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화. 초신성(3)
‘도대체 어떻게?’
모든 움직임엔 리듬이란 게 존재한다.
그건 격렬하게 싸우는 동안에도 마찬가지.
하지만 벽력은 그 리듬을 깨부수고 들어간다.
엇박자로 들어오는 공격이라는 것.
그렇기에 이걸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적어도 하위 리그에서는 없을 줄 알았다.
나라고 해도 피하기 어려울 것 같았으니까.
‘보고 피한 건 아니야.’
당황하는 소호의 표정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녀석은 벽력이 터지기 직전, 뭐에 씌인 사람처럼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아무래도 육감이 발달하는 사냥본능 덕분에 무언가 위험하다는 것을 느끼고 피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야. 만약 보고 피한 거였다면, 애초에 상대조차 되지 않았겠지.’
그랬다면 싸우나 마나일 것이다.
날 가지고 노는 수준의 실력자란 뜻일 테니까.
“후. 안타깝구나, 인간. 그게 네가 가진 최후의 한 수인 모양인 것 같은데. 아르웬님도 그걸로 쓰러트렸고.”
“······.”
“이 세상에선 감히 넘어설 수 없는 종족의 격이란 게 있는 것이다. 앞으로는 호인족들을 만나면 눈도 마주치지 못하게 만들어주마.”
소호가 우드득- 우드득- 주먹에서 뼛소리를 내더니 내게 달려들었다.
다시 시작된 격렬한 싸움.
‘최후의 한 수라······.’
나는 단 한 번도 벽력을 최후의 한 수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보유하고 있는 스킬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언제 발동될지도 모르는, 0.1%의 확률에 의존할 정도로 미련하지 않았다.
애초에 녀석을 쓰러트리는데 벽력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침묵의 망토.’
나는 순간적으로 어둠 속에 녹아들며 녀석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킁- 킁-
하지만 침묵의 망토는 녀석에게 통하지 않았다.
“거기냐!”
녀석이 냄새를 맡더니 곧장 내가 있는 방향으로 날카로운 손톱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쯧.’
침묵의 망토는 소리를 차단시켜줄 뿐, 냄새까지 없애주진 않는다.
한마디로 녀석처럼 수인족들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것.
‘개 쓰레기 같은 스킬.’
인정해야 했다.
침묵의 망토는 내가 고른 스킬 중 가장 쓰레기였다.
나는 이를 갈며 침묵의 망토를 해제했다.
성계 대항전이 끝나면 더 좋은 스킬이 없나 찾아봐야 겠다.
“잡스러운 기술이나 쓰는구나!”
은신을 해제하자 소호가 크게 포효하며 손톱을 휘둘렀다.
챙!
내 창에 깃든 뇌전과 녀석의 손톱에 담긴 마력이 부딪힐 때마다 작은 빛무리를 만들며 사라졌다.
그 빛무리들로 인해 깜깜한 대로가 순간적으로 환해질 정도였다.
뇌신도 통하지 않는 것 같고.
침묵의 망토 스킬은 꽝.
마력 상쇄는 소호의 손톱이 워낙 단단해서 녀석의 마력을 부숴도 생채기 하나 남지 않는다.
결국 녀석에게 통하는 스킬이 존재하지 않았다.
‘짐승처럼 달려드는 것도 문제야.’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녀석이다 보니, 공격해 들어오는 방법도 무척 다양했다.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극도의 긴장감에 온몸의 신경이 날카롭게 벼려졌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어.’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1회차 때 언제나 나보다 강한 존재들과 싸워왔지 않았던가.
그때도 지금처럼 마땅한 스킬이 없었지만, 결국 살아남았었다.
피지컬로 안 된다면, 테크닉으로 찍어 누른다.
‘다시 침착하게.’
엄청난 속도로 쇄도해 오는 소호의 손톱.
나는 녀석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빈틈!’
한동안 뒷걸음질을 치며 소호의 공격을 막는 사이, 좁은 틈이 보였다.
평소라면 쳐다도 보지 않았을 만큼 작은 틈이었다.
너무 작은 틈이라 그다지 큰 데미지를 넣을 수 없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소호와의 싸움을 소모전으로 끌고 가려고 마음먹은 상황.
그렇기에 그 작은 틈은 내게 너무나도 맛있는 먹잇감이었다.
서걱-
“흥.”
빈틈을 찌르고 들어간 덕분에 소호의 어깨에 옅은 자상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소호는 아무런 감흥도 없다는 듯이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러 댔다.
그러자 드러나는 또 다른 빈틈.
서걱-
이번엔 소호의 오른쪽 옆구리에 옅은 상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잘도 도망 다니는 구나!”
이번에도 소호는 이런 상처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오히려 과감하게 움직였다.
거리를 좁혀 어떻게든 내 품속으로 파고들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럼 나야 고맙지.’
푹- 푹- 푹-
나는 이전보다 확연히 많아진 틈새로 계속해서 창을 휘둘렀다.
소호의 몸에 조금씩, 옅은 자상들이 늘어가기 시작했다.
작은 상처들에서 흘러나오는 한두 방울의 피들이 어느새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많아졌다.
이대로 계속 싸우게 된다면 녀석은 과다출혈로 사망할 것이다.
“······!”
녀석도 그걸 깨달은 것인지 더는 무모하게 돌진해 오지 않았다.
나처럼 방어에 치중하며 기회를 엿보기 시작한 것.
그러자 싸움의 양상이 무척 단조로워졌다.
‘후우.’
나는 숨을 돌리며 녀석의 빈틈을 훑었다.
더 이상 찌르고 들어갈 만한 공간이 보이지 않는 상황.
이제부터는 나도 손해를 감수하며 싸워야 한다.
물론 지금 상태에서 버티기만 해도 내가 이길 수 있을 것이다.
체력의 문제만 없다면.
[남은 체력 : 42%]
천둥의 숨결로 인해 체력 소모가 무척 심했다.
아마 녀석이 과다출혈로 쓰러지기 전에 내가 먼저 지칠 것이다.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어떻게든 녀석에게 더 큰 피해를 강요해야 해.’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대충 털어내고, 이번엔 내가 먼저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챙! 채챙!
다시 시작된 지루한 공방전.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가 녀석에게 의도적으로 빈틈을 노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크게 위협적이지 않을 만한 곳들로.
“놈!”
그러자 먹잇감을 낚아채는 것처럼 소호가 공간을 찌르며 내게 파고들었다.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준 공간을 이용해서.
우리의 몸이 순간적으로 한번 겹쳤다 떨어졌다.
삭-
순간 왼쪽 옆구리에서 화끈한 느낌이 전해졌다.
힐끗 살펴보니 살덩이가 뭉텅이로 찢겨나가 있었다.
띠링!
[신체 일부가 크게 훼손되어 체력이 대폭 하락합니다.]
[남은 체력 : 33%]
‘괜찮아. 장기는 안 다쳤어.’
나는 곧장 소호를 살폈다.
녀석의 가슴에는 사선으로 커다란 자상이 남아 있었다.
베인 가슴에서 피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득 봤어.’
무게추가 확실하게 내 쪽으로 기울었다.
저 상처라면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다.
“투쟁이란 것을 아는 녀석인 줄 알았더니! 이 겁쟁이 자식!”
소호가 다시 내게 달려들었다.
자신의 상처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꼈는지 무척 조급해진 모습이었다.
“네가 진정 전사라면 내게 맞서 싸워라!”
소호가 광분하여 소리쳤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뭐라고 하든 깔끔하게 무시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거다.’
나는 그 이치를 너무나 뼈저리게 알고 있었으니까.
한 가지 불안한 점이 있다면.
‘부디 그때까지 체력이 버텨주길.’
* * *
└아 ㅅㅂ 눈 버렸네. 존나 지루함 ㅡㅡ
└ㅇㅈ 기대 엄청 많이 했는데 렌 저 ㅂㅅ이 재미없게 경기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여튼 하위 리그만 보러 다니는 하층민 새끼들은 보는 눈이 없어요. 너넨 저 고도의 심리전이 안보임? ㅋㅋㅋ
└솔직히 난 손에 땀을 쥐고 보는 중. 저 렌이라는 애는 롱런하겠네. 무식하게 피지컬로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는 상위 리그 올라오자마자 3초 컷임.
└진짜 이해가 안 되네. 어떻게 저런 애가 지구에서 나왔지? 저건 한두 번 싸워서 할 수 있는 수준의 플레이가 아닌데?
└관람료가 없어서 하위 리그나 보는 찌끄레기들에게 내가 친히 설명해줄게. 렌이 애초에 스텟에서 심하게 밀리는 것 같으니까 바로 방어 위주로 플레이하지? 그러면서 조금씩 데미지 쌓다가 소호가 그걸 깨닫고 플레이 스타일이 변하자마자 렌이 그에 맞카운터 치면서 대응함. 소호가 작은 것을 내주면서 큰 걸 취하려고 하니까 그거 안 먹고 더 작은 거 찾아 찌르면서 영리하게 싸운 것임. 이건 진짜 칭찬할 수밖에 없네.
└ㅋㅋㅋㅋ 냅두셈. 어차피 못알아 쳐먹음. 쟤들처럼 치고받고 싸우는 거나 좋아하면 뭐 하러 경기함? 그냥 스텟 높은 애들만 뽑아서 상위 리그에 올리면 되는걸 ㅋㅋㅋㅋ
└근데 체력이 좀 부족해 보이는 게 하자네 ㅋㅋ 그것만 보완하면 좋을듯.
* * *
소호의 생명력은 무척 끈질겼다.
피를 철철 흘리기 시작한 지 10분째.
녀석은 움직임이 조금 느려졌을 뿐, 여전히 내게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끝이다.
“이 하등한 종족 주제에. 감히!”
“헉, 허억, 헉, 헉.”
전보다 더 매섭고 과격해진 공격들.
이제는 아예 방어를 포기한 채 어떻게든 일격으로 날 죽이겠다고 마음먹은 것 같았다.
[남은 체력 : 18%]
남은 체력이 얼마 되지 않아 눈앞이 가물가물하고 팔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던 상황.
그래서 내심 쫓기는 마음이었는데, 다급한 소호의 모습에 나는 적잖이 안심되었다.
‘저 녀석도 한계구나.’
이제부터는 정신력의 싸움이다.
녀석이 과다출혈로 먼저 죽거나, 아니면 내 체력이 떨어져서 온몸이 난자당해 죽거나.
‘어떻게든 버틴다.’
나는 마음을 다잡았다.
그때였다.
소호가 얼굴과 심장 등 중요 부위만을 막은 채 나를 향해 짓쳐들어왔다.
‘빈틈!’
나는 훤히 드러난 소호의 복부에 창을 찔러 넣었다.
푹!
뇌전을 머금은 내 창이 소호의 배를 관통했다.
하지만 소호는 복부가 꿰뚫린 채로 계속해서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동귀어진?’
위기 의식을 느낀 녀석이 최후의 한 수를 꺼낸 것이다.
“나 혼자 죽을까 보냐!”
마력을 머금은 소호의 손톱이 내 미간을 향해 쇄도했다.
어떻게든 막아보려 했지만, 내 창은 소호의 복부에 꽂혀 움직이지 않았다.
‘시발!’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꽈앙!
소호의 손톱이 내가 서 있던 자리의 대로를 갈랐다.
아슬아슬하게 녀석의 공격을 피한 나는 곧장 인벤토리에서 여유분으로 준비해 두었던 창을 꺼내 녀석을 향해 겨눴다.
“내······ 내가······ 이런 버러지같은 녀석에게 질리가······ 쿨럭, 쿨럭.”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비틀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소호.
녀석이 입에서 피를 한 움큼 쏟아냈다.
“다음에 만나면 절대······.”
털썩-
소호가 말을 끝마치지 못한 채 바닥에 쓰러졌다.
‘이겼다.’
순간 집중력이 뚝, 끊기며 다리가 풀렸다.
“헉, 허억, 헉, 헉.”
나는 그대로 땅바닥에 철퍼덕 앉은 채 숨을 몰아쉬었다.
상성 면에서 나와 최악의 상대였는데도 이겼다.
내가.
결국 해냈다.
띠링!
[현재 생존자 수 : 2 명]
[6경기 12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렌’ 승리!]
[잠시 후 결승전이 시작됩니다. 준비하십시오.]
드디어 결승전.
지구가 1승을 챙길 때까지 마지막 관문만이 남은 셈이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막 한 명.
어떻게든 이긴다.
[모든 상태를 100%로 회복합니다.]
[6경기 결승전이 시작합니다.]
[렌 vs 고명]
[3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요동치던 심장이 순식간에 원래의 박동을 되찾았다.
산소가 부족해 핑- 돌던 정신도 뚜렷해지며, 상대의 모습이 보였다.
‘저 녀석이 내 마지막 상대.’
비단으로 된 도복이 흩날리고, 쥐고 있던 검은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2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소매에는 매화꽃이 수놓아져 있고 한눈에 봐도 엄청나게 잘생긴 미남자.
‘고명.’
무림에서 자랑하는 구파일방 중 화산파의 직계 제자.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사용.
현란한 검술 사이사이에 마력으로 이루어진 매화 꽃잎이 흩날림. 피하기 쉽지 않을 것.
[1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스텟은 하위 리그 탑3. 아마 소호보다 높을 것.
정통파답게 기초가 훌륭하고, 수비가 탄탄.
방어 후 빈틈을 찾아내면 그때부터 몰아치는 스타일.
딱히 이렇다 할 약점이 없음.
‘아세리안이 준 분석표에는 그렇게 적혀 있었지.’
결승전답게 엄청난 강자와 마주쳤다.
[경기 시작!]
하지만 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내가 상성이 너무 좋았으니까.
‘악마의 눈.’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고명]
[성향 : 선]
[근력 : 79(+?)] [민첩 : 82(+?)] [체력 : 69(+?)]
[정신 : 71(+?)] [지력 : 19(+?)] [마력 : 78(+?)]
[각성 능력 : <고급검술> <최상급마나운용> <최상급살기> <최상급박투술> <중급치료술>]
[업적 특전 : 신검합일]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탁 뜨일 만큼 엄청난 스텟.
당장 상위 리그 플레이어들과 비교해 봐도 꿀릴 게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고명의 스텟에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이번 경기는 내가 유리해.’
상성이란 게 참 애매했다.
내가 겨우 이긴 소호가 고명과 붙었다면, 십중팔구 고명에게 졌을 것이다.
소호가 아무리 강하다 한들, 자신보다 스텟이 높은 상대에게는 크게 위협적이지 않으니까.
‘하지만 난 다르지.’
소호에겐 침묵의 망토도, 뇌신도, 마력 상쇄도 소용없었지만, 고명은 아니다.
녀석에겐 침묵의 망토를 간파할 뛰어난 코도, 뇌전을 막아낼 단단한 손톱도 없다.
뛰어난 검술 실력.
그것 하나뿐.
‘내가 왜 다양한 무기들을 손에 쥐려고 하는지 보여주겠어.’
나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침묵의 망토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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