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급성장(1)
다음 날 아침.
나는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며 빛의 이면 경기를 복기하고 있었다.
이번 경기에서 내가 느낀 것은 내 실력에 대한 한계였다.
‘특전과 초감각, 그리고 경험. 거기다 테크닉까지.’
이 정도면 굳이 포인트를 써서 스텟을 올리지 않아도 충분히 하위리그를 넘어설 수 있을 줄 알았으니까.
‘그래도 정말 다행이야.’
1주일 뒤에 블랙 허브의 정보가 풀린다.
블랙 허브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르는 순간 고급 아이템들과 스킬들로 도배를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전과 초감각, 경험, 테크닉에 이어 아이템과 스킬까지 갖추게 되는 셈이니, 이 정도면 스텟의 빈자리를 어느 정도 메워줄 수 있을 것이다.
스텟을 엄청 빨리 올릴 수 있게 될 거기도 하고.
‘매물이 더 올라왔나 볼까?’
나는 시스템 창에서 <중개 거래소>로 입장했다.
[<약초:블랙 허브>]
[티르너노그 성계에서만 나는 약초. 아직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등급 : 희귀]
[판매가 : 70 G]
그 사이 블랙 허브의 가격이 제법 올랐다.
이전에 내가 샀던 30골드보다 2배 이상 올라간 금액.
아무래도 기존에 내가 한번 물량을 쓸어 담으면서 시세가 조금 올라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망설이지 않고 중개소에 올라와 있는 블랙 허브를 모두 쓸어 담았다.
띠링!
[<약초:블랙 허브>를 70 G 에 구입하셨습니다.]
[<약초:블랙 허브>를 70 G 에 구입하셨습니다.]
[<약초:블랙 허브>를 70 G 에 구입하셨습니다.]
[<약초:블랙 허브>를 70 G 에······.]
이번에 구입한 블랙 허브는 총 142개.
이전에 구입해 두었던 것까지 합치면 총 373개의 블랙 허브를 가지고 있었다.
단순하게 한 개당 1만 골드에 판매한다고 가정했을 때 무려 373만 골드.
포인트로 환전해야 했다면 무려 37만 포인트나 써야 했을 만큼 거금이었다.
블랙 허브를 구입한 나는 미련 없이 중개 거래소를 닫았다.
이제 블랙 허브 코인이 떡상하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안녕하십니까, 안우진님.”
앞으로의 계획을 정리하는 사이, 신입 플레이어들이 체력 단련실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
나는 그들의 인사를 받아주며 묵묵히 스트레칭을 할 뿐이었다.
‘아, 참. 이것도 써 봐야지.’
경기 종료 직전, 가면에 파편 조각을 합성시키면서 얻은 ‘악마의 눈.’
하얀 가면은 블라디미르의 가면으로 성장한 이후 하얀 바탕 위에 보라색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자세히 생각해 볼 시간이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활용법을 좀 알아둬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악마의 눈을 한명 한명에게 사용해 보았다.
띠링!
[상대방의 능력치를 확인합니다.]
[이름 : 제이스]
[성향 : 선]
[근력 : 11] [민첩 : 9] [체력 : 13]
[정신 : 15] [지력 : 4] [마력 : 0]
[각성 능력 : <하급검술> <하급박투술>]
농부 출신이었던 제이스.
들어온 지 3주밖에 안 된 것 치고는 스텟이 나쁘지 않았다.
초기 스텟이 어느 정도인지는 모르지만, 이 정도면 준수한 수준.
[이름 : 지그]
[성향 : 선]
[근력 : 12] [민첩 : 12] [체력 : 12]
[정신 : 14] [지력 : 5] [마력 : 0]
[각성 능력 : <하급검술> <하급박투술>]
두 번째로 대장장이 출신이었던 지그.
의외로 근력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능력치의 밸런스가 좋았다.
잘 가르치면 제 몫은 해줄 수 있을지도.
[이름 : 루치아노]
[성향 : 중용]
[근력 : 9] [민첩 : 14] [체력 : 12]
[정신 : 19] [지력 : 14] [마력 : 0]
[각성 능력 : <하급검술> <하급박투술>]
세 번째는 상인 출신이라는 루치아노.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스텟은 정신과 지력.
상인 출신이라 그런가 정신 계열 스텟이 높았다.
마법을 배워보는 걸 권하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상황이 여의치가 않았다.
가장 큰 문제인 마법을 알려줄 사람이 없으니까.
일단 추후 루치아노의 노선은 아세리안과 상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이름 : 주창범]
[성향 : 선]
[근력 : 15] [민첩 : 14] [체력 : 17]
[정신 : 23] [지력 : 8] [마력 : 0]
[각성 능력 : <하급검술> <하급검방술> <하급박투술>]
마지막으로 아이돌 가수 출신이라던 주창범.
녀석의 스텟을 보자마자 눈이 번쩍 떠졌다.
전체적인 스텟이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이다.
다른 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
심지어 이미 하급 검방술까지 각성한 상태였다.
‘기본적으로 몸을 쓸 줄 알고, 센스가 있나 본데.’
심지어 정신력도 높았다.
이대로만 성장해 나간다면 상위리그까지는 무난히 올라갈 수 있을 정도.
‘1회차에서는 본 적 없는 녀석이긴 한데.’
잘만 키우면 팀에 많은 포인트를 벌어다 줄 것 같았다.
‘악마의 눈이 있으니까 이런 부분이 좋네.’
초기 스텟은 얼마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기간별로 성장세를 정리해놓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하면 더욱 효율적으로 녀석들의 스텟을 상승시킬 수 있을 테니까.
정리해둔 기록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일주일 후.
나는 새롭게 지어진 레벨 3의 대련장에서 신입들을 상대로 대련을 하고 있었다.
[대련장 Lv. 3 에서는 대련이 끝나면 상처가 모두 회복됩니다.]
검과 방패를 든 채 나를 압박하고 있는 네 명의 신입들.
“방패로 일단 공간을 잘라!”
“그냥 밀어붙이다간 어느 순간 배때기에 구멍이 뚫릴 수도 있다고! 침착해!”
자는 시간과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계속 훈련만 시켰더니 고작 일주일 사이에 녀석들의 실력이 제법 늘었다.
이제는 공간을 활용하고, 다리를 쓸 줄 알며, 들고 있는 무기의 특성을 이해하여 공격할 수 있는 수준.
이 상태로 몇 주만 더 단련한다면 검과 방패는 졸업해도 될 것 같았다.
‘뭐 그래봤자 아직 걸음마 뗀 수준이지만.’
신입들이 네 개의 방패를 벽처럼 쌓은 채 나를 조금씩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내 발을 못 쓰게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어떤 방식으로 상대해야 할지 감이 좀 잡힌 모양이네.’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내겐 통하지 않는다.
나는 순간적으로 지그를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속사포처럼 날아오는 검에 지그가 주춤한 사이, 나머지 세 명이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지그가 뒷걸음질 치며 만들어진 좁은 공간을 통해 순식간에 구석을 빠져나간 뒤였다.
“안 돼! 어떻게 구석까지 밀어 넣었는데!”
“형들 침착해요! 안우진님이 급하게 빠져나온 건 그만큼 구석이 위험했다는 뜻이니까. 다시 구석으로 밀어 넣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이길 수도 있어요!”
세 명의 신입들이 절규하는 사이, 지구 출신인 주창범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저 녀석, 진짜 제법인데?’
순간적으로 상황 판단을 하고, 다른 신입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한 파티 리더의 표본.
물론 구석으로 몰린다고 해서 내가 지거나 하는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허억, 허억, 으······ 죽겠다.”
“제길. 강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지다니······.”
한참 동안 녀석들을 놀아주자, 결국 제풀에 못 이겨 모두들 지쳐 쓰러졌다.
반면에 나는 호흡도 안정적이고, 땀도 흘리지 않은 상황.
그러자 곁에 서서 대련을 구경하고 있던 아세리안이 내게 다가왔다.
“오늘도 고생 많으셨어요. 또 바로 훈련하실 거예요?”
“네. 별로 힘들지도 않은데요.”
나는 아세리안에게 신입들의 뒤처리를 맡긴 채 대련장 구석에 설치되어 있는 허수아비를 향했다.
요 며칠 나는 검술에 매진하고 있었다.
뭔가 잡힐랑 말랑 하는 감각 때문이었다.
실마리는 빛의 이면에서 겨뤘던 레기아와의 대결이었다.
‘빅터는 아마 최상급 검술. 그리고 레기아는 상급 검술이었지.’
그 둘의 검술은 스타일도 다르고 수준도 다르다.
그런데 둘의 검술을 떠올리는 순간 최상급과 상급을 가르는 경계선 같은 것이 얼추 보이는 것 같았다.
기교와 화려함으로 가득했던 레기아의 검술.
깔끔하고 간결하면서 효율적이던 빅터의 검술.
‘도대체 뭘까. 빅터에겐 있으면서 레기아에겐 없던 것이.’
감이 잡힐 듯 하면서도 잡히지 않았다.
후우-
다시 한번 떠올려 보자.
나는 검을 허공에 겨눈 채 가상의 레기아를 그려냈다.
변초와 허초가 엄청나게 섞여 있어서 화려하면서도 어디로 들어올지 모르는 레기아의 검술.
‘그런데도 난 레기아의 검이 향할 곳을 알 수 있었단 말이지.’
한번 상대해 봤던 녀석이고, 어떻게 공략해야 할지를 뻔히 알고 있기 때문에 고작 세 수만에 가상의 레기아를 쓰러트릴 수 있었다.
후우-
이번엔 빅터를 떠올렸다.
불필요한 동작들을 모두 제거한 채 극한의 효율과 빠르기만을 추구했던 빅터의 검술.
화려하지도 않고, 복잡하지도 않지만 그의 공격은 매섭고, 막는 데에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난 빅터의 검이 어디로 향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대체 왜지? 왜 한쪽은 숨기려고 했는데 보인 거고, 왜 다른 한쪽은 숨기지 않았는데도 보이지 않은 거지?’
한참 동안 가상의 빅터와 검을 나누며 그 이유를 생각했다.
왜지?
왜일까.
도대체 왜······.
가상의 빅터가 내 목을 향해 검을 꽂아 넣으려 할 때였다.
‘아!’
순간 나는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빅터도 숨기는 게 있었어.’
레기아와 빅터가 휘두르는 검의 근본적인 차이를 깨달았다.
레기아는 자신의 검을 숨기는 대신, 의지를 숨기지 않았다.
반면에 빅터는 검을 숨기지 않는 대신, 자신의 의지를 숨겼다.
그 사소한 차이가 그 둘 사이를 가르고 있었던 것이다.
‘의지를 숨긴다. 의지를 숨긴다.’
나는 가상의 빅터에게 검을 휘둘렀다.
대신, 어디로 휘두르겠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그저, 검이 이끄는 대로.
검이 향하는 대로 찔러 넣을 뿐이었다.
한번 창을 통해 이뤄냈던 경지였기에, 그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내 검이 가상의 빅터를 향했다.
그리고.
‘푹-’
마치 검이 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띠링!
[<최상급검술>을 각성하셨습니다.]
결국.
내가 목표로 했던 최상급 검술을 달성할 수 있었다.
‘해냈어.’
상급과 최상급을 가르는 벽은 기술적인 부분이 아니었다.
검을 쥐고 있는 검객의 의지.
그 사소한 차이가 상급과 최상급이라는 무시하지 못할 격차를 벌려놓은 것이었다.
“후후······.”
나도 모르게 기분 좋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검술의 경지가 오른 것인데.
이상하게도 특급 창술에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은 생각보다 훈련이 빨리 끝나셨네요?”
이세연의 물음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상급 검술도 달성했겠다, 오랜만에 1시간 일찍 훈련을 끝내고 식당으로 나왔다.
오늘은 블러드나이트 180이 열리는 날이다.
물론 신이 아닌 이상 내가 그 경기를 관람할 순 없지만, 계속해서 기다려왔던 경기였다.
오늘을 기점으로 나는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블랙 허브를 팔고 나서 스킬 세팅부터 해야겠어.’
바로, 블랙 허브의 정보가 풀리는 날이었으니까.
“맛있게 드세요.”
나는 이세연이 차려 준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서둘러 식사를 끝내고 중개 거래소에 들어가서 블랙 허브를 판매할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이세연이 부엌으로 돌아가지 않고 내 맞은편 의자를 꺼내 앉았다.
평소 아세리안이 앉던 자리였다.
‘할 말이라도 있나?’
하지만 이세연은 자리에 앉은 채 내가 먹는 모습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원래대로라면 1시간 후부터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 잠시 쉬는 건가?
나는 이세연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식사에 열중했다.
“잘 먹었습니다.”
“앗, 벌써 다 드셨네요. 부족하시면 더 드릴까요?”
이세연은 당장이라도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음식을 더 퍼올 기세였다.
“아뇨, 괜찮습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식당을 나섰다.
[현재 시각 : 17:57:23]
어느새 블러드나이트 180의 3경기가 끝날 시간이었다.
내 방 침대에 털썩, 하고 앉은 나는 중개 거래소를 열었다.
그 사이 블랙 허브가 8개 더 올라와 있었다.
가격은 100골드.
아직 정보가 풀리지 않은 것이다.
나는 서둘러 8개의 블랙 허브를 모두 구입했다.
지금 이 블랙 허브를 판매한 녀석들은 오늘 경기가 끝난 후 땅을 치고 후회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중개 거래소에 올라와 있는 아이템 목록들을 훑었다.
‘몇 경기쯤 정보가 풀리는질 모르니까 답답하네.’
나는 아이템 목록들을 훑으면서도 틈만 나면 블랙 허브의 가격을 확인했다.
마치 가상화폐 거래소를 확인하는 느낌.
그렇게 아이템들을 보며 침대에서 뒹굴거리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흘러갔다.
1시간, 2시간.
시간이 흐를 때마다 내 마음속에 가득했던 기대감은 사라지고, 조금씩 불안감이 차올랐다.
그렇게.
[현재 시각 01:03:44]
블러드나이트 180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약초:블랙 허브>]
[티르너노그 성계에서만 나는 약초. 아직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등급 : 희귀]
[판매가 : 110 G]
[현재 중개 거래소에 올라와 있지 않은 상품입니다.]
그리고, 블랙 허브의 가격은 전혀 변동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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