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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세움의 회귀자-14화 (14/205)

14화. 신입 플레이어(1)

다음 날 아침.

“좋은 아침이에요, 안우진님. 좀 푹 쉬셨나요?”

“예.”

평소와 같은 시각에 일어나서 식당으로 향하자 아세리안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식당 한쪽에 처음 보는 사람이 있었다.

“아, 여기는 오늘부터 팜에서 식사와 청소를 맡아 처리해줄 사용인이에요.”

“이, 이세연 입니다. 앞으로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안우진 입니다.”

사용인으로 고용된 사람은 20대 중반 정도의 여성이었는데, 누가 봐도 지구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것도 나와 같은 대한민국 국적의.

‘대부분의 사용인이 지구 출신이긴 하지만.’

지구는 이제 냉병기의 시대가 끝났다.

덕분에 평생동안 검 한번 잡아보지 못한 사람이 전체 인구 중 99.99% 정도 될 것이다.

그런 지구 출신이 콜로세움에 입장해서 하루아침에 검을 잡고 피를 뿌리며 싸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의미에서 콜로세움에 입장했지만 플레이어 자격을 포기하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이세연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일 것이고.

‘뭐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나는 수저를 들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수프를 한입 떠먹었다.

“······.”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 머금은 수프를 뱉을 뻔했다.

‘웩.’

이게 무슨 맛이지?

분명 비주얼은 수프인데······.

아, 혹시 내가 모르는 새로운 음식인가?

순간 나도 모르게 새로 들어왔다는 사용인을 쳐다보았다.

“아······.”

마침 그녀 또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의 두 눈이 서로 마주쳤다.

“마, 맛이 없으신가요?”

이세연이 양손을 모은 채 어깨를 떨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무척 긴장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다시 수프 그릇을 내려다보았다.

맛이 없냐고?

더럽게 맛없다.

내 모습에서 무언가 이상함을 감지한 것인지 아세리안이 황급히 부엌으로 다가갔다.

아마 이세연이 만든 음식들의 맛을 보러 간 것이리라.

‘알아서 아세리안이 잘 말하겠지.’

그사이 나는 수저를 들고 다시 꾸역꾸역 먹기 시작했다.

후.

쉽지 않네.

그렇다고 아침부터 고생해서 아침 식사를 차려 준 이세연에게 뭐라고 하고 싶진 않았다.

아마도 요리를 처음 해본 것일 터.

아세리안도 곧 알아차릴 테니까 차차 개선될 것이다.

“꺅! 이, 이게 뭐예요? 세연, 요리할 때 간 안 봤어요?”

부엌에서 아세리안의 뾰족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자 이세연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더니 손을 벌벌 떨었다.

“아······ 제가 요리는 처음이라······.”

“아! 그럼 미리 말씀을 하셨어야죠! 사용인 경력 1년 차라더니 그동안 요리도 안하고 뭐 했어요?”

“처, 청소랑 빨래만······.”

“아······. 다음부턴 처음 하는 게 있으면 처음 한다고 얘기 좀 해 주세요. 처음부터 다시 만들어야 하니까 준비 좀 해주시구요. 안우진님, 제가 금방 다시······.”

“잘 먹었습니다.”

나는 수저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아세리안이 입을 벌린 채 나와 식판을 번갈아 보았다.

“그걸······ 다 드신 거예요?”

“예.”

솔직히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10년이란 세월을 콜로세움에서 살았으니까.

말이 10년이지, 경기 안에 들어가 있던 시간까지 합치면 15년은 족히 될 것이다.

아레나에서는 경기가 얼마나 되었든, 1시간밖에 지나지 않는다.

한 번 스토리 미션같은걸 진행하게 되면 한 달씩 지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아레나에서 맛있는 음식을 찾는 건 사치에 불과하지.’

그동안 셀 수도 없을 만큼 맛없는 음식을 많이 먹어왔다.

살아남기 위해선 뭐라도 먹어야 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입맛이 까탈스러운 편은 아니었다.

다만 그동안 아세리안이 만들어준 음식들이 너무 맛있었다는 게 문제였달까.

“아······ 죄송해요. 점심 식사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할게요.”

“차차 나아지겠죠.”

“바로 체력 단련장으로 가실 거죠? 인수인계만 좀 더 해 주고 바로 갈게요.”

“그럼 체력 단련장에서 뵙죠.”

길게 한숨을 내쉬는 아세리안을 뒤로하고 숙소를 나섰다.

이전과 같은 평범한 일과가 다시 시작되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근력 민첩 체력 위주의 혹독한 단련을 실시한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오후부터 무기술을 훈련한다.

다만 이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내 손에 활이 아닌 검이 들려 있다는 것이다.

“도무지 이해가 안 되네요.”

한참 동안 허수아비를 향해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데 아세리안이 옆에서 말했다. 그녀는 뭐가 못마땅한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

“아니, 왜 손바닥에서 피를 흘리고 계신 거예요?”

“굳은살이 없으니까요.”

“그니까 제 말이요. 왜 굳은살이 없는 거죠?”

그녀의 말에 나는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 사이 물집이 잡히고, 터지길 반복하며 손바닥에 피가 흥건한 상태였다.

오후부터 내가 한 훈련은 목검을 들고 내려치기와 찌르기, 베기 같은 기본적인 동작들이었다.

검을 단련한다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기초 동작들.

그동안 수만 번은 휘둘러 본 동작들이지만 문제가 있다면 내 몸은 검을 휘둘러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렇기에 손바닥이 쓸려 피가 나는 것이고. 그렇기에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검을 휘둘러 본 적이 없으니까요.”

“······더미 경기에서는요? 거기서 막 검으로 애들 슥삭 하셨잖아요. 그럼 그때 검을 처음 잡아보신 거라구요?”

음.

뭐, 말하자면 그렇게 되겠네.

그렇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잡아봤습니다.”

“제가 얼마 전에 활이 안우진님께 딱 맞는 무기라고 말씀드렸던가요? 정정할게요. 그냥 안우진님은 천재인게 틀림 없어요. 싸움의 천재. 세상에! 검을 처음 잡아본 사람이 30명이나 되는 플레이어들을 혼자 죽였다니! 심지어 저번 경기에서는 창도 잘 쓰셨잖아요!”

그녀는 당장이라도 방방 뛰고 싶은데 여신이라는 체면 때문에 꾸욱 참고 있는 표정이었다.

그녀의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천재라······.

뭐, 그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렇게 느낄 수도 있지만 나는 천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둔재 축에 속하지.’

내게 조금이나마 재능이 있었다면, 하고 바래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왕도 그랬지 않은가.

―나를 탓할 것 없다. 그대의 재능이 여기까지였을 뿐.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씁쓸했다.

절망 속에서 헤매고 있던 시기였으니.

‘다행이네.’

나는 처음으로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내 표정을 아세리안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

후욱!

나는 다시 목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재능이라.

‘나에게도 재능이 있긴 하지.’

재능이라는 게 남들보다 특출난 무언가를 뜻하는 것이라면.

포기하지 않는 마음.

그것 하나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피식-

나에게도 한 가지 커다란 재능이 있긴 했다.

체력 단련실 안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아세리안은 잠시 후 있을 저녁 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갔다.

아직까진 이세연의 요리 솜씨가 미숙해서 그녀가 옆에서 알려줘야 했으니까.

‘검을 먼저 단련하길 잘했네.’

원래는 활 다음에 채찍을 훈련하려고 했다.

내가 궁수 다음으로 상대하기 까다로워하는 상대는 채찍이나 유성추, 연검을 사용하는 플레이어.

긴 리치와 빠른 속도, 예측할 수 없는 공격 패턴 등 상대로 만나게 되면 여간 곤란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을 만나기가 무척 힘들지.’

문제는 그런 무기들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별로 없다는 것.

그래서 내가 당장 채찍이나 사슬낫 같은 무기들을 훈련한다고 해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검은 거의 대다수 플레이어들이 사용하는 무기다.

‘멍청하게, 이 정도면 제법 검을 쓴다고 생각했지.’

고작 중급검술인 주제에.

그래서 검객들을 상대하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빅터를 만나면서 생각을 고치게 되었다.

‘진짜 검의 달인들을 만나면 여전히 상대하기가 힘들어.’

내가 검을 먼저 수련하게 된 이유였다.

중급검술과 상급검술 사이에는 큰 갭이 존재했으니까.

최소 상급검술.

목표는 최상급검술.

이번 수련을 통해 내가 올라가고자 하는 경지였다.

빡!

내가 휘두른 목검이 허수아비를 때리며 경쾌한 소리를 만들어냈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건 내려치기 1,000회.

무척 기본적인 수련이다.

중급검술을 가지고 있는데도 기초 수련부터 시작한 이유는 별 게 아니었다.

‘내 검 끝이 흔들리고 있으니까.’

내 머리는 검을 어떻게 휘둘러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지만, 내 몸이 따라주지 않는 상태.

그래서 검 끝이 흔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초 수련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후욱!

‘윽!’

다시 한번 내려치려는데 목검이 손에서 빠져 애먼 곳으로 날아갔다.

손아귀 힘이 빠져서 목검을 놓친 것이다.

손바닥을 내려다보자 여기저기가 터지고, 쓸려서 땀과 섞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손이 잘게 떨리며 아릿한 통증이 배어 나왔다.

초감각으로 인해 온몸의 신경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

덕분에 통증 또한 더욱 크게 느껴졌다.

젠장.

장갑이라도 끼고 해야 하나.

‘안 돼.’

하지만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 통증을, 이 상처를 버텨내야 한다.

이건 말하자면 검을 휘두르고자 하는 사람이 감내해야 할 통과 의례.

손바닥이 터지고, 쓸려나가며 연약한 피부를 단련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최상급검술을 각성하기 위해선 이 과정을 반드시 지나가야 한다.

‘조금만 더 하면 돼.’

오늘 내가 계획한 목표는 내려치기, 베기, 찌르기 각각 천 회씩.

베기와 찌르기는 이미 끝난 상태다.

이제 내려치기 100번 정도만 더 하면 오늘 일정도 끝.

허수아비 옆에 잘 개어져 있는 수건을 들고 땀과 피를 닦아낸 나는 다시 목검을 들고 휘둘렀다.

빡!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엄청난 고통이 찾아왔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훈련을 끝나고 체력 단련실을 나서자 공터에 나와 있는 아세리안이 보였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세 명의 남자들이 공손히 손을 모은 채 서서 아세리안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모두 처음 보는 사람들.

복장을 보니, 사용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새로 영입한다던 플레이어 들인가 보군.’

“아, 안우진님! 훈련 다 끝내셨나요? 마침 잘 나오셨어요. 여긴 오늘부터 새롭게 팀 투지의 가족이 된 분들이에요.”

“아, 네.”

“찬경 이라고 하오. 무림 출신이고, 9번의 경기에서 살아남았소.”

세 명의 남자들 중 왼쪽에 서 있던 중년인이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올린 채 손을 내밀었다.

그는 회색 무복을 입고 있었는데, 나와 손을 맞잡자 꾸욱 하고 힘을 주었다.

덕분에 터진 손아귀에서 통증이 밀려왔다.

시작부터 기싸움이라도 하자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들과 어울려 줄 생각이 없었다.

말하자면.

굳이 감정 소모를 할 가치가 없는 존재들이랄까.

“안우진 입니다.”

그래서 나는 담백하게 내 소개를 마쳤다.

“지든이라고 한다. 발리노르 출신이고, 7번의 경기에서 살아남았다.”

두 번째로 자기소개를 한 인물은 커다란 사각 방패와 글라디우스를 들고 있는 청년이었다. 그 역시 터진 내 손아귀를 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듀리크요. 미드가르드 출신이고 마찬가지로 7번의 경기에서 살아남았지.”

마지막으로 소개한 듀리크는 바이킹 투구를 쓴 채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는 남성이었다.

특이사항이 있다면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 정도?

그 역시 나를 무시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긴. 검을 처음 잡아봤다는 건데, 무시할 만도 하겠네.’

나는 나머지 둘에게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우리의 통성명이 끝나자 아세리안이 짝! 하고 손뼉을 쳤다.

“자기 소개도 끝났고, 일단 들어가서 식사라도 하면서 남은 대화를 이어가실까요?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니까요! 그 이후에 숙소를 배정해 드릴게요. 안우진님도 시장하시죠? 어서 들어가요!”

아세리안이 앞장서서 숙소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나머지 세 사람도 아세리안을 따라갔다.

그런데 지든이라고 소개한 청년이 따라가는 와중에 나를 힐끗 돌아보더니 피식, 하고 웃었다.

음.

인성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았다.

‘조만간 날을 잡아서 서열 정리부터 해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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