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38화 (38/205)

38화. 피의 여명(2)

나는 본능적으로 나무를 박찼다.

콰과과광!

뒤이어 울리는 폭음.

잘게 쪼개진 나무 파편들이 요란하게 내 몸을 때렸다.

‘젠장.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그런 생각이 내 머릿속을 뒤흔들었지만, 나는 일단 숲의 중심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일단 어떻게 해서든 아르웬을 떼어놔야 한다.

그때 내 등 뒤로 빠르게 날아오는 뾰족한 물체가 느껴졌다.

뾰족한 물체는 싸늘한 냉기를 머금고 있었다.

‘정령 마법!’

어쩐지 마나의 유동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싶었다.

기존의 마법은 마나를 가공해서 발동한다. 그렇기 때문에 마나가 가공되는 게 느껴지지만, 정령 마법은 순수한 자연의 마나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발동되더라도 느끼기가 쉽지 않았다.

콰광! 콰과과광! 콰광!

내가 피한 얼음 마법들이 바닥에 닿으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터져나갔다.

평평했던 흙바닥이 순식간에 난자되며 깊은 구덩이 여러 개가 만들어졌다.

‘그나마 다행이야.’

시력을 제외한 초감각과 마력장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어떤 공격이 날아오는지 알 수 있었다.

거기에 시력까지 추가되니 공간 자체를 읽을 수 있는 느낌이었다.

덕분에 마법을 피하는 게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론 공격은 꿈도 못 꾸겠지만.’

서둘러 맵의 중심부까지 향해야 한다.

그곳에는 여전히 수많은 플레이어들이 있을 터.

그들 사이로 섞여들어 가서 아르웬의 타깃을 다른 플레이어들에게로 돌려야 한다.

‘가능성이 없는 것만은 아니야.’

악마의 눈으로 확인한 그녀의 육체 스텟은 코메인 이벤트에 참가한 플레이어들의 평균 수준.

반면에 특전과 천둥의 숨결까지 켠 내 민첩은 70.

그리고 체력은 67이었다.

이 정도면 중심부까지 어떻게든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진짜 개사기네.’

현재 아르웬이 소환한 정령은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최상급 물의 정령일 것이다.

아무런 영창도 없이 고위급 마법을 계속 날릴 수 있다니.

저 정도의 고위 정령사를 만난 건 처음이었는데, 보면 볼수록 사기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렇게 마법을 난사한다면 애초에 다가갈 수가 없다.

결국 마력이 다 떨어질 때까지 도망 다니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나마 맵이라도 넓어서 다행이야.’

좁은 맵이었다면 얼마 가지 못해서 도망갈 공간을 모두 차단당한 채 마법 폭격을 당했을 것이다.

챙! 콰광! 챙! 챙! 챙!

천둥의 숨결로 인해 체력이 빠르게 줄어들었지만, 신경 쓰지 않은 채 전속력으로 달리다 보니 어느새 숲의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무가 잘리고, 곳곳에 구덩이가 파인 숲속에서 엄청난 숫자의 플레이어들이 싸우고 있는 게 보였다.

‘됐어. 이제 저들 사이에 숨어서 은신으로 빠져나가면 돼.’

나는 서둘러 어지러이 엉켜있는 플레이어들 사이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나를 발견한 플레이어들이 흠칫 놀랐다.

“뭐, 뭐야!”

“네임드다!”

아니, 날 쫓아오는 아르웬을 보고 놀란 거였군.

플레이어들이 흠칫하며 뒷걸음질 치는 사이로 숨어든 나는 곧장 침묵의 망토 스킬을 사용했다.

그리고 다시 숲의 중심부를 빠져나가기 위해 방향을 틀었다.

쐐애애애애액!

순식간에 생성되어 날아오는 얼음 마법들.

‘뭐야!’

물의 최상급 정령이 날린 수십 발의 얼음 화살 마법은 정확하게 나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콰과과과과과광!

나는 은신을 풀고 땅을 박찬 덕분에 가까스로 마법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고개를 틀어 아르웬을 보니, 그녀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도대체 왜!’

나는 곧장 몸을 일으켜 다시 전속력으로 도망쳤다.

고개를 돌려 힐끗 보니, 아르웬이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순간 내가 그녀의 타깃으로 고정될 만한 일이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씨발. 그딴 게 어딨어.’

애초에 오늘 처음 본 사이다.

내가 그녀의 닉네임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1회차의 기억 때문.

내가 그녀에게 미운털이 박힐 이유가 없었다.

‘젠장. 일단 거리를 최대한 벌리자.’

천둥의 숨결까지 켜면 내 민첩이 아르웬보다 6 포인트 높다.

결국 더 빨리 도망쳐서 그녀를 떼어놓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마침 벽력이 발동되며 순간적으로 민첩 스텟이 급상승했다.

내가 박찼던 바닥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기며 전류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덕분에 은신하며 플레이어들 사이로 녹아드느라 줄어들었던 거리를 다시 늘릴 수 있었다.

[남은 체력 : 61%]

천둥의 숨결 때문에 체력은 빠르게 떨어지는 중.

하지만 천둥의 숨결을 끌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그녀를 떼어놓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면으로 최대한 체력을 흡수할 수밖에 없어.’

마침 피의 강화 능력 덕분에 체력을 흡수하면서 스텟도 조금이나마 올릴 수 있다.

나는 주변에 플레이어들이 밀집해 있는 방향으로 빠르게 내달렸다.

[현재 생존자 수 : 3,397 명]

[킬 수 현황]

[1위. ‘렌’ 30킬]

[2위. ‘빅터’ 29킬]

[3위. ‘아이젠’ 18킬]

[4위. ‘아론’ 17킬]

[5위. ‘아르웬’ 16킬]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 : 66:57:03]

어느새 태양이 중천에 걸려 있었다.

아르웬에게서 도망치기 시작한 지 어느덧 3시간째.

그녀는 여전히 날 죽이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씨발.’

그래서 짜증나는 마음에 창을 힘껏 휘둘렀다.

“윽!”

띠링!

[플레이어 ‘석춘배’ 를 처치했습니다.]

[<피의 회복> 능력으로 체력이 1% 회복됩니다.]

[<피의 강화> 능력으로 모든 스텟이 1% 상승합니다. (8/30)]

[3분 이내에 다른 생명체를 처치하지 못하면 상승분이 초기화됩니다.]

[남은 체력 : 47%]

이게 지금 뭐 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다.

다른 플레이어를 죽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상황이라니.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플레이어도 아니고, 미션을 위해서도 아니다.

그저 살려면 어쩔 수 없이 플레이어들을 죽여야 했다.

‘안 그럼 체력이 다 떨어져서 내가 죽게 될 테니까.’

그래도 다행인 점이라면 아르웬과의 거리가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현재 내 민첩은 피의 강화로 인해 상승한 8%까지 포함하여 74 포인트.

덕분에 50미터에서 현재는 100미터까지 거리를 벌릴 수 있었다.

‘이 정도 거리 차이가 나니까 더 이상 정령 마법은 안 날아오네.’

하긴, 이 정도 거리에서 마법이 날아오면 내가 각도를 조금 트는 것만으로도 모두 피할 수 있을 테니까.

“헉, 허억, 헉, 헉.”

나는 또다시 플레이어들을 찾아 나섰다.

웬만하면 3분 안에 처치하고 싶었다.

그래야 스텍을 계속해서 쌓아 올릴 수 있다.

고개를 돌려 힐끗 아르웬을 바라보니, 그녀 또한 제법 지친 기색이었다.

그녀의 체력 스텟은 58.

내 체력이 67이고, 천둥의 숨결로 체력이 50% 빠르게 깎여나갈 테니 아르웬의 체력 스텟이 대략 70% 정도 높은 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14명의 플레이어를 죽이며 14%의 체력을 추가로 회복한 상황.

그걸 감안하면 그녀의 체력도 60% 안팎으로 남았을 것이다.

‘이대로 4시간 정도만 더 버티면 돼.’

물론 그 전에 거리가 충분히 벌어져서 그녀를 떨어뜨리는 게 더 베스트겠지만.

띠링!

그렇게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콜이 울렸다.

뭐지? 울릴 이유가 없는데.

[6급 능천사能天使 ‘시노엘’이 서브 미션을 걸었습니다.]

―아르웬과 일대일로 싸우기.

[보상 : 2,000 P]

‘서브 미션이 온 거였군.’

미션의 내용을 본 나는 미련 없이 시스템 창을 닫았다.

잠깐만.

‘시노엘?’

팀 성장에서 만난 천사잖아?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다.

물론 내가 싸움을 회피한 채 도망 다니고 있기에 답답함을 느끼는 신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저 녀석이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아니면 죽을까 라며 호기심을 갖는 신이 더욱 많을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른 시기에 서브 미션이 내려올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내가 죽길 바라니까 저런 서브 미션을 내렸다는 뜻이겠지.’

이제 와서 내가 죽길 바란다라.

갖지 못하는 장난감, 차라리 부숴버리겠다는 꼬인 심리인 게 분명했다.

‘무시하자.’

나는 서브 미션을 무시한 채 계속해서 도망 다니는 것에 집중했다.

[현재 생존자 수 : 3,003 명]

[킬 수 현황]

[1위. ‘렌’ 58킬]

[2위. ‘빅터’ 37킬]

[3위. ‘아이젠’ 25킬]

[4위. ‘아론’ 21킬]

[5위. ‘아르웬’ 17킬]

[경기 종료까지 남은 시간 : 63:02:44]

어느새 석양이 하루의 마지막 빛을 뿌리며 지평선에 걸쳐 있었다.

이젠 아르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내 남은 체력은 23%.

한계치에 다다르기 직전에서야 아르웬을 떨쳐놓을 수 있었다.

‘저 미친년.’

결국 아르웬은 끝까지 나만 쫓아왔었다.

그 사이 그녀가 죽인 플레이어라고 해봤자, 네임드임을 못 알아보고 겁 없이 달려든 부나방 한 마리뿐.

그녀와 반대로, 난 58킬이나 했다.

2위인 빅터와는 무려 21킬 차이.

‘씨발. 살려면 어쩔 수 없었으니까.’

이렇게 절박한 심정으로 플레이어들을 찾아다닌 건 처음이었다.

나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안심하지 않고 한참을 더 도망친 다음에야 거대한 나무에 등을 붙였다.

[<물약:회복의 손길>을 꺼냈습니다.]

[<물약:회복의 손길>]

[강력한 회복의 효과가 깃들어 있는 물약이다. 복용하면 체력이 빠르게 회복된다.]

[단, 마신 이후에 휴식 시간을 갖지 않으면 회복이 되지 않는다.]

[등급 : 희귀]

그리고는 인벤토리에서 곧장 물약을 꺼내 마셨다.

무려 5천 골드짜리 고급 포션이었다.

“이제야 좀 살겠네.”

조금 있으면 깜깜한 밤이 찾아온다.

온종일 뛰어다닌 플레이어들은 모두 휴식 시간을 가질 것이다.

그리고 밤에만 활동하는 플레이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겠지.

가령, 암살자 같은.

‘최대한 빨리 체력을 회복시켜야 해.’

여기서 체력이 더 떨어지면 곤란하다.

회복 포션을 마신 나는 곧장 나무 위로 올라갔다.

나뭇가지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쉬어야 하므로 불편하겠지만, 내 몸을 숨기기엔 이만한 공간이 또 없다.

나뭇잎들이 날 숨겨줄 테니까.

띠링!

[그믐달이 떴습니다.]

[<로브:달의 메아리> 가 달의 힘을 빌려와 모든 스텟이 3% 상승합니다.]

밤이 찾아오자 로브의 효과 덕분에 모든 스텟이 3% 상승했다.

‘이런 식이구나.’

하늘을 보니 그믐달이 보였다.

지구와는 달리 파란색을 띠고 있는 달이.

다음 날 아침, 휴식을 넉넉하게 취한 나는 육포 몇 조각으로 간단하게 끼니를 때운 후 나무에서 내려왔다.

다행히 간밤에는 아무 일도 존재하지 않았다.

암살자들이 몇 명 지나가긴 했지만, 그때마다 침묵의 망토를 쓰니까 날 찾지 못한 것이다.

‘아르웬만 조심하자.’

이제 아레나에 남아있는 네임드는 딱 한 명 뿐이다.

다른 한 명은 어제 아르웬 손에 죽었으니까.

결국 이 아레나 안에서 그녀를 제외하고 일대일로 날 압도할 수 있는 존재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제 하루 동안 타의에 의해 맵을 한 바퀴 돌면서 충분히 검증했다.

‘내가 살아있다는 게 그 증거지.’

어제 하루 동안 내가 죽인 플레이어의 숫자는 58명.

그중 단 한 명이라도 내가 감당하기 버거운 상대가 있었다면 난 아르웬의 정령 마법에 죽었을 것이다.

‘아르웬만 조심하자. 아르웬만.’

다행히 아르웬은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선 마법이 난무하며 폭음이 울릴 테니까.

나는 바다를 등지고 숲의 중심부를 향해 걸었다.

지금 상황에선 오히려 중심부가 안전할 수도 있다.

‘아르웬 때문에 모두가 숲의 중심부를 벗어나고 있었어.’

피식자는 포식자의 위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포식자는 또다시 피식자를 따라 이동한다.

결국 어제와 달리, 오늘은 중심부가 한산할 것이다.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내 생각이 맞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역시 별로 없네.’

어차피 킬 수는 넉넉한 상황.

굳이 아득바득 플레이어들을 죽이러 다닐 필요 없었다.

이번 경기의 내 최우선 과제는 생존.

잔챙이들을 죽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사락- 사라락-

그때 누군가의 옷자락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내 마력장에 한 명이 포착됐다.

검을 들고 있는 걸 봐서는 아르웬은 아니었다.

‘좋아. 사냥하자.’

판단을 마친 나는 침묵의 망토 스킬을 쓰고 빠르게 검객을 향해 다가갔다.

암습이라는 효율적인 수단이 있는데 굳이 무기를 맞댈 필요는 없었다.

하늘을 감싼 나뭇잎 덕분에 아침이 밝아오고 있음에도 주위가 제법 어둑어둑했다.

근처까지 다가가자 사냥감의 모습이 확실하게 보였다.

악마의 눈으로 확인해 보니 스텟은 평균보다 조금 낮았다.

“휴우. 다행이군. 역시 이쪽이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어.”

검객은 혼잣말하며 검을 내려놓은 채 나무에 기대앉으려고 하고 있었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최대한 은밀하게 녀석을 향해 다가갔다.

제법 가까워졌음에도 빼곡한 나무들이 나를 숨겨 준 덕분에 녀석은 날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그렇게 녀석과의 거리가 5미터 정도 남았을 때였다.

‘지금!’

나는 호랑이가 먹잇감을 낚아채듯, 순간적으로 도약하여 녀석에게 달려들었다.

“헉!”

녀석이 헛바람을 일으키며 바닥에 내려놓은 검을 허둥지둥 집어 들었다.

하지만 걸터앉은 자세 때문에 내 창을 막아내진 못할 것이다.

그렇게 녀석의 가슴에 창을 꽂아 넣으려 할 때였다.

‘뭐, 뭐야!’

엄청난 마나 유동과 함께 사방에서 수많은 얼음 화살이 형성되었다.

숫자는······.

‘씨발. 마력장으로도 읽어내질 못하다니.’

너무 많아서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얼음 화살은 내가 도망칠 수 있는 64방위의 진퇴로를 모두 점한 채 날아들었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존재는.

‘아르웬!’

그녀가 나를 잡기 위해 덫을 놓은 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피하는 것은 불가능. 데미지라도 줄여야 해!’

나는 천둥의 숨결을 켜는 동시에 마법 범위의 최외곽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바닥을 박찼다.

꽈아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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