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급성장(2)
어째서지?
왜 블랙 허브의 가격이 그대로인 거지?
순간 내가 블랙 허브의 정보가 풀리는 시기를 착각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블러드나이트 180 경기에서 블랙 허브의 정보가 풀리는 게 맞아.’
그럼 어째서 블랙 허브의 정보가 갱신되지 않는 거지?
한참을 고민해보자 결국 하나의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내가 문제였어.’
내가 회귀함으로써 미래가 달라진 것이다.
1회차와 전혀 다른 팜에서 시작했고, 전혀 다른 행보를 보이고 있는 나란 존재가 미래를 바꾼 게 틀림없었다.
‘나비 효과.’
나로 인해 죽지 않았어야 할 녀석들이 죽었고, 보너스를 받았어야 할 녀석들이 받지 못했으며, 졌어야 할 경기를 이기고······.
이런 식으로 나열해 나가면 아마 무수히 많은 미래들이 바뀌었을 것이다.
고작 세 경기 뛰었을 뿐인데.
‘차라리 잘 됐어.’
당장 블랙 허브의 가격이 급등하지 않은 건 아쉽지만, 그렇다고 꼭 그게 안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블랙 허브가 엘릭서의 재료로 들어간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으니까.
기왕 이렇게 된 거 최대한 많은 물량을 모아놓으면 된다.
‘그리고 내가 가진 물량이 많아지면 블랙 허브의 시세를 내 의지대로 조종할 수 있어.’
기존에 1만 골드씩 팔리던 것을 두세 배, 아니 다섯 배까지 올릴 수 있을지도.
그렇게 된다면 내가 사려고 했던 것보다 더 좋은 스킬과 아이템들을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당장 블랙 허브의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게 별로 실망스럽지 않았다.
변한 건 없다.
난 여전히 특전과 초감각, 그리고 테크닉에 경험까지 가지고 있다.
그저 평소와 같이 묵묵하게 훈련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1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대련장에서 신입들과 대련을 하고 있었다.
최근에 신입들의 실력이 빠르게 늘고 있다 보니, 다양한 무기를 경험시켜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래서 어제는 활, 그저께는 창, 그리고 그 전날은 검을 사용했었다.
오늘 내 무기는 단검이었다.
제이스와 지그, 루치아노를 쓰러트리고 주창범만 남은 상황.
챙! 쨍그랑-
“헉, 헉, 졌습니다.”
내가 주창범의 검을 쳐내며 가볍게 품 안으로 파고들어 목에 단검을 겨누자 주창범이 항복했다.
후-
네 명과 연달아 싸우고 나니까 숨이 조금 가빠졌다.
처음 네 명을 동시에 상대했을 때, 숨소리 하나 바뀌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글라디우스와 방패는 이만 졸업해도 되겠군요.”
내 말에 바닥에 쓰러진 채 숨을 고르던 신입들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내 말에 신입들은 얼굴이 상기된 채 서로를 얼싸안았다.
내게서 듣는 첫 칭찬이다 보니 감회가 남다른 모양이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게 많았다.
비교하자면 내 첫 경기였던 더미전에서 더미들을 학살하러 나왔던 플레이어들 정도의 수준이랄까.
아마 검을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상대를 만나면 몇 번 반항하지도 못하고 죽을 것이다.
‘뭐, 상관없지.’
애초에 내가 검과 방패로 기대했던 수준이 딱 그 정도였으니까.
적어도 반항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죽진 않는 수준.
그것만으로도 사망률을 크게 낮춰줄 것이다.
‘그럼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
이제부턴 검과 방패가 아닌, 저들에게 맞는 무기를 찾을 시간이다.
“각자 여기에서 원하는 무기를 하나씩 골라보세요.”
나는 대련장 한편에 걸려 있는 각종 무기들을 가리켰다.
아세리안이 미리 준비해둔, 공산품처럼 대량으로 만들어져 나온 무기들이었다.
길이와 두께에 따라 분류되는 각종 검들과 도, 창, 활 등등 없는 것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하여튼 성격 하나는 참 꼼꼼하다.
신입들은 무기들을 만져보고, 휘둘러 보기도 하며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저기, 안우진님. 혹시 이번에 고르면 다른 무기로 못 바꾸나요?”
주창범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바꿔도 됩니다. 어차피 단번에 자기에게 맞는 무기를 찾기란 쉽지 않을 테니까요.”
그제야 신입들은 각자 무기를 하나씩 쥐어서 내 앞으로 왔다.
나는 가장 먼저 대검을 고른 제이스에게 물었다.
“투핸디드 소드를 고른 이유가 뭡니까?”
“예? 그, 그게······.”
“편하게 말씀하셔도 됩니다. 어떤 관점으로 골랐는지 궁금해서 그런 거니까요.”
“아, 예. 저는 힘이 세고 체력이 좋아서요. 이런 큼직큼직한 무기들이랑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싶어서 골랐습니다.”
제이스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스텟만 보자면 충분히 잘 어울릴만한 무기이긴 했다.
나는 그 옆에 서 있는 지그에게 고개를 돌렸다.
“지그님은 왜 롱 소드를 골랐습니까?”
“검이 가장 범용적이고 보편적이어서 골랐습니다.”
무난한 대답.
효율성보다 안정적인 걸 택한 모양이었다.
나는 루치아노를 바라보았다.
그는 창을 들고 있었다.
“왜 창을 골랐죠?”
“리치가 길고, 다른 무기들보다 숙련도가 빨리 오른다고 들어서 골랐습니다.”
오, 그나마 좀 마음에 드는 대답이었다.
상인 출신이라더니, 제법 생각이란 걸 할 줄 알았다.
물론 내가 창술사라서 더 긍정적으로 보는 것도 있을 것이다.
나는 마지막으로 주창범을 봤다.
그는 글라디우스와 방패, 그대로 들고 있었다.
“주창범님은 무기를 안 골랐습니까?”
“전 그대로 이걸 들려고 합니다.”
“이유가 뭐죠?”
“공수 밸런스가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제 발이 빠른 편이라서 안정적으로 상대에게 파고들기도 좋고, 거리만 좁히면 유효타를 넣기에도 수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직 제 수준이 낮은데 다른 무기들을 배우는 것도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대로 들고 있었습니다.”
오.
녀석의 말에 나는 감탄했다.
싸울 때도 봤지만, 제법 센스가 있는 녀석이었다.
박투술과 다르게 냉병기를 이용한 싸움에선 단 한 번의 유효타만으로도 상대를 쓰러트릴 수 있다.
그래서 공격보다 방어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한 번만 방어에 실패해도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되니까.
주창범이 잘 싸우는 건 몰라도, 아마 이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게 될 것이다.
“좋습니다. 오늘부터 각자 고른 무기로 훈련을 진행할 겁니다.”
서로가 다른 무기를 손에 쥔 상태였지만, 교육을 하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기초를 다지고 실전과 같은 대련으로 숙련도를 올린다는, 큰 틀 안에서 함께 움직일 테니까.
나는 신입들에게 각자 고른 무기로 글라디우스를 수련하던 때와 똑같이 찌르기와 내려치기, 베기를 각각 1분에 한 번씩 휘두르라고 지시했다.
아, 주창범만 빼고.
“주창범씨는 남으세요.”
“네?”
“저분들과 다르게 주창범씨는 오늘 오전에도 기초 단련을 하지 않았습니까.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죠.”
나는 주창범을 데리고 대련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검과 방패를 들었다.
“무기를 운용하는 데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그 무기의 기본을 단련하는 거죠.”
나는 가상의 적에게 방패를 내밀며 검을 찔러 넣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두 번째가 그 무기를 응용하는 겁니다.”
“응용이요?”
“예. 지금까진 찌르기와 내려치기, 베기만 했죠. 하지만 글라디우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그것 말고도 무궁무진합니다. 검면으로 친다던가, 던진다던가, 공간이 안 나오는 상태에서 검자루로 망치 내리치듯 찍는다던가. 하다못해 검자루를 잡을 때 손의 위치만 달라져도 변칙적인 공격을 할 수 있죠.”
“아······.”
“방패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 공격을 방어해 내는 것을 넘어, 잡는 방법에 따라 내려찍을 수도 있고, 밀 수도 있고, 던질 수도 있고, 상대의 시야를 방해하는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 주창범씨는 글라디우스와 방패를 응용하는 법을 배울 겁니다. 물론 기초 훈련은 매일 따로 진행하셔야 합니다. 그걸 소홀히 할 경우 다음 단계는 없습니다.”
그러자 주창범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이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될 거란 생각에 설레는 듯 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배우나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오, 그게 뭐죠?”
“저와 겨루면서 직접 배우는 겁니다.”
“네? 그게 무슨······.”
“원래 직접 당해보는 게 가장 빠른 법입니다. 그럼 갑니다.”
나는 주창범의 대답을 듣지 않고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날부터 한동안 대련장에서 주창범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2주 후.
신입들의 스텟과 실력은 빠르게 늘어갔다.
새로운 무기를 선택했던 제이스와 지그, 루치아노는 이미 한번 글라디우스와 방패로 단련했던 덕분인지, 새로운 무기들의 기초를 빠르게 잡아나갔다.
초급 단계를 넘어 중급 단계의 수련을 시작한 주창범은 말할 것도 없고.
‘근데 왜 경기가 안 잡히지?’
보통 신입들이 들어오면 1달에서 2달 안에 경기가 잡힌다.
신입들이 들어온 시기는 블러드나이트 177이 열리던 주.
그때부터 6주의 시간이 흘렀다.
슬슬 경기가 잡힐 때가 됐는데.
나는 아침 식사 시간에 아세리안에게 물어보았다.
“오퍼 들어온 거 없습니까?”
“네, 경기 끝나신 지 한 달밖에 안 지났잖아요. 거기다 코메인 이벤트였구. 원래 기본급 높아질수록 경기가 잘 안잡혀요.”
“아뇨. 저 말고, 신입들이요.”
“아······ 네.”
뭐지?
내 질문에 아세리안이 떨떠름한 표정이 되었다.
“왜 그러십니까?”
“휴우. 사실 있어요. 근데 내보내기가 좀 애매한 경기가 들어와서요.”
“뭐가 애매합니까?”
“그게, 블러드나이트 187의 6경기 오퍼가 들어왔거든요.”
“6경기요?”
아세리안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들어온 신입들에게 제법 높은 넘버링의 언더카드 경기 오퍼를 넣는다고?
보통 신입들은 1경기에서 4경기 사이에 출전한다.
아, 물론 1경기부터 2경기까지는 더미전이지만, 더미로 출전시키는 게 아니고 그 상대팀으로 출전한다는 뜻이다.
근데 6경기면 내가 얼마 전에 뛰었던 붉은 깃발전보다 딱 한 단계 낮은 넘버링.
그런 곳에 신입들을 내보낸다고?
‘다 죽이겠다는 뜻이지.’
근데 뭔가 이상하다.
게임 메이커가 그렇게 허술하게 오퍼를 낼 리가 없는데.
“희한하군요. 신입들한테 6경기 오퍼가 올 리 없는데.”
“네. 아, 안우진님 까지 포함해서요. 5인 단체 PvM 미션.”
이어지는 아세리안의 말을 듣고서야 나는 무슨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고민할 만도 하군.’
5인 단체 PvM 경기.
한마디로 5명이 몬스터를 사냥하는 미션이다. 어떤 몬스터가 나오고, 어떤 룰일지는 들어가 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문제는 나와 신입들의 격차가 너무 크다는 것.
내가 뛰기엔 쉽고, 신입들이 뛰기엔 어려운 미션이 나올 테니까.
‘아세리안이 굳이 오퍼가 들어왔다고 얘기도 하지 않은 이유가 있었어.’
신입들에게 경기를 뛰게 하려는 목적은 경험이다.
하지만 난이도가 너무 높으면 그저 내 버스를 받으며 편하게 다녀올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높은 난이도에 모조리 죽거나.
나도 배우는 게 별로 없을 거고, 신입들도 배우는 게 별로 없을 터.
나는 포크를 내려놓은 채 검지로 테이블을 톡, 톡 두드렸다.
“그 오퍼. 받는 건 어떻습니까.”
“네? 진심이세요?”
“결국 문제는 신입들의 수준에서는 뛰기 너무 어려운 미션이라는 거 아닙니까. 블러드나이트 187까지 남은 시간은 1달. 그사이에 최대한 실력을 끌어올려 보죠.”
“그게 가능할까요?”
“속성으로 가르치면 됩니다. 어차피 6경기가 아니었어도 경기가 잡히면 몇 주간 속성으로 가르칠 생각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단체 팀 미션이면 승리하는 팀은 죽은 사람도 다 부활시켜주지 않습니까. 어떻게든 이겨보죠.”
“음······ 알겠어요.”
그렇게 나와 신입들은 4주 후, 블러드나이트 187 경기에 참가하는 걸로 확정되었다.
“······그렇게 해서 앞으로 4주 후에 블러드나이트 187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오오, 드디어.”
“더 열심히 훈련해야겠네요!”
내 말에 신입들은 잔뜩 흥분한 모습이었다.
저들의 목적도 결국 초월리그의 챔피언이다.
그걸 위해 지금까지 고된 훈련을 감내해 온 것이고.
그렇기에 경기가 잡혔다는 말에 모두들 부푼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얘기했다시피, 난이도가 제법 높습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훈련의 강도가 더 세질 건데, 미리 말씀드리죠. 엄청 힘들고, 괴로울 겁니다.”
“상관 없습니다. 오히려 더 빠르게 강해질 수 있을 테니까요!”
주창범이 크게 소리쳤다.
나머지 세 명의 표정도 주창범과 다르지 않았다.
‘좋네.’
1회차에서는 느껴보지 못했던 분위기.
아세리안에게 신입 플레이어들을 받자고 말하길 잘한 것 같았다.
그날 저녁.
[현재 시각 21:01:47]
“하나만 더! 하나만!”
“끄으으으윽.”
평소라면 훈련을 끝내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 쉴 시간인데도, 체력 단련실에는 후끈한 열기로 가득했다.
앞으로 한 달 동안 기존에 아침, 점심, 저녁으로 세 번 했던 훈련에서 밤 훈련까지 추가한 것이다.
“자,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
내 외침에 신입들이 신음소리를 내며 바닥에 철퍼덕 누웠다.
“자, 자. 다들 어서 일어나시죠. 분명 휴식의 방에서 1시간 휴식을 취하는 것까지가 오늘 일정이라고 했을 텐데요.”
그러자 신입들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더니 좀비처럼 비척거리며 휴식의 방을 향했다.
휴. 이것으로 오늘 내 일정도 끝났다.
나는 습관처럼 중개 거래소로 들어가 물량을 쓸어 담았다.
‘이만 쉬어야겠군.’
그렇게 내 숙소를 향해 돌아갈 때였다.
띠링!
[블랙 허브의 정보가 갱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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