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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57화 (57/205)

57화. Greatest Of All Time(7)

창을 쥐고 있던 분신의 오른팔이 바닥을 뒹굴었다.

‘이, 이게!’

순간 나와 분신이 동시에 깜짝 놀랐다.

나는 갑자기 찾아온 깨달음, 그리고 오랫동안 소망해 왔던 특급 창술을 각성했다는 것에.

내 분신은 오른팔이 잘렸다는 것에.

“······.”

“······.”

우리 사이에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곧장 분신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남은 시간은 4분 17초.’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안에 녀석을 죽여야 했다.

―오, 이럴 수가! 분신에게 압도적으로 기울었던 전투를 렌이 단숨에 뒤집습니다!

―방금 뭐죠!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공격이었는데요! 분신과 싸우는 도중에 렌이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보입니다!

―렌이 역습을! 이 싸움 아직 몰라요!

분신이 인벤토리에서 검을 꺼내며 거리를 벌렸다.

오른팔이 잘렸기에 창을 포기한 것이다.

창은 지렛대의 원리가 가장 많이 적용되는 무기.

한 팔로는 창의 위력을 절반도 끌어낼 수 없을 테니까.

‘이 새끼, 시간을 끌고 있어.’

내가 돌진할 때마다 녀석이 스텝을 밟으면서 좌우로 빠져나갔다.

내 피의 강화 특전이 끝나길 기다리는 것이다.

하지만 내 속도로는 녀석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민첩 스텟이 너무 많이 차이 났다.

‘씨발, 아무것도 못 하게 만드네.’

내가 활을 꺼내 들려고 인벤토리를 여는 순간, 녀석이 훅! 하고 내게 대쉬했다.

그 탓에 나는 활을 꺼내지 못한 채 녀석의 역습에 대비해야 했다.

활을 꺼내 들기엔 너무 가깝고, 창을 휘두르기엔 닿지 않는다.

사슬낫 또한 마찬가지.

딱 그 공수 전환을 할 수 있는 절묘한 거리를 끈질기게 유지하기에, 창 말고 다른 무기를 쓸 수가 없었다.

‘침착하자.’

이 상태로는 어차피 피의 강화 특전이 끝나기 전까지 녀석을 죽이는 게 불가능할 것이다.

그래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피의 강화 특전이 끝나더라도, 이미 승기는 내게 확실하게 넘어왔으니까.

녀석의 스텟이 아무리 높아도, 왼손으로 휘두르는 검조차 막아내지 못할 내가 아니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나만 피의 강화 특전이 끝나나?

시간이 지나면 녀석의 특전도 종료된다.

그 순간이 되면, 녀석은 확실하게 죽은 목숨이었다.

띠링!

[<피의 강화> 유지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피의 강화> 로 상승한 스텟이 초기화 됩니다.]

[근력 : 67(+5)(+16)] [민첩 : 75(+5)(+18)] [체력 : 72(+5)(+11)]

[정신 : 110(+18)] [지력 : 17(+3)] [마력 : 98(+5)(+15)]

잠시 후 피의 강화 특전이 종료됐다는 알림창이 뜨며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이걸로 녀석과의 스텟 총합이 132 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자, 들어와 보라고.’

내 특전이 끝났다는 것을 눈치챈 것인지, 분신의 눈동자가 잠시 빨갛게 변했다.

악마의 눈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현상 같았다.

콰지지지지지지직!

그러더니 곧장 뇌전을 피우며 거리를 좁혀 내게 돌진해 왔다.

‘뚫고 못 들어올걸.’

나는 창의 긴 리치를 이용하여 녀석이 들어올 경로를 차단하는 것에 집중했다.

이제부터는 버티기만 하면 된다.

시간은 내 편이니까.

챙! 채채챙! 챙! 챙!

콰직! 콰지직!

‘이 정도면 충분히 버틸 수 있어.’

스텟 차이가 더 벌어졌음에도 이전보다 녀석을 상대하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최상급 검술과 특급 창술의 격차는 그만큼 대단했다.

스강!

내가 스타일을 바꾸자마자, 분신이 더욱 격렬하게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녀석에게서 무수히 많은 허점들이 생겨났다.

분신이 피의 강화가 끝나는 순간 방법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소 희생을 감수하려는 것이다.

‘안 통해.’

하지만 나는 드러난 빈틈으로 공격을 찔러 넣지 않고, 녀석을 저지하는 것에만 신경 썼다.

괜히 공격했다가 내가 더 손해를 볼 수도 있었으니까.

분신 녀석이 내게 했던 것처럼, 나 또한 녀석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오, 렌의 움직임이 엄청나게 느려졌습니다. 아무래도 스텟을 상승시키는 스킬이 종료된 모양인데요.

―분신의 움직임은 여전히 빠릅니다. 하지만 렌의 경우에 비추어 봤을 때, 분신도 곧 스킬이 종료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분신 쪽에서 더 악착같이 달려드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네요.

―그걸 렌도 알고 수비를 굳건히 하는 거군요! 절대 무리를 하지 않습니다!

‘답답해 죽겠지.’

녀석은 검이 닿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한 손밖에 남지 않은 이상, 검 말고는 방법이 없다.

활도 시위를 당기려면 양손이 필요하고, 사슬낫도 한 손만으로 사슬을 잡고 돌릴 수 없을 테니까.

‘슬슬 끝나가나 보군.’

녀석의 공격이 한층 대담해지고 과감해져 갔다.

다리 한쪽쯤은 얼마든지 내놓겠다는 듯이 돌진해 오고 있었다.

콰지지지지지직!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뒤로 빠지며 창을 휘둘러 녀석이 다가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챙! 챙! 스강!

그렇게 한참 동안 수비에 집중하다 보니, 녀석의 움직임이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확연하게 느려졌다.

‘악마의 눈.’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안우진(분신)]

[성향 : 중용]

[근력 : 112(+?)] [민첩 : 117(+?)] [체력 : 103(+?)]

[정신 : 86(+?)] [지력 : 68(+?)] [마력 : 85(+?)]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최상급검술> <최상급단검술> <최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중급치료술> <최상급궁술> <상급검방술> <중급채찍술> <중급둔기술> <상급극술> <상급도술>]

[업적 특전 : 역천자]

하.

이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약을 팔아.

녀석은 지금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피의 강화 특전이 끝났다고 생각하게끔 유도하여 내가 녀석에게 달려들도록.

‘그런 꼼수는 안 통해.’

녀석도 내가 알아차렸다는 걸 인지했는지 다시 과감하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가지 않았다.

다시 움직임이 느려진 것이다.

‘진짜로 특전이 끝났군.’

악마의 눈으로 확인해 보니 확실했다.

이걸로 이 싸움은 완전히 내게 넘어온 것이다.

‘됐어.’

녀석의 특전이 끝났다는 걸 확인한 나는 곧바로 스타일을 바꿨다.

그러자 녀석도 공격 위주에서 곧바로 수비로 태세를 전환했다.

챙! 채챙! 콰지지직!

‘어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고.’

단숨에 전세가 역전되며 내가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그림이 그려졌다.

└와 앀ㅋㅋㅋㅋ 공수 전환 속도 봐라. 진짜 예술이네 ㅋㅋㅋㅋㅋ

└렌이랑 분신이랑 거의 동시에 스타일이 바뀜 ㅋㅋㅋㅋ 진짜 성계 대항전이 아니었으면 짜고 치는 거라고 생각했을듯 ㅋㅋㅋㅋ

└우승 성계가 거의 확정됐다고 마지막 경기 안 봤으면 땅을 치고 후회할 뻔 ㅠ 이건 진짜 상위 리그에서도 보기 어려울 정도로 수준 높은 싸움임 ㅠ

└엉아들아, 이제 인정할건 인정하자. 나도 무림에 걸었는데, 쟤는 진짜 수준이 달라 ㅋㅋㅋ 역대 하위 리그 플레이어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퍼포먼스였음 진심.

└ㅇㅇ 윗댓글 동감. 렌보다 셌던 애가 없던건 아닌데, 퍼포먼스로만 따지면 렌을 능가할 네임드가 없다. GOAT 인정.

└9경기에서 블랙 오크들 학살하던 모습만 보고 그냥 흔하디흔한 양학용인줄 알았는데.. 자기보다 고수들 상대로도 급이 다르네. 진짜 간만에 명경기 봤다.

채채챙! 챙! 챙!

내 창을 막아내던 분신이 휘청했다.

녀석의 근력이 나보다 조금 더 높긴 하지만, 한 손으로 창의 공격을 막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끝이군.’

나는 자세가 무너진 분신에게 창을 휘둘렀다.

이제 녀석과의 전투를 끝낼 시간이 왔다.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앙!

그때 지금까지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던 벽력이 터졌다.

뇌전이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피의 강화 특전이 꺼져 있었기에, 전만큼 강한 위력을 발휘하진 못했지만.

콰지지지지지지지지지직!

한계에 달해 있는 녀석을 마무리하는 데엔 충분했다.

벽력을 맞은 분신의 몸이 터져나갔다.

띠링!

[@!#[email protected]

# ‘렌(분신)’ 을 처치했습니다.]

녀석이 죽는 모습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보였다.

뇌전에 조각조각 나는 팔다리들.

공중에 흩뿌려지는 붉은 피들.

그리고 바닥에 쓰러지는 모습까지.

‘이겼어.’

녀석을 죽였다는 알림창을 보자 온몸의 힘이 쭈욱 빠져나갔다.

이걸로 성계 대항전이.

완전히 끝났다.

‘내가 해냈어.’

그것도 내가 그렸던 최상의 결과로.

[10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1위. ‘지구’ 4킬]

[2위. ‘웨스테로스’ 2킬]

[2위. ‘무림’ 2킬]

[3위. ‘알프하임’ 1킬]

[3위. ‘졸본’ 1킬]

[3위. ‘바빌론’ 1킬]

[성계 ‘지구’가 킬 수 1위를 달성했습니다.]

[10경기는 지구에서 승리를 가져갑니다.]

[축하합니다!]

알림창이 뜸과 동시에 돔 경기장 전체가 하얀빛으로 물들었다.

그러자 죽은 플레이어들의 시체, 내 몸에 묻어 있는 피, 뒹구는 목과 팔다리들이 가루가 되어 흩날리더니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종내에는 처음 입장했을 때처럼 때 묻은 곳 없이 깔끔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현재 순위]

[1위 : 지구 / 4승]

[지구가 성계 대항전 최종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특전:최강의 성계>을 획득합니다!]

[<차원 특전:최강의 성계>]

[성계 대항전에서 우승한 성계에게 지급되는 특전.]

[적용 시 모든 스텟이 + 10% 상승합니다.]

[지구를 우승으로 이끈 MVP 플레이어로 ‘렌’이 선정되었습니다.]

[<스킬북:그림자 표식>을 획득합니다!]

[스페셜 이벤트-성계 대항전을 종료합니다.]

[소속된 팀의 팜으로 이동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성계 대항전에서 너무나 많은 걸 얻었다.

5년 동안 고급의 경지에 묶여 있던 창술도 특급으로 성장했고.

성계 특전도 획득했고.

전체적으로 내 모든 것들이 한 단계 성장한 것 같았다.

이곳에서 내가 이뤄야 할 건 모두 해냈다.

‘상위 리그.’

아득한 절망을 선사했던 상위 리그로.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

* * *

마계의 최하층.

누군가가 콜로세움 시스템에 강제로 접근하여 성계 대항전을 보고 있었다.

거대한 왕좌에 앉은 채 한쪽 팔로 턱받침을 하고 있는 남성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니 경기를 보던 남자가 크게 콧바람을 내쉬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랜만에 정말 멋진 경기를 본 것 같습니다. 이번 성계 대항전, 콜로세움에서 최초로 열리는 대규모 이벤트이다 보니, 시작 전부터 말들이 많지 않았습니까?

―예. 그리고 실제로 5경기까지 치러질 때만 해도 관객 여러분께서 지루하다는 반응을 많이 보이셨죠. 어떤 성계가 최강인가, 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경기가 시작됐습니다만, 사실 그걸 하위 리그에서 출전하는 플레이어들이 결정하는 게 과연 정확한가, 라는 의문도 있었습니다.

―네, 겉만 요란하지, 실속은 하나도 없는 이벤트였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하지만 6경기부터 모든 게 달라졌죠. 최약의 성계이자, 네임드가 한 명도 없다고 알려진 지구에서 시작된 돌풍이 성계 대항전을 휩쓸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충격적인 결과이긴 합니다. 설마 우승 확률 0.1%의 지구가 우승할 거라고 어느 누가 생각이나 해봤겠습니까? 그런데 놀랍게도 그 기적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예. 지구가. 지금 우승을 확정 지었습니다. 전 앞으로 누군가 제게 하위 리그의 GOAT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렌을 꼽을 겁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말의 고민 없이 렌! 이라고 대답할 겁니다.

남자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조금만 기다리게. 내 친구, 블라디미르여. 그대와 다시 만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니.”

남자의 목소리가 대전을 울렸다.

그의 머리 위에 씌워진 왕관이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의 불빛에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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