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로세움의 회귀자-13화 (13/205)

13화. 붉은 깃발(6)

[킬 수에 따른 보너스를 책정합니다.]

[킬 수 ― 154 킬]

[놀라운 업적!]

[압도적인 킬 수를 기록하셨습니다!]

[추가 보너스를 받습니다.]

[154 킬을 달성하셨기 때문에 기본급 x 2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붉은 깃발 표식을 얻은 다음부터는 계속해서 전투의 연속이었다.

덕분에 정신없이 돌아다니느라 머리 굴릴 새가 없었는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엄청난 킬 수를 기록한 것이다.

‘154킬······.’

참가한 플레이어 여덟 명 중 한 명을 내가 혼자 잡은 셈.

이렇게 놓고 보니 징할 정도로 싸우긴 한 것 같았다.

띠링!

[최초의 업적!]

[콜로세움에서 붉은 깃발전이 시작된 이래 최초로 처음부터 끝까지 붉은 깃발을 지켜냈습니다.]

[최초의 기록을 세웠기 때문에 추가로 x 3 의 보너스를 지급받게 됩니다.]

‘붉은 깃발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낸 사람이 내가 최초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추가 보상.

하지만 나는 곧장 이해했다.

모든 플레이어들에게 표적이 된다는 것은 무척 끔찍한 일이었다.

심지어 12시간 동안.

‘하얀 가면이 아니었다면 회귀하자마자 비명횡사할 뻔했지.’

인간의 체력엔 한계가 존재했었으니까.

띠링!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6 의 8경기를 종료합니다.]

[파이트 머니로 11,200 P 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4,800 P 차감)]

[기본급 +2,000 P / 승리 수당 +2,000 P / 추가 보너스 +12,000 P / 수수료 -4,800 P]

[다음 경기부터는 기본급을 3,500 P 로 책정합니다.]

[소속된 팀의 팜으로 이동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띠링!

[모든 상태를 100%로 회복합니다.]

내 몸을 감싼 하얀 빛이 사라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직경 100미터 정도의 울타리가 쳐져있는 공터, 그 위로 덮여있는 파란색의 반투명한 막.

그리고 오밀조밀하게 붙어있는 네 개의 건물과 그 앞에 서 있는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있는 아세리안의 모습까지.

‘돌아왔어.’

이곳에서 생활한 지 고작 5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마치 집에 돌아온 것 같았다.

그만큼 이곳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끼고 있다는 뜻이겠지.

“안우진님!”

양손을 가슴께에 모은 채 서 있던 아세리안이 도도도도, 달려왔다.

“다녀왔습······.”

“꺄! 너무 좋아! 안우진님 최고였어요!”

그녀는 앞에 서더니 내 손을 잡고 방방 뛰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래?

내 팔이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 위아래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아세리안은 한참동안이나 기쁨을 표출한 뒤에야 내 손을 풀어주었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처음에 랜덤으로 붉은 깃발에 당첨되셨을 땐 엄청 마음 졸이면서 봤는데, 결국 끝까지 버텨내실 줄이야! 특히 마지막에 빅터라는 검객과의 정면 대결은 숨도 못 쉬면서 본 것 같아요!”

“나쁘지 않았나 보군요.”

내 말에 아세리안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살짝 꼬았다.

“나쁘지 않았냐는 표현으로 끝낼 말이 아니에요! 마지막엔 해설하는 신들도 방방 뛰고 난리가 났었다니까요? 막 저 플레이어 도대체 누구냐고, 새로운 네임드가 탄생했다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었어요!”

그녀의 열변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내 플레이를 보고 이렇게까지 흥분하는 사람의 모습을 처음 봤기 때문이다.

‘이런 기분, 나쁘지 않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좀 쉬어야겠네요.”

다시 팜으로 돌아오며 체력이 100%로 회복되긴 했지만,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12시간이나 싸워댔더니 정신적으로 피로감이 무척 심했다.

진이 빠지는 기분이랄까.

하지만 나는 숙소로 돌아갈 수 없었다.

“아뇨! 절대 안 돼요! 무려 팀 투지 소속으로 뛴 플레이어가 첫 승을 거둔 날인데 파티해야죠! 쉬는 건 내일 푹 쉬고, 오늘은 파티해요, 파티!”

그녀는 나를 강제로 잡아끌고 식당으로 향했다.

경기를 뛴 건 나인데, 그녀가 더 신나 보였다.

누가 보면 자기가 뛴 줄 알겠어.

“포인트 많이 벌어와서 그렇게 기분이 좋습니까?”

“네! 좋아요! 근데 그건 두 번째로 좋은 이유에요.”

“그럼 첫 번째는 뭡니까?”

“안우진님이 무사히 살아 돌아 오셨다는 것! 제가 진짜 얼마나 많이 걱정 했는 줄 아세요? 미션 들을 때까지만 해도 아, 안우진님이면 이번 경기도 무사히 끝내고 오시겠구나 했는데 갑자기 붉은 깃발이 딱! 그때 저 완전 심장 철렁했어요······.”

“······.”

“그래도 내가 봐온 안우진님이라면 어떻게든 하겠지, 분명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끝까지 경기를 지켜볼 수 있었던 거지, 그게 아니었으면 무서워서 경기를 보지도 못했을걸요?”

‘그래서 이렇게 기분이 업되어 있었구나.’

그제야 나는 아세리안이 왜 이렇게 흥분해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정이다.

1회차에 내가 소속되어 있던 곳은 팀 ‘정의’.

그곳에 있을 때는 나를 걱정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계약에 의해 나를 관리해주고 단련시켜주는, 업무적인 관계였을 뿐.

그들은 나를 도구로밖에 취급하지 않았으니까.

‘10년이 넘었구나.’

마지막으로 날 걱정해주던 건 우리 가족들 뿐.

그마저도 이젠 없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그런 의미에서 오랜만에 겪어 본, 누군가가 날 걱정하는 감정은······.

‘나쁘지 않네.’

무척 좋았다.

식당의 테이블.

‘실제로 요리하는 건 처음 보네.’

아세리안은 작게 노래를 흥얼거리며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그녀는 언제나 나보다 일찍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했고, 점심과 저녁도 내가 훈련을 끝내고 식당에 가보면 언제나 차려져 있었다.

나는 늘 앉던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포인트가 얼마나 있지?’

[남은 포인트 : 22,100 P ]

이제까지 고작 두 경기를 뛰었는데, 무려 22,100 포인트나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근력이 21인데, 이 정도면 단숨에 30을 찍고도 남을 양이었다.

‘정말 많은 걸 얻을 수 있는 경기였어.’

단순히 포인트만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무기 중 가장 강력한 건 바로 경험.

나는 이번 경기를 통해 또 새로운 경험을 축적시켰다.

일단 활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게 상승했고, 덕분에 앞으로 궁수를 만나더라도 잘 상대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궁수가 근접 물리 계열의 플레이어들을 상대할 때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고, 어떤 유형으로 공격하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물론 그렇다고 해도 궁수는 여전히 내게 위협적인 존재다. 노련한 궁수들은 숙련된 사냥꾼과 같으니까.

하지만 이전처럼 무력하게 당하진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두 번째로는 스킬의 방향성이었다.

‘다수의 약한 적들을 상대하는 스킬은 필요 없어.’

이번 경기를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다수를 상대로 조금 어려울 순 있을지언정, 나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진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하얀 가면 덕분이었다.

‘고작 일반 등급인데도 이 정도인데, 합성을 통해 여기서 등급이 더 높아지면 다수의 약한 적은 내 상대가 안 돼.’

문제는 빅터와 같은 강자와 상대할 때이다.

열 명의 적을 쓰러트려도 나보다 강한 단 한 명의 고수를 만나 죽는 곳이 콜로세움이었으니까.

만약 빅터와의 전투에서 고수를 상대할 때 유용할 만한 스킬이 단 하나라도 존재했다면 그렇게 속수무책으로 밀리진 않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알았으니까 상관없어.’

다음에 만나면 절대 그런 식으로 무기력하게 밀리진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중개 거래소 오픈’

띠링!

[<약초:블랙 허브>]

[티르너노그 성계에서만 나는 약초. 아직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등급 : 희귀]

[판매가 : - G]

[물건이 거래소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조금만 있으면 블랙 허브의 가격이 미친 듯이 상승할 테니까.

그때가 되면 블랙 허브를 팔아서 완벽에 가까운 스킬트리와 템트리를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뭘 살 건지도 대충 생각해 놨고.

“많이 배고프죠? 거의 다 됐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괜찮습니다. 천천히 하시죠.”

“아참, 이번에 플레이어 몇 명을 영입할까 생각 중이에요.”

“영입이라면, 랜덤 뽑기가 아니고 다른 팀의 플레이어를 사 오시겠다는 거군요.”

“네, 맞아요. 이미 눈여겨보고 있는 플레이어들도 몇 명 있구요. 그래서 곧 사용인을 들일 생각이에요. 지금까지는 안우진님이 혼자서 잘 해와 주셨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지만 관리해야 할 인원이 늘어나면 저도 좀 버겁거든요.”

‘사용인이라. 하긴 지금도 좀 늦긴 했지.’

사용인은 콜로세움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경기 뛰는 걸 거부하는 플레이어들을 말한다.

그들은 경기에 나서지 않는 대신, 팜에서 살아가며 각종 궂은일을 도맡아 처리한다.

‘요리나 청소, 빨래 같은 걸 천사들한테 시킬 순 없지. 그들은 고급 인력이니까.’

애초에 팀 투지처럼 지금까지 사용인이 없던 게 조금 비정상적이었다.

천사도 없고, 사용인도 없다.

그렇다고 내가 요리나 청소, 빨래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 일을 아세리안이 해왔다는 뜻이다.

여신이라는 초월적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이게 모두 다 안우진님 덕분이에요. 더미 경기와 붉은 깃발전, 두 경기밖에 안 뛰셨는데도 엄청난 포인트를 벌어다 주셨잖아요. 정말 감사드려요.”

아세리안이 나를 힐끔 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덕분이라······.

“아뇨.”

“······?”

내 단호한 목소리에 아세리안이 빠르게 눈을 깜빡였다.

“저도, 팀 투지에 소속되어 아세리안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이런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까 저는 정당한 수수료를 지불한 셈이니, 그렇게 고마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내 진심이었다.

만약 팀 성장에서 계속 있었더라면.

아니, 혹시 팔리더라도 다른 팀으로 갔더라면.

이렇게 빠른 속도로 스텟을 올리지 못했을 테니까.

팀 성장은 애초에 공장 컨셉이었고, 다른 팀들도 어느 정도 플레이어들을 육성시키며 자기들 방식에 맞는 매뉴얼을 확립해 두었을 것이다.

그런 팀들에 갔었다면 지금처럼 내 방식대로 훈련할 수 없다. 팀에 소속된 많은 플레이어들이 팀에서 만들어 둔 커리큘럼에 따라 훈련을 할 텐데, 나 혼자만 단독으로 훈련을 한다? 절대 불가능하다.

그건 그동안 팀이 쌓아뒀던 매뉴얼을 무너트리는 짓이었으니까. 허용할 리가 없다.

“안우진님······.”

내 목소리에 담긴 진심을 느낀 것일까?

아세리안이 감동했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후.

이런 분위기 적응 안 되네.

손발이 오그라들 것 같았다.

‘정말 다행이야.’

가면을 착용하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짠!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이름하여, 아세리안 특선 메뉴!”

테이블 위에 온갖 음식들로 가득했다.

도대체 그 짧은 시간에 몇 개나 만든 거야?

아니 애초에 이걸 우리 둘이 다 먹을 수나 있나?

“······ 맛있어 보이는군요.”

“그쵸? 앗, 잠시만요! 아직 준비 안 된 게 있어요!”

내가 포크를 들려고 하자 아세리안이 급히 제지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부엌 한켠에 있는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꺼내왔다.

두 개의 와인 잔과 함께.

“엘 쁘리메르 비노 예요. 제가 신위를 처음 부여받게 되었을 때 아버지께서 하사하신 와인이죠.”

“소중한 의미가 담긴 와인일 텐데 이런 날 마셔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이런 날이니까 따는 거죠!”

아세리안이 소믈리에 나이프를 손에 쥐더니 코르크에 쑥, 넣었다.

뽕!

청량한 소리와 함께 퍼져가는 달달한 향기.

그녀가 와인 잔에 적당한 양을 따르더니 내게 넘겨주었다.

“오늘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앞으로도 우리 더 화이팅해요!”

그녀가 와인 잔을 들더니 내게 내밀었다.

건배를 하자는 뜻.

나도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다.

그때였다.

띠링!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6 경기가 모두 끝났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관객들이 당신을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로 선정하셨습니다!]

[과반수 이상의 관객들이 당신을 ‘파이트 오브 더 블러드’로 선정하셨습니다!]

“······!”

“······!”

알림창을 보자마자 아세리안과 내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 다 멍하니 입을 벌린 채 서로를 응시할 뿐이었다.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 보너스로 7,000 P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3,000 P 차감)]

[‘파이트 오브 더 블러드’ 보너스로 7,000 P를 지급받았습니다. (팀 ‘투지’ 수수료 3,000 P 차감)]

“꺄······.”

“······?”

“꺄아아아아악!”

희열에 찬 아세리안의 목소리가 식당 안에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나와 기쁨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건.

무척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나와 아세리안은 밤 늦게까지 서로의 잔을 채워주며 즐거운 시간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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