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56화 (56/205)

56화. Greatest Of All Time(6)

[현재 생존자 수 : 38 명]

내 분신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각양각색의 성계 플레이어들이 내 분신을 레이드 하고 있었다.

그중에 웨스테로스 출신은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견제하면서 싸우는 게 아닌, 레이드 형식의 잘 짜여진 구성.

아무래도 이대로는 내 분신을 죽일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플레이어들이 전략적 동맹을 맺은 것 같았다.

‘게임이 안 되네.’

남은 생존자 거의 전부가 내 분신 하나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었으나, 격차가 너무 심했다.

전투가 아닌, 학살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씨발! 탱커가 고작 두 번의 공격을 못 막는다고?”

“너무 빨라요! 일단 다리부터 묶어야 해요!”

“그건 나도 아는데! 돌파를 막을 수가 없어!”

내 분신은 뭉쳐 있는 플레이어들을 요리조리 뚫고 들어가 한 명씩 차근차근 죽여가고 있었다.

이대로는 얼마 못 가 전멸할 것이다.

‘피의 강화 특전이 끝난 이후에 싸우면 좋은데.’

현재 나와 분신은 스텟 총합으로 계산하면 37 포인트 차이가 난다.

하지만 양쪽 다 피의 강화 특전이 꺼진다면 15까지 줄어든다.

특전이 꺼진다는 것만으로도 녀석과의 격차를 크게 메울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녀석의 특전이 언제 꺼질지 모른다는 거지.’

만약 피의 강화 특전이 방금 전에 켜진 거라면?

지금부터 30분 동안 녀석을 피해 도망 다닐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현재 내 피의 강화 특전의 남은 시간은 18분 27초.

녀석이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면, 18분 후에 스텟의 차이는 아득할 정도로 벌어진다.

‘도망 다니는 건 패스.’

숨어있을 수도 없다.

이렇게 뻥 뚫려 있는 경기장에서, 녀석의 초감각을 피할 수 있을 만한 은신 실력이 안 된다.

결국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려면.

‘18분 안에 승부를 봐야 해.’

마음을 정리한 나는 분신이 싸우고 있는 전장으로 뛰어들었다.

“렌이다!”

“잠깐! 우린 분신을 죽일 생각인 거지, 당신한텐 검을 휘두를 생각이 없······!”

서걱!

그리고 플레이어들부터 죽이기 시작했다.

몇몇 플레이어들이 내게 적의가 없음을 알렸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 죽였다.

녀석의 몸에서 붉은빛이 흘러나왔으니까.

‘거짓말이 아니었어도 죽였겠지만.’

네임드가 아닌 한, 녀석들은 걸어 다니는 체력 포션일 뿐이었다.

분신에게 잡아먹힐 바에야, 내가 죽이고 체력을 회복시키는 게 나았다.

콰지지지지지지직!

“젠장, 녀석의 분신이라도 죽여보고 싶었는데······.”

서걱!

작게 읊조리는 낭인족을 끝으로 경기장에 침묵이 감돌았다.

[현재 생존자 수 : 1 명]

[킬 수 현황]

[1위. ‘지구’ 3킬]

[2위. ‘웨스테로스’ 2킬]

[2위. ‘무림’ 2킬]

[3위. ‘알프하임’ 1킬]

[3위. ‘졸본’ 1킬]

[3위. ‘바빌론’ 1킬]

남은 생존자 수 1.

남은 네임드 분신의 숫자도 1.

결국 녀석과 나, 단둘만 남았다.

―묘한 상황이 연출됐네요. 결국 마지막까지 생존한 한 명의 플레이어와 한 명의 네임드 분신은 렌 혼자뿐입니다.

―사실 전 네임드 분신 중에서는 렌이 가장 먼저 죽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가 이번 성계 대항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선보이긴 했지만, 역대 네임드들과 비교하자면 아직 좀 부족한 감이 있다고 봤거든요.

―저 또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막상 까보니 결과는 전혀 달랐죠.

―예. 그 어떤 역대 네임드도 결국 렌만큼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GOAT 경쟁에, 렌 또한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것을요.

콰지지지직-

내 분신의 몸에서 붉은색 뇌전이 피어올랐다.

검은색 로브로 온몸을 꽁꽁 두른 채, 악귀 가면을 쓰고 있는 모습은 무척 기괴해 보였다.

잠시간의 소강상태.

‘벽력만 안 터졌으면 좋겠는데.’

현재 내가 녀석보다 우위에 있는 능력은 정신과 마력뿐.

최대한 뇌전을 이용해 녀석에게 데미지를 쌓아가면서 공략해야 하지만, 중간에 터지는 벽력만큼은 내가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

‘이런 상황을 정말 싫어하지만.’

부디 안 터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스강!

그때 내 분신이 엄청난 속도로 창을 찌르며 들어왔다.

‘맞대결만큼은 피해야 해!’

나는 빠르게 뒤로 빠지며 창을 옆으로 쳐내려고 했다.

그러자 녀석이 찔러 들어오던 창의 궤도가 빠르게 바뀌며 내게 힘싸움을 유도했다.

‘어딜!’

나 또한 빠르게 창의 궤적을 바꾸며 맞섰다.

챙!

콰지지지지직!

창과 창이 맞부딪히자, 나와 분신의 뇌전이 주변을 휩쓸었다.

순간적으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휙! 휘익! 휙휙!

녀석의 창이 급소만을 노리며 뱀처럼 휘어 들어왔다.

‘젠장. 내가 데미지를 쌓을 시간을 주지 않겠다?’

녀석은 지금 피지컬의 우위를 이용해 내가 맞대결을 펼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계속 이런 상황이 연출된다면 위험할 수 있었다.

데미지를 쌓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다.

챙!

“크윽!”

어쩔 수 없이 막아내다 보니, 내 몸이 계속해서 뒤로 밀렸다.

양손이 저릿저릿했다.

창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가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때였다.

‘빈틈!’

쉴 틈 없이 몰아붙이던 녀석이 마무리를 할 생각이었는지 창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다 보니, 철벽처럼 내 창을 막아내던 녀석의 방어막에 균열이 생겨났다.

나는 곧장 자세를 낮추며 녀석의 품으로 뛰어 들어가려 했다.

잠깐.

갑자기 빈틈이 생겨난다고?

이렇게 절묘한 순간에?

‘함정!’

나는 곧장 몸을 멈춰 세웠다.

후우웅!

그러자 내 눈앞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가는 녀석의 창이 보였다.

젠장.

날 유혹하고 있던 거구나.

‘곤란한데.’

이렇게 된 이상 앞으로 녀석의 빈틈이 보여도 찌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게 의도적으로 노출한 건지, 우연히 생겨난 건지 판단할 수가 없으니까.

챙! 채채챙!

내가 녀석의 노림수를 간파하자, 분신의 창이 노골적으로 싸우자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고명이 이런 기분이었겠군.’

어떻게 녀석을 공략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스텟이라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밀리지 않았을 텐데.

‘일단 기회를 만들어낼 생각부터 하자.’

나는 곧바로 분신에게 창을 맞찔러 들어갔다.

녀석의 공격을 최대한 흘려내며 뇌전으로 데미지를 쌓아가려던 전략에서 정면 대결로 스타일을 바꾼 것이다.

지금까지 녀석이 실수하길 기다리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면, 이제는 내가 힘으로 찢어가며 기회를 만들어낼 것이다.

‘씨발.’

그러자 분신도 내 바뀐 스타일에 맞춰 움직임이 변화했다.

이제는 오히려 녀석이 내 창을 흘려내기 시작한 것이다.

힘으로 찢으며 기회를 만들어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도록 애초에 차단해 버리려는 의도였다.

‘어디, 언제까지 따라올 수 있나 보자고.’

나도 곧바로 녀석의 움직임에 맞춰 스타일을 바꿔 나갔다.

* * *

└뭐야? 왜 분신의 움직임이 렌보다 빨라? 진짜로 렌은 평균 스텟도 안되는 거야?

└우와. 진짜 미쳤땈ㅋㅋㅋㅋㅋㅋㅋㅋ 그 짧은 순간에 도대체 몇 번이나 움직임을 바꾼 거임?

└서로 계속해서 상대 스타일에 역카운터를 치네 ㅋㅋㅋ 진짜 개쩐다···

└와··· 내가 지금 하위 리그를 보고 있는게 맞아?? 나 지금 소름 돋았음;; 이렇게 수준 높은 경기를 보게 될 줄이야..

└진짜 조오온나 기대된다. 얘 빨리 상위 리그로 올려보내. 진행 시켜, 어서!

└스텟 차이가 제법 나 보이네. 도대체 렌의 원래 스텟이 얼마나 낮았던 거임? 도대체 뭔 짓을 했길래 스텟이 저렇게 뻥튀기될 수 있는 거지? 여기서 성계 특전까지 받으면 훨씬 더 강해지는거아님?

* * *

한동안 계속해서 수 싸움을 벌이며 분신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을 때였다.

화아아아아악!

순간적으로 불안감이 엄습했다.

뒷목이 쭈뼛쭈뼛하며 온몸에서 오소소 소름이 돋아 올랐다.

처음 겪어보는 감각이었다.

‘뭐지?’

나를 향해 내리치고 있는 분신의 창.

왠지 저 공격을 막아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내 안의 무언가가 계속해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치고 있을 뿐.

‘피하면 더 큰 손해를 볼 것 같은데.’

지금 상황에서는 내리치는 창을 흘리며 역으로 창을 찔러주는 게 훨씬 많은 이득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피한다면? 뒷걸음질 치는 나를 분신이 계속해서 몰아붙일 것이 분명했다.

‘젠장. 피하자.’

하지만 나는 내 안에 울려 퍼지는 본능의 뜻을 따랐다.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기에, 무슨 이유가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뒤로 쭉 물러날 때였다.

쐐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액!

순간적으로 분신의 창에서 공기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마어마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마치 한줄기 섬광이 스쳐 지나간 것 같았다.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뒤이어 엄청난 굉음이 고막을 때렸다.

무시무시한 뇌전이 사방을 휩쓸고 지나갔다.

‘벽력!’

가까스로 벽력의 범위에서 벗어난 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온몸에서 미친 듯이 소름이 돋았다.

내 본능이 아니었다면 온몸이 터져 죽을 뻔한 것이다.

내가 벽력을 피하자 내 분신도 의외라는 듯 가면 너머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겨우 살았네. 근데 갑자기 이런 위기감이 왜 든 거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그걸 증명하듯 이어지는 분신의 공격에도 내 본능은 잠잠했다.

그 이전의 소호나 고명, 아니 회귀 전의 부채 여인과 싸울 때도 이런 감각을 느껴본 적은 없었는데 왜 하필 녀석의 벽력에만 반응한 걸까?

‘혹시, 즉사할 만한 스킬이 발동될 때만 느껴지는 건가?’

하지만 이건 그저 가설에 불과할 뿐이었다.

좀 더 사례가 쌓여 봐야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일단은 전투에 집중하자.’

챙! 채채챙! 챙! 챙!

그 이후에도 지루한 소모전이 계속되었다.

확실한 건, 내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것.

녀석과의 스텟 차이를 커버하기 위해 더 많이 움직이다 보니, 체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었다.

내 분신은 내가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날 압박했다.

‘이 지독한 새끼.’

―아, 처절하네요. 렌이 최선을 다해 발버둥을 쳐보지만, 분신은 그 어느 무엇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을 천천히 압박해 나가는 것 같습니다.

―지금 렌은 답답해 미칠 지경일 겁니다. 계속해서 조금씩 손해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보이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이 전투로 우리는 렌의 진면목을 보게 되었습니다. 결국 분신도 렌 본인이 지금까지 싸워왔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 아닙니까.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엄청난 수 싸움의 연속이네요. 같은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면, 하드웨어가 더 뛰어난 쪽이 이기는 건 당연한 겁니다.

피의 강화 특전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

한마디로 5분 안에 녀석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이 경기는 내 패배라는 것.

물론 그 전에 녀석의 피의 강화 특전이 풀릴 수도 있지만, 그건 내 희망 사항일 뿐이었다.

후웅! 휙! 휙!

그리고 내 분신이 조급해하지 않고 조금씩 조여 오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다.

피의 강화 특전이 5분 이내로 남았다면 녀석이 저렇게 여유로울 리가 없었다.

‘어떻게든 그 전에 승부의 수를 띄웠을 거야.’

숨이 턱 막혔다.

시간마저도 분신의 손을 들어준 상황.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의 스텟 차이.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철벽 수비.

스텟이 훨씬 높음에도 불구하고 조급해하지 않는 인내심까지.

‘씨발. 덕분에 많이 배웠다, 이 개자식아.’

나는 더욱더 힘차게 창을 휘둘렀다.

남은 시간 동안.

이 한 몸을 하얗게 불태울 생각이었다.

스강!

순간 피가 튀며 왼쪽 어깨에서 불에 데인 듯한 느낌이 났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녀석에게 파고들었다.

콰지지지지지직!

분신의 창이 한줄기 섬광을 만들며 날아들었다.

의지를 숨기는 최상급을 넘어, 기세까지 숨기는 고급의 경지가 만들어 낸 찌르기.

그래서 그 공격을 보고 있노라면, 위화감이 들지 않는다.

저게 얼마나 위협적인 공격인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젠장. 어떻게 해야 저 찌르기를 넘어설 수 있을까.’

이 공간을 통째로 내가 차지할 수 있다면 저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 텐데.

나도 분신의 창에 맞서 창을 찔러 넣었다.

콰지지지지지직!

내 창이 하나의 직선을 만들며 뻗어나갔다.

이 직선들을, 수 없이 많이 뿌릴 수만 있다면.

그럼 이 영역을 내가 차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창을 뻗을 때였다.

‘뭐지?’

나도 모르게 엉뚱한 곳을 찔러 넣고 있었다.

내 본능이 시킨 움직임이었다.

왠지 이곳으로 창을 찔러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달까.

그 감각에 너무나 확고한 확신이 들어있었기에, 난 그저 무아지경에 가까운 상태로 본능을 따라 창을 찔러 넣을 뿐이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바바바바박!

하나의 직선이 잘게 쪼개지면서 엄청난 숫자의 선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

“······!”

수많은 선들이 순식간에 공간을 잠식해 나아갔다.

띠링!

[<특급창술>을 각성하셨습니다.]

서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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