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성계 대항전(2)
그날 이후 커뮤니티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느 성계가 가장 강한 성계인가.
오랫동안 모두가 궁금해 왔던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단순히 고위 리그나 상위 리그에 몇 명의 플레이어가 있는가, 라는 것으로 강한 성계를 가려왔다지만, 모두가 판단했을 때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성계 대항전은 어느 성계가 가장 강한 성계인지 객관적으로 가려낼 수 있다.
그렇기에 성계 대항전이 시작되지 않았는데도, 신들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티엔 성계 대항전에 관한 내용밖에 없을 정도였다.
―블러드나이트 202 대신 성계 대항전 실시!
―아무도 죽지 않는 성계 대항전. 모두에게 축제가 될 것이다.
―관건은 각 성계 별 네임드의 숫자. 현재로서는 알프헤임이 가장 유력!
└알프헤임이 가장 유리하긴 하네. 가엔, 레오, 소호까지. 네임드가 가장 많음.
└성계 당 1천 명씩, 총 12,000명이나 참가하는데 네임드만으로 승부의 향방이 갈리진 않을 것임. 그럼 평균 전력이 가장 높은 무림이 더 유리함 ㅇㅇ
└그렇게 치면 웨스테로스나 졸본은 평균 전력이 약하냐? 평균 전력은 솔직히 삐까삐까임. 결국 네임드가 몇 명이냐가 향방을 가를 수밖에 없음.
└ㅂㅅ들. 무림도 네임드 3명이나 됨. 악소창, 고명, 렌. 무림이 꿀릴 게 없음.
└렌이 거기에 왜 들어가냐 병신앜ㅋㅋㅋ 걘 웨스테로스 출신이라고.
└응, 아니야. 렌은 졸본 출신임. 걔 활 쏘는 거라던가 검 다루는 스타일이 졸본 특유의 티가 남. 졸본 출신임.
그사이 신들 사이에서 나는 무림 출신이 됐다가, 졸본 출신이 됐다가, 웨스테로스가 되는 등 여기저기 팔려 나가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내가 지구 출신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 광경을 보며 나는 그저 피식 웃었다.
아니, 오히려 기대가 됐다.
‘최약체 성계에서 등장한 최초의 네임드.’
그 파장은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커뮤니티를 닫고 아세리안이 건네준 서류 뭉치들을 꺼내 읽었다.
이번 성계 대항전에서 내가 주의해야 할 각 성계의 네임드들에 관한 분석 자료들이었다.
움직임에 따른 예상 스텟, 사용하는 스킬의 종류, 쓰는 무기 등등 경기를 관람해야 알 수 있는 정보들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정리되어 있었다.
‘도대체 이런 자료들을 어떻게 모으는 거야?’
아이템 정리에, 공략에, 플레이어 분석까지.
이건 뭐, 정보 수집의 끝판왕이었다.
아세리안이 건네준 자료에는 죽은 아르웬도 들어 있었다.
‘내가 만약 이걸 먼저 보고 아르웬과 싸웠다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래도 아르웬을 상대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물 속성은 방어에 특화 되어 있는 정령 마법.
공격을 넣지 못하게 하면서 저번처럼 구석에 박아버리면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어떤 부분을 조심해야 하고,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 미리 알고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상대하는 게 훨씬 더 수월하지 않았을까.
‘마법뿐만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분석 자료도 틈틈이 시간 내서 읽어놔야겠어.’
2회차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무척 많았다.
아니,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아세리안이 채워주는 부분이 많았달까.
“형, 이번에 성계 대항전에 출전하시죠?”
휴식의 방에서 누워 분석 자료들을 보고 있는데 체력 훈련을 끝내고 함께 쉬고 있던 주창범이 물었다.
“예. 지구 대표로 출전하게 됐습니다.”
“커뮤니티 보니까 다들 형을 다른 성계 출신으로 알던데요. 지구는 아예 얘기조차 안나오더라구요. 그리고 다들 지구가 꼴찌 할 거라고 하던데요?”
주창범이 눈썹을 찡그렸다.
음.
내가 렌인 걸 알고 있었구나.
뭐, 지금쯤이면 알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난번, 아르웬과 치렀던 경기가 워낙 크게 회자됐어야지.
“예. 그동안 지구 출신이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서 그런 것 같네요.”
“그래도 지구엔 형이 있으니까 우승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자 곁에서 함께 누워 있던 루치아노와 지그, 제이스도 동조했다.
“맞아. 안우진 님이라면 분명 우승하실 수도 있지. 지구가 꼴찌라는 것도 안우진님이 지구 출신이란 걸 몰라서 그런 것 아냐?”
“전에 한쪽 팔을 잘라버린 상대가 당장 상위 리그로 올라가도 이상하지 않을 녀석이라고 하더만. 그런 녀석과도 싸우신 분인데 충분히 가능하지.”
“그때 왼팔을 자른 상대는 안우진님께 목이 베였대. 그 녀석이 하위 리그에서 가장 강할 거라고 예상되는 다섯 명 중 한 명이라던데?”
어······ 음······ 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한데······.
사인방은 커뮤니티에서 후기를 읽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근데 거기에 분명 내가 죽도록 도망치다가 겨우 죽였다는 말도 있었을 텐데, 그건 안 봤나?
“솔직히 형이 누군가한테 진다는 게 상상이 안 돼요. 이번 성계 대항전에서 지구에도 형 같은 분들이 있다는 걸 신들에게 똑똑히 보여주세요.”
강한 신뢰가 담긴 눈빛.
주창범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해 보죠.”
훈련과 분석, 그리고 아이템 세팅을 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어느덧 성계 대항전 당일.
“형, 이번에 가서 다 조져버려요. 화이팅!”
“안우진님, 좋은 결과 기다리겠습니다!”
“오늘도 맛있는 음식 준비해둘게요. 조심히 다녀오세요.”
나는 사인방과 이세연의 배웅을 받으며 아세리안과 함께 공터로 나왔다.
‘오늘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네.’
평소 날 배웅할 때와 달리, 오늘은 아세리안의 표정에 생기가 가득했다.
성계 대항전은 참가자가 사망하더라도 모두 부활시켜준다.
그래서 죽음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기에 아세리안도 불안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쑤아아아앙-
타이밍 좋게 때마침 공터에 게이트가 열리며 옅은 충격파가 퍼져나갔다.
그 충격파에 휘날리는 머리를 정리하며 아세리안이 입을 열었다.
“안우진님. 그거 아세요? 성계 대항전에는 돈을 걸고 우승 성계를 맞히는 배팅 시스템이 있다는 거?”
“네. 커뮤니티에서 얼핏 본 거 같네요.”
“지구가 우승하면 배당이 1대 1,000이더라구요. 헤헤, 참고로 전 지구에 걸었어요.”
“아, 지구가 우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와야겠군요.”
그러자 아세리안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뭐지?
이 대답이 아닌가?
“그럴 땐 가슴을 탕탕 치며 제 덕에 부자 되시겠네요, 라고 하셔야죠!”
아세리안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부자 되게 해드리죠, 여신님.
나는 속으로 대답하며 활짝 웃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세리안에게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왔다.
온통 새하얀 공간.
크기는······ 5평 정도?
작고 아담한 방이 나를 반겼다.
방 한쪽에는 푹신푹신해 보이는 소파가 놓여져 있었고, 그 맞은편엔 벽을 가득 메운 홀로그램 창이 보였다.
이건 마치.
‘대기실 같네.’
권투나 UFC를 나가기 전에 선수들에게 배정되는 대기실 같은 모습이었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띠링!
[대기실에 입장했습니다.]
[성계 대항전은 총 10경기가 치러지며, 가장 많은 승리를 차지한 1개의 성계에 차원 특전이 주어집니다.]
[차원 특전은 도박사들이 예측한 우승 확률에 따라 보상이 달라집니다.]
[알프헤임 : 16.7%] [무림 : 15.9%] [웨스테로스 : 15.8%] [발리노르 : 14.1%]
[졸본 : 7.3%] [나카츠쿠니 : 6.9%] [바빌론 : 6.5%] [티르너노그 : 6.1%]
[탐리엘 : 3.8%] [하이퍼보리아 : 3.5%] [미드가르드 : 3.3%] [지구 : 0.1%]
[지구의 경우 확률이 0.1%로, 우승 시 모든 스텟 + 10%의 차원 특전을 획득합니다.]
[해당 성계를 우승으로 이끈 MVP 에게는 고유 스킬 1개가 랜덤으로 주어집니다.]
메시지를 읽고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모든 스텟 10% 상승?
신화급 특전이 20% 상승이었는데?
저걸 한 개 성계 전체에 뿌린다고?
‘무조건 이겨야 해.’
보상을 보는 순간 의욕이 불타올랐다.
다른 성계에 특전을 뺏기지 않는 걸 넘어, 날 한층 더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업적 특전만 해도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던가.
거기에 성계 특전 10퍼센트를 더한다면 하위 리그에서 내가 이룰 수 있는 모든 것을 이루는 셈이었다.
[성계 대항전 경기 일정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1경기. 스토리 미션(개인 PvP)]
[2경기. 팀웍이 생명이다(단체 PvP)]
[3경기. 레이드 보스 사냥하기(집단 PvM)]
[4경기. 스토리 미션(단체 PvP)]
[5경기. 성계 집단 대항전(집단 PvP)]
[6경기. 일대일 최강자(개인 PvP)]
[7경기. 지옥에서 생존하기(개인 PvP)]
[8경기. 스피드 레이스(개인 PvP)]
[9경기. 사냥 실력은 내가 최고(개인 PvM)]
[10경기. 역대 네임드들과의 전투(집단 PvP)]
‘나쁘지 않네.’
메시지 창에 뜬 경기 일정을 본 나는 소파에 편안하게 몸을 기댔다.
우연인지 내 경기는 6경기부터 10경기까지.
가장 마지막 순서로 등장하는 것이다.
‘계산하기 더 쉽겠어.’
다른 성계들이 가져간 승리를 계산하면 내가 뛰는 다섯 경기 동안 몇 개의 승리를 가져가야 하는지 계산하기 편할 것이다.
어차피 지구는 1경기부터 5경기까지 내리 죽을 쑬 것이기에.
띠링!
[지금부터 성계 대항전을 시작하겠습니다.]
[1경기 : 스토리 미션(개인 PvP)]
[게임명 : 요정의 알]
[승리 조건 : 가장 먼저 요정의 알을 구하는 자]
[맵 : 사자의 땅(대)]
[관객 수 : 942,701 명]
[현재 생존자 수 : 6,666 명]
[참가 현황]
[지구 : 842 명] [바빌론 : 569 명] [미드가르드 : 561 명] [하이퍼보리아 : 558 명]
[티르너노그 : 557 명] [탐리엘 : 547 명] [졸본 : 533 명] [나카츠쿠니 : 531 명]
[알프헤임 : 499 명] [무림 : 491 명] [웨스테로스 : 490 명] [발리노르 : 488 명]
‘와, 관객 숫자가 94만 명이나 된다고?’
압도적인 관객 숫자에 깜짝 놀랐다.
이전에 치러졌던 네임드 전보다 20배나 많은 숫자였다.
‘확실히 성계 대항전이 초대형 이벤트이긴 한가 보네.’
상위 리그에서도 관객 숫자가 94만 명이나 되는 경기는 없었다.
아마 고위 리그나 가야 그 정도 될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고위 리그급의 경기를 뛰고 있는 셈이네.’
저 많은 숫자의 신들에게 눈도장을 확실하게만 찍을 수 있다면.
네임드를 넘어 스타 플레이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일단 지구가 우승하게 만들어야 해.’
가장 베스트는 탑4, 즉 무림, 알프하임, 웨스테로스, 발리노르가 승리를 한 개씩 나눠 먹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남은 다섯 경기에서 내가 세 경기만 승리를 따내도 우승할 확률이 높아진다.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번 볼까.’
나는 커뮤니티를 열어 신들의 댓글을 확인했다.
└오오 시작한다.
└발리노르 잘해라. 진짜 뒤지기 싫으면.
└씨발 10만 포인트나 태웠더니 개쫄린다 ㅋㅋㅋㅋ 무림 잘해라 제바류ㅠㅠ
아직까지는 쓸데없는 댓글들 뿐.
하지만 10분 정도가 흐르자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했다.
└와 지구 애들 800명 넘게 출전했는데 아주 녹아내리넼ㅋㅋㅋㅋㅋ
└쟤 누구임?
└안돼!!! 지구 이새끼들. 제발 기적을 보여줘 ㅠ 초대박 역배 가즈아!
└ㅋㅋㅋㅋㅋ 병신새끼 아무리 1000배율이래도 지구에 태우냨ㅋㅋㅋ
└애초에 첫 번째 관문에서 700명 넘게 떨어진 거 같은뎈ㅋㅋ 저거도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저런 새끼들한테 배팅한 새끼도 대단하곸ㅋㅋㅋ
└스틱스 강물 요즘 차가울텐데ㅋㅋㅋㅋ
아무래도 지구 플레이어들이 대거 떨어진 모양.
신들은 지구에 배팅한 댓글을 조리돌림하며 놀리기 바빴다.
쯧.
조금만 기다려.
‘내가 어떻게든 신생 역전 시켜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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