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7화 (17/205)

17화. 신입 플레이어(4)

아세리안은 고단했던 하루를 끝내고 자신의 성지로 돌아왔다.

‘하아, 바쁘다 바빠. 오늘 하루도 고생 많았어!’

침대에 털썩 앉은 아세리안이 어깨를 부드럽게 톡, 톡 두드렸다.

팀에 고작 세 명의 플레이어가 더 들어왔을 뿐인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아세리안은 이렇게 바쁜 것이 좋았다.

‘아직은 병아리들이지만, 분명 내가 최선을 다한다면 금방 성장할 거야.’

이 고단함이 결국 더 큰 보상으로 돌아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에는 실망이 무척 컸다.

찬경, 지든, 듀리크는 그녀가 오랫동안 눈여겨 보고 있었지만, 포인트가 부족해서 데려오지 못했던 플레이어들.

그들을 데려올 수만 있다면 앞으로는 탄탄대로가 이어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근데 꽝이었다니이이.’

아세리안이 침대 위에서 버둥거렸다.

막상 그들을 데려와 놓고 보니까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

훈련의 커리큘럼을 반도 소화하지 못한 채 퍼져버릴 줄은 몰랐다.

같은 훈련을 어느 누군가는 그들보다 스텟이 한참 낮은 상태에서도 끝까지 완주했었는데.

‘내일부터는 훈련의 강도를 낮춰야 하나?’

당장 내일부터 그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까 고민하자 머리가 아파왔다.

하지만 아세리안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은 생각만 하자. 좋은 생각!’

좋은 생각을 하자고 마음 먹자 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러자 갑자기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헤헤, 어디서 이런 복덩이가 굴러왔나 몰라?’

아세리안이 철퍼덕 침대에 엎드려 양 손바닥으로 턱을 받친 채 생각했다.

안우진.

자신의 첫 번째 플레이어.

아직 하위리그에서 두 경기밖에 뛰지 않았지만, 그를 보고 있으면 그런 확신이 들었다.

이 남자가 밑바닥에 있는 자신을 끌어올려 줄 것이라고.

이대로라면 멀지 않은 시기에 중급신으로 승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후후, 어디 댓글이 얼마나 늘었나 볼까?’

아세리안은 요즘 일과를 끝내고 들어와서 커뮤니티를 보는 낙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커뮤니티에 들어가자 제일 먼저 최상단에 있는 베스트 게시글 3개가 눈에 들어왔다.

―2만 여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단 한 명의 플레이어.

―추천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경기,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6의 8경기.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6, 그 경기를 꼭 봤어야 하는 이유.

놀랍게도 모두 안우진이 뛰었던 경기의 게시글들.

조회수도 100만이 넘어가고 있었다.

아세리안은 그중 가장 위에 있는 게시글을 눌렀다.

―2만여 관중들의 손에 땀을 쥐게 했던, 단 한 명의 플레이어.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6 경기에서 초신성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팀 ‘투지’ 소속의 플레이어 ‘렌’.

처음 들어보는 팀명과 닉네임에 고개를 갸웃하는 신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 등장한 플레이어가 8경기, 붉은 깃발전에서 깃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내며 최초의 기록 업적을 세웠다. 그것도 무려 1,000명이나 참가하는 대형 경기에서.

붉은 깃발전의 룰과 미션을 모르는 이는 존재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경기 내용만 간략하게 소개하겠다.

처음 아레나에서 돋보인 건 단연 팀 ‘몬스터’의 ‘붉은 거미’ 였다. 컨텐더이자 은신술의 대가인 붉은 거미는 한 곳에 매복해 있다가 지나가는 플레이어들을 습격하는 방식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하지만 경기 시작 30분 후, 붉은 깃발의 주인이 정해지면서 경기 분위기가 급변했다. 그 대상은 모두 알다시피 팀 ‘투지’의 ‘렌’ 이었다.

그는 검은색 로브를 머리까지 덮은 채 하얀 가면을 쓰고 있어서 어두울 때 보면 얼굴만 둥둥 떠다니는 레이스를 연상케 하는 플레이어였다.

활을 사용하는 궁수였기에, 붉은 깃발전의 특성상 금방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둘러싸여 깃발을 빼앗길 줄 알았는데, 그때부터 렌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붉은 깃발의 표식이 보이는 순간부터, 아레나에 존재하는 900명의 플레이어들이 렌에게 달려들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그에게서 깃발을 빼앗지 못했다.

그는 시야가 넓고, 민첩했으며, 체력이 뛰어났다. 근, 원거리를 따지지 않고 상대를 사냥할 줄 아는 ‘진짜 사냥꾼’ 이었다.

물론 위기가 없던 것은 아니다. 개인전으로 출전했지만, 파티를 이루고 깃발을 빼앗으려는 플레이어들도 있었고, 준 컨텐더 급 플레이어들의 습격도 있었다.

특히 마지막에는 컨텐더인 ‘붉은 거미’를 처치한 빅터라는 검객을 만나 죽기 직전까지 밀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렌은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았고, 블러드나이트176의 주인공이 되었다.

플레이어 렌은 이 경기로 인해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와 파이트 오브 더 블러드, 두 개의 보너스에 동시에 선정되었다.

두 개의 보너스에 동시에 선정되는 경우는 하위리그에서 10번밖에 존재하지 않았고, 그 경기들이 모두 베스트 전당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경기가 얼마나 박진감 넘쳤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이 경기를 보지 않은 신이 있다면, 반드시 포인트로 다시보기를 결제하여 시청하길 바란다.

└진짜 미쳤더라. 이게 막 스텟이 엄청 높아서 플레이어들 찢고 다닌 경기가 아니라, 죽을랑 말랑 죽을랑 말랑하면서도 끝까지 버텨낸 경기라 더 대박이었음ㅋㅋㅋㅋㅋㅋ

└다시보기로 보고왔더니 소름돋네;; 다른걸 다 떠나서 넓은 시야와 판단력이 개쩔었다···.

└투지? 처음 들어보는데 신생팀인가 보네. 그런 팀에서 저런 네임드가 나오다니ㄷㄷ

└ㄴㄴ 아직 네임드는 아님. 딱 봐도 스텟이 낮아보이잖음.

└응, 그 스텟 낮아보이는 녀석이 스텟 높다는 놈들 다 찢고다님~

└ㅅㅂ 나 그날 직관하고 왔다. 그날 관객 2만명 다 바지에 지렸더라.

└진짜 그날 생각만해도 소름돋음 ㅋㅋㅋㅋ 마지막에는 다들 경기에 집중하느라 한마디도 안해서 엄청 조용했음 ㅋㅋㅋㅋㅋ 그러다가 경기 끝날 때 다같이 소리지르는데 와;; 다시 생각해도 소름돋넼ㅋㅋㅋ

‘후후, 우리 안우진님이 좀 대단하긴 하지.’

아세리안은 침대에 엎드린 채 발을 동동 굴렀다.

눈부신 재능.

그런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엄청난 노력을 쏟아붓는 노력파.

그 힘든 훈련을 우는소리 한 번 하지 않고 소화해내는 악바리.

그 외에 분석 능력이라던가, 판단력, 과감함, 성실함 등.

우리 안우진님은 뭐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1,200 포인트에 이런 플레이어를 영입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지!’

찬경과 지든, 듀리크를 영입하는데 쓴 돈이 3만 포인트 정도 되니, 거의 거저나 다름없는 가격이었다.

솔직히 지금 심정으로는······ 10만 포인트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것 같았다.

‘좋았어. 안우진님을 중심으로 조금씩 팀을 키워 나가는 거야!’

아세리안이 그런 생각을 하며 이만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였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소속 플레이어 ‘안우진’ 이 긴급 호출 중입니다.]

[소속 플레이어 ‘안우진’ 이 긴급 호출 중입니다.]

[소속 플레이어 ‘안우진’ 이 긴급 호출 중입니다.]

[소속 플레이어 ‘안우진’ 이 긴급 호출 중입니다.]

[소속 플레이어 ‘안우진’ 이 긴급 호출 중입니다.]

무려 5번의 긴급 호출.

순간 아세리안은 심장이 철렁하는 느낌이었다.

이런 식으로 긴급 호출이 왔다면 무슨 일이 생겼다는 뜻.

아세리안은 서둘러 옷을 갈아입고 팜으로 공간이동을 했다.

헐레벌떡 숙소 안으로 들어서자 싸늘한 공기 사이로 피 냄새가 묻어나왔다.

타다다다닥-

아세리안은 여신이라는 품위도 잊은 채 서둘러 안우진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나타나는 세 개의 시신과 핏빛의 향연.

그 안에서 안우진만이 고요하게 앉아 있었다.

“대, 대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희망찬 내일을 꿈꾸고 있었는데.

앞으로는 계속 좋은 일밖에 없을 줄 알았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거지?

왜, 이곳에서 이 세 사람이 싸늘하게 죽어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게.”

그래서 물어보았다.

이 진실을 알고 있을, 태연하게 앉아 있는.

“어떻게 된 일이죠.”

한 남자에게.

차가운 표정의 아세리안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녀는 언제나 에너지가 넘쳤고, 항상 밝게 웃고 있었으니까.

뭐,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긴 했다.

내가 새로 들어온 세 사람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 정도는 아세리안도 알고 있었을 테니.

하지만 나는 잘못한 게 없다.

무척 떳떳한 입장.

애초에 그녀가 그들에 대해 말할 시간도 주지 않았으니까.

“왜 대답을 못 하시죠? 지금. 제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있지 않나요.”

차가운 냉기가 스며든 아세리안의 목소리가 귓가에 꽂힌다.

그때 곁에서 손을 벌벌 떨고 있던 이세연이 입을 열었다.

“그, 제, 제가 말씀드릴게요.”

이세연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세 사람이 나에게 시비를 걸어왔던 것이며, 자신을 덮치려고 했던 일, 내가 구해줬던 일, 그리고 오늘도 찾아오진 않을까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 세 사람이 무기를 든 채 내 방으로 향했던 일들을 아세리안에게 말했다.

아세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다가 점점 미간이 찌푸려지더니, 이내 아랫입술을 깨물며 내 곁에 털썩 앉았다.

그녀는 작게 ‘다행이야. 안우진님 대신 그들이 죽어서 정말 다행이야.’ 라고 읊조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벌떡 일어나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숙였다.

“미, 미안해요······.”

아까와 달리 한껏 풀이 죽은 얼굴.

그 모습을 보자 나도 마음이 약해졌다.

솔직히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으니까.

팀에 들어온 지 고작 이틀 만에 이런 깽판을 벌일 미친놈들이란 걸 그녀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렇기에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다 같이 내 방을 치우느라 꼬박 밤을 새워야 했다. 나는 시체를 치우고, 두 사람은 내 방에 가득 튄 피를 닦아냈다.

나 혼자 정리해 보겠다고 했는데, 이세연과 아세리안이 꼭 도와주겠다고 해서 셋이서 정리를 했다.

“잘못했으면 세 사람한테 안우진님이 죽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까 열받아서 안 되겠어요. 마음 같아선 세 사람을 다시 살려내 죽여버리고 싶을 지경이에요.”

공터 한쪽에 구덩이라도 파서 묻으려고 했는데, 아세리안이 나를 말렸다.

그리곤 꼴도 보기 싫다며 세 사람의 육체를 신성 마법으로 불태워버렸다.

새벽 내내 청소를 마치고, 다시 평소와 같은 식사 시간.

아세리안은 여전히 침울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있었고, 이세연은······.

오히려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긴.

‘언제 자기를 덮칠지 모르는 놈들이 사라졌으니까.’

식사를 마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 좋은 일이 있었긴 했지만, 그건 그거고 훈련은 훈련이다.

프로는 하기 싫을 때도 하는 게 프로니까.

나는 식당을 나서면서 아세리안을 힐끗 쳐다봤다.

그녀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팜을 쑥대밭으로 만든 사건이 있고 나서 1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아세리안은 그 이후로 나를 더욱 신경 쓰기 시작했다.

오히려 다른 플레이어에 대한 영입의 마음을 접은 듯 보였다.

그렇다고 랜덤 뽑기를 통해 신입 플레이어를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나 하나만 잘 키우자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건 그거대로 골치가 아픈데.’

물론 나에게 올인한다는 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지만, 문제가 있었다.

결국 더 높은 효율의 훈련을 하려면 건물의 등급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

한마디로 많은 포인트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걸 나 혼자서 경기를 뛰어 수수료로 충당하기엔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나 이외의 다른 플레이어들이 들어와 같이 성장해 나가는 게 가장 좋은 일이긴 한데.

흠.

어떻게 할까.

하루 종일 고민했지만 결론은 한 가지 밖에 나오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된 거, 정말 내게 맞는 완벽한 팜을 만들어야겠어.’

그렇게 해서 내게 딱 맞는 완벽한 팜 꾸미기 1단계가 시작되었다.

나는 요즘, 자주 멍을 때리고 있는 아세리안에게 다가가 입을 열었다.

“랜덤 뽑기를 하죠. 신입 플레이어들을 잘 육성시킬 수 있도록 팁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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