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20화 (20/205)

20화. 빛의 이면(1)

[2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작은 방 안.

나를 포함해서 총 열 명의 플레이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사 하나, 검객 둘, 창술사 하나, 전사 하나, 암살자 하나, 궁수 하나. 나머지 둘은 마법사인가?’

코메인 이벤트에 출전하는 플레이어들답게, 모두들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다.

그중 한 명은 특히 강해 보였다.

[1초 후 경기가 시작합니다.]

다행히 이번 경기는 단체 미션.

이들과 싸울 이유가 없으므로, 참가한 플레이어가 강할수록 경기에 승리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적어도 폭탄은 없어 보이네.’

그런 의미에서 팀운은 나쁘지 않다고 볼 수 있었다.

[경기 시작!]

경기 시작 콜이 뜸과 동시에 한 명이 앞으로 나섰다. 내가 특히 강하다고 눈여겨보고 있던 기사였다.

“내 닉네임은 케일. 기사이고, 총 17전을 치렀다. 컨텐더의 자격을 부여받았지. 이번 경기는 단체 스토리 미션. 단합이 무척 중요하다. 그래서 이 경기를 지휘할 대장을 뽑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귀하들의 생각은 어떠한가.”

묵직한 저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힘이 담겨 있었다.

“찬성.”

“찬성합니다.”

“나도 찬성.”

아직 하위리그이긴 하지만, 모두들 여러 차례 경기를 치러온 베테랑들. 상황 판단이 빨랐다. 모두가 동의하자 그때부터 대장 선출이 시작되었다.

“각자 닉네임과 특기, 전적을 말해다오.”

케일의 말에 한 명씩 돌아가며 자기소개가 시작됐다.

“닉네임은 슈우사쿠. 16전을 치렀다. 침투 및 암살이 특기.”

단검을 들고 있던 암살자가 말했다.

“고건무. 11전을 치렀습니다. 정찰 및 저격이 특기입니다.”

활을 들고 있던 사내가 말했다.

“전 브란트입니다. 12전 동안 살아남았고, 싸우는 것 외로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군요.”

대검을 들고 있던 남자가 말했다.

“게빈이오. 마찬가지로 12전을 치렀고, 다대일 전투, 호위 전문이요.”

롱소드를 들고 있던 중년인이 말했다.

“위일정 입니다. 14전을 살아남았고, 특기는 일대일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창을 쥐고 있던 남성이 말했다.

“도로시예요. 9전을 싸웠고, 불꽃 마법을 특히 잘 다뤄요.”

완드를 들고 있던 여인이 말했다.

“껄껄, 난 이든 호크. 이번이 12번째 경기로군. 왠지 즐거운 경기가 될 것 같구먼. 안 싸우는 것 빼고 다 잘한다네.”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던 바이킹이 말했다.

“엘론드라고 해요. 8전을 싸웠고, 정령 마법이 특기랍니다.”

로브를 입고 있는 여성의 머리 위로 하급 정령 하나가 뿅, 하고 나타났다.

나머지 한 명이 정령사였군.

이 정도면 파티로는 정말 완벽한 조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드디어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되었다.

“렌입니다. 2전을 치렀고, 특기는 정보 수집, 요인 호위, 암살, 다대일전투 입니다.”

내 말에 곁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탄성을 터트렸다.

“고작 2전 만에 코메인 이벤트를 뛴다고? 네임드인가?”

“아, 렌이라는 닉네임 들어봤어요. 얼마 전에 붉은 깃발전에서 최초 업적을 세운 플레이어잖아요.”

“오오, 네임드는 처음 보는군. 안 그래도 우리 트레이너엔젤도 저자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긴 했지.”

내게로 모여드는 시선들.

무언가 오해가 있는 듯 싶었다.

내 출신 성계가 지구라는 것을 알면 표정이 돌변하겠지.

지구엔 네임드가 없으니까.

‘굳이 얘기하진 말아야겠군.’

기사, 케일도 구성원에 만족한 듯 흡족한 미소를 피웠다.

“내 특기는 지휘, 통솔, 전술 운용이다. 모두들 지휘통솔론을 배운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내가 이 경기의 지휘를 맡아도 되겠는가?”

케일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베스트라고 할 수 있었다.

존재하는 이들 중 유일하게 컨텐더이고, 경험도 가장 많다.

물론 1회차를 경험한 나만큼은 아니지만, 애초에 나는 하위리그 후반기부터 맹인이 되었던 몸.

개인 PvP 말고는 그다지 경험이 없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단체전이나 스토리 미션을 뛰기엔 제약이 너무 많았으니까.

“그럼 지금부터 내가 이 파티의 파티장을 맡겠다. 그대들의 특기에 맞춰 한 명씩 임무를 부여할 테니 잘 따라주도록.”

케일이 한명 한명 역할을 부여했다.

제한 시간은 48시간.

우리는 그중 24시간 동안 미션 수행 전 준비단계를 갖기로 했다.

암살자인 슈우사쿠는 빛의 교단이 점령한 아덴마하 영주성 내부 침입로 조사를, 궁수인 고건무는 영주성 내부에서 제물을 호위해 세이프티 존까지 갈 수 있는 탈출로를 조사하기로 했다.

아덴마하가 있는 티르너노그는 마법이 극도로 발달한 성계.

그래서 마법사인 도로시가 슈우사쿠와 함께 움직이며 마법 함정이 있는지 체크하기로 했고, 감시 때문에 이동하기 어려운 부분을 정령사인 엘론드가 정령으로 확인한다.

검객인 게빈이 근접 전투에 취약한 고건무를 따라가서 호위한다.

나와 브란트, 이든 호크, 위일정은 아덴마하를 돌아다니며 쓸만한 정보를 모아오기로 했다.

“모두 지시받은 내용을 철저하게 수행해 주었으면 한다. 24시간 후, 이곳에서 다시 모이겠다. 중간중간 상태창을 통해 보고하도록.”

케일이 각자에게 임무 분담을 해주자 열 명의 플레이어들이 동시에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미션을 위해 들어와 있는 몸.

친목 도모 따윈 필요가 없었다.

밖으로 나오자 허름한 주택가가 보였다.

스타팅 포인트는 아덴마하 외곽의 빈민가.

나는 일단 이곳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군.’

동이 튼지 제법 됐는데도 길거리는 무척 한산했다.

길바닥에는 쓰레기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고, 간간이 빛의 교단 소속인 듯한 병사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근처 한적한 골목에 몸을 숨기며 지나가길 기다렸다가 나오길 반복한 끝에 아덴마하를 한 바퀴 도는 데 성공했다.

[성물 파괴까지 제한 시간 : 41:55:12]

경기가 시작된 지 어느덧 6시간이 흘렀다.

‘생각보다 넓네. 가면 조각을 찾으러 다닐 시간은 안 되겠는데.’

티르너노그 성계를 배경으로 경기를 많이 뛰어보긴 했지만, 아덴마하는 처음이었다.

회귀 전, 라이언의 트레이너 엔젤이 올린 저격 글에는 가면 조각이 아덴마하 동쪽 숲 어딘가에 있다고 했다.

마침 제물을 호위해서 가야 하는 세이프티 존의 위치도 아덴마하 동쪽 숲 끝 방향.

아무래도 가면 조각을 찾는 것은 제물을 무사히 구출해낸 이후로 미뤄야 할 것 같았다.

지금은 일단 미션이 먼저니까.

중간 보고를 위해 상태창을 열자 그사이 여러 개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슈우사쿠 : 영주성 도착. A-1구역 이동 중.

―도로시 : A-1 구역 3번째 복도에 알람 마법 체크.

―도로시 : A-2 구역 1번째 복도에 알람 마법 체크.

―도로시 : A-2 구역 2번째, 3번째 복도에 알람 마법 체크.

―슈우사쿠 : A-2 구역이 병력은 별로 없지만 알람 마법이 많음. 침입로보단 탈출로로 적당해 보임.

―케일 : 고건무는 A-2 구역으로 이동하여 탈출로로 적당한지 체크하라.

―고건무 : 옙. A-2 구역으로 이동합니다.

메시지 창에는 침입조와 탈출조의 메시지만 가득했다. 정보 수집조에선 아무런 내용도 올리지 못한 상황.

‘정보라는 게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냐에 따라 쓸모 있는 것도 쓸모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그저 하염없이 아덴마하를 돌아다니고 있을 게 뻔했다.

―렌 : 중간 보고. 아덴마하는 가로 8킬로미터, 세로 5킬로미터의 타원형 모양. 길거리엔 사람이 없고, 곳곳에 경비병들이 깔려 있음. 한 바퀴를 도는 동안 만난 경비병의 숫자는 317명. 거수자 외엔 검문을 따로 하지 않음. 동서남북에 성문이 하나씩 존재하고, 각 성문마다 기사 하나와 경비병 열 명이 지키고 있음. 골목길이 무척 많은데, 막다른 골목이 별로 없어 탈출에 용이.

지금까지 모아놓은 정보를 올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케일 : 수고 많았다. 조금만 더 고생하도록.

케일의 답장을 본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미션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정보는 필수였다.

하지만 다른 정보 수집조원들에게 쓸만한 정보를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

결국 내가 더 고생하는 수밖에 없었다.

[성물 파괴까지 제한 시간 : 30:15:17]

밤이 되자 제법 쌀쌀했다.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확보했다.

그렇기에 나는 현재 아덴마하에서 그나마 사람이 많은 술집 지붕에 숨어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제길. 도대체 왕국은 뭘 하고 있는 거지? 아덴마하가 점령된 지 2주나 흘렀는데 아무런 소식도 없다니.”

“쉿, 목소리를 낮추게. 누가 들을 수도 있으니.”

“들으라면 들으라지. 악을 멸하기 위해 빛의 교단이 어쩔 수 없이 아덴마하를 점령했다고? 웃기지도 않는군. 툭하면 이단이라며 무고한 사람들이나 죽여대는 저들이 어찌 선을 부르짖는단 말인가.”

“자네, 너무 흥분했군. 제발 침착하게. 최근에 그런 식으로 얘기하다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는지 알지 않은가. 어제는 로즈 스트리트에 사는 루시아도 끌려갔다고 하더군.”

“아니, 그 아이가 어째서? 그 아이는 인세에 태어난 천사라고 해도 믿을 만큼 착한 아이지 않은가!”

“그게······.”

‘쯧.’

귀를 기울여 봤지만 딱히 쓸만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빛의 교단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 심하다는 것 정도.

차라리 술집보단 순찰을 돌고 있는 경비병들이 나누는 대화에 귀 기울이는 것이 나을 듯 싶었다.

―슈우사쿠 : C-7 구역 체크 중. 알람 마법이 하나밖에 없고 경비병이 일곱. 기습으로 시작한다면 침입로로 가장 좋을 듯. 특이사항으로 갑자기 경계가 심해졌음.

―케일 : 알겠다. 혹시 고건무와 게빈을 보았는가? 둘의 연락이 2시간째 오지 않고 있다. 혹시 억류된 건 아닌지 체크 바란다.

―도로시 : 알겠어요.

―고건무 : 아, 죄송합니다. 제법 괜찮은 탈출로를 찾아서 조사하다 보니 그만 연락이 늦었습니다.

―케일 : 괜찮다. 새로운 탈출로는 어디지?

―고건무 : B-2 구역입니다. 바로 옆에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지 않는 샛길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빠져나오면 곧장 영주성의 후문입니다.

―케일 : 좋군. 수고했다.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고생하도록.

―고건무 : 옛.

여전히 메시지 창에서는 침입조와 탈출조만 활발한 상황.

나는 ‘술집에서 얻은 정보 없음.’ 이라고만 간략하게 남긴 채 경비병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곧 있으면 자정이 넘어가게 된다.

여기서 마저 쓸만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더 이상 정보 수집을 하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뭐라도 건졌으면 좋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며 경비병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메인 스트리트 근처에 숨어들었지만, 역시 경비병들에게서도 그다지 쓸만한 내용을 얻지 못했다.

“이봐, 코비. 그 소식 들었나? 오늘 아침에 에밋이 네가 찜해놨다던 년이랑 한바탕 즐기고 왔다더군.”

“뭐? 호엘룬이랑? 어떻게?”

“평소에 에밋이랑 안면이 있던 마법사님이 마법을 걸어 주셨다나 봐. 그년 남편이랑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변했다던데? 이래서 흑마법이 좋다니까.”

“흐흐, 나도 해 달라고 해봐야겠다.”

쓰잘때기 없는 잡담뿐.

‘결국 꽝이군.’

어느새 주어졌던 24시간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들의 대화를 엿듣던 나는 한숨을 내쉬며 스타팅 포인트로 이동하기 위해 몸을 폈다.

그때였다.

“아 참, 오늘 오후에 교단에서 성녀님이 오셨다더라고. 그래서 사제님들이 당분간은 영주성 근처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하셨어. 특히, 붉은 머리에 새하얀 로브를 입고 있는 여인을 만나면 주의하라고 하더군. 교단의 성물을 들고 오셔서 영주성 근처로 오는 놈들은 이유를 불문하고 제물로 삼겠다고 으름장을 놓더라니까?”

‘성물!’

나는 서둘러 메시지 창을 열었다.

―렌 : 오늘 오후에 성녀가 성물을 가지고 영주성으로 들어갔다고 함. 특징은 붉은 머리에 새하얀 로브. 성녀의 위치를 파악할 것.

―케일 : 정말 귀중한 정보로군. 슈우사쿠, 성녀의 위치도 파악해줄 수 있나?

―슈우사쿠 : 이미 파악 완료함. 제물이 있을 것으로 파악되는 지하 감옥으로 갔다가 이후 영주성 내부 연회장으로 이동하여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음.

―케일 : 알겠다. 계속 수고해 주도록.

다행히 침입조 쪽에서도 제물의 위치를 알아낸 상황.

거기에 방금 전 성물의 위치까지 파악했으니 미션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모두 달성했다고 할 수 있었다.

[성물 파괴까지 제한 시간 : 24:35:42]

덕분에 안가로 향하는 내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모두 고생 많았다. 덕분에 성물과 제물의 위치도 파악했고, 대략적인 침입 루트와 탈출 루트도 정할 수 있었다. 작전 설명 이후 12시간 남을 때까지······.”

8명이 모여 있는 작은 방. 케일이 우리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향수 냄새가 훅, 밀려 들어왔다.

고건무와 게빈이 있는 방향이었다.

‘처음 만났을 땐 이런 향기가 안 났는데.’

쯧.

그 사이 여자랑 뒹굴고 왔나 보군.

“이후 휴식을 가진 뒤, 제한 시간이 12시간 남은 시점에 작전을 실행할 테니 그렇게 알고 있도록.”

“예.”

“우리는 2개 조로 나뉘어 영주성으로 침입한다. 나와 도로시, 게빈, 고건무, 렌이 성물 파괴조. 그리고 슈우사쿠와 브란트, 엘론드, 위일정, 이든 호크가 제물 구출조다. 제물 구출조의 조장은 슈우사쿠가 맡는다.”

슈우사쿠가 역수로 쥐고 있던 단검을 살짝 들어 보였다.

케일이 슈우사쿠를 향해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 지도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이쪽, C-7 구역으로 동시에 침입하여 C-4 구역에 있는 갈림길에서 제물 구출조는 지하 감옥으로, 우리 성물 파괴조는 내부 연회장 쪽으로 이동한다.”

“알겠습니다.”

“성물의 위치는 높은 확률로 내부 연회장에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제물의 위치가 지하 감옥에 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그곳에 있을 것으로 추정될 뿐. 때문에 슈우사쿠, 그대의 역할이 무척 중요하다.”

케일의 말에 슈우사쿠가 입을 열었다.

“최선을 다하지.”

“그곳으로 이동함에 있어 예상되는 어려움은?”

케일의 물음에 입을 연 것은 정령사, 엘론드였다.

“생각보다 그곳에 병력이 별로 없었어요. 저희가 그 앞을 확인했을 땐 사지가 잘린 두 명의 남성이 기절한 채 질질 끌려가는 모습만 확인했을 뿐, 이상할 정도로 그 앞을 지키는 병사가 없어요.”

그녀의 대답에 케일이 팔짱을 꼈다.

“충분히 함정일 가능성이 농후하군. 하지만 그렇다고 확인을 하지 않을 수는 없다. 마침 성녀가 그곳을 다녀갔다고 하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일단 지하 감옥으로 갔다가 제물을 확보하지 못하면 우리와 합류하는 것으로 한다.”

케일의 말에 슈우사쿠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B-2구역 옆에 있는 샛길로 탈출한다. 거기로 나가면 곧바로 영주성의 후문이 나오는데, 이후 곧장 북문으로 달려서 빠져나갈 것이다.”

“동문이 아니구요?”

도로시의 질문에 케일이 지도 한쪽을 짚었다.

“거리상으론 동문이 세이프티 존에 더 가깝지만, 고건무가 조사해보니 그곳은 경사가 있는 언덕길이라고 한다. 근데 북문으로 넘어가면 계속 평지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빠르게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일이 펼쳤던 지도를 돌돌 말아 가슴팍에 넣었다.

“대충 작전은 다 설명했으니 앞으로 12시간 동안 휴식 시간을 갖겠다. 12시간 뒤면 해가 내려앉을 것이다. 그때 작전을 실행한다.”

“알겠습니다.”

다른 인원들이 대답과 함께 방의 구석진 곳으로 향했다. 작전 실행 전, 조금이라도 눈을 붙여 두려는 것 같았다.

나는 스타팅 포인트로 배정된 방을 나섰다.

이곳은 너무 좁아서 10명이 모두 쉬기엔 적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침 미리 봐뒀던 곳이 있기에 그곳으로 향해서 편하게 몸을 뉘었을 때였다.

‘고건무랑, 게빈?’

나 말고도 스타팅 포인트에서 나온 사람이 있었다.

둘은 딱 달라붙어서 작은 목소리로 무언가 얘기를 주고받더니 이내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했다.

거리가 멀어서 무슨 대화 내용이었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오늘 처음 본 사이일 텐데 그사이 친해졌나.’

스멀스멀 불안감이 피어올랐다.

미션으로 이런 맵이 나오면 두 눈이 뒤집힌 채 여자를 탐하는 놈들이 제법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곧 작전인데 설마 또 여자를 품으러 가는 건 아니겠지?

부디 그 정도로 생각이 없진 않길.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미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물 파괴까지 제한 시간 : 11:59:37]

구름에 가려 달빛조차 존재하지 않는 깜깜한 밤이 되었다.

스타팅 포인트에서 빠져나온 우리는 미리 봐두었던 골목을 통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은 채 영주성 바로 입구까지 도착하는 데 성공했다.

검은색 로브로 갑옷을 가린 케일이 입을 열었다.

“모두들.”

그는 한명 한명 눈을 마주치더니 주먹으로 자신의 심장을 두 번 두드렸다.

“시작하자.”

케일의 말을 시작으로 우리는 빠르게 영주성으로 내달렸다.

진정한 미션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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