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신입 플레이어(2)
“좋은 아침이에요, 안우진님.”
식당으로 들어서자 아세리안이 인사를 건네왔다.
평소와 같은 아침.
아세리안은 오늘도 빵을 입에 문 채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부엌에 서 있던 이세연이 말없이 고개를 숙이기에 나 또한 한 번 끄덕여주고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는 한 개의 식판만이 놓여져 있었다.
내가 평소 먹는, 아세리안의 맞은편 자리.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 앉았다.
“어제 새로 들어온 플레이어들은 같이 식사를 안 합니까?”
“아 찬경, 지든, 듀리크요? 1시간 뒤에 먹을 거예요. 그들은 따로 훈련할 거거든요. 안우진님은 평소처럼 하고 싶은 훈련을 하시면 돼요.”
음.
그니까 말하자면.
나는 알아서 잘 하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건가?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될텐데.’
그렇게 되면 새로 왔다는 플레이어들이 차별이라고 느낄 수도 있다.
왜 똑같은 플레이어들인데, 나는 자유롭게 훈련하고 자기들은 빡세게 훈련하는지에 대한 불만이 생길 수도 있고.
괜히 각 팀들이 훈련 매뉴얼이라는 걸 만들어 두는 게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 하니까.’
인간의 심리라는 게 원래 그렇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분명 무언가 문제가 생길 것이다.
‘뭐, 내 알 바는 아니지.’
하지만 나는 아세리안에게 이런 얘기들을 굳이 말해주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팀 투지는 아세리안의 개인 소유.
그녀가 알아서 할 일이다.
나는 빠르게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식사는 어제보다 훨씬 먹을 만했다.
스트레칭을 마치고 시작된 하체 근력 운동.
하체는 검을 쓰든, 창을 휘두르든, 활을 쏘든 무조건 단련해야 하는 부위다.
활을 쏠 때까지만 해도 하체 근력이 부족해서 화살이 똑바로 나가지 않는다는 느낌은 받지 않았다.
그런데 검을 휘두르다 보니 어쩌면 검 끝이 흔들리는 게 하체 근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닐까, 라는 생각 때문에 오늘부터 시작하게 되었다.
“쉬면 안 돼요!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어어! 5개만 더 하면 2분 쉴 수 있어요! 쉬면 안 된다니까요!”
“일어나세요, 2분 끝났어요! 네? 죽을 것 같다구요? 안 죽어요. 이미 다 해 본 훈련법이에요!”
체력 단련실 한쪽에서는 아세리안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어제 새로온 세 명의 플레이어들은 고작 두 세트만에 퍼져 바닥과 한 몸이 되어 있었다.
“아니이이이! 일어나시라니까요? 이걸 왜 못 버티지? 뭐라구요? 훈련이 너무 막무가내라구요? 그런 말을 하려면 끝까지 해 보고 판단하세요!”
아세리안은 무척 답답하다는 듯 조막만 한 주먹으로 가슴을 콩콩 두드렸다.
‘답답하겠지.’
세 사람의 움직임은 나보다 더 민첩하고, 빨랐다.
즉, 나보다 스텟이 더 높다는 뜻이다.
아세리안이 오랜 시간 고르고 고른 플레이어들인데 어중간한 녀석이 영입될 리가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찬경과 지든, 듀리크는 아세리안이 뭐라고 소리치든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니, 일어나지 못했다.
뭐, 이해는 된다.
‘정말 쉽지 않은 훈련이니까.’
내 사기적인 정신 스텟으로도 겨우 버텨낸 훈련을, 저들이 첫날 바로 해낼 가능성은 그렇게 높지 않았다.
그렇게 따지자면 저들은 운이 나쁜 축에 속한다.
하필 내가 들어온 바로 다음 기수로 들어왔으니까.
이미 아세리안의 눈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황.
그런 의미에서 저 세 사람은 아세리안이 부푼 마음으로 데려온 플레이어들이었기에 기대도 크고 실망도 클 것이다.
‘내 할 일이나 하자.’
나는 그들에게 신경을 끈 채 바른 자세를 유지하며 아주 천천히, 스쿼트를 시작했다.
모든 근력 운동의 핵심은 올바른 자세에서 나온다.
그리고 빠르게 할수록 자세가 흐트러진다.
그래서 천천히 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쓰러진 세 사람이 나에게 묘한 눈초리를 보내왔다.
“저······ 여신님. 그런데 저자는 어째서 이 훈련에 참여 하지 않는 겁니까?”
“안우진님이요? 저분은 알아서 잘하시니까요. 여러분도 잘 한다면 자유롭게 훈련할 수 있도록 해드릴게요. 근데, 지금 여러분은 아. 주. 형편없어요.”
“그, 그게 무슨······.”
아세리안의 말에 나는 쯧, 하고 혀를 찼다.
본인 딴에는 자극을 받아 더 열심히 하라는 뜻에서 얘기했겠지만, 나를 무시하고 있던 세 사람의 입장에선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얘기였다.
‘한동안 피곤하겠군.’
애초에 저런 식으로 자극을 주려면 내가 저 세 사람과의 서열을 정리한 이후에 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열을 정리하더라도 내게 앙심을 품을 수도 있으니까.
‘서열을 정리해도 언제 몰래 다가와서 칼침을 놓을지 알 수가 없지.’
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질투만큼 추잡스러운 감정이 없다.
‘그래도 결국 정리를 한번 해야 하긴 해.’
아무래도 아세리안에게 단련장을 지어달라고 해야 할 것 같았다.
그곳에선 칼을 맞아도 금방 치유가 되니까.
그 안에서 반쯤 죽여놓으면 앙심이고 뭐고 다 사라지겠지.
“꺄악!”
야심한 밤, 누군가의 비명이 팜에 울려 퍼졌다.
나는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침대 옆 협탁에 올려놓은 검부터 뽑아 들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제, 제발······.”
“흐흐, 가만히 있어! 사용인 주제에 감히!”
귓가에 들리는 미세한 말소리.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상황 파악을 하는 데엔 충분했다.
‘진짜 짜증 나게 하네.’
들어온 지 고작 하루만에 사건사고를 일으켜?
나는 방에서 빠져나와 소리가 들리는 근원지로 향했다.
그리고는 이세연의 방 앞에 서서 굳게 닫혀 있는 문을 거세게 발로 찼다.
쾅!
“그쯤 하지.”
방 안에 들어가자 이세연의 양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은 채 우악스러운 손길로 옷을 벗기고 있는 세 명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갑작스러운 내 등장에 세 사람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뭐라고?”
“발정 난 개새끼라서 귀도 먹었나 보군.”
“······하, 이거 진짜 미친 새끼네?”
발리노르 출신의 지든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더니 이세연을 내팽개친 채 내게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 이마에 본인의 이마를 갖다 대더니 으르렁거렸다.
“진짜 뒤지고 싶냐. 여신님이 아낀다고 눈에 뵈는 게 없어? 널 죽이지 못해서 우리가 그동안 가만히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거냐?”
“······.”
“왜, 방금 전까진 뚫린 입이라고 잘도 지껄이더니. 죽여버린다고 하니까 갑자기 겁나?”
그러자 곁에 있던 듀리크도 한 마디를 보탰다.
“아 혹시 이년, 네가 찜해둔 년이냐? 푸흡, 이걸 어째? 우리가 오늘 따먹을 생각인데. 아, 혹시 생각 있으면 말해. 무릎 꿇고 빈다면 한 입 줄까 말까 고민 좀 해 볼 테니까.”
하.
순간 진심으로 고민했다.
‘서열 정리고 뭐고 그냥 죽일까.’
사실, 여성 사용인에 대한 성적 학대는 모든 팜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곳에선 성욕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지.’
여성 플레이어를 상대로 할 순 없으니.
말하자면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암묵적인 룰이랄까.
문제는 그렇게 강간당한 사용인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평소라면 떨지 않을 오지랖을 부리고 있는 것이고.
‘팜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용인이니까.’
찬경과 지든, 듀리크는 나보다 더 스텟이 높고, 7번 이상의 경기에서 살아남은 플레이어.
그들을 영입하는데 아세리안이 제법 많은 포인트를 썼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현재 팀의 재정이 그리 좋지 않을 것이고.
그녀가 없으면 당장 내일 아침 식사부터 꼬인다.
‘이세연이 어떻게 되더라도, 아세리안이 어떤 제스처를 취하긴 쉽지 않아.’
그들을 제법 비싼 포인트를 주고 사 왔을 테니까.
결국 그렇게 된다면 이세연에게 인수인계 해 주었던 일들을 다시 아세리안이 한다는 것인데, 그럼 알게 모르게 팀의 운영이 삐걱거릴 것이다.
지금까진 내가 알아서 잘 해왔기에 큰 문제가 없었던 것이지, 저 세 명을 훈련시키면서 나까지 신경 쓰고, 그 외의 자잘한 부분을 처리하기엔 시간이 부족할 테니까.
‘결국 사소하지만, 많은 부분에서 나한테까지 악영향을 끼칠 확률이 커.’
가령, 경기 오퍼가 들어왔지만 놈들 때문에 바빠진 아세리안이 며칠 뒤에 오퍼를 확인한다든가 하는.
그렇게 되면 기껏 들어왔던 오퍼가 취소된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네.’
그리고 저들이 지금까지 하는 꼴을 봤을 때, 팀에 자연스럽게 융화될 스타일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원래 있던 팀에서도 그런 문제가 있었기에 매물로 내놓았던 걸 테고.
그렇다면 저들과의 생활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득보다 실이 더 많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순간, 녀석들을 그냥 죽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참자.’
하지만 나는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잠시 접었다.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는 법이니까.
저들을 죽이는 것은 일단 아세리안을 설득한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다시 판매해 달라고 해야겠어.’
내가 강하게 어필한다면 저들을 다시 판매할 것이다.
그 포인트로 팜에 있는 건물을 업그레이드 할 수도 있을테고.
그리고 굳이 칼을 뽑지 않더라도 저들을 순한 양으로 만들 수 있는 마법의 단어를 알고 있다.
“아무래도 아세리안님을 호출해야겠군.”
저들은 신입 플레이어들이 아니다.
7번 이상의 경기를 경험했다면 못 해도 콜로세움에 들어온 지 1년 이상은 지났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이들에게 팀의 주인이란 존재는 정말 아득히 높고, 두려운 존재라는 것이다.
‘사실 아세리안처럼 여신이 직접 팜에 나와서 플레이어들을 관리하는 경우가 드물지.’
내 예상대로 아세리안이라는 이름이 나오자 세 명이 움찔했다.
“그만 가세. 흥이 깨져서 더 이상 못 하겠군.”
그제야 지금까지 가만히 있던 무림 출신의 찬경이 입을 열었다.
역시 9전이나 경험한 베테랑.
치고 빠져야 할 때를 정확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하, 씨발. 엄마한테 이르는 애새끼도 아니고.”
찬경이 먼저 방을 나서자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듀리크도 한 마디를 툭 뱉더니 방을 빠져나갔다.
방에 남은 사람은 이제 나와 이세연, 그리고 지든.
“너. 조심해라.”
지든은 방을 서성이며 화를 가라앉히더니 내게 다가와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말했다.
지든까지 빠져나가자 방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이세연은 이불로 몸을 꼬옥 감싼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설 때였다.
“정말 가, 감사합니다.”
이세연이 눈물을 글썽이며 내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마워 할 필요 없습니다. 나를 위해서 한 행동이니까요.”
이세연에겐 정말 미안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내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신경 쓰기엔.
내 스스로가 너무 절박했으니까.
다음 날 아침.
똑같은 일상이 시작되었다.
식당으로 들어서자 빵을 문 채 무언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아세리안의 모습.
그리고 주방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내게 말없이 고개 숙일······.
‘어?’
나와 눈이 마주친 이세연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눈가가 제법 부어있었다.
밤새 눈물이라도 흘린 모양이었다.
‘쯧.’
신경 쓰지 말자.
나는 이세연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곤 자리에 앉아 묵묵히 식사를 시작했다.
‘일단 아세리안에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려야겠어.’
“아세리안님 잠시 시간······.”
“아, 죄송해요. 잠시만요! 이것만 짜고······!”
쯧.
아세리안은 세 사람의 훈련 커리큘럼을 새로 짠다고 정신이 없었다.
아침 식사 시간이 아니면 얘기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세리안과 단둘이 얘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요즘 세 사람을 케어한다고 그들과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으니까.
“내일 아침 식사 때는 시간 좀 비워주세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정말 죄송해요!”
그날 밤.
평소와 같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어, 숙면을 취하고 있을 때였다.
움찔.
‘살기?’
어디선가 미세한 살기가 느껴지자 눈이 번쩍 떠졌다.
스르릉-
나는 일단 검부터 뽑아 들었다.
그때 작게 들려오는 지든의 말소리.
“하, 그 개새끼를 어떻게 하지? 지금 당장이라도 죽여버리고 싶어. 넌 어때, 듀리크.”
“나도 죽이고야 싶지. 하지만 건들 수가 없잖아. 그 녀석은 여신이 아끼는 놈이라고.”
“일단 기절시킨 다음에 목을 매달아 버리자고. 그렇게 하면 놈이 자살을 했는지, 누구한테 살해당한 건지 어떻게 알 거야?”
어디서 느껴지는 살기인가 했더니, 지든과 듀리크가 나를 몰래 죽이기 위한 작당모의를 하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진짜 미친 새끼들이네. 고작 그거 했다고 날 죽이려고 작당모의를 하고 있어?’
“난 찬성일세. 여신의 분노는 걱정하지 마시게. 오히려 녀석이 죽으면 여신은 우리에게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게 될 테니.”
뒤이어 들려오는 찬경의 목소리.
말 수가 별로 없고, 과묵하기에 셋 중에서 그나마 나은 놈인 줄 알았는데, 녀석도 똑같은 인간이었다.
“크하하, 그렇게 된다면 우린 더 이상 눈치 볼 것 없이 생활해도 되겠는데? 당장 죽여버리자고!”
지든의 웃음소리와 함께 끼이익-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방 문이 열릴 때 나는 경첩 소리.
녀석들이 날 죽이러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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