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급성장(4)
다음 날 아침.
나는 스트레칭을 끝내자마자 대련장으로 향했다.
‘어디, 한번 시험해 볼까.’
띠링!
[<천둥의 숨결>을 사용합니다.]
[체력 소모가 2배로 빨라지는 대신, 근력과 민첩이 +15% 상승합니다.]
[<벽력> 능력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벽력>]
[공격 시 0.1%의 확률로 벽력이 치며 근력이 +50% 상승합니다.]
[이동 시 0.1%의 확률로 벽력이 치며 민첩이 +50% 상승합니다.]
천둥의 숨결을 키자 온몸에 힘이 흘러넘쳤다.
마치 특전을 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근데 벽력? 이건 뭐지?’
솔직히 상태창의 설명만 봤을 땐 직관적으로 와닿는 게 없었다.
0.1%의 확률로 벽력이 치며 근력 혹은 민첩이 50% 상승한다고?
‘어차피 움직이면서 스킬을 시험해 볼 생각이었으니까 저것도 한번 해봐야겠네.’
나는 허수아비를 가상의 적이라고 생각하면서 공격해 들어갔다.
푹! 푹! 팍! 팍! 팍!
하지만 한참을 휘둘러도 벽력은 터지지 않았다.
“헉, 허억, 헉, 헉.”
순식간에 온몸이 땀에 젖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체력 소모가 너무 빨랐다.
‘하긴 0.1%면 1천 번 휘둘러야 한 번 터진다는 건데, 쉽게 터질 리가 없지.’
단순히 찌르기 1천 번을 수련하는 것만 해도 몇 시간이 걸린다.
결국 하루종일 천둥의 숨결을 켜고 있어도 몇 번 터지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벽력이란 능력이 그렇게 매력적이진 않은 것 같았다.
‘쯧, 근력이랑 민첩 15% 상승하는 걸로 만족해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으로 몇 번 더 휘두르고 들어가려고 마음먹었을 때였다.
푹! 푹! 팍!
띠링!
[<벽력>이 발동됩니다.]
꽈아아아아아아앙!
가볍게 휘두른 공격에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훈련용 허수아비가 터져 나갔다.
지금까지 수백, 수천 번을 때려도 모양을 유지하고 있던 허수아비였다.
“······.”
엄청난 위력에 할 말을 잃을 정도.
가까이 다가가 보니, 허수아비는 반토막이 난 채 일부가 새까맣게 타 있었다.
마치 벼락을 맞은 듯한 모습이었다.
“하. 하하······ 하하······.”
나도 모르게 실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현재 내 근력은 34.
거기에 특전을 키고, 천둥의 숨결 효과를 받은 다음 벽력까지 터지면 70이 넘는다.
내 기본 근력의 2배를 넘는 셈이다.
‘만약 내가 상대였다면 이 공격을 받아낼 수 있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모든 움직임에는 리듬이란 게 존재한다.
그런데 그 리듬을 깨고 갑자기 이런 공격이 들어온다면 도저히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이거 진짜······ 대박이다.’
물론 0.1%라는 극악의 확률이고, 언제 터질지도 모르지만, 한번 터진다면 거의 확실하게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는 능력인 것이다.
벌컥!
“안우진님! 혹시 여기서 무슨 소리 못 들으셨, 어? 이 허수아비 왜 이래요?”
아세리안이 단련실로 들어오더니 박살이 난 허수아비를 발견하곤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아, 제가 부쉈······.”
“이거 비싼 건데! 잘 부러지지 말라고 마법 처리까지 돼 있는 건데! 얘네들 혹시, 싸구려를 판매한 거 아냐?”
허리 부분이 절단된 허수아비 앞에서 아세리안이 씩씩거렸다.
순간 나도 모르게 말을 바꿨다.
“······긴 한데, 아무래도 싸구려 같군요. 산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습니까.”
“그렇죠? 에잇, 당장 가서 새 걸로 바꿔 달라고 해야겠어요.”
아세리안이 부서진 허수아비들을 쓸어 담더니 뿅! 하고 사라졌다.
그녀가 사라지자 내 등으로 한줄기 식은땀이 흘렀다.
‘앞으로 허수아비를 때릴 때는 천둥의 숨결을 끄고 해야겠군.’
경기가 잡히고, 훈련에 몰두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저주 아이템 덕분에 나와 신입들의 스텟은 빠르게 상승했다.
“하앗!”
현재 대련장 위에서는 루치아노와 지그가 대련 중이었다.
이전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빠르고 정확해진 움직임.
이 정도면 미션을 진행하더라도 어느 정도 제 몫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훈련과 실전은 차원이 다르지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이번 미션에서 내 역할은 신입들이 안전하게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것.
‘단체 PvM 미션이라······. 진짜 오랜만에 뛰네.’
눈을 잃기 전에 뛰었던 게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만!”
내 외침에 서로에게 무기를 겨눈 채 치열하게 싸우고 있던 루치아노와 지그가 움직임을 멈췄다.
“헉, 헉. 고생 많으셨소.”
“허억, 헉. 지그 형님이야말로.”
둘이 서로에게 예의를 표한 뒤 대련장을 내려왔다.
다음 차례는 나와 주창범, 제이스.
나 혼자서 주창범과 제이스를 상대하는 것이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진 형님.”
“잘 부탁드립니다, 안우진님.”
“예.”
주창범과 제이스가 나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뒤 빠르게 달려들었다.
검과 방패의 주창범. 그리고 뒤에서 대검을 휘두르는 제이스.
주창범이 앞에서 내 공격을 막고, 견제하는 동안 제이스가 유효타를 넣는 전략인 것 같았다.
‘이제 좀 빡세게 해볼까.’
“오늘부턴 실전처럼 가겠습니다.”
그동안은 최대한 피를 보지 않는 선에서 상대해 줬는데, 이제 슬슬 녀석들에게 제대로 해줄 때가 된 것 같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통증 앞에서는 머리가 하얗게 변할 테니까.
지금 미리 피를 봐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요즘 실력이 빠르게 상승했다고 기고만장해진 것도 있는 것 같고.
이럴 때 한번 휘어잡아줘야 한다.
‘마침 무기도 좋지.’
오늘 내 무기는 창.
내가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무기다.
이거라면 녀석들의 생명을 위협하지 않으면서도 곳곳에 구멍을 내줄 수 있을 것이다.
“제이스 형님!”
“알겠다!”
주창범이 방패를 앞세운 채 내게 달라붙으며 공간을 자르는 사이 제이스가 대검을 휘둘러왔다.
흐읍!
나는 창대로 방패를 옆으로 쳐낸 뒤 창을 빙글 돌려 주창범의 허벅지를 찌르고 창면으로 목을 쳤다.
허벅지가 찔려 무게 중심이 무너진 주창범은 목을 얻어맞고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그리고 뒤이어 쇄도하는 제이스의 손목을 찌르고 그의 품으로 파고들어 옆구리를 무릎으로 찍었다.
“크윽!”
대검을 떨어트리며 통증에 뒷걸음질 치는 제이스.
제대로 하니까 아예 상대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너무나 당연한 거다.
다만, 이후 제이스의 행동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십니까.”
“예······?”
내 차가운 목소리에 제이스가 몸을 움찔 떨었다.
“아직 상대가 눈앞에 있는데, 왜 그렇게 눈을 멀뚱멀뚱 뜨고 계신 거죠.”
“그······ 손목을 찔려서 대검을 들 수가 없어서······.”
“분명 그 전에 글라디우스 다루는 걸 훈련하지 않으셨나요. 기절한 주창범의 글라디우스라도 쥐고 싸우셔야죠.”
“······.”
“여러분은 앞으로 1주일 뒤에 콜로세움에 입장하게 됩니다. 거기서도 이러실 겁니까?”
“아······ 아닙니다.”
“앞으로 1주일간은 실전과 같은 훈련을 할 겁니다. 콜로세움은 단 한 순간의 망설임만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입니다. 가서 죽고 싶지 않으면, 제 말을 명심하세요.”
제이스에게 말을 마친 나는 루치아노와 지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루치아노와 지그는 내 시선이 닿자 몸을 움찔 떨었다.
“올라오시죠.”
“······예.”
루치아노와 지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대련장을 올랐다.
좋아.
다시 보기 좋은 표정이 됐다.
‘절대 자만하거나 안주해선 안 돼.’
특히 저들의 실력에서는 더더욱.
제이스에게 일침을 놨던 내 모습에서 느껴지는 게 있어서였는지, 루치아노와 지그는 죽기 살기로 내게 덤벼들었다.
뭐 그래봤자 주창범이나 제이스와 마찬가지로 단 한 번의 공격도 제대로 버텨내지 못했지만, 기세가 확연하게 달라졌다.
내가 얼마나 강하든 상관하지 않고 어떻게든 내 몸에 구멍을 내겠다는 일념이 느껴진 것이다.
‘좋아. 이 정도면 아레나에 들어가더라도 얼타진 않겠군.’
쓰러진 지그와 루치아노를 뒤로하고 나는 창을 갈무리했다.
“그럼 이곳에서 치료 다 하고, 휴식의 방에서 1시간 보낸 뒤에 오늘 일과를 마무리하겠습니다.”
결과물에 만족하며 쓰러진 신입들을 놔둔 채 대련장을 나설 때였다.
“아, 안우진님.”
마침 대련장 안으로 들어오던 아세리안과 마주쳤다.
“예.”
“그, 전에 부탁하셨던 거 있잖아요? 마력의 호수에서 물을 퍼달라고······.”
“연락이 왔습니까?”
“네. 오늘 열렸던 블러드나이트 186의 4경기가 안타레스에서 열렸거든요. 그래서 제가 서브 미션을 걸어서 물을 퍼오게 했어요.”
오.
나는 아세리안에게 감탄했다.
커뮤니티에 글을 남기는 것을 넘어, 내 말을 기억해 둔 채 자기가 직접 경기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직접 서브 미션을 거셨으면 포인트 소비가 제법 심하셨을 텐데······.”
“그래도 안우진님이 처음으로 부탁하신 일이잖아요. 안우진님이 저주 아이템을 사신 거에 비하면 얼마 들지도 않았는걸요. 아마 150리터 정도 될 거예요. 숙소 앞에 놔뒀어요.”
“아, 감사합니다.”
숙소 앞으로 가자 오크 나무통 3개가 놓여져 있었다.
한 개당 50리터씩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들고 서둘러 내 방에 딸린 샤워실로 향했다.
콸콸콸-
그리고 오크 나무통 뚜껑을 열어 욕조에 내용물을 모두 쏟아부었다.
‘후. 이렇게 딱 좋은 타이밍에 마력의 호숫물도 얻다니. 이번 미션은 왠지 예감이 좋은데.’
호숫물을 다 부은 나는 중개 거래소로 들어갔다.
[<소모품:유니콘의 뿔>]
[성스러운 유니콘의 뿔이다. 맑고 정순한 마력이 담겨져 있다. 무척 단단해서 가공하기가 쉽지 않다.]
[등급 : 고귀]
[<소모품:유니콘의 뿔>을 100,000 G 에 구입하셨습니다.]
내 손 위에 나타난 길이 40센티미터 정도의 길다란 유니콘의 뿔.
나는 그걸 욕조 속에 넣었다.
그러자 엄청 단단했던 유니콘의 뿔이 흐물흐물해지더니, 이내 마력의 호숫물에 녹아 없어졌다.
맑고 투명했던 호숫물이 연한 청록색 빛깔을 띠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하나 더 해도 되겠는데.’
나는 유니콘의 뿔을 하나 더 구매해서 욕조에 담갔다.
그러자 더욱 진해진 청록색 빛깔.
그걸 확인한 나는 장비를 모두 벗고 욕조로 들어갔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마력 스텟이 1 증가합니다.]
[마력 스텟이 1 증가합니다.]
[마력 스텟이 1 증가합니다.]
[마력 스텟이 1 증가······.]
[마력 스텟이 ······.]
그러자 미친 듯이 오르기 시작하는 마력 스텟.
순식간에 10을 넘어 20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정말 다행이야.’
내심 이번 경기를 출전하기 전에는 구하지 못할 줄 알았다.
그런데 딱 1주일 전에 구할 수 있을 줄이야.
나는 편하게 누우며 욕조에 몸을 맡겼다.
청량한 기운이 내 몸속으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마력 : 22]
어느새 마력 스텟은 22나 상승했다.
하지만 여전히 멈추지 않고 오르고 있었다.
‘이걸로 마력 스텟은 해결이네.’
물론 스텟을 더 올리려면 새로운 마력의 호숫물이 필요하지만, 그건 아세리안에게 계속 구해달라고 하면 되고, 유니콘의 뿔도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골드가 있었다.
그사이 장비도 얼추 맞췄고, 1티어짜리 스킬도 세 개나 얻은 상태.
거기다가 신입들의 실력도 빠르게 늘고 있었다.
이렇게 계획대로 딱딱 진행됐던 게 얼마 만이었을까.
‘회귀하고는 처음인 거 같네.’
내가 해야 할 준비는 모두 끝냈다.
이제 경기장 안에서 더욱 성장한 내 실력을 증명하는 것뿐.
나는 욕조 안으로 더욱 몸을 밀어 넣었다.
그렇게 1주일이 흘렀다.
“다녀오겠습니다.”
“네. 꼭 승리할 필요는 없으니, 부디 건강하게만 다녀오세요.”
“다녀오겠습니다, 여신님!”
“네. 안우진님 말씀 잘 듣고, 다치지 말고 조심하세요.”
아세리안의 배웅을 받은 나와 신입들이 게이트를 넘었다.
띠링!
[경기 :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87의 제 6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유형 : 보스 몬스터 처치(단체 PvM)]
[게임명 : 지하에서의 혈투]
[맵 : 데스 벨리(대)]
[관객 수 : 28,274 명]
[승리 조건 : 여왕개미 마수를 가장 먼저 처치한 파티]
[여왕 개미 마수는 개미굴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습니다.]
[단체 PvM 미션은 승리한 파티에 한해서 모두 부활합니다.]
[현재 생존한 파티 수 : 20 개]
[보너스 포인트 조건이 있습니다.]
[많은 개미 마수를 죽일수록 보너스가 상승합니다!]
[많은 상대 파티를 전멸시킬수록 보너스가 상승합니다!]
[개미 킬 수 현황 ― 없음]
[파티 킬 수 현황 ― 없음]
[3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이번 경기의 미션은 여왕개미 마수 처치.
개미 마수는 약한 대신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자랑한다.
‘미션도 행운이 따르네.’
그렇기 때문에 신입들의 첫 상대로도 나쁘지 않았다.
물론 숫자를 잘 조절할 수 있어야겠지만.
“제이스.”
“네?”
내 부름에 제이스가 상태창을 보다가 움찔 떨었다.
“지그, 루치아노, 주창범.”
나는 한 명씩 부르며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예.”
“넵.”
“네, 형님.”
“이제 여러분이 지금까지 흘린 땀들을 증명할 시간입니다. 한번 잘해 보죠.”
“넵,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내 말에 신입들이 결의에 찬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자, 출발합시다.”
나는 창을 으스러지도록 쥐었다.
이번 경기에서.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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