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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21화 (21/205)

21화. 빛의 이면(2)

거대한 대저택.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이 근처를 비추고 있었다.

그 밖의 영역은 온전한 어둠.

우리는 그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최대한 조용하게 이동했다.

침투 목적은 요인 암살이 아닌, 성물 파괴와 요인 구출.

최대한 은밀하게 침입해야 한다.

그래야 탈출할 때 조금이나마 수월해질 테니까.

―케일 : 이제부턴 상태창으로만 대화한다. 작은 소음에도 발각될 우려가 있으니. 슈우사쿠, 갈림길 전까지 그대가 척후를 선다.

―슈우사쿠 : 알겠다.

케일의 말에 슈우사쿠가 조금씩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암살자의 기본 스킬인 은신을 사용한 것이다.

감시의 눈을 피해 담벼락을 넘은 우리는 조용히 대저택의 세 번째 입구로 향했다.

입구까지 중간지점 정도 왔을 때였다.

전방에서 세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슈우사쿠 : 전방 30미터에 경비병 셋. 우회는 어려울 듯. 조용히 죽이면 나무 뒤에 시체를 숨길 수 있을 것 같다.

―케일 : 슈우사쿠가 가운데와 우측 경비병을 암살하고, 그 타이밍에 맞춰 고건무가 왼쪽 경비병을 저격한다.

―슈우사쿠 : 확인.

자세를 낮추고 거의 기어가듯이 다가가는 슈우사쿠.

그렇게 경비병들과 세 걸음 정도 남았을 때였다.

‘앤 뭐 하는 거야?’

고건무가 뒤에서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활시위를 걸지 않고 있었다.

내가 어깨를 톡, 건드렸으나 그는 왜 그러냐는 눈빛만 보내올 뿐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쯧.’

하는 수 없이 나는 가슴에 채워진 가죽 벨트에서 비수 하나를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슈우사쿠처럼 자세를 낮춘 채 경비병들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케일 : 렌, 뭐 하는 거지?

케일이 상태창으로 물어봤지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곧 있으면 슈우사쿠가 가운데 경비병부터 암살을 시작할 것이다.

그 타이밍에 맞추려면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야 했다.

거리가 15미터까지 좁혀지자 나는 속으로 숫자를 셌다.

‘셋. 둘. 하나.’

그리고 망설임 없이 손에 쥔 비수를 던졌다.

푹-

“무슨? 컥······.”

갑작스러운 슈우사쿠의 등장에 경비병들이 경계를 하려는 찰나.

띠링!

[<피의 회복> 능력으로 체력이 1% 회복됩니다.]

가운데와 오른쪽 경비병의 목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왼쪽에 서 있던 경비병이 크게 소리를 치려다가 목에 비수가 박힌 채 뒤로 꼬꾸라졌다.

후.

다행히 타이밍을 맞출 수 있었군.

그제서야 케일은 고건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슈우사쿠가 시체들을 질질 끌어 나무 뒤에 숨기는 사이, 케일이 고건무를 불렀다.

―케일 : 고건무. 지금 뭐 하는 거지? 내가 분명 왼쪽 경비병을 저격하라고 했을 텐데.

“······.”

―케일 : 고건무. 이봐.

“······.”

“고건무.”

“예?”

“왜 상태 메시지를 안 보는 거지? 내가 분명 몇 번이나 지시를 내리지 않았나?”

케일이 작게 으르렁거리자 고건무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아, 죄송합니다······.”

“이번 미션은 서로의 손발이 잘 맞는 게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가? 도대체 정신이 어디에 팔려 있는 거지?”

케일의 꾸짖음에도 고건무는 이렇다 할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뭔가 수상한데.’

저렇게 어리버리한 놈이 11전이나 살아남았을리 없다.

분명 뭐가 있는 것 같은데······.

“한시가 급하니 이만하겠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옛.”

“그리고 렌. 고맙다. 그대 덕분에 처음부터 계획이 어그러지지 않을 수 있었다.”

케일의 인사에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대로 넘어가긴 찝찝해.’

케일은 그냥 넘길 생각인 것 같지만, 나는 이대로 진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조용히 고건무의 곁으로 갔다.

―렌 : 고건무.

“예, 부르셨습니까?”

내 부름에 고건무가 답했다.

‘쯧. 괜한 걱정이었나.’

“아닙니다. 어려운 미션인 만큼 조금 더 집중했으면 좋겠습니다.”

“아, 예. 정말 죄송합니다.”

한바탕 작은 소동이 끝나고 다시 진행된 저택의 침입.

이후로는 큰 어려움 없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다.

케일이 고건무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고, 대신 나에게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케일 : 한 번에 두 개 던질 수도 있는가?

―렌 : 가능합니다.

―케일 : 그럼 슈우사쿠가 왼쪽 두 명을, 렌이 오른쪽 두 명을 맡는다.

어쩔 수 없다.

고건무는 케일의 지시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단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케일이 고건무에게 더 이상 지시를 내리지 않는 것도 이해가 됐다.

‘나도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할 것 같고.’

내가 파티장을 맡았다면 고건무 같은 플레이어는 미션 수행에서 아예 제외시켰을 것이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플레이어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까지 긴장하게 만드는 법이니까.

있으면 분명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크게 보면 전체적으론 마이너스였다.

―슈우사쿠 : 여기서부턴 앞에 경비병들이 빽빽하게 지키고 있어서 몰래 돌파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케일 : 고생했다. 지금부턴 강행 돌파하겠다. 신호를 주면 모두 전속력으로 이동한다. 지금부턴 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하도록. 게빈, 그대가 후방 척후를 선다.

―게빈 : 알겠소.

케일이 한 손을 들었다가 앞으로 내렸다.

이동하라는 신호.

그때부터 우리는 은밀함을 버리고 신속하게 이동을 시작했다.

“침입자다! 침입자가 발생했······ 컥!”

경비병들이 우릴 발견하고 고함을 치며 막아보려 했지만, 슈우사쿠와 내 검에 반항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목이 잘렸다.

경비병의 외침에 저택 곳곳에서 병사들의 군화와 갑주 소리가 들려왔지만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대저택의 한가운데까지 조용히 들어온 몸.

더 이상 망설일 이유가 없으니까.

민첩이 높은 슈우사쿠와 하얀 가면 덕분에 체력 걱정을 덜 수 있는 내가 앞장서서 길을 열었고, 그 뒤를 케일과 위일정, 이든 호크가 따라왔다.

마법사 라인인 엘론드와 도로시는 가운데에, 그리고 그 뒤쪽을 브란트와 고건무, 게빈이 에워싼 채 이동했다.

“한 번에 죽이지 못한 놈들은 무시하고 그냥 가라! 뒤에서 처리하겠다!”

케일의 외침에 나와 슈우사쿠는 돌파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자 T자 모양의 복도가 나왔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지하 감옥이,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면 내부 연회장이 나온다.

이제 조별로 나뉘어야 할 시간.

나와 눈이 마주친 슈우사쿠가 고개를 끄덕인 채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잘 부탁한다.”

“무운을 빌죠.”

슈우사쿠의 뒤를 위일정, 이든 호크, 엘론드, 브란트가 따라갔다.

나 또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며 복도를 내달렸다.

이제부터는 나 혼자 앞장을 설 차례.

내 스텟이 슈우사쿠보다 낮아서 돌파력은 형편없지만, 그래도 내가 앞장을 서는 게 맞았다.

성물 파괴조는 나와 케일, 도로시, 게빈, 고건무.

파티장인 케일은 전체적인 지휘를 해야 하고, 원거리 딜러인 고건무나 마법사인 도로시가 앞장을 설 수도 없다.

또 다른 검객인 게빈이 맡거나, 내가 맡거나.

둘 중 하나인데 감각이 뛰어난 내가 앞장을 서는 게 미션을 성공적으로 끝낼 확률이 높았다.

‘어차피 죽어도 미션만 완수하면 되니까.’

나는 이전과 동일한 방법으로 한 번에 죽지 않은 경비병들은 무시한 채 돌파에만 집중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경비병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덕분에 내부 연회장에 성물이 존재한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졌다.

그때 전방에서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다.

“앞에 마법사! 셋!”

“고건무! 마법사들을 최우선으로 저격하라!”

“옛.”

케일의 지시에 고건무가 경비병들 뒤에 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속사를 시작했다.

나는 최전방에서 병사들을 뚫는 것에 집중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검을 휘두를 때였다.

‘왜 아직도 마나의 유동이 느껴져?’

젠장.

고건무가 저격에 실패한 건가?

“케일! 마법이 날아옵니다!”

“이쪽은 내가 방패로 막겠다! 그대는 피하는 것에 집중하라!”

그때 앞에서 각종 마법이 날아오는 게 보였다.

‘피하는 것에 집중하라고?’

이 좁은 복도에서?

앞은 경비병들이 가로막고 있고, 뒤에서는 따라오던 케일이 자세를 낮춘 채 방패를 들어 올리고 있었다.

젠장.

대체 어디로 피하라는 거야?

어쩔 수 없이 앞으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역천자 칭호 적용.’

띠링!

[<신화업적:역천자>을 적용합니다.]

[칭호의 효과로 모든 스텟이 + 20% 상승합니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렌)] [소속 : Team 투지]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35(+6)] [민첩 : 42(+7) [체력 : 46(+8)]

[정신 : 107(+18)] [지력 : 17(+3)] [마력 : 0]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상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상급궁술> <하급검방술>]

[보유 스킬(0/5) : 없음]

[업적 특전 : 모든 스텟 + 20%]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남은 체력 : 78%]

몸에서 힘이 샘솟는다.

나는 빨라진 몸으로 순식간에 경비병들을 뚫어내기 시작했다.

“막아!”

“젠장, 갑자기 빨라졌어.”

“이 괴물 놈!”

검을 겨눈 채 싸운다는 것은, 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상대를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를 무력화 시키는 데엔 속도가 조금 빨라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콰과과과광!

그 사이 뒤쪽에서 마법이 떨어지며 엄청난 폭발음을 만들어 냈다.

다행히 나한테까지 영향을 미치는 마법은 없었다.

‘됐어.’

순식간에 막혀있던 경비병들을 뚫어낸 나는 마법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제, 제길!”

마법을 영창하고 있던 마법사들은 내가 순식간에 다가오자 짧은 욕지거리를 내뱉은 채 목이 꿰뚫려 쓰러졌다.

“잘했다, 렌!”

그때부터 돌파가 훨씬 수월해졌다.

창 대신 검을 들고와서 천만 다행이었다.

이렇게 좁은 복도에서 창을 썼다면 돌파하는 데 한계가 있었을 테니까.

―슈우사쿠 : 지하 감옥 입구에 거의 도착했다.

그때 슈우사쿠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벌써?’

수많은 경비병들에 가로막혀 이제 내부 연회장까지 절반 정도 남은 우리에 비하면 실로 압도적인 속도였다.

―케일 : 경비가 너무 허술한 게 마음에 걸린다. 함정이라고 단정하고 내부로 진입하도록.

―슈우사쿠 : 확인. 내부로 진입하겠다.

내 생각에도 함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곳 외에는 제물이 어디 있을지 예측되는 곳이 없다는 것.

결국 제물 구출조는 함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지하 감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케일이 함정이라는 것을 단정하고 들어가라고 했으니, 혹시 함정이더라도 슈우사쿠가 잘 헤쳐 나가길 기대하는 수밖에.

“렌, 혹시 속도를 더 내줄 수 있나? 아무래도 우리가 성물을 빠르게 파괴하고 제물 구출조와 합류해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케일의 말에 나는 남은 체력을 확인했다.

그동안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음에도 여전히 체력은 70%대 후반을 유지하고 있었다. 계속해서 경비병들을 처치하며 움직였기 때문이다.

이 정도라면 체력 안배를 하지 않고 움직여도 될 것 같았다.

“더 빠르게 가겠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무아지경으로 검을 휘두르며 경비병들 사이를 누볐다.

100미터 달리기를 하듯 엄청난 속도.

덕분에 체력이 빠르게 깎여 나갔지만, 우리는 금세 내부 연회장 앞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성물 파괴까지 제한 시간 : 11:17:02]

“고생했다! 덕분에 빠르게 올 수 있었다.”

케일이 내 어깨를 두드린 후 조원들을 돌아보았다.

“이곳 주위에만 경비병들이 깔려있었던 만큼 내부에도 적들이 제법 많을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성물의 파괴. 불필요한 싸움을 최대한 줄이고 성물만 파괴한 뒤 바로 빠져나간다.”

케일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슈우사쿠 : 지하 감옥 진입 완료. 현재까지 제물은 확인하지 못했음.

슈우사쿠의 메시지가 도착함과 동시에 케일이 내부 연회장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그의 뒤로 우리도 일사불란하게 내부로 진입했다.

그때였다.

우뚝.

순간 몸을 멈칫했다.

연회장 안에는 수많은 사제, 마법사, 성기사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연회장의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육망성의 마법진.

그 위에는 빨간 머리에 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사람이 두 명 있었는데, 둘 모두에게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책을 들고 있는 여인에게선 자색빛이.

그리고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는 여인에게선 하얀색 빛이.

‘제물이······ 여기에 있어?’

빠르게 상황 파악을 한 케일이 메시지를 날렸다.

―케일 : 내부 연회장에서 제물과 성물을 모두 확인하였다. 바로 이쪽으로 복귀하도록.

―슈우사쿠 : 알겠다. 그런데 왜 고건······.

하지만 슈우사쿠의 대답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콰아아아아앙!

어디선가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그리고 연속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콜.

[플레이어 ‘슈우사쿠’ 가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브란트’ 가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엘론드’ 가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위일정’ 이 사망했습니다.]

[플레이어 ‘이든 호크’ 가 사망했습니다.]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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