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붉은 깃발(1)
핑-! 피핑! 피웅!
빠르게 트랙을 달리며 화살을 날렸다.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과 함께 화살이 짚단으로 이루어진 허수아비에 박혔다.
쉽지 않네.
화살이 모두 허수아비에 적중하긴 했지만, 내가 맞히려고 했던 심장과는 조금 떨어진 부위에 박혀 있었다.
‘1주일 전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긴 한데.’
뭔가 아쉬웠다.
조금만 더 하면 뭔가 감이 잡힐 것 같은데.
“인정해야겠네요.”
그때 내 훈련을 구경하던 아세리안이 한마디를 툭, 뱉었다.
후우-
내가 숨을 돌리며 다가가자 아세리안이 수건을 건넸다.
“뭘 말씀이십니까.”
“안우진님의 훈련법이 이번에도 맞았다는 것을요.”
아세리안의 표정은 무척 복잡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오늘부터 활 쏘는 걸 훈련할 겁니다. 그리고 1달 뒤엔 채찍, 그리고 1달 뒤엔 단검,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바꿔나갈 거고요.”
일주일 전, 내가 어떤 방법으로 훈련을 할 것인지 설명하자, 극구 말린 사람이 아세리안이었다.
그녀는 내가 더미로서 경기를 뛰는 것을 지켜보았다면서, 내게 가장 잘 맞는 무기는 검이라고 집요하게 설득했다.
“내게 가장 잘 맞는 무기가 검이라고 어떻게 확신하시죠?”
“네······?”
“설령 검이 가장 잘 맞는 무기라고 해도, 내가 왜 검을 써야 하는지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 텐데요.”
“······맞아요.”
물론 내 설명에 납득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답답한 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첫날 내가 활을 쏘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이었으니까.
열 발을 쏴서 단 한 발도 허수아비를 맞히지 못했다. 그것도 비교적 가까운 20미터의 거리였는데.
하지만 내 활 솜씨는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둘째 날엔 열 발을 쏴서 일곱 발을 맞혔고, 셋째 날엔 열 발을 쏴서 모두 맞혔다.
넷째 날부터는 쏘는 것마다 가슴에만 적중했고, 다섯째 날에는 움직이다가 멈춰서 쏘기 시작했다.
그렇게 일곱 째 날. 이제는 뛰어다니면서 쏴도 허수아비의 몸에 모두 적중하는 수준까지 올라온 것이다.
‘이게 다 초감각 덕분이지.’
활은 감각이 무척 중요하다. 활을 겨냥하는 방향, 활시위를 당기는 힘, 쏘는 순간의 무게 중심 등등 고려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았다.
그래서 정확히 맞히려면 많이 쏘면서 감각을 익혀야 하는데, 초감각 덕분에 예민해진 내 오감은 그 모든 것들을 빠르게 익힐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초감각이 없었다면 한 달 안에 활을 배우겠다는 목표 자체를 세울 수 없었을 것이다.
“정정할게요. 안우진님께 가장 잘 맞는 무기는 활인 게 틀림없어요. 단시일 내에 이렇게 쏠 수 있다니······. 이건 정말 천부적인 재능이라구요!”
아세리안이 무척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1년 안에 하위리그 최상위 플레이어로 등극할 수 있을 거라는 둥, 혼자 김칫국을 마시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내게 제일 잘 맞는 무기는 창이지.’
사실, 어떤 무기가 어울리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활 연습을 하는 이유는 오히려 창술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내가 왜 창을 써야 하는지 확실하게 알고 싶었으니까.
현재 내 창술의 경지는 고급창술. 최상급의 한단계 위였다.
그리고 더 나아가지 못한 채 벽에 부딪힌 상태.
고급을 넘어 특급창술로 나아가기 위해선 단순히 창을 연마하는 것 이상의 깨달음이 필요했다.
그리고 내가 아세리안에게 해준 말은 회귀 전, 창술의 고수를 만났을 때 들었던 말이었다.
‘그땐 눈이 안 보여서 할 수 없는 수련법이었지.’
물론 그것 외로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내가 가장 까다로워하는 상대가 궁수였기 때문이다.
궁수를 잡으려면 그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는지 예측해야 한다.
그걸 아는 데에는 내가 직접 활을 사용해 보는 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을 것이고.
핑-! 푹.
자세도 제대로 잡지 않고 가볍게 쏜 화살이 허수아비의 가슴에 박힌다.
조금만 더 하면.
격렬하게 움직이면서도 화살을 목표물에 정확하게 맞힐 수 있을 것 같았다.
“흐읍, 후우-. 흐읍, 후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는 걸 멈추지 않았다.
빠르게 엎드린 채 바닥을 기어 철조망을 넘는다. 이어서 밧줄을 타고 5미터 벽 위로 오른다. 점프해서 바닥을 딛자마자 앞구르기를 하며 부드럽게 착지. 그리고 지그재그로 놓여져 있는 구조물을 피한다.
지금 나는 장애물을 피하며 민첩 스텟 훈련을 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2분 7초! 한 바퀴 남았어요! 조금만 더 힘내요!”
내가 한 바퀴를 완주하자 아세리안이 랩타임을 알려왔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 무려 1분 이상이 줄어든 기록.
팔다리가 무겁다. 숨은 당장이라도 꼴깍 넘어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문 채 마지막 바퀴까지 소화했다.
“허억, 허억.”
당장이라도 무너지려는 몸을 억지로 지탱해서 휴식의 방으로 이동했다.
그리곤 곧장 바닥에 대자로 철퍼덕.
아세리안이 건네주는 물병을 익숙하게 받아 목을 축였다. 그리고는 온몸에 거추장스럽게 달려 있는 모래주머니들을 내팽개쳤다.
[이름 : 안우진(닉네임 : 미정)] [소속 : Team 투지]
[리그 : 하위리그]
[근력 : 10] [민첩 : 17] [체력 : 19]
[정신 : 88] [지력 : 12] [마력 : 0]
[각성 능력 : <초감각> <고급살기> <특급마나운용> <고급창술> <중급검술> <상급단검술> <상급투척술> <중급박투술> <하급치료술> <하급궁술>]
[보유 스킬(0/5) : 없음]
[업적 특전 : 없음] [차원 특전 : 없음] [종족 특전 : 없음]
[남은 체력 : 23%]
일주일 사이에 근력 스텟을 3, 민첩 스텟을 10, 체력 스텟을 7 올렸다.
거기다가 절대 안 오를 것만 같았던 정신 스텟도 1이나 올랐다.
스텟이 높아지면서 훈련을 통해 오르는 스텟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졌지만, 그걸 감안해도 총합 21이나 올린 셈이었다.
고작 일주일 만에.
현재 내 육체 스텟의 총합은 46.
1회차에 내가 46을 만드는 데에 얼마나 걸렸더라.
한 6개월 정도 걸렸던 것 같다.
‘10배나 빠르게 올렸네.’
경험의 힘은 정말 위대했다.
아무리 한 번 걸어본 길이라고는 하지만, 이 정도로 성장의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물론 높은 정신 스텟 덕분이지만, 결국 그 정신 안에 경험이 녹아있는 거니까.
“쉬고 계세요. 저는 다른 일 좀 하고 있을 테니까.”
아세리안이 내가 마신 물병과 젖은 수건을 들고 휴식의 방을 나섰다. 순식간에 침묵이 찾아왔다.
회귀 직전의 나를 따라잡는 데 얼마나 걸릴까?
1년? 2년?
내가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니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고위리그로 올라가는 승급전은 통곡의 벽이라고 불린다.
1회차의 나는 그 입구에조차 다가서지 못했지만.
이번 생에서는.
충분히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체력이 모두 회복되었습니다. 몸에 있던 피로감이 모두 사라집니다.]
“아, 일어나셨네요.”
휴식의 방에서 나오자 숙소 앞 벤치에 앉아있던 아세리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안우진님이 뛰었던 경기의 후기가 올라왔어요. 한번 보시겠어요?”
아, 블러드나이트171의 후기가 올라왔나 보군.
평소라면 굳이? 라는 생각이 강했겠지만, 블러드나이트171은 내가 퍼오블 보너스를 받은 경기.
그래서 솔직히 좀 궁금했다.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음······. 지금 링크 보내드릴게요!”
띠링!
[팀 ‘투지’의 주인, 아세리안 님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더미의 반란! 콜로세움을 피로 물들이다!
―메인 이벤트와 코메인 이벤트가 언더 카드 경기를 돋보이게 해주는 들러리에 불과했다!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1, 올해 최고의 이변이 발생!
아세리안이 보내준 상태창에는 3개의 링크가 올라와 있었다.
‘조회수가······ 70만?’
하위리그 경기인데도 불구하고 조회수가 무척 높았다.
물론 그래봤자 상위리그의 후기에 반도 안 나오는 조회수지만.
나는 대충 하나를 클릭해 들어가 보았다.
―더미의 반란! 콜로세움을 피로 물들이다!
‘더미 경기’라는 용어를 아는가?
‘더미 경기’란 관객의 수가 적고, 경기의 수준이 낮은 하위리그에서만 볼 수 있는 이벤트이다.
언더 카드 경기 시작 전, 관객들의 흥을 돋우기 위해 플레이어들을 레드 진형과 블루 진형으로 나누고, 한쪽의 일방적인 학살이 이루어지는 게 ‘더미 경기’의 특징이다.
그렇기 때문에 무척 잔인한 살육전이 펼쳐지는데, 그 가학성에 매료되어 하위리그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신들이 있을 정도이다.
보통 일방적인 학살을 당하는 쪽의 플레이어들을 ‘더미’라고 부르는데, 최근에 열린 하위리그-블러드나이트171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잔인하게 죽는 용으로 투입된 ‘더미’들 사이에서 엄청난 플레이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레드 진형의 플레이어들이 더미들을 학살하는 형세였다. 피가 흩뿌려지고, 비명이 난무했으며, 광기가 투기장을 잠식했다.
그런데 더미들이 거의 다 죽어갈 즈음 반전이 시작됐다. 경기장 한쪽 구석에서 소수의 레드 진형 플레이어들을 죽인 더미가 나타난 것이다.
그 더미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투기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레드 진형 플레이어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최종적으로 투기장에서 살아남은 건 이변을 만들어낸 더미 단 한 명뿐이었다.
결국 ‘퍼포먼스 오브 더 블러드’까지 선정되며 올해 하위리그의 최고 이변을 만들어낸 ‘미정’ 플레이어. 향후 네임드 플레이어로 성장해서 상위리그까지 뚫고 성장할지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참고로 팀 ‘성장’ 소속인 이 더미는 콜로세움 경기가 처음인 듯 ‘미정’ 닉네임을 달고 등장했다.
└나 이 경기 직관했음. 진짜 개쩔었음ㅋㅋㅋㅋ 신들 막 흥분해서 뒷경기도 제대로 안 보고 더미 얘기만 함.
└이 더미가 기대되는 이유. 1. 스텟이 엄청 낮은데도 상대편 다 찢고 다님 2. 검을 다루는 기교라던가, 간격을 파고드는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음
└씨발, 개 빡치네. 원석인지 똥인지도 모르고 더미로 던지는 병신같은 팀에 저런 녀석이 들어가다니······ㅠ 하, 인생 무엇? 내 랜덤 뽑기에선 똥밖에 안 나오던데······.
└저 더미가 무림 출신이라는 데 내 한쪽 불알 건다.
└네 부랄 줘도 안 갖는다, 퉤.
후기에는 수천 개의 댓글이 달려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무림 출신일 거라고?
나는 자신의 소중이를 건 저 불쌍한 신의 명복을 빌어주었다.
“대단하죠? 다들 안우진님이 여전히 ‘성장’에 소속된 줄 알더라구요. 호호, 그 이변의 플레이어가 알고 보니 다른 팀으로 팔려나갔다는 사실까지 알았다면 댓글 수가 몇 배는 더 많았을걸요?”
“나쁘지 않네요.”
확실히 긍정적인 일이다. 이슈가 많아질수록 좋다.
그래야 관객들에게 인기 있는 플레이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기가 상승하면 기본급도 더 많이 상승한다.
이번 경기로 인해 다음부터 내 기본급은 2,000 포인트.
무려 첫 번째 경기보다 100% 인상된 숫자였다.
앞으로 이어지는 경기에서도 관객들에게 나를 각인시킬 수만 있다면.
상위리그의 커트라인인 기본급 10,000 포인트도 금방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 그리고 지명 오퍼가 들어 왔는데요.”
뭐? 지명 오퍼가 벌써?
이제 콜로세움에서 한 경기밖에 안 뛰었는데?
지명 오퍼라는 건 나를 콕 집어서 출전시켜달라고 연락이 왔다는 뜻이다.
보통 5경기 이상 뛰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지명 오퍼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전까지는 일반 오퍼로 최대한 관객들에게 눈도장을 찍어야 했다.
일반 오퍼는 팀 전체에 출전 의향을 물어보는 것이다. 혹시 언제 경기가 열리는데, 팀 투지에 티오를 5개 줄 테니 출전시킬 플레이어가 있느냐, 라는 식으로 오는 게 보통이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 지명 오퍼가 들어왔다는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쪽에서는 블러드나이트176 에 안우진님을 출전시키고 싶다는 의견이었어요.”
“게임 유형은 뭡니까?”
“개인 PvP요. 참가하는 플레이어는 1,000명.”
천 명이라······.
지명 오퍼에다가 심지어 대형 경기라고?
게임의 룰과 미션이 무엇인지는 경기에 출전한 이후에나 알 수 있겠지만, 분명 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전 출전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데······. 저는 좀 더 스텟을 끌어올리고 나서 경기를 가졌으면 해요.”
“음······.”
솔직히 고민됐다.
천 명이나 참여하는 대형 경기. 아마 경기의 룰도 까다롭고 미션도 어려울 가능성이 컸다. 팀 성장에 있었더라면 생각해볼 필요도 없이 거절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좀 달랐다.
위기는 바꿔 말하면 기회가 왔다는 뜻이니까.
2회차에서는 내가 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깨달았고.
그리고 현재 내 스텟은 다른 하위리그 플레이어들에게 전혀 떨어지지 않는다.
테크닉 쪽은 내가 압도할 것이고.
그렇기에 경기에서 최종 승자로 올라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
두근- 두근-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경기에 뛴다라는 생각만으로도, 내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흥분이 찾아왔다.
내가 기다리고 있었구나.
경기에 뛸 날이 오기를.
나는 마음을 다잡고 아세리안을 바라봤다.
“뛰겠습니다. 그 경기.”
내 심장이 이렇게 원하는데.
거절할 수야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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