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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34화 (34/205)

34화. 안정화(1)

경기 종료 후 시작된 파티 타임.

오랜만에 마시는 술 때문인지 모두들 웃고 떠들며 파티를 즐겼다.

이세연에게 아레나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해주는 주창범.

여왕 개미굴에서 네가 잘했네, 누가 잘했네 라며 웃고 떠들고 있는 제이스와 루치아노, 지그.

나는 아세리안의 맞은편에 앉아 술을 홀짝거리며 그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군.’

현재 팜에서는 금주령이 내려진 상태.

적어도 신입들이 팜에 제대로 녹아들 때까진 금주령을 시행하는 게 어떠냐는 내 말에 아세리안이 내린 것이었다.

물론 앞으로도 쭉 금주령을 하진 않을 거다.

‘술만큼 스트레스를 해소하기에 적당한 것도 없으니까.’

문제는 술이 들어가면 사건 사고가 끊이질 않는다는 것.

그래서 신입들이 콜로세움에 적응할 때까지만이라도 금주령을 유지할 예정이었다.

내가 멍하니 앉아서 녀석들을 바라보고 있자 아세리안이 입을 열었다.

“감사해요, 안우진님.”

“뭘 말씀이십니까?”

“신입들을 안전하게 경험시켜주고 와주셔서요. 딱 제가 원했던 최고의 그림이었어요.”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피식 웃으며 들고 있던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건 그렇고, 녀석들이 대체 여왕 개미를 어떻게 잡은 겁니까?”

“아, 밖에 계셔서 못 보셨죠? 모두들 각자 위치에서 엄청 잘 해줬어요. 사실 위험한 순간이 무척 많았는데, 그때마다 주창범씨가 대처를 정말 잘했죠.”

아세리안이 여왕 개미굴 내부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간략히 설명해 주었다.

뭐, 요약하자면 주창범이 리딩을 잘해서 내부에 있던 호위병 개미 마수를 각개격파 했고, 덕분에 여왕 개미 마수까지 처치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제법이네요.”

“그렇죠? 이게 다 안우진님이 잘 가르치신 덕분이죠. 그래서 말인데요······.”

아세리안이 양팔을 테이블 위에 올리며 목소리를 줄였다.

“슬슬 다음 신입 플레이어들을 받는 건 어떨까요?”

새로운 신입들을 받는다라······.

지금쯤이면 이런 말을 할 줄 알았다.

신입 플레이어의 첫 경기 생존율은 3% 내외.

그런 의미에서 주창범과 루치아노, 제이스, 지그는 큰 관문 하나를 넘어선 셈이었다.

그런 모습에 자신감을 얻은 아세리안이 신규 뽑기를 하려는 것은 자명한 일.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알아서 하실 문제겠지만, 제 생각엔 아직 이르군요.”

“왜요? 딱 적당한 타이밍 아닌가요?”

“아직 신입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제 걸음마를 뗀 수준이랄까요. 이런 상황에서 또 다른 신입들이 들어오면 이도 저도 아닌 상황이 만들어질 겁니다.”

“아······.”

“적어도 개인 PvP 경기를 한 번 더 치르고 난 다음에 다시 고민해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내 말에 아세리안이 곰곰이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아직 다른 사람을 가르칠 정도는 아니라는 거군요. 그럼 신입들을 추가로 받는 건 보류해 둘게요.”

내 의견에 순순히 수긍하는 아세리안.

그녀의 대답에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팜 내부의 일을 도맡아 하길 잘했어.’

현재 아세리안은 내게 많은 걸 의지하고 있는 상태다.

그로 인해 시간을 조금 뺏기긴 했지만, 덕분에 아세리안은 내 의견을 거의 다 받아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내게 딱 맞는 팜이 되어가고 있달까.

그렇게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였다.

띠링!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87 경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관객들이 당신을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로 선정하셨습니다!]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 보너스로 7,000 P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3,000 P 차감)]

[플레이어 ‘렌’ 에게 컨텐더(도전자)의 자격을 부여합니다.]

블러드나이트 187의 모든 경기가 끝났다는 알림과 함께 퍼오블에 선정됐다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그런데 평소와 다른 메시지가 하나 더 있었다.

내가 컨텐더 자격을 획득했다는 것이었다.

‘벌써 얻었군.’

회귀한 지 4개월 째.

어느새 나는 상위리그와 가까워져 있었다.

물론 아직 자의로 갈 생각은 없지만.

“우와! 진짜 축하드려요, 안우진님. 이제 4경기 뛰었을 뿐인데 벌써 컨텐더라니!”

아세리안도 그 메시지를 봤는지 내게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정말 축하드립니다, 안우진님!”

“축하드려요, 형!”

그리고 이어지는 축하 세례.

그 속에서 나는 가면 아래 고요하게 웃음 지었다.

그날 이후, 팜의 많은 것들이 변했다.

먼저 숙소를 레벨 2에서 레벨 3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방도 더 넓어지고, 시설이 한결 좋아졌다.

덕분에 그동안은 존재하지 않던 아세리안의 집무실도 생겼다.

그다음은 대련장이었다.

기존의 대련장 레벨은 3.

상처가 생겨도 빠르게 아무는 수준이었다.

그걸 내 강력한 건의로 레벨 5까지 끌어올렸다.

이제는 팔다리쯤은 잘려도 재생이 되는 수준.

그로 인해 신입들이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아프면 상대가 기다려 준다고 하던가요?”

“고작 이 정도에 패닉에 빠지다니. 그래 놓고 뭐? 어서 다음 경기가 잡혔으면 좋겠다고? 장담하죠. 개인 PvP에 나가는 순간 군침이 도는 먹잇감이 될 겁니다.”

“그동안 해왔던 노력에 창피하지 않습니까? 이미 한번 죽어 이곳에 왔으면서 뭐가 더 두려운 겁니까?”

나는 신입들을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지하에서의 혈투전은 엄밀히 말하면 내 버스를 탄 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여왕 개미를 잡았다는 것 때문에 슬슬 자신감이 붙은 모양인데, 좋지 않았다.

‘자신감이 붙는 건 좋지만, 현실 자각이 더 중요해.’

신입들이 본인의 위치를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같이 다양한 무기로 신입들의 팔다리를 자르고, 심하면 허리까지 두 동강을 냈다.

오죽했으면 아세리안이 ‘제발 살살 좀 해요. 이러다 다들 죽어 나가겠어요.’ 라고 날 말릴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럼에도 신입들을 몰아붙였다.

현재 나는 각종 저주 아이템을 두르고 신입들을 상대하고 있는 상태.

반면에 신입들은 아레나에서처럼 풀템을 착용한 채 나와 대련하고 있었다.

대련할 때 만큼은 나보다 스텟이 높다는 것.

거기다가 나는 스킬도 쓰지 않고 순수하게 실력으로만 싸우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예 상대가 되지 않는 수준이야.’

이전에 대련할 때는 봐준다는 느낌이 강했다. 애초에 내가 스텟이 훨씬 높으니 당연히 못 받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오히려 신입들이 더 오랫동안 날 상대로 버틸 수 있었다.

그런데 저주 아이템으로 스텟을 낮추고 상대해 보니까, 녀석들이 얼마나 부족한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스텟이 내가 더 낮은데도 한 번의 공격을 못 막아?’

이젠 녀석들이 혼자 아레나에 들어가도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내 계산 미스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녀석들을 더욱 혹독하게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죽지 않길 바랐으니.

물론 채찍만 든 것은 아니었다.

“안우진님. 이번에 추가로 마력의 호숫물을 구했어요.”

“오, 감사합니다.”

내게 매일같이 죽기 직전까지 구르다 보니 녀석들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던 상황.

나는 하루걸러 한 명 꼴로 녀석들을 내 방으로 불러 유니콘의 뿔을 흡수하게 했다.

유니콘의 뿔 가격을 보여주면서.

“지그님. 제가 지그님께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비싼 뿔도 아무렇지 않게 턱턱 내놓을 수 있는 거죠.”

“아······ 감사합니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앞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채찍을 들다가 유니콘의 뿔이라는 당근을 내밀며 따로 살살 달랬더니, 다음 날이면 눈에서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그렇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흐르자, 녀석들은 개미 마수들을 상대하던 때와 몰라볼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챙! 채챙! 챙! 쾅!

“제법!”

“누가 할 소리를!”

현재 대련장 위에 올라가 있는 사람은 제이스와 루치아노.

둘은 서로 철천지원수 지간처럼 무기를 겨누고 있었다.

대련을 시작한 지 어느덧 10분째.

둘 다 서로의 공격은 허용하지 않으면서, 절묘한 곳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내게 잘근잘근 밟히면서 굴렀던 한 달.

녀석들은 어엿한 한 명의 전사로 성장해 있었다.

띠링!

[팀 ‘투지’의 주인, 아세리안 님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제 방으로 좀 와주세요!

때마침 도착한 아세리안의 호출.

그동안의 성과도 보고할 겸 아세리안의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집무실로 들어서자 내 키 높이만큼 세워져 있는 서류 더미들 사이에서 아세리안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아, 잠시 앞에 앉아 계세요. 이세연에게 차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 놨으니까.”

“······.”

그 말을 끝으로 그녀의 펜이 종이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자기 말로는 그동안 콜로세움의 경기들을 보면서 분석하고 정리한 자료들, 그리고 나와 생활하며 얻은 정보들과 팁, 육성법 등등을 써놓은 것들이라고 했는데.

그 분량을 보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그동안 있었던 일을 일기형식으로 쭉 풀어놓지 않고서야 저 정도 분량이 나올 수가 있나?’

그런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슬쩍 맨 위에 있는 종이를 살펴봤는데, 나름 표와 그래프를 만들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걸 확인하자 나는 더욱 궁금했다.

저렇게 깔끔하게 정리해 뒀는데도 양이 이렇게나 많다고?

똑똑-

“네, 들어오세요! 아 거기에 두시면 돼요. 수고했어요.”

“네, 여신님.”

나는 이세연이 놓고 간 차를 마시며 그녀가 하는 일들을 지켜봤다.

그녀가 고개를 든 건 차를 절반쯤 마셨을 때였다.

“아, 죄송해요. 급하게 정리해 둘 것들이 좀 있어서.”

“······뭔데 그렇게 쓸 게 많으십니까?”

“이거요? 신입들에게 추천해줄 만한 스킬들이랑 장비들을 체크해서 정리해뒀거든요. 적당한 가격에 최고의 효율을 뽑을 수 있는 가성비 스킬들을 찾느라 고생 좀 했죠.”

그녀의 대답에 나는 무심코 입을 벌렸다.

정말 열정 하나는 대단하네.

그걸 하나하나 보면서 정리해 두고 있었다고?

아무래도 신입들이 저렇게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내 몫만 존재했던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저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아세리안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뭐 때문에 부르셨습니까?”

“아, 상의드릴 일이 있어서요. 이번에 신입들한테 오퍼가 들어왔거든요.”

아세리안이 내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거기엔 블러드나이트 195의 4경기와 5경기의 오퍼가 쓰여 있었다.

‘지명 오퍼는 아니군.’

그저 4경기와 5경기에 각각 2명씩 티오를 주겠다는 간단한 내용.

미션은 개인 PvP고, 각각 200명과 500명이 참가하는 중형급 경기였다.

내용을 다 숙지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안우진님 생각은 어떠세요? 신입들을 거기에 출전시켜도 괜찮을까요?”

그녀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195면 앞으로 3주 남았군요. 전 괜찮을 것 같습니다.”

현재 신입들은 중급 무기술을 각성한 상태였다.

스텟은 주창범이 평균 30대 중반, 나머지 셋이 30대 초반.

거기다가 매일같이 나와 대련을 하며 눈에서 독기가 줄줄 흐르는 상태였다.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알겠어요. 그럼 모두 출전시키는 걸로 할게요. 남은 3주간도 잘 부탁드립니다.”

아세리안의 부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3주 후.

우리는 블러드나이트 195의 4경기에 들어간 지그와 제이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상태창을 통해 경기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아세리안.

안절부절못하며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이세연.

그리고 초조한 걸 티 내지 않고 있는 두 명의 신입.

“주창범, 루치아노.”

“네, 형님.”

“네, 안우진님.”

“떨립니까?”

내 물음에 루치아노와 주창범이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 둘의 어깨를 꽈악 잡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러분이 포식자임을 깨닫는 경기가 될 겁니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웃으면서 다시 돌아오게 되겠죠. 저희는 파티 준비나 하고 있을 테니, 잘 다녀오세요.”

나는 그 둘에게 일부러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가면 때문에 내 웃음이 정확하게 보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내가 평소와 다르게 함박웃음을 짓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 것이다.

그러자 주창범과 루치아노도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쑤와아아앙!

그때 공터에 옅은 충격파가 터지며 게이트가 열렸다.

그곳에서는 피범벅이 된 채 나오는 두 사람이 있었다.

지그와 제이스였다.

“다녀왔습니다!”

“고생 많았어요. 정말 멋졌답니다. 우리, 조금만 있다가 파티해요.”

아세리안이 제이스와 지그를 치하하고는 주창범과 루치아노에게 고개를 돌렸다.

“파티는 7인분을 준비할 거예요. 가서 여러분을, 그리고 팀 투지를 증명하고 오세요.”

“옛!”

“알겠습니다!”

확신에 찬 아세리안의 말에 주창범과 루치아노가 힘차게 대답했다.

그러더니 방금 막 경기에 돌아와 피범벅이 된 제이스, 지그를 한 번씩 껴안아 주고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침묵이 찾아온 공터.

나는 아세리안을 바라봤다.

‘지금까지 이런 기분으로 날 기다리고 있었겠구나.’

눈이 보이지 않았던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어울릴 수 없었다.

툭 하면 눈 병신이니, 뭐니 하면서 시비 걸기 바빴고, 상위리그에 올라가서는 날 직접적으로 괴롭히진 않았지만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레나에 들어간 누군가를 기다리는 게 처음이었다.

말로는 너희들이 최고다, 가서 다 찢고 와라, 이런 식으로 얘기했지만 내 마음속에는 초조하고 불안한 감정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내가 직접 가르치고 키운 녀석들이니까.’

콜로세움 안에서 웬만하면 정을 주지 않으려고 했었는데.

녀석들에겐 애착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초조함을 숨기며 기다리길 1시간.

쑤와아아앙!

게이트가 열리며 주창범과 루치아노가 나왔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나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고생 많았습니다.”

팜에 들어온 신입들이 신입 딱지를 떼고 진정한 플레이어로 각성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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