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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45화 (45/205)

45화. 초신성(1)

직경 400미터의 원형 경기장.

옅은 달빛 사이로 보이는 경기장은 작은 도시를 옮겨온 듯한 모습이었다.

[보름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 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5% 상승합니다.]

가운데 깔려있는 대로를 기준으로 양옆에 폐허가 된 다양한 층의 건물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모두 빈 건물이다 보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흘렀다.

오래된 석회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저 녀석이 내 1라운드 상대군.’

내가 서 있는 대로의 맞은편, 그곳에는 한 명의 플레이어가 서 있었다.

띠링!

[6경기 1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렌 vs 하옥정]

[3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첫 번째 상대는 빛바랜 검을 쥔 중년인이었다.

회색 무복을 갖춰 입고 있었는데, 머리 위에는 [무림]이라는 글씨가 둥둥 떠 있었다.

[2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업적 특전 적용. 천둥의 숨결.’

경기가 시작되기 전, 일단 특전과 스킬부터 켰다.

어차피 라운드가 끝날 때마다 상태가 초기화될 것이기에 체력의 소모를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거기다 마침 보름달까지 떠서 달의 메아리가 모든 스텟을 5% 올려준 상황.

[1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성계 대항전을 준비하며 근력과 민첩만 상승하는 아이템들로 떡칠한 덕분에 현재 내 근력과 민첩은 모두 70을 넘긴 상태였다.

한마디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

‘첫 경기가 제일 중요해.’

대부분의 신들은 내가 지구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렌이라는 플레이어의 가치를 깎아내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지금쯤 댓글 창에는 아르웬을 죽인 것도 운이었다는 둥, 거품이 가득하다는 둥 헛소리나 지껄이고 있을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모두들 입을 닥치게 만들어 줘야지.’

[경기 시작!]

경기 시작 콜이 뜨는 동시에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하얀 장막이 사라졌다.

나는 곧바로 상대와의 거리를 좁히며 악마의 눈을 사용했다.

띠링!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하옥정]

[성향 : 중용]

[근력 : 66(+?)] [민첩 : 64(+?)] [체력 : 64(+?)]

[정신 : 52(+?)] [지력 : 13(+?)] [마력 : 59(+?)]

[각성 능력 : <상급검술> <상급살기> <중급마나운용> <중급박투술> <중급단검술> <하급치료술>]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한 나는 눈을 치켜떴다.

첫 상대부터 생각보다 스텟이 높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붉은 깃발전에서 만난 케일 정도의 수준.

하지만 나는 내 상태창을 바라본 후 피식 웃으며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상관없어.’

어차피 특전에 스킬빨, 템빨까지 갖춘 덕분에 내 스텟이 더 높으니까.

상대는 내 성계를 확인하곤 고개를 갸웃했다.

“요즘 하위 리그를 떨쳐 울린다던 분이 설마 지구 출신일 줄은 몰랐군. 본인은 낭인 하옥정이라고 하오.”

하옥정이 내게 주먹을 내밀고 한 손으로 감싸는, 이른바 포권이란 것을 해왔다.

“······.”

나는 굳이 그의 인사를 받아주지 않았다.

어차피 죽일 녀석인데 뭐 하러 인사를 나눌까?

그저 창을 쥔 채 녀석을 향해 다가갈 뿐이었다.

“하하, 듣던 대로 과묵한 분이시오. 하긴, 이런 자리에서 통성명이라니 쓸데없는 일이긴 하군. 그럼, 가르침을 바라겠소.”

하옥정이 검을 뽑아 들었다.

‘단숨에 부숴버리자.’

그걸 신호로 나 또한 하옥정에게 달려들었다.

챙!

콰직- 콰지직-

마나를 머금은 창이 하옥정의 검과 부딪히며 사방으로 전류를 뿜어댔다.

“끅!”

전류에 감전된 하옥정이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 떨며 경직 상태에 빠졌다.

단 한 번의 격돌에 녀석이 크게 밀려 나갔다.

‘격이 다른 강함.’

난 그걸 모두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 이건 대체······.”

하옥정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검을 통해 전해진 내 힘이 워낙 강하다 보니 팔이 저려 검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했다.

아니, 검을 쥐고 있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당황한 채 뒷걸음질 치기 급급한 모습.

‘끝내자.’

나는 창자루의 끄트머리 부분을 잡은 채 크게 휘둘렀다.

챙! 콰직! 콰지직!

그러자 내 창을 막아내려던 하옥정의 검이 한쪽으로 튕겨져 나갔다.

“미, 미친!”

녀석이 검을 놓친 이상 싸움은 거기까지였다.

검을 잃은 채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하옥정의 가슴에 창을 찔러 넣었다.

푹-

띠링!

[플레이어 ‘하옥정’ 을 처치했습니다.]

[<피의 회복> 능력으로 체력이 1% 회복됩니다.]

[<피의 강화> 능력으로 모든 스텟이 1% 상승합니다. (1/30)]

[3분 이내에 다른 생명체를 처치하지 못하면 상승분이 초기화됩니다.]

제법 높은 스텟을 가지고 있는 하옥정을 단숨에 죽였다.

마음먹고 싸우니까 케일 급의 강자를 쓰러트리는 데 단 3초밖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이걸로 내가 지구 출신이라 거품이라는 놈들이 모두 닥치고 있겠지.’

애초에 실력부터 비교가 안 되는 상대였다.

거기에 좋은 스킬과 아이템들로 무장한 이상, 내 공격을 버텨낼 수 있는 녀석은 하위 리그에 몇 명 안 될 것이다.

[6경기 1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렌’ 승리!]

[잠시 후 2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준비하십시오.]

승리라는 메시지 창과 동시에 하얀빛이 모여들더니 나를 머금었다.

빛에 몸을 맡기자 순간적으로 훅! 하는 느낌과 함께 내 몸이 다른 공간으로 전송되었다.

그리고 등장하는 1라운드와 똑같은 크기의 원형 투기장.

심지어 안에 등장하는 건물의 모습도 똑같았다.

[모든 상태를 100%로 회복합니다.]

[6경기 2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렌 vs 고주성]

[3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정신없이 싸우게 되겠군.’

알림창은 잠깐 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카운트 다운을 시작했다.

뭐, 이해는 한다.

무려 6,304명이 참가하는 토너먼트 경기.

서둘러 경기를 진행해야 관객들도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2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2라운드의 내 상대는 졸본 출신으로 보이는 궁수.

녀석은 짧은 단궁을 쥔 채 화살통에서 화살을 꺼내고 있었다.

‘이번 경기는 상성이 좋네.’

[1초 후 경기가 시작됩니다.]

미로처럼 엉켜있는 골목길에 각종 폐건물들이 널려있다 보니, 몸을 숨기기에 딱이었다.

현재 저 고주성이라는 궁수는 머리가 아플 것이다.

내가 폐건물 사이에 숨어있다가 갑자기 기습해 오면 거리를 벌릴 방법이 없을 테니까.

[경기 시작!]

시작 콜과 동시에 나는 건물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쐐애애액!

그와 동시에 나를 스쳐 지나가는 한 발의 화살.

너무 작아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애깃살이었다.

‘이런 일대일 경기가 아니라 평범한 서바이벌 경기였으면 쉽지 않았겠는데.’

몰래 숨어서 아무도 모르게 애깃살로 저격해오면 알아채기가 까다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아니다.

대로 주변에 있는 골목길로 숨어든 나는 곧장 침묵의 망토 스킬을 사용했다.

띠링!

[<스킬:침묵의 망토>를 사용하셨습니다.]

[10초 당 마력 스텟 1 포인트를 소모합니다.]

그리고는 곧장 고주성이 있던 방향을 향해 움직였다.

사락- 사락-

녀석의 스타팅 포인트와 어느 정도 거리를 좁히자 들려오는 발소리.

폐건물 안으로 숨어들었는지 발소리에서 약간의 울림이 전해졌다.

발소리는 들리지만, 마력장에서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거리가 제법 있는 것 같았다.

‘그래봤자 찾는 건 시간 문제야.’

나는 골목길 사이사이를 빠르게 오가며 녀석이 숨어들었을 공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자 1시 방향에서 녀석의 움직임이 마력장에 포착됐다.

위치는 2층 건물로 둘러싸인 채 혼자만 빼곡 나와 있는 3층 건물의 방안.

‘제법 까다로운 곳이네.’

주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에 나를 찾기도 수월할 테고, 혹시 내가 먼저 녀석을 찾아내더라도 주변의 2층 건물 옥상을 통해 도망칠 수 있다.

궁수로서 그나마 나에게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위치.

하지만 녀석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내가 은신 스킬을 가지고 있는 줄은 모르겠지.’

그에 대한 방증으로, 내가 고주성이 있는 건물의 입구에 다다를 때까지 녀석은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녀석이 잠복해 있는 3층에 도착하자, 고주성은 여전히 고개만 빼꼼 내민 채 나를 찾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게임 끝났어.’

나는 고주성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

“어, 언제!”

공격 판정으로 인해 은신이 풀리자, 그제야 내 기척을 읽은 고주성이 내 창을 피하며 바로 옆에 있는 2층 건물의 옥상으로 몸을 날렸다.

고주성이 몸을 빙글 돌리며 공중에 떠 있는 잠깐의 체공시간 동안 화살 한 발을 시위에 걸더니 나를 향해 겨눴다.

‘내가 놓칠 줄 알고?’

나는 곧장 창에 마나를 담아 녀석에게 던졌다.

피웅!

그와 동시에 녀석의 화살이 내 이마를 향해 날아왔다.

쐐애애액!

나는 고개를 틀어 녀석의 화살을 가볍게 피했고, 녀석은.

푹! 털썩-

공중에 떠 있는 상태 그대로 가슴에 창이 박힌 채 2층 건물 옥상에 떨어졌다.

띠링!

[플레이어 ‘고주성’ 을 처치했습니다.]

순간 고기 타들어 가는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뇌전의 힘이 녀석의 가슴을 관통한 채 살갗을 태운 것이다.

나는 녀석이 쓰러진 2층 건물 옥상으로 뛰어 내렸다.

그리고 녀석의 시체를 발로 밀며 꼬챙이처럼 박힌 창을 뽑아 들었다.

[6경기 2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렌’ 승리!]

[잠시 후 3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준비하십시오.]

그와 동시에 등장하는 메시지 창.

또다시 하얀빛이 나를 감싸기 시작했다.

‘확실히 일대일 경기에 출전 신청을 할 만큼 전체적으로 수준이 높네.’

하지만 난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들보다 내가 더 강할 테니까.

[6경기 8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렌 vs 브룩스]

이후로도 나는 낭인족, 바이킹, 엘프, 무림인 등등 수많은 플레이어들을 상대해야 했다.

하지만 내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녀석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작 해봐야 내 창을 몇 번 막아내는 수준뿐.

그렇게 7라운드까지 치르자 어느새 참가자는 백 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확실히 탑 100부터는 수준이 다르네.’

【작열하는 불꽃의 춤!】

사방에서 도깨비불 같은 마법들이 내게 쏟아졌다.

미처 창으로 막아내지 못한 몇 개의 도깨비불이 내 몸을 때렸다.

화륵!

하지만 내가 입은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다.

달의 메아리가 도깨비불에 살짝 그을린 정도.

[마력 상쇄율 : 50%]

‘와, 이거 엄청 좋은데?’

데미지를 무려 절반이나 줄여주는 스킬이지만 사실 그 효용에 대해선 반신반의였다.

데미지가 줄어들든 말든, 어차피 마법에 직격하면 몸이 터져 나가는 것은 똑같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내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마법 상쇄가 아닌, 마력 상쇄.

고작 한 글자 차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확연하게 달랐다.

‘단순히 데미지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나와 간섭하는 마력을 절반으로 줄여준다는 거였어.’

한마디로 마법이 날아올 때, 내가 창에 마력을 담아 휘두르면 절반의 힘만으로도 막아낼 수 있다는 뜻.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이 스킬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마력 상쇄 스킬에 놀란 것은 나 뿐만이 아니었다.

“씨발! 왜 마법이 안 통하는데!”

8라운드의 내 상대인 브룩스가 검을 휘두르며 발악했다.

녀석은 마법과 검을 동시에 다루는, 즉 전투 마법사였다.

그리고 일대일 경기에서 탑 100 안에 들 수 있을 만큼 검술 실력이 뛰어났다.

하지만 검을 아무리 잘 다뤄도 마법사는 마법사.

결국 검은 보조할 뿐이고, 주공은 마법이란 것이다.

【은은한 물의 장막!】

내가 마법에 맞고도 멀쩡하게 다가가자 브룩스가 급하게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하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창을 휘둘렀다.

서걱-

그러자 브룩스 앞에 생겨난 방어막이 허무할 정도로 쉽게 찢겨나가며 브룩스의 가슴을 갈랐다.

“씨, 씨발. 이건 사기야······.”

마력 상쇄율 50%.

브룩스에겐 미안하지만, 그건 방어 마법에도 통용되는 얘기였다.

띠링!

[현재 생존자 수 : 32 명]

[6경기 8라운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렌’ 승리!]

[잠시 후 9라운드가 시작됩니다. 준비하십시오.]

어느새 남은 숫자는 32명.

분명 처음 시작할 때 6,304명이었는데, 어떻게 딱 2의 제곱에 맞는 숫자가 나왔는지는 의문이었다.

중간에 부전승으로 올라온 녀석들도 있었나?

‘뭐, 그건 중요한 게 아니지.’

앞으로 5번만 이기면.

지구가 6경기의 승리를 챙길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빛무리에 몸을 맡길 때였다.

후욱! 하는 느낌이 끝나며 나는 9라운드의 경기장에 도착했다.

그리고 상대의 모습을 확인한 나는 눈을 치켜떴다.

맞은편에는 내가 생각지 못한 상대가 서 있었다.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빅터]

[성향 : 선]

[근력 : 64(+?)] [민첩 : 70(+?)] [체력 : 65(+?)]

[정신 : 72(+?)] [지력 : 18(+?)] [마력 : 71(+?)]

[각성 능력 : <고급검술> <고급박투술> <최상급단검술> <최상급마나운용> <최상급살기> <상급마상술> <상급검방술> <상급투척술> <중급치료술>]

‘빅터!’

녀석이 나를 바라보며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드디어 만났네.’

나도 반가운 마음을 담아 빅터를 바라보며 활짝 웃었다.

너무나 죽여버리고 싶은 상대였으니까.

붉은 깃발전에서 당한 수모를.

되돌려 줄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는 개기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짓밟아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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