물을 주륵 흘리며 소리쳤다.
‘뭐지?’
띠링!
[경기 :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207의 메인 이벤트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형 : 몬스터 처치(단체 PvM)]
[게임명 : 몬스터 웨이브]
[맵 : 헤르세벨그(소)]
[관객 수 : 479,081 명]
[미션 : 몬스터 웨이브로부터 신성석을 사수하세요.]
[신성석은 헤르세벨그 성 중앙 광장에 있습니다.]
[몬스터 웨이브는 앞으로 1주일간 계속됩니다.]
[단체 PvM 미션이지만, 사망자는 부활하지 않습니다.]
[현재 생존자 수 : 10 명]
[보너스 포인트 조건이 있습니다.]
[많은 숫자의 몬스터를 죽일수록 보너스가 상승합니다!]
[신성석 사수까지 남은 시간 : 168:00:00]
[1시간 후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합니다.]
미션 내용을 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어려울 것 없는 미션.
성벽이 있으니까 열 명의 플레이어들이 동서남북에 있는 네 개의 성문만 지키면 승리를 챙길 수 있다.
나는 가장 먼저, 함께 경기를 치러나가게 될 플레이어들의 스텟부터 확인했다.
띠링!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카롤]
[성향 : 안전]
[근력 : 68(+?)] [민첩 : 64(+?)] [체력 : 69(+?)]
[정신 : 55(+?)] [지력 : 7(+?)] [마력 : 55(+?)]
[각성 능력 : <최상급검술> <상급살기> <상급마나운용>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나쁘지 않네.’
메인 이벤트를 뛰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평균 이상의 스텟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여덟 명의 스텟도 확인했지만 크게 다르지 않았다.
모두 카롤과 비슷한 수준.
팀운은 제법 잘 나왔다.
심지어 미션은 내가 제일 선호하는 다대일 전투.
왠지 느낌이 좋았다.
‘시작해 볼까.’
그렇게 상위 리그로 가기 위한 마지막 경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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