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급성장(7)
다시 신입들이 있던 광장으로 향하자 초조하게 날 기다리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보였다.
“형! 무사하셨군요! 방금 전에 저희한테 개미 떼를 유인해 왔던 놈은 잡으셨어요?”
피에 젖은 내 모습에 움찔하던 주창범이 이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다.
“예. 죽였습니다.”
“정말 다행이네요.”
“그건 그렇고, 바로 움직이죠. 녀석을 죽이다 보니 여왕 개미굴 입구까지 개미들을 싹 쓸어놨습니다. 늦었다간 다른 파티에게 뺏길 수도 있습니다.”
“넵!”
우리는 여왕 개미굴 입구를 향해 빠른 속도로 이동했다.
20분 정도 바쁘게 움직였더니, 금세 여왕 개미굴 입구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다행히 아직 아무도 안 온 모양이네.’
워낙 여기저기 개미들의 사체가 널려있어서 치우지 않고는 여왕 개미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는 상태였다.
한참을 살펴봤지만, 사체를 옮긴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신입들과 함께 여왕 개미굴로 들어가다가 입구에서 발걸음을 뚝, 멈췄다.
“······?”
“전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여왕 개미를 처치하는 것은 오롯이 여러분의 몫입니다.”
“네?”
내 말에 신입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안쪽의 상황은 지금까지 여러분이 상대했던 개미 마수들과는 차원이 다를 겁니다. 더 강한 개체인 개미 호위병들도 있을 거고, 운이 나쁘면 왕자 개미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들어가서 신중하게 고민하고, 생각한 다음 여왕 개미까지 처치하고 오세요.”
“저희가 할 수 있을까요?”
주창범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다.
아니, 아마 쉽지 않을 것이다.
‘높은 확률로 호위병들에게 둘러싸여 죽겠지.’
설혹, 호위병을 다 처치한다고 해도 여왕 개미까지 죽이는 건 정말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도 녀석들만 보내는 이유가 있었다.
조건이 너무 좋았으니까.
여왕 개미굴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는 딱 1개뿐.
이 경기에 내가 모르는 네임드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그 앞을 내가 지키고 있는 상태에선 어느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다.
혹시 네임드가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먼저 여왕 개미를 죽여버리면 된다.
그러니까 녀석들이 여왕 개미를 처치하지 못하고 전멸한다고 해도 내가 미션을 클리어할 수 있다.
‘한 번쯤 죽음을 경험해 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성장할 수 있어.’
녀석들만의 힘으로 미션을 클리어하면 클리어하는 대로 배우는 게 있을 것이고, 클리어하지 못하더라도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좋은 경험을 시켜줄 수 있는 조건이 흔치 않은 상황.
나로서는 녀석들을 사지로 밀어 넣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딱 하나만 명심하세요.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할 것. 그것만 명심한다면 아예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닐 겁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해오지 않았습니까. 가서 여러분의 노력을 증명하고 오세요.”
내 말에 신입들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더니 여왕 개미굴로 천천히 진입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내가 할 일을 해야겠군.’
그때 어떤 파티가 개미굴 대광장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들의 목표는 여왕 개미.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일은 신입들이 여왕 개미를 처치하거나, 혹은 전멸할 때까지 이 안으로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
대광장으로 들어오던 파티는 나를 발견하더니 자기들끼리 수군거렸다.
“잠깐. 저 앞에 누가 서 있는데?”
“어떤 파티가 이미 여왕 개미굴 안으로 진입했나 보군. 서두르자.”
검사 세 명에 궁수 하나, 마법사 하나로 이루어진 파티였다.
PvM 미션을 수행하기에 딱 좋은 조합.
“로라! 저 녀석을 처치하고 굴 안으로 들어가면 바로 캐스팅을 준비해! 고태민, 너는 혹시 안에 마법사가 있다면 1순위로 제거하라!”
적들은 곧장 여왕 개미굴 쪽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모습.
물론 그 안에는 자신들의 실력이 기저에 깔려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20개의 파티 중 가장 먼저 여왕 개미굴에 도착했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녀석들의 실력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었으니.
‘상대를 잘못 만났다고 생각해라.’
나는 곧장 천둥의 숨결을 켜고 쇄도하는 녀석들을 향해 창을 휘둘렀다.
콰지지직!
“꾸엑!”
“끄아아악!”
뇌신 스킬로 인해 전기 스파크가 튀며 다섯 명 중 네 명이 단숨에 두 동강이 났다.
검객 한 명이 간신히 내 공격을 막아냈지만, 뒤로 한참을 튕겨져 나갔다.
하지만 녀석의 상태도 그리 좋아 보이진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채 계속해서 피를 토하고 있었다.
띠링!
[플레이어 ‘로라’ 를 처치했습니다.]
[플레이어 ‘고태민’ 을 처치했······.]
[<피의 회복> 능력으로 체력이 1% 회복됩니다.]
네 명의 사체에서 뿜어져 나온 피가 사방에 흩뿌려졌다.
“미, 미친······. 쿨럭, 쿨럭. 어디서 이런 괴물이······.”
검객은 허망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심장에 창을 찔러넣었다.
띠링!
순식간에 생겨난 다섯 구의 시체들.
이 시체들이 쌓이다 보면 이 안으로 함부로 접근하려 하는 플레이어들의 숫자가 줄어들 것이다.
―키에에에엑!
마침 내가 첫 번째로 도착한 파티를 정리하는 사이, 신입들도 사냥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개미 마수들의 괴성이 어렴풋이 들려왔다.
사실, 신입들이 결국 공략에 실패해서 죽는 게 더 많은 교훈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들이 사냥에 성공하길, 마음속으로 빌었다.
신입들이 여왕 개미굴로 진입한 지 어느덧 3시간째.
여전히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싸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태창으로 데스 콜이 뜨지 않는 걸 보니, 모두들 무사한 모양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쓰러진 상대에게 창을 찔러넣었다.
“크헉!”
띠링!
나도 어느새 4 파티 째 전멸시킨 상태였다.
‘뇌신이랑 천둥의 숨결이 시너지가 좋네.’
1티어 급 스킬은 그야말로 사기에 가까웠다.
어느 정도 강해질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손쉽게 다른 파티를 압도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지금 내 수준은 당장 코메인 이벤트를 뛰어도 학살하고 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
“모, 모두 정지!”
그사이 새로운 파티가 중앙 광장에 진입하다 내 모습을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췄다.
두 동강이 난 채 죽어있는 수십 구의 시체들.
그 사이에서 피범벅이 된 채 홀로 서 있는 나.
그 모습을 본 녀석들은 숨죽인 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
“······.”
잠깐의 정적.
나는 굳이 녀석들에게 먼저 달려들지 않았다.
아무리 콜로세움이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이라지만, 전의를 상실한 적들을 베고 싶진 않았으니까.
그건 피에 굶주린 사이코패스들이나 하는 짓이다.
“호, 혹시 우리를 죽이지 않으실 건가요?”
내가 따로 적의를 보이지 않자 새로온 파티에서 마법 모자를 쓰고 있던 여성이 내게 물었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안으로 들어오려 하지만 않는다면.”
내 대답에 녀석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 살았다. 어차피 들어가지도 못할 거, 우리 여기 한쪽에 앉아서 쉬죠.”
여자 마법사의 말에 남은 파티원들이 내 눈치를 보며 살금살금 자리를 옮겼다.
광장 한쪽 구석이었다.
나를 상대해서 쓰러트리진 못할 것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를 기회가 생겼을 때 내부로 진입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나는 그들을 굳이 건들지 않았다.
그 뒤로 세 개의 파티가 더 도착했다.
그중 내게 달려들었던 한 파티는 싸늘한 시체가 되었고, 나머지 두 파티는······.
―네임드 맞는 것 같지?
―네. 그래도 먼저 덤비지만 않으면 죽이진 않나 봐요.
―다행이다. 가끔 싸이코 같은 새끼들도 있잖아. 그에 비하면 저 정도는 천사지 뭐. 에잇, 그나저나 이번 경기는 공쳤네.
―그래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시죠. 어차피 저런 녀석들은 금방 상위리그로 올라가잖습니까.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며 나를 흘깃흘깃 쳐다보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기 무료했던 나는 녀석들의 말을 엿들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때, 또 다른 파티 하나가 대광장에 도착했다.
―앗, 또 다른 파티 왔다. 쟤넨 어떻게 할까?
―저랑 내기하시죠. 전 안 덤벼든다에 천 골드.
―야야, 내가 거기에 걸래.
―제가 이미 먼저 했잖습니까. 그러니까 파티장님은 덤벼든다에 천 골드에요.
“뭐야, 이 병신들은. 소풍이라도 나왔나?”
“아무래도 입구에서 가로막고 있는 새끼 때문에 그런 것 같은데. 하여튼 쫄보 새끼들.”
새로온 파티는 쌓여있는 플레이어들의 시체를 보고서도 내게 덤벼들었다.
‘쯧.’
콜로세움에는 생각보다 자기 목숨 귀한 줄 모르는 녀석들이 너무 많았다.
나는 또다시 천둥의 숨결을 켜고, 녀석들에게 창을 휘둘렀다.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마침 대광장에서 입구 막기를 한 뒤로 첫 벽력이 터졌다.
엄청난 위력에 내 창을 정면으로 받아내려 했던 플레이어는 상반신이 통째로 사라진 채 쓰러졌고, 나머지 녀석들도 무사하진 못했다.
살아남은 녀석들은 처참하게 죽은 동료의 시체를 보며 벌벌 떨었다.
“큭······ 이건, 대체?”
“사, 살려주세요. 다신 안 덤빌게요. 제발······.”
나는 바닥에 쓰러진 채 꿈틀거리는 플레이어들을 하나하나 죽였다.
물론 살려달라고 빌던 녀석도.
‘아예 덤비지 않는다면 모를까.’
한 번이라도 내게 이빨을 들이민 녀석은 살려두지 않는다.
―야, 방금 봤어? 무슨 번개가 치는 것 같았는데?
―와 씨, 아까 전에 상대했던 파티한테 본 실력을 다 보여준 게 아니었나 본데요.
―미친. 도대체 어느 성계의 네임드야? 저 정도면 거의 무림에서 대문파 장로급 아니야?
―확실한 건 무림은 아니에요. 걔네들은 로브 입는 거 질색하잖아요. 저 가면만 보면 미드가르드나 하이퍼보리아일 것 같은데요?
―그건 그렇고 천 골드, 알지?
―네? 건다고 대답 안 하셨잖아요!
벽력의 위력에 주변에서 쉬고 있던 파티들이 모두 놀란 모양이었다.
나도 한 번씩 발동될 때마다 깜짝깜짝 놀랄 정도였으니, 저들의 반응이 이해됐다.
‘그나저나 제법 오래 걸리네.’
생각보다 신입들이 호위병 개미 마수들을 상대로 잘 버티고 있는 듯 했다.
여전히 여왕 개미굴 내부에서는 싸우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무려 세 시간 가까이 쉬지 않고 싸우는 중인 것이다.
‘이 경기로 실전의 경험이랑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싸움엔 익숙해졌을 테니, 앞으로는 플레이어들을 상대로 싸우는 법을 집중적으로 교육시켜야겠군.’
물론 PvM 경기만 전문적으로 출전하는 플레이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PvM 경기 안에서도 플레이어들과 싸우는 것은 똑같다.
오늘 경기만 해도 단체 PvM 미션이지만, 개미 마수보다 플레이어들과 싸운 게 더 많았으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여왕 개미굴 내부에서 들리던 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죽었군.’
씁쓸했다.
죽음을 통해서 더 많은 것을 배울 거라고 생각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녀석들이 여왕 개미 마수 사냥에 성공하길 바라고 있었으니까.
그때였다.
띠링!
[여왕 개미 마수를 처치했습니다!]
[경기가 종료되었습니다.]
[팀 ‘투지’ 승리!]
[기본급 x 1 의 승리 수당이 지급됩니다.]
[팀 ‘투지’ 파티의 사망자는 모두 부활합니다.]
[사망한 파티원이 없습니다. 보너스로 1,000 P 를 지급합니다.]
상태창에 경기 종료 콜이 떴다.
순간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진짜로?
녀석들이 여왕 개미 마수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고?
도대체 어떻게?
[개미 마수 킬 수에 따른 보너스를 책정합니다.]
[개미 킬 수 현황 ― 1위. 팀 ‘투지’ 427킬]
[개미 킬 수 1위 보너스로 3,000 P 를 지급합니다.]
[파티 킬 수 현황 ― 1위. 팀 ‘투지’ 26킬]
[파티 킬 수 1위 보너스로 3,000 P 를 지급합니다.]
[모두 생존한 상태로 개미 킬 수 1위, 파티 킬 수 1위를 달성하였으므로 x 2 의 추가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신입들의 실력이 더 뛰어났던 모양이었다.
순간 나는 긴장을 풀며 피식 웃었다.
왜 나 혼자만 급성장했다고 생각했을까.
저들도 나와 함께 훈련을 진행해 왔는데.
‘우리 팀 자체가 급성장했음을 증명하는 경기였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수확이었다.
띠링!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87 의 6경기를 종료합니다.]
[파이트 머니로 16,100 P 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6,900 P 차감)]
[기본급 +4,500 P / 승리 수당 +4,500 P / 추가 보너스 +14,000 P / 수수료 -6,900 P]
[다음 경기부터는 기본급을 5,000 P 로 책정합니다.]
[소속된 팀의 팜으로 이동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얀빛이 나를 감싸더니, 이내 익숙했던 풍경이 보였다.
그 앞에서 아세리안과 이세연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아세리안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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